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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지아 (1)
- 프리지아 (2)
- 프리지아 (3)
- 프리지아 (4)
- 프리지아 (5) -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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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귀신에게라도 홀린 것처럼, 정신차렸을 때는 이미 집 앞이었습니다. 스스로 걷는다기보다는 무언가에게 끌려온 감각이었습니다.
마루의 방으로 들어와서도 한참동안 멍하니 있었기에, 할머니가 저녁을 먹자고 불러주셨을때 즈음 간신히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루를 마무리했는지, 잠에 들기 전에 일기를 썼는지 역시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저 다음날 수학 수업시간이 되어서야 숙제를 깜빡잊고 말았다는 것을 반 친구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 날 이후로는 한동안 성가대나 선생님과의 대화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루에게는 참 다행스럽게도 중학생의 생활이라는 건 나름 세세한 스케쥴로 꽉 차 있어서.
학교에 등교하고, 수업을 하고, 숙제를 하는 시간들이 구멍난 마루의 틈을 막아 주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현재 우라노호시의 중등부는 3학년의 졸업을 앞둔 시기.
학교 내의 분위기도 자연스레 과거를 돌이킬 시간이 없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학생 수가 워낙 적은 곳이라, 3학년을 위해 전교생이 졸업식 노래를 연습하고 체육관에 의자를 설치하는 등의 작업이 매일 이어졌습니다.
시계의 시침과 달력의 날짜가 마루를 놀리듯이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마루가 다음날부터 성가대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있었던 계기에는 루비쨩의 부재도 한 몫 했습니다.
루비쨩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음날부터 결석을 시작하여, 칠판 구석에 '졸업식까지 앞으로 하루' 라는 글자가 써질 때까지 나흘간 학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석 첫 날에는 건강상의 문제인가 싶었던 마루도, 루비쨩이 결석을 거듭하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둘째날부터는 걱정이 되어 담임선생님께 여쭤도 보았지만, 담임선생님께서도 정확히는 모르시는 듯 했습니다.
오히려 담임선생님께서는 '쿠니키다양이 모르면 아무도 모르는 것 같은데'하고 말을 흐리셨습니다.
마루는 그제서야 성가대의 수녀선생님과 대화가 있었던 날, 루비쨩과 하교를 같이 했었는지를 돌이켜봤습니다.
현관에서 나온 후, 운동장을 가로질렀었나?
땅바닥을 걷고 걸어 교문에 다다랐을 때, 루비쨩은 있었던가? 있었..아니 없었나.
그럼 누구와 같이 하교를 했지? 옆에 마루와 똑같은 교복을 입은 누가 있었는데. 그건 누구였지.
그 학생이 마루에게 뭐라고 전한 것 같았는데, 마루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야기를 한거 같았는데.
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떠올리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마루가 머리에서 도로 끄집어내려 아무리 노력해도 이틀이나 지난 일은 안개가 낀 것 마냥 희미했고 그 대신,
내려다봤던 복도의 광경과 마루의 발끝만이 떠오를 뿐. 성과는 없었습니다.
루비쨩을 찾아가려고 마음 먹었던 셋째날도, 방과 후 졸업식 예행행사가 있어서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마루가 막을 새도 없이, 또 아무렇게나 흘러가서.
루비쨩의 친구로서 아무것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나흘 째 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쿠니키다 양. 3학년 선배님이 찾아오셨어.」
「지, 지를유?」
점심 시간이 끝날 무렵, 곧 시작될 오후 수업을 앞둔 교실 안.
자신의 책상에 앉아있던 마루는 같은 반 친구의 부름에 놀랐습니다.
마루를 3학년 학생이 보러 왔다는 것입니다.
골머리를 싸매고 한참동안 지난 며칠을 돌이키던 중이라 화들짝거리며 반문하자, 상급생의 호출을 대신 전해 준 친구 역시 적지 않게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3학년이 1학년을 찾아온다는 일은 그만큼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마루는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상급생이 없어서, 누가 불러냈는지 조금도 짐작 가질 않았습니다.
순간적으로 두려운 생각이 들었으나 선배를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결례를 범하지 않고자, 얌전히 일어나 교실 문쪽을 향했습니다.
「평안하세요. 잘 지냈나요, 쿠니키다 양?」
다소 긴장하며 마루가 나간 복도에는, 몸가짐이 다소곳한 아가씨께서 서 있었습니다.
「누,누구세요?」
프라이드가 높아보이는, 옷매무새가 단정하고 정갈한 느낌의 3학년의 상급생.
얼굴이 어딘지 익숙하기는 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어떻게 마루를 알고 있는 걸까요.
머릿 속으로 아는 사람들을 나열하여 인상착의를 비교해보지만, 답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그새 잊어먹은건가요.」
길게 내려오는 검은색의 생머리가 마찬가지로 길게 한숨을 쉽니다.
한숨과는 별개로, 호흡과 함께 살짝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쿠니키다 양, 그 날 제 얘기 자세히 안 듣고 있었죠?」
「저, 저..」
그 아름다움에 마루는 무심코 상대방의 얼굴을 세세히 뜯어보았습니다.
조금은 쌀쌀맞게 보이는 표정과 엷은 입술. 입술 옆으로는 작은 점. 작은 점과 입술 위로 시작되는 가느다란 콧매와 일자의 앞머리까지.
감탄한 마루가 우와하고 중얼거리자, 마루의 시선이 훑고 가는 걸 눈치챘는지 루비쨩의 눈을 쏙 빼다박은 듯한 눈이 날카롭게 반짝였습니다.
