스카이림에 등장하는 수많은 오파츠들 중에 시간여행도, USB와 컴퓨터도, 피라미드 뺨치는 초거대 석조 건축물들도 있지만, 그 와중에 진정한 "미래"의 물건은 이런게 아니라 바로 "고고학"이다.
왜냐면 스카이림에 등장하는 고고학은 실증주의 사학에 기반하여 시대배경에 어울리지 않는 근대적인 모습을 띄고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려면, 전근대 역사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야된다.
근대 이전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사실 기반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를 쓰는 사람들이 당대의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한 역사였다.
이러한 역사관은 사실기반의 역사가 정착된 근현대에도 흔히 보였는데, 영국내전을 의회민주주의를 추구한 세력의 신성한 전쟁이라고 해석한 휘그사관이나, 민족주의 광풍이 불면서 수많은 국가들이 자신들의 주류민족의 역사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고학적 증거를 날조하는 등의 행태가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근대의 대부분의 역사가들은(사실 근현대 기준으로 전문적인 역사가가 많은 것도 아니였다. 기억해보면 뉴턴도 물리학자이면서 연금술사였지 않는가.) 사실 관계를 대놓고 혹은 은근히 왜곡하는데에 저언혀 망설임이 없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전근대적인 역사는 사실에 기반한게 아니라, 특정한 목적(이상적인 군주의 모습, 정치적 정당화, 도덕적 교훈 등등)을 가지고 사실을 끼워 맞추는 학문이였다는 것이기도하다.
그리고 그 설득의 대상은 주로 당대의 지배층과 일치했기 때문에 역사가 철저하게 정치적인 목적으로 윤색되고 왜곡되는 경우는 매우 흔했고,
사회 지도층이 아닌 사람들이 역사를 배워서 자신만의 의견을 가지게 되는 것을 정권에 반하는 반역으로 규정하기도 했으며,
애초에 역사를 배우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더 나아가서 신화, 전설, 미신과 역사를 구분하지 못하기도 했다. 뭐 아는게 있어야 구분을하지.
여기서 중요한건 역사를 쓰는 지식인들이 알고도 그냥 무시한게 아니라, 그게 잘못된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고대 로마의 건국을 설명하는 서사시인 <아이네이스>는 로마의 건국시조를 트로이가 멸망하고 이탈리아로 들어온 트로이 유민들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책이 써진 시기는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1200년 가까이 지난 아우구스투스 집권기였다.
거기에다가 로마인들이 의심치 않고 역사라고 생각했던 로마왕국 시기 역시 따져보면 존나 이상한게 많은데, 이들과 관련된 숫자가 지중해에서 흔하게 쓰이던 상징수라던가, 아니면 이름이 존나 이상하다던가(예를 들어서 호전적으로 전쟁을 많이 벌인 왕은 이름이 호전왕, 독실하게 신들을 잘 모신 왕은 독실왕 뭐 이딴 이름으로 기록되어있다.) 등등 많다.
그리고 그나마 사실기반의 과학적 역사를 기록하고자 했던 몇몇 선구자들 조차도 벌어진 일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교묘하게 왜곡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고,
그런 사례중에 하나가 서구에서 "실증주의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투키디데스다. 투키디데스는 사실만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척 하면서, 자신을 쫓아낸 아테네 민주정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기도하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관 속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형태의 고고학도 당연히 존재할수가 없다. 애초에 고고학적으로 제대로된 사실을 찾아낼 역사관이 없으니 성립도 할수가 없고, 있다고해도 역사를 쓰는 사람들이 역사적 사실에 집착하지 않는데 누가 신경쓰겠는가?
반면에 탐리엘에서는 스카이림 작중에서 직접 참가해볼수도 있는 싸아쌀 탐사 같은 "고고학적 노력"이 이루어지면서, 사실에 기반한 과학적 역사 텍스트들이 작성되고 있다.
