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유독 일이 없다.
평소에는 의뢰라던가 이런저런 귀찮은 일이 많았는데, 근 일주일 동안 간단한 잔심부름 외에는 들어오지 않아 귀찮진 않지만 배가 고프다.
배고픔을 달래려면 잠이 최선이다.
그런 논리적 추론을 통해 수요일부터인가 낮잠을 자기 시작했는데, 오늘도 평소대로 자다가 배고픔에 못 이겨 눈을 떴다.
고요한 방 안을 꼬르륵 소리가 가득 채우려고 할 때 쯤,
"...어떻게 하면...수 있죠?"
복도에서 뭔가 도란도란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모험단 동료들인가.
우리 모험단의 숙소에서 내 방의 위치는 2층 쪽방. 거실과는 가장 떨어져 있는 방이라 잘 들리지는 않는다.
딱히 2층 숙소를 마련할 만큼 부유한 모험단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운 좋게 얻게 되었다. 그래야만 하기도 했고.
"에이, 이 언니 또 농담하시네!"
"아니, 그런 것 말고... 어떻게... 커질 수 있냐구요?"
단원들은 평소에도 수다스러운 편이지만, 대화가 한창인 것 같다. 심심하기도 하니 부엌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들고 거실로 가 대화에나 끼자.
음. 계란이 좋겠다.
계란과 우유 약간을 들고 거실로 들어가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에...
"뭔 얘기들을 그렇게..."
"나, 남자가 계속..가..가슴..만지면...커, 커진다는 말도 있던데...사실인가요?"
끼려고 하자마자 폭탄선언을 들어버렸다.
"...아."
"...."
"....."
나를 등지고 있어 아직 내가 온 줄도 모른 채 대답을 기다리는 목소리의 주인공 오버마인드.
폭탄선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꽤나 관심있었던 주제인 건 마찬가지였던 듯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굳은 지니위즈.
뭐랄까...그...여러 가지 증거로 봐서 설명해주는 입장이었던 듯한 가이아.
우리 모험단원들 전부가 거기 있었고, 나를 본 거실의 전원이 침묵에 들어갔다.
"??..왜 아무도 말이 없어요?"
오버마인드는 아직도 못 알아챈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게 좋아 보인다.
"왜 뒤를...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늦어버렸다.
"어..저....그게..."
"에..으...아..아아?..아, 아아, 아, 으...."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어쩔 줄 모르는 오버마인드.
모험단 단원들이 나 빼고 전원 여성인지라, 내가 낮잠을 자고 있는 걸 틈타 벌어진'여자들만의 비밀 얘기'에서 솔직하게 질문했던 것 같다. 내 방이 혼자 2층이기도 하고.
이거다. 우리 모험단 숙소가 2층이어야만 하는 이유.
내가 메카닉이기 때문에 로봇 소음을 줄여야 한다던가, 내가 리더여서 리더의 품격을 지켜야 한다던가 하는 겉치레 뿐인 이야기가 아닌 솔직한 이유 : 이런 일이 벌어질까 봐서.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음, 이럴 때는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답하자. 난 잘못이 없다.
"괜찮아. 아무것도 나쁘지 않아."
".....리더...?"
이제 조금만 더 진정시키면 돼 보인다. 근데 머릿속에 저장된 침착한 말은 방금 다 써버렸는데.
"음...필요한 노력에 조언을 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란다. 힘내렴!"
엄지를 척 들어보이며 자상한 연장자의 미소.
통했다. 진정이 된 것 같다.
"...흐...."
"흐에에에에에에에에으아아 이젠 몰라 사라져버려요!!!!!"
"으아아아아 미안 미안하니까 집이 타버리니까 그만둬!!"
타죽기 전에 도망쳤다. 실패했나 보다.
상황은 잠시 후에 진정되었다.
"아하하하하, 아하, 아하하하하하하핫!!! 푸하, 아하하하하하핫! 리더 오빠 진짜 웃길려고 그 타이밍에, 아고, 아고고고고 배야!!! 푸하하하하하핫!!!"
미친 듯이 웃는 지니위즈.
왠지 자연스럽게 가슴을 가리려 노력하는 자세로 내 눈을 피하는 가이아.
얼굴이 새빨개진 채 방으로 달려들어가 두 시간 째 나오지 않는 오버마인드.
가이아가 달래려고 해 봤지만 "됐어요 언니...내가 바보니까..."라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저...리더 님, 당황하셨을 텐데 상황 설명이라도..."
"아냐아냐아냐아냐 안 해도 돼. 괜찮아. 대충 알 것 같으니까 괜찮아."