「집안일이 있어서 쿠니키다 양을 기다리던 루비를 먼저 하교시켰다고 했었는데.」
「아...에, 에?! 그럼 당신은?」
「네, 그래요. 며칠 전에 교문 앞에서 처음 뵈었죠? 쿠로사와 루비의 언니, 쿠로사와 다이아라고 합니다.」
3학년 선배의 말을 듣자마자, 마루의 머리 안에 낀 안개가 걷힙니다.
그렇습니다. 그 날, 교문에서 마루를 기다렸던 사람은 루비쨩이 아니었습니다.
성가대의 일로 머리가 복잡했던 마루와 만난 건, 다름 아닌 루비쨩의 언니분이였던 겁니다.
깨닫는게 너무 늦어! 속으로 자책을 한 마루는 뒤늦게 상급생에게 인사했습니다.
「아,안녕하세요, 선배님. 평안하십니까.」
「그래요. 그 날도 얘기했지만, 다이아씨로 불러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뭐, 지금은 형식적인 인사는 그만두죠.」
단호하게 대화를 마무리 짓는 다이아씨.
혹시 마루가 바로 알아보지 못한게 화가 난건 아닐까 마루는 조마조마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오늘 방과후에 쿠로사와 가에 오지 않을래요?」
「네?」
다이아씨는 그러나 그런 마루의 조마조마한 마음을 아랑곳하려는 기색이 조금도 없이, 단숨에 마루의 의식을 바꿔 놓았습니다.
「..댁에 말씀이신가요?」
방과후, 쿠로사와 가.
쿠로사와 가라면 그 쿠로사와 가?
갑작스레 그런 명가에 초대라니.
아니 그보다 왜 언니분께서 초대를.
애초에 언니분께서 찾아오신 이유는 뭐지.
설마.
「루,루,루비쨩에게 무슨 일이 있나유? 아픈 건가유? 왜 학교에 나오질 않는 거쥬? 혹시 댁에」
「그만,그만, 하나씩.」
다이아씨가 찾아온 이유가 루비쨩의 일과 무관하지 않다라고 깨닫는 순간, 상급생의 앞이라 마음 졸이며 경어를 쓰던 마루의 입이 사투리를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틀림없이 루비쨩에게 뭔가가 일어난 거였습니다.
「일단, 흥분을 좀 가라앉히세요.」
「그치만 루비쨩은.」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이에 루비쨩에게 큰일이 났다는 걱정에, 마루는 손발이 저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왜 마루는 이렇게 지 밖에 모르는 걸까요. 친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게 분명한데, 뒤늦게서야 알게 되는 걸까요.
후회가 마루를 더더욱 초조하게 만들었습니다.
「루비쨩은 괜찮나유? 몸이 안 좋은 건 아니쥬?」
「네,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진정을.」
속사포처럼 문장을 쏟아내던 마루는 괜찮다는 말을 듣고, 가쁜 호흡을 가다듬었습니다.
「후후, 안심입니다. 루비는 역시 좋은 친구를 두었군요.」
「..?」
마루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태평스러운 얼굴의 다이아씨.
가볍게 미소지은 다이아씨가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루비는 쿠니키다 양에 대해서 제게 많은 말을 해요. 그 덕에 저는 쿠니키다 양이 생각하는 것보다, 쿠니키다 양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죠.
저는 여지껏 루비가 그렇게까지 동급생의 이야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다이아씨?」
「그러니까 루비는, 쿠니키다 양이 알고 싶은 것들을 직접 전하길 원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루가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고 갸웃하는 사이, 다이아씨는 알 수 없는 말을 끝마치고 돌아섰습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수업이 끝나고 뵙겠습니다. 루비와 먼저 이야기하세요. 그 후에 다시 저와 대화를 나누도록 하지요.
그럼 방과후에.」
「다.」
'띵동땡동'
마루가 돌아서는 다이아씨를 붙잡으려 목소리를 내는 타이밍에,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왜 하필이면 지금 울리는거지. 발목을 잡는 종소리가 원망스럽게까지 느껴졌습니다.
일어나는 궁금함으로 머리가 터질 듯 했지만, 시간적으로도 예의상으로도 상급생인 다이아씨에게 물어보는 건 무리였습니다.
게다가 마루도 자리로 돌아가 수업준비를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아픈게 아니라면 루비쨩은 왜 학교에 나오지 않았을까요.
루비쨩에게 학교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는 걸까요.
시원스레 해결하지 못하고 남아버린 루비쨩의 일이 다리를 놔주지 않아, 그 자리에 못 박힌듯이 서 있었습니다.
「하아..」
그리고 그렇게 서 있는 것은 왠지 며칠 전 뵈었던 수녀선생님을 떠올리게 해서, 마루는 갑자기 세상 밖으로 떠밀린 듯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절대 벗어날 수 없는 틀 안에 갇히는 듯한 감각이기도 했습니다.
「마루는..」
이미 다 지나간 일인데도, 그 기억을 따라 불안이 다가옵니다.
혼자 동요하기 시작한 마음 탓에, 마루는 작은 몸을 숨길 은신처를 찾아 자꾸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간바루비!를 외치며 마루를 응원해 줄 루비쨩은 곁에 없습니다.
사방을 헤집던 마루의 눈은 복도 창문에 비친 마루 자신의 모습만을 발견할 뿐이었습니다.
쓸쓸히 비치고 있는 마루는 왠지 못나고 못된 아이처럼 여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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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앗..루비쨩ㅠ | 18.03.06 23: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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