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루리웹 애니메이션 유저 칼럼 시리즈입니다. 일정기간 동안 루리웹 애니갤러리 상단 공지로 노출될 예정입니다.
필진으로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은 공지사항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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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위에서부터 케이온, 바케모노가타리,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슈타인즈 게이트)
그 해 가을은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특별한 시기였습니다.
최소한 제가 8년간 덕질한, 그러니까 2009년 이래 가장 의미가 특별한 분기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왜 뜬금없이 2014년이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확실히 다른 시기들도 이때 못지 않게 가치가 있습니다.
2009년은 어과초, 케이온, 모노가타리라는 거대 오타쿠 팬덤 탄생의 해였고,
2011년 역시 마마마, 페이트, 슈타게 등 새로운 팬덤들이 우후죽순 탄생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2014년, 그것도 4분기를 가장 특별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시로바코, 겁쟁이페달, 사이코패스, 충사)
이번 글에서 서술할 '4월은 너의 거짓말'을 시작으로,
앞으로 전 '시로바코', '겁쟁이 페달', '기생수', 'psycho-pass', '로그 호라이즌/소드아트온라인',
그리고 '충사'와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낙원추방'까지 총 9개의 칼럼을 쓸 계획입니다.
이름들을 보고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자세히 파면 이 작품들은 현재 일본 애니 뿐만 아니라 서브컬쳐계를 떠받치고 있는
주요 요소들의 모범/유명사례들입니다.
전 이때가 일종의 기회라고 봅니다.
다소 일본 애니메이션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에게 적극 애니를 추천하기에 좋은 기회라고요.
일본문화+애니메이션+지브리 아님=하위문화라는 다소 편협한 스테레오타입을
걷어내기에 충분한 작품성이 있는 수작들이 상당히 많이 나온 14년 가을은 '이 때다!'라는 말이 나오기 충분합니다.
또한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래 20년 동안 급속한 변화를 거친 일본 서브컬쳐 트렌드를 들여다보기에
딱 좋은, 마치 렌즈와 같은 기회 역시 이 시기는 갖고 있습니다.
얼핏 보기엔 그냥 '풍년'인 분기지만, 쌀알이 다른 년도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서론은 이걸로 빨리 끝맺고, 빨리 본 칼럼으로 넘어가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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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이라는 영상매체는 영화와 확연히 다릅니다.
단순히 필름과 원화라는 제작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표현할 수 있는 정서의 범위가 차이가 납니다.
'업'에서 집이 떠오르는 장면을 cg 삽입 실사로 표현한다고 가정해보도록 하죠.
비주얼 면에서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을 겁니다.
사각사각한 칼의 캐릭터는 대부의 말론 브란도 얼굴형에 약간의 분장을 끼얹으면 되고,
풍선의 힘으로 떠오르는 집이야 21세기 cg면 식은 죽 먹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시각적인 부분이 '업'이 명작인 이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압니다.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가장 큰 힘은 '순수함'입니다.
감정과 정서를 막힘이나 망설임 없이 표현하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객 입장에서도 그것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흔히 '유치하다'는 비아냥을 받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때묻지 않은 어렸을 적 낭만을 표현하기 위해선 애니메이션밖에 답이 없습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틀이 담아낼 수 있는 감정표현을 한계까지 담아낸,
마치 거품 한 방울 없이 잔에 꽉꽉 눌러낸 황금빛 맥주잔과 같은 애니메이션입니다.
(으아아 미장셴 미터기 터져욧!)
여기에 한 소녀가 있습니다
바이올린을 들고 까눌레를 우물거리며 길가를 걷는 금발 소녀.
그 소녀의 눈에 파란 눈동자가 인상적인 검은색 고양이가 들어옵니다.
만면에 미소를 띠운 채로 고양이를 쫓는 그녀.
이윽고 눈높이를 마주한 소녀는 까눌레를 고양이에게 주면서 '냐~'라고 외칩니다.
소녀의 이름은, 미야조노 카오리입니다.
(피아니스트는 실제로 결벽증 환자처럼 손가랑 관리합니다. 운동선수처럼 테이핑 하는 사람들도 있죠.)
여기에 한 소년이 있습니다.
한 때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소년.
하지만 보호자이자 스승이자 애증의 대상이었던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피아노에 트라우마가 생기고, 피아니스트를 은퇴하게 됩니다.
하지만 피아노 외에 가진 것이 없던 소년. 그래도 피아노를 가까이 할 수 없는 소년.
집에 있는 피아노는 먼지만 쌓이지만 자면서 장갑을 벗지 않는 모순된 행동을 합니다.
(조연들의 캐릭터성은 결코 불합격이 아니다. 다만 주연들이 대여섯 사람 몫을 한 번에 해내서 그렇지...)
다소 내향적인 경향을 띠는 남자아이가 외향적인 여자아이를 만나서
성장하는 사춘기 청춘드라마 장르인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정말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클리셰들이 많습니다.
주인공을 아끼는 누나같은 소꿉친구부터,
성격이 정반대지만 그래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까지.