"....다 눈치채셨군요...."
그 말과 동시에 가이아마저 내 눈을 한결 더 피하기 시작한다. 옆에서는 지니위즈가 아직도 미친 듯이 웃고 있고. 저 녀석 원래 잘 웃었지만 오늘은 도움이 안 된다.
이대로는 상황만 더 악화될 뿐이다. 화제를 돌릴 만 한게 있을까.
고민하던 때에 수중에 있던 먹을 게 눈에 띄었다.
그래. 먹을 걸 나눠 먹으면 이 상황도 조금 진정되지 않을까?
"저기... 가이아."
"..아, 네, 왜요?"
"우유 좀 주, 어?"
'우유 좀 줘?'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거북한 상황을 너무 신경 쓴 나머지 문장 끝 부분 톤이 이상해져 버렸다.
...그래도 의미는 전해졌겠지?
"......"
".........."
".............."
또 정적.
당황해서 가이아를 쳐다보니 점점 얼굴이 붉어지고 있다.
"아, 아무리 리더 님이라도 그런 희롱은...조금...곤란해요 죄송합니다!!!!"
"......야 잠깐 아무리 그래도 이건....실수야 이건!..."
마찬가지로 도망쳐 버렸다.
"....."
방에는 이제 두 명. 나하고 지니위즈.
"...큭....크흣.."
이 녀석이야 원체 부끄럼없다기보다 엉뚱한 녀석이니까 문제될 게 없긴 한데,
"...크흡...푸읏, 큽...."
배려심 깊은 표정으로 웃음을 참으며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게 기분나쁘다.
"......눈치보지 말고 웃어도 된다."
"파아하하하하핫!! 리더 오빠 완전 개그맨!! 아하하하하하!! 아, 아하하하하하하핫! 다시 봤어 진짜! 푸흐흡, 후으, 훗, 으하하!!"
"...유구무언."
이런 식으로 한 5분쯤 웃어제꼈을까.
"...아하 진정됐다...하하..."
"이제야 됐냐."
"아휴, 워낙 웃긴 일이었어야지 참...."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지니위즈가 갑자기 기색을 바꾼다.
"..그래서 아직까지 앉아 있다는 건, 할 말 있는 거지?"
"갑자기 진지해지네..."
"진지해졌다같은 재미없는 게 아냐, 사건의 냄새를 맡은 거라구!"
"그래 뭐 여튼, 이거 어떻게 해결해야 될까?"
"음....글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진지해져도 생각은 안 하고 다니나 보다.
"아, 그래. 두 가지 생각났다."
...근데 한번 생각하면 잘 하나 보다.
"하긴 마도학 공부 하려면 머리는 좋아야겠지..."
어라, 무심코 중얼거려 버렸다.
"당연하지! 마도학자들은 마도학이 너무나 난이도 있는 학문인 까닭에 다들 조금씩 미쳐버렸다~라는 말이 왜 있는데!"
그런 말까지 있었는지는 몰랐는데, 다음에 정신병원이라도 데려가야겠다.
"뭐 여튼, 하나는 바로바로...'시간 마법'!"
"시간 마법? 그런 것도 쓸 수 있었어!?"
"아니? '시간은 모든 걸 해결해 주는 마법의 약이다'의 줄임말! 아하하하하하!!!"
이 녀석 평소에도 저런 류의 말을 마계식 농담이라며 오버마인드와 주고받곤 하는데, 내 기준에서는 하나도 안 웃기다.
오버마인드조차도 조금 어울려주는 기색으로 들어 주는 듯한 건 비밀.
이러고 또 몇 분 동안 계속 웃다가 조용해진다.
"...그래서, 또 하나는?"
"'감정 국소 마취 물약'이 있지요~ 한 개에 50만 골드입니다 고객님!"
"비싸냐...뭔데 그게?"
"감정이 여러 가지가 있잖아? 그 중에 하나를 잠시 둔화시키는 거야! 종류는 여러 가지지만 이 경우에는 '부끄러움'을 마취하는 게 되겠네!"
마도학과 연금술은 근본적인 부분이 같다는데, 그래서인지 이 녀석은 둘 다 마스터하고 가끔 연금술로 부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모험단 단원 중에 가장 돈이 많다...까지는 게을러서 자주 안 하는 나머지 해당되지 않는다. 그래도 일단 하면 품질은 확실하고, 돈으로 굶주리는 일은 없다.
연금술 장사할 때만 말투가 존댓말로 바뀌는 게 거슬리지만 지금은 내가 을이니까 넘어가자.