그러한 예시가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고고학적 발굴과 기존의 전설/신화/역사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통해 노르드 중심적 인간vs엘프 대립사관을 부정하는 Frontier, Conquest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탐리엘 곳곳에서 벌인 고고학적 연구를 기반으로(아예 연대측정까지 했다), 노르드 건국신화가 기반이 된 역사적 사건들 이전에 이미 인간들 정착지가 이곳저곳에 엘프와 교류, 공존(심지어 질펀한 이종간 교배와 혼혈도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발달하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스그라머와 그 후손들이 스카이림 바깓의 엘프들과 벌인 전쟁은 "인간vs엘프의 대립"에 따른 결과가 아니며, 오히려 노르드가 시로딜과 하이락으로 진출하면서 인간-엘프의 힘의 균형을 깨뜨린 것이 인간과 엘프의 대립을 촉발시킨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윈터홀드 대학 퀘스트라인에서 방문하는 "최초의 인간도시"라는 싸아쌀 역시 마찬가지인데, 윈터홀드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고고학적 연구를 벌이고 있는 것은 차치하고, 베데스다는 아예 이 지역에서 먼저 활동한 제국 출신 학자들의 현장보고서까지 만들어놨다.
Imperial Reports on Saarthal이란 책에서 보면, 아예 대놓고 "Archeologist"라는 호칭도 등장하고,
얘들이 연구하는 내용을 보면 더 가관인데, 종교로 인해서 내전이 발생하는 세계관에서 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은 석공양식의 연대를 측정하려고하거나, 남아있는 사아쌀 전투의 흔적을 통해서 도시민들을 학살한 엘프들의 전략적 의도까지 추론하려고한다.
앞서 말했듯이, 만약 역사가들이 비실증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 사실을 탐구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학문사조가 발달했다는 것은, 탐리엘의 역사학이 최소한 3시대(Frontier, Conquest의 출판연도는 3시대 후반이다) 부터는 사실에 기반해야 된다는 학문으로 발달했다는 의미다.
곰곰히 따져보면 대단히 이상한건데, 엘더스크롤의 세계관에서 최고의 정치적 권위를 누리는 황제는 불과 200년 전까지 "신들과 인간의 관계를 보증하는 자"로서 제정일치의 지위를 누려왔다.
수많은 지방정부들 역시 종교로 부터 정치적 권위를 얻는 것은 덤. 이런 세계관에서 어떻게 사실을 규명하려는 실증주의 역사관이 등장할수 있었던걸까?
이렇게 시대배경에 어울리지 않게 근대적 역사관이 들어선 원인들은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는데,
첫번째는 게임외적인 이유로는 로어를 짜는 베데스다가 상향적 세계관과 패시브 스토리텔링을 환기시키기 위한 한 방편으로, 플레이어들에게 현대인들이라면 할만한 사실기반적 사료비판 행태를 유도하기 위해서 현대적 역사관을 삽입하였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베데스다가 플레이어가 독자적이고 자율적으로 스토리와 세계관을 해석하는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일부러 탐리엘의 역사학자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근대적 시대정신을 삽입해놓은 것이다 이말이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의심하는것 보다는, 작중의 다른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는게 더 쉬울테니까.
두번째로 게임내적인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현대 시로딜 문화권의 형성과 대륙 전체를 통일한 제 3 제국의 수립이다.
제 3제국 하에서 탐리엘 전체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통합도가 유래없을 정도로 확대되고, 제 3 제국 이전 부터 꾸준히 커지던 시로딜의 다민족적, 코스모폴리탄적 문화가 만개하면서, 엘프, 수인, 인간들의 모든 학문들이 한데 모이는 것으로 귀결되었고.(실제로 앞서 언급한 Frontier, Conquest는 3시대에 저술되었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역사관의 모순을 학문적으로 해소하려는 시도가 벌어지면서, 그 결과로 실증주의적 역사관이 태동하게 된것이다. 물론 시로딜에 정기적으로 신문이 유통될 정도로 출판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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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플라즈마 라이플이 아니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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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런거 가져오려면 베데스다 공식모드에 있는 스페이스 코어부터 가져와야지 | 23.04.09 22:3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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