중반부터 나오는 라이벌 캐릭터들과 소악마 후배 역시
흔히 말하는 '왕도' 느낌을 풀풀 풍깁니다.
왕도는 결코 나쁜 뜻이 아닙니다.
'사도'가 '신선하다'와 '이상하다라는 양날의 검이듯이,
'왕도' 역시 '진부하다'와 '고전적이다'라는 양날의 검입니다.
고전적이라는 것이 오랜 시간 많은 사랑을 받아온 방식이라는 뜻이고,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감정을 울리는 작품이 고전이라는 면에서 볼 때,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성공한 왕도, 즉 고전적인 성장물입니다.
그럼 무엇이 4월은 너의 거짓말을 성공한 왕도로 기억되게 했을까요?
답은 오직 하나. 연출력. 그것 하나입니다.
물론 이 애니는 작화도 아름답고, 음악도 훌륭할 따름이고,
스토리, 성우 연기, 모든 것이 최고급입니다.
하지만 전 이 애니가 연출력이 조금만 부족했어도 명작 소리는 못 들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애니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명연출. 편집하는 솜씨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1화를 보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후 전개는
'카오리가 대체 어떤 캐릭터일까?'가 아니라, '앞으로 코우세이가 어떻게 변해갈까?'입니다.
원작자와 감독 의도대로라면 카오리는 중반부까지는 코우세이랑 동등한 캐릭터라기보단
하나의 현상, 혹은 사건으로 다가오도록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감독은 계속 카오리의 감정을 감춥니다.
작중에서 명작 만화 '피너츠'의 대사가 여러번 인용된다는 것은 익히 아실 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피너츠의 대사 뿐만이 아니라 등장인물 구도 역시 상당 부분 오마주했는데요,
이후 다시 설명드릴 예정이지만, 중반부까지의 카오리는 스누피와 같은 캐릭터입니다.
주인공 찰리 브라운을 휘두르고 다니는 건방진 애완견 같은 캐릭터 말입니다.
코우세이는 그런 거친 파도와 같은 여중생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뿐이죠.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연출. 1화의 그 선명한 금발은 화수가 거듭될수록 색이 줄줄 새어나간다.)
1화의 첫만남에서 보인 눈물과 2화의 '닿을까?'는 관객 입장에서 그저
아리송한 의문으로밖에 남지 않습니다.
물론 중간에 건강 문제로 입원하는 카오리의 모습에서 어느 정도 내면이 암시되기는 하지만,
그쪽보다는 아직도 트라우마에 휘감겨 발버둥치는 코우세이의 모습이 눈에 더 띄죠.
11화, 학교 옥상에서, 카오리의 머리 색이 빛바래기 시작하는 그 장면 전까지는.
잠시 카오리 얘기에서 등을 돌리겠습니다.
이 애니의 플롯에 주요 포인트를 찍어 가면서 정리한다고 가정하면,
연주 장면이 나오는 화수를 중심으로 하는 방법을 다들 떠올릴 것입니다.
그 방식이 틀리지는 않습니다. 만약 아리마 코우세이 한 개인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말이죠.
(나에게 4월 거짓말 애니 한 장면을 줘봐라. 그것을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만들어 주지.)
2화의 연주에서 코우세이는 카오리의 눈부신 연주를 동경하고, 마음이 움직입니다.
4화의 합주에서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관객석의 풍경을 대면하고, 첫 여행길에 발을 내딛습니다.
10화에서는 피아니스트 아리마 코우세이가 어떤 연주자인지를 모두의 마음에 각인 시키고,
13화에서는 지금껏 자신을 속박하던 과거와 이별하게 됩니다.
18화에서 또 다른 자신인 나기와의 합주를 통해 체념해있는 카오리에게 절절히 부탁을 하고,
마지막화에서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카오리를 송별합니다.
전형적인 '소년은 이윽고, 어른이 된다'라는 플롯이고,
그 와중에 츠바키와 나기 같은 매력적인 조연들이 조력을 하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카오리에게로 수렴하는 흔한 성장 스토리입니다.
만약에 미야조노 카오리라는 여자아이 시점에서 이 애니를 보면 어떨까요?
저는 4가지 중요 포인트가 있다고 봅니다.
우선 1화에서의 만남.
어렸을 때부터 만나고 싶어했던, 같이 연주하고 싶었던 남자아이와
작은 거짓말을 통해 인연의 끈이 이어진 순간.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간직한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진 순간.
그와 동시에 다소 미련이 생긴 순간.
자신의 병세의 악화에 좌절하고 체념한 그녀가
코우세이에게 이별해달라고 부탁하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했던 그녀가 다시금 삶에 미련을 갖고,
한번 더 코우세이와 합주를 하기로 마음을 먹는 순간.
카오리의 시점에서 바라본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성장 드라마라기보단,
애절한 사랑 이야기라고 봐야 할 정도로 분위기가 이질적입니다.
코우세이의 행보는 멈춰있던 시계추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이지만,
카오리의 행보는 그저 자그만 소망을 이루기만을 위한 것입니다.