그나저나 이거 생각할 수록 좋은 해결법 같다. 부끄러움을 잠시 멈추고 대화를 하다 보면 오해 없이 잘 넘어가지 않을까.
두 개 가격 백만 골드는...한동안 개인의뢰 받으면서 돈 벌면 어떻게 잘 메꿔지겠지...가만.
"지니위즈 너는 이번 일 별로 상관 없어?"
"응? 으음....내가 상관이 없기는 왜 없어?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아 그래.."
아무리 그래도 이 녀석도 소녀.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있지만 물론 부끄럽고 어색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해 주고, 이렇게 같이 해결하려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주다니 정말이지 고맙다.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행동도 사실을 배려해 준 게 아니었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내 모습과 너무도 대비되서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야 그..뭐냐...고맙.."
"물론 돈벌이 수단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였습니다~ 헤헤 속았지?! 하하하하핫!! 그래서, 돈은 있어?"
이쯤 되면 수전노 행세 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해주는 건지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있긴 한데...그걸로 너 엉뚱한 부분도 마취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난 제작자인데다가, 이건 감정이 아니고 본성이라 어쩔 수 없지요~ 두 개 백만 골드입니다!"
"에누리 없냐...."
마지막 흥정에도 불구, 그저 흐흥 웃어 보이며 방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뒤 분홍빛 액체 두 병을 들고 온다.
그 사이 나도 내 방에서 백만 골드 수표 한 장을 가져왔고, 결국 나는 그 액체를 백만 골드에 샀다.
사고 보니 양도 적어서 돈이 아까운 기분이 들지만, 이 녀석들이랑 계속 모험단 해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
"자 이건 서비스!"
액체를 들고 아까워하고 있으려니 지니위즈 쪽에서 뭔가 내밀어 온다.
'칸나'라던가 쓰여있는 딸기우유 두 팩이다.
"여기다 섞어 먹이면 의심 없이 먹을 거야! 그 후에는 오빠 마음대로 하면 되겠지~"
"마음대로 한다니, 범죄 저지르는 것 같잖아..."
일단 지니위즈 특제 딸기우유 한 잔을 들고 오버마인드의 방으로 갔다.
"저기, 들어가도 돼?"
대답이 없다.
그렇다면 들어가지 않는다.
왜냐면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으니까.
뒤돌아 보니 지니위즈가 '열어'라고 입모양으로 말하고 있다.
나는 말하는 제스쳐와, X 제스쳐를 취해 보이며, '말을, 안해'라는 뜻을 전해 보인다.
그 제스쳐에 지니위즈는 답답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려 보이며 '열어도, 돼, 여자들은, 그래.'라는 제스쳐로 응수한다.
하는 수 없이 방문을 연다. 열려 있다.
생각해 보면 방에 들어가본 적이 거의 없는데, 고풍스러우면서도 소녀의 방이라는 게 물씬 느껴지는 분위기의 방이었다.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각종 마법서적, 고풍스러운 책상과 가구, 깔끔하면서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침대가 그런 분위기를 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이 방의 주인은 그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침대 위에서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쓰고 돌아누워 계시는 중이시다.
"저기..오버마인드?"
"....몰라요. 나가 주세요."
아직까지도 침울한 목소리였지만, 자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목마르지 않아? 딸기우유 한 잔 가져왔어."
"........"
잠시 주저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켜 우유를 받아 마신다.
그도 그럴게, 두 시간을 이불을 덮어쓰고 있으면 당연히 목이 마르다.
내 눈치를 보며 천천히 한 모금씩 마시더니, 쳐다보고 있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듯 눈을 피하며 컵을 돌려준다.
"고마워요...신경 써 주셔서. 그래도 지금은...조금..혼자 있고 싶어요."
아무래도 아직 부끄러운 듯하다. 그러고 보니 효과가 마시고 나서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나는지 듣지 못했는데.
일단 우유 자체는 마셨으니 상황이 나빠질 리는 없고, 대화를 거부하는 기색이 너무 강하니 지니위즈에게 물어보고 다시 오던지 하자.
"알았어. 그래도 너무 신경쓰지 마, 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니까."
"......고마워요."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나도 더 말하지 않고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갔다.
다음은 가이아의 방이다.
이 쪽은 다행히 깨어 있어서 지니위즈가 답답할 일은 없었고, 들어가 보니 가이아도 평소처럼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고 기분도 한결 괜찮아진 것 같다.
마찬가지로 방에는 거의 들어가 본 적이 없는데, 자연을 좋아하는 가이아답게 전체적으로 녹색 분위기에 화분과 목재 가구로 차 있었다.
책이나 책상은 없고 칼과 방패만 몇 자루 있다. 벽에 칼로 베인 자국이 있는 것 같은데 가끔 방에서 휘둘러 보는 걸까.
행여 잘못되서 돈 물어주는 건 사양이다. 다음에 주의시켜 두자.
"무슨 일이세요?"
"아까 일 좀 무안하게 만든 것 같아서. 그런데 괜찮아 보이네?"
"아, 아뇨. 리더 님은 잘못 없는데 저희가 너무 과민반응했죠...."
"아냐, 나도 부주의했지. 진정된 것 같아 다행이네."
대화도 평소대로고, 생각보다 빨리 진정한 듯 하다.
이러면 우유를 가지고 온 필요가 없는데? 환불해야겠다.
"그럼."
아무래도 이 쪽은 괜찮겠다. 더 이상 있어봤자 해결할 일도 없고.
"그런데 손에 들고 계신 건..?"
"아, 이거....우유야."
"........아?"
"아까부터 방에 있었고 목마르지 않을까 싶어서 들고 왔는데...참, 애시당초 아까 그것도 '우유 줄까?' 라는 뜻이었어! 말이 이상하게 나와서 그렇지"
"아, 감사합니다. 하긴 방에서 생각해보니 그렇다고 하면 이해가 되더라고요. 저도 참, 아직 멀었네요, 후훗..죄송했어요"
"놀랐잖아..."
저 쪽에서 솔직하게 사과하고 웃어버리니 이 쪽에선 더 할 말이 없다.
"그럼 이만, 오버마인드 쪽을 좀 달래줘야겠다. 아직 애라 그런지 부끄럼을 많이 타네."
"후후, 그러세요. 우유 감사했습니다."
마주 웃어보이며 방을 나갔다.
거실로 와 보니 놀랍게도 오버마인드가 나와 있었다.
지니위즈랑 얘기 중이었는데, 아까랑 똑같이 나를 등지고 있었다.
아까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인기척을 낼까 생각한 순간, 지니위즈 쪽이 이상해 보인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도망가! 도망가!'라는 사인을 필사적으로 보내기 시작한다.
"그러니까아, 이건 다아- 남자들 잘못이야! 애시당초 남자들이 말이야아, 작은 가슴만 좋아했으면 내가 그랬겠냐구우...."
취소. 오버마인드 쪽도 장난 아니게 이상해 보인다.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며 도망치려 한 순간이었다.
"뭐야아, 지니위즈으! 어딜 보는 거야.....아."
눈이 마주쳐 버렸다.
"리더어?"
아니, 저 녀석 눈이 풀려 있다. 정상이 아니다.
일단 동요하지 말자. 태연하게.
"어, 어어, 일어났어?"
그 말이 끝나자 갑자기 오버마인드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리더다, 리이더, 리더,"
따위의 말을 하면서 비틀비틀 이 쪽으로 다가온다.
"리이더어다아...리더어...리더...리이더 오빠다..."
코 앞까지 다가와서 우뚝 멈춘다. 공포 영화냐.
그것보다 방금 '리더 오빠'라고 하지 않았나? 맨날 '리더'라고만 불렀는데.
긍정적인 현상이다....정상이었으면.
"...?"
"뭐야아, 불만이에요? 나아는 리더 오빠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거야아??"
이게 뭔 일이야. 이해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다.
한 가지. 일단은 이 명백히 비정상적인 반응은 약물 때문이 분명하다. 대체 뭘 타제낀 거야.
"??야 얘 왜 이러냐?"
지니위즈 쪽은 말로 하기 그렇다는 듯 눈치를 보더니 종이를 꺼내 뭔가를 슥슥 적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오버마인드 쪽은 멋대로 내 어깨에 기대더니 뭔가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매앤날 지니위즈랑만 오빠오빠 깔깔거리면서 재밌-게에 놀고오, 나아도 재밌게 놀고 싶다안 마랴.."
아, 지니위즈가 다 적었나 보다.
'확실히 레시피대로 만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재료에 알코올이 들어가! 미안!'
...이라니 장난하냐 도움이 안 되잖아.
와중에 오버마인드는 팔짱을 끼고 얼굴을 부비적거리기 시작했다.
"오빠, 오빠아, 리더 오빠...나랑도 놀아요, 응?"
일단 외양은 반반하고, 귀여운 애가 이러고 있으면 남자가 되서 흐뭇해야 정상이겠지만...평소에 안 이러던 애가 이러니까 일단 좋긴 한데 무섭다.