자칫하면 이질적인 두 캐릭터성은 한 쪽의 설득력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코우세이 쪽이 밀리면 '남주가 여자 마음을 너무 몰라주네'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카오리 쪽이 밀리면 '여주가 남주 발목만 잡네 ㅉㅉ'라는 의견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애니를 본 누구도 그런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이 애니의 일등공신, 연출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죠.
몇 가지 장면들을 짚고 넘어가면서 이 애니의 연출력이 위대한 이유를 알아보죠.
첫 번째 장면.
히로코 이모가 코우세이한테 피아니스트로 복귀한 이유를 물어보자,
코우세이는 카오리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미야조노 카오리가 코우세이에게 어떠한 존재인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두 번째 장면.
나기가 코우세이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이름을 밝히지는 않지만 카오리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연애감정을 품고 있으나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과, 변명의 의미로 동경심을 대신 갖고 있는 코우세이.
그리고 화면에 나오는 시퀀스는 코우세이의 동경심을 아주 시원하게 배신하는 카오리의 괴로운 상황.
추후 갈등의 단초를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세 번째 장면.
자포자기했던 자신의 손을 꽉 잡고 끌어올린 코우세이와 병원 옥상에서 재회한 카오리.
작품 초반부와 달리 이젠 완전히 머리칼이 하얗게 샌 그녀.
목소리 톤 역시 미묘하게 힘이 빠져있는 상태지만 그날 밤과 같은 체념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비록 환자복을 입고, 벤치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그녀지만,
눈빛만은 코우세이의 손을 맞잡고 찰리 브라운의 대사를 인용하던 시절 그대로입니다.
대망의 마지막 장면.
콩쿠르 직전에 병문안 갔다가 다시 트라우마가 재발한 코우세이를
다시 한번 병원 옥상으로 불러낸 카오리.
지금껏 일방적으로 한 명의 내면만 묘사가 되었던 위의 장면들과 달리,
작중 처음으로 코우세이와 카오리의 내면이 모두 표현되는 장면입니다.
더 이상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 보내기 싫어하는 코우세이는 콩쿠르 직전에 마음이 꺾이고,
카오리는 그런 코우세이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자신도 힘낼 것이니 치사하게 먼저 포기하지 말라며 사소한 기적을 보여주는 카오리.
눈이 소복히 쌓이는 옥상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혼자 두고 가지 말아달라며 껴안깁니다.
직접적인 독백이 주무기인 이 애니의 감정 연출은 최고 난이도입니다.
적절히 감정을 절제하다가, 필요할 때만 독백을 끌어내서 쓰는 것은 쉽지만, 효과가 애매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리도 대사가 많고, 이리도 솔직하게 감정을 부딪히는 코우세이와 카오리의 구도는
연출하는 입장에서 보면 한 치의 치우침도 용납되지 않고, 한 치의 망설임도 있어선 안 되는,
그러면서도 한 톨의 군더더기 없이 대사의 힘만으로 감정을 전력투구해야하는 서커스입니다.
이후 작품의 성과야 어쨌든, 감독인 이시구로 쿄헤이가 이 당시에
새파란 신인이었다는 사실은 아직도 쉽사리 믿기지 않을 뿐입니다.
4월은 너의 거짓말과 비슷한 작품은 앞으로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4월은 너의 거짓말과 같은 작품은 앞으로 나오기 힘들 겁니다.
누구나 만들어 보고픈 작품이지만, 막상 손대려 하면 한없이 어긋나기만 하는 작품.
거품 한 방울 없이 맥주잔을 빠르게 채우는 것이 어렵듯,
감각적인 대사들을 이만큼 풍부히 쓰면서 거부감이 들지 않게 하는 건 지극히 힘듭니다.
각본 담당의 명복을 늦게나마 빌고 싶어지는 군요.
끝으로, 카오리에 대한 한 가지 사소한 사실입니다.
중반부까지의 카오리의 행보는 피너츠로 비유하면 스누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후반부의 카오리는 과연 누구일까요?
마지막화에서 나온 중학생 시절의 카오리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과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안경을 쓰고, 머리를 묶은 그녀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내성적입니다.
작품 후반부에서 보여줬던 불안정하고, 예민하고 연약한 인상이죠.
누구누구와 확실히 닮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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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똑같이 안경을 쓰고,
똑같이 주인공을 남몰래 연모하고,
똑같이 "우리 모두에겐 작별의 키스를 해줄 사람이 있어요."라는 말을 한 그녀.
후반부의 카오리야말로 페르소나가 벗겨진 진정한 미야조노 카오리인,
마시(Marcie)입니다.
오늘의 4월은 너의 거짓말 칼럼은 여기까지입니다.
리뷰와 감상과 분석이 중구난방으로 섞인 글입니다만,
애니를 즐겨 보셨던 팬분들은 즐거워 하셨기를 바라고,
애니를 아직 못 보셨던 분들은 이 글이 조금이나마 감상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다음 칼럼은 '시로바코'로 돌아오겠습니다.
지금까지 저녁에 걸판 4dx 다시 보러갈 생각에 두근거리고 있는, 입덕술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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