지니위즈 쪽을 돌아보니, 발코니에서 빗자루를 다리에 끼워 탈출하려다가 나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야....."
"..아..음....좋은 시간 보내?"
"뭔 좋은 시간이야?! 얘 재워 빨리!!"
"쳇"
혀를 찬 게 신경에 거슬리지만, 다행히 탈출하려는 마음은 접은 듯 하다.
"나 안 졸려어~ 그래도 코 잘꺼며언 같이 자요오...헤헤.."
"으아아 상황이 미쳐돌아간다! 빨리 너 그 뭐시기 망토로 묶던 해서 재우라고!"
솔직히 오버마인드 얘 애교 안 떨다가 떠니까 지금 장난 아니게 흐뭇하고 좋다.
그게 문제다. 더 좋은 나머지 뭔가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막아야 되는데..!
"아 그래! 물약 환불 안 할 테니까!"
"어? 진짜?"
"안해 안해! 그니까 빨리 재워!"
"응응 오빠아, 우리이~빨리 코 자자?"
"으아아 빨리!!!!!"
다행히 망토에 묶이자마자 오버마인드는 곯아떨어졌다.
가이아는 아수라장이 벌어진 후에 나와(화분에 물을 주느라 못 들었다고 한다) 오버마인드를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오버마인드는 다음날 하루 종일 개인 의뢰를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방에 잔 흔적이 있는 걸로 봐서 돌아오긴 했는데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에 나가 아무도 없는 늦은 새벽에 돌아온 듯 했다.
이틀 사흘까지도 똑같은 짓을 하자 전원이 자는 척 하다가 새벽에 오버마인드가 돌아오는 걸 확인하자마자 포위해서,
부끄러워 죽으려 하는 것을 전원이 다음날 아침까지 잘 달래 주었다.
그 과정에서 방에 있던 가구 몇 개가 전소, 지니위즈가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되었다.
그리고 딸기우유 사건의 주범인 나와 지니위즈는 오버마인드에게 몇 차례나 훈계를 들었고,
'같은 모험단원에게는 약물 사용 금지', '이 일에 대한 모든 사실을 잊을 것' 두 가지를 맹세해야 했다.
"그래도 잘 끝난 것 같아 다행이네.. 모험단 이탈자라던가 안 생기고."
"그거, 저 지목해서 하는 말 같은데요 리더?"
"아...아닌데!"
조용히 혼잣말 한 건데 어떻게 들었대.
"그래 오버마인드. 리더 오빠도 마음 고생 많이 했다고? 자기 혼자 남자인 게 나쁘다던가 했었지 아마?"
"리더 님, 그렇게 생각하지는 말아 주세요. 저희도 부주의했고.."
"으으..또 리더 오빠라고.."
"뭐라고?"
다들 귀머거리라던가 그런 게 아니고, 똑똑히 들렸지만 안 들린 척 하는 거다.
"아무 말 안 했거든요!"
"후후후..."
"푸흐흐, 오버마인드 너도 참 재밌다니까!"
"으으으..."
그 편이 훨씬 재밌으니까.
"자, 그럼 간만에 시작해 볼까?"
"힘내세요. 후후, 여기도 오랜만이네요?"
"어이구 프라임, 자네 왔는가?"
안에서 나를 맞이한 것은 바람을 다루는 아이올로스, 우리 모험단원은 아니고, 직장 동료였다.
"아, 프레이야, 너도 있었어? 넌 안톤 잡을 수 있을 텐데 왜 아직도 여깄냐"
또 다른 직장 동료 프레이야도 나를 맞이했다.
"오해하지 마라! 나는 황녀님을 구출한 이후에 목표가 없어져서 일단 하던대로 돈이나 벌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래..그건 그렇다 치고..오늘도 같이 열심히 일해 보자!"
"화이팅!"
모험단원들에게 그 말을 남기고, 나는 '그란디네 발전소'광산에 마그토늄을 캐러 뛰어든다.
오늘도. 내일도.
아라드의 전 광부...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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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광.
휴가나와서 던파하다가
제 계정 캐릭터들 배경으로 얘네들을 같은 모험단으로 묶어서 티격태격하는거 써 보면 재밌지 않을까 싶어서 써 보았습니다.
이거랑(http://bbs.ruliweb.com/family/496/board/102230/read/9515735?cate=100007&page=2)같이 보셔도 재밌을 것 같네요!
의식의 흐름대로(2시간여 동안..) 써서 구성이라던가 살짝 빈약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쓰면서 굉장히 재밌게 썼기 때문에 만족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