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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말그대로 진보하고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어쨌든 달리려고 하고 있는 이 시대.
혁신을 부르짖는 변화의 바람 속에서도 오래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세월을 고집스럽게
품고 낡아가져만 가는 건물이 하나 있다.
코아가 호텔.
이 곳은 원래의 이름보다 다른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탐정 호텔. 그렇다. 이 곳은 대륙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두개의 탐정 조직 중 한 축인
[302호실]의 발상지이자 사람들에게 본거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리고 나 수즈 로엔조
역시 이 유명한 탐정 조직의 일원이다.
꺼내놓은 회종시계로 시간을 보면서 나는 커피를 한 모금, 파이프 담배를 한 모금 피웠다.
커피는 뜨거우면서 썼고 담배는 맵고 따가웠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담담하게
테이블 위에 놓여진 작은 거울을 흘깃 본다.
각이 잘 잡혀있는 검은 신사모자, 깔끔하게 면도하고 자연스럽게 넘긴 머리,
피곤하지 않게 보이려고 나름 신경쓴 평소의 얼굴, 깨끗하게 잘 다려진 정장.
누가봐도 품격있는 신사일 것이다. 정장이라고 불리우는 이 스타일의 복식은 최근 문화혁명
시대로 불리우며 순탄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임페리아 왕국의 최신 유행 그 자체의 것이다.
과거의 투박하고 촌스러운 갑옷들을 걸치는 시대는 바뀌고 있는 것이다.
신시대, 트렌디함을 놓치 않는 젊은 신사. 냉철하고 품위있는 탐정.
나 수즈 로엔조는 그 이미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평소에는 싫어하지만 오늘같은 날은
커피를 한잔, 또 멋짐을 위해 이렇게 파이프 담배를 물고 연기를 내주고 있다. 코아가 호텔은
우리 탐정 길드의 상징같은 존재지만 현재는 열람실이나 숙박시설 정도의 용도 외에 딱히
엣날같은 비밀스럽고 길드원들이 모여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르고있고
따라서 여행객들이 아랫층들에 많이 오간다. 그들과 차별점을 주기위해선 이정도 멋은 내줘
야 한다.
파이프를 한번더 빨고 속으로 연기가 넘어와 죽을뻔했지만 콜록거리지 않고
무표정으로 커피로 속을 달랜다. 엄청나게 써서 케이크라도 먹고 싶었지만 이곳에 그런 메뉴
따윈 없다. 나는 시계를 한번 더 쳐다보고는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로엔 스트리트.
세계 소식보다는 내가 머물고 있는 소도시. 로엔에 좀 더 중점을 둔 지역 신문같은 것이다.
빵가게 도난 사건, 애완견 실종, 축제 준비, 결혼상대 찾기, 집안일 모집, 신상 서적 출판소식,
의류점 [황금 고양이]의 확장공사 소식, 채식주의자 연합. [프라데이아의 포크] 소속 길드원.
하프만 슈프리프씨의 육식 발각...세상 벼래별 사람들과 조직들이 난리를 치고 있는듯 하다.
나는 커피를 마시려다 멈칫 하고 그대로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파이프를 쥐고 입에 가져다 대려다가 또 멈칫하고 내려놓았다.
이 빌어먹을 인간은 대체 언제 오는거냐.
30분이 넘었는데. 이 여자가 진짜.
[죄송해요. 조금 늦었습니다.]
욕하면서 인상을 구기려는데 딱 그 타이밍에 맞춰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슈나 에레메르. 마법관리국의 말단 공무원같은 녀석이자 동시에 내게 탐정 의뢰를 하는 소중한
고객이다. 내가 짜증보다 반가워하며 인사 하려고 하는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바로 용건을
이야기한다.
[서쪽 거리. 22-3. 카바드라는 가논 인 상인의 의뢰입니다. 낡은 방패라고 하는데 몇일 전에 도난
당했다가 이틀 뒤에 제자지로 돌아와있었다고 하네요. 생긴건 똑같은데 아무래도 뭔가 찝찝해서
확인하고 싶다고 합니다. 자기 조상의 물건이고 가보라고도 합니다.]
[서,서쪽 거리 22-. 카바드.]
인사고 뭐고 사무적으로 빠르게 이야기한지라 나는 그대로 뭐라할새도 없이 황급히 메모지를
꺼내 주소와 이름을 받아적었다.
[의뢰 랭크는....]
[그건 말 안해도 돼.]
슈나의 말을 끊으며 내가 쉿하고 속삭이듯 말했다.
탐정 조직[302호실]의 소속 탐정들은 각자 전문 특기분야의 랭크가 매겨진다. 나는 최하 중에
최하인 랭크 9. 당연히 내게 주어지는 의뢰 랭크 역시 9나, 높아봐야 8정도급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쪽팔리는 일이다.
누가 듣진 않았을까 두리번두리번 거리다가 다시 슈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무래도 좋다는, 무표정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다.
[확인하실 사항은?]
[없어. 뭐 복잡하게 얽히고 그런건 없지?]
[없습니다.]
[오케이.]
[그럼 이만.]
늦은 주제에 사과 한마디도 안하고 인사조차도 없이 그녀는 그렇게 떠났다.
나는 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맛없는 담배를 한 모금하곤 콜록콜록 거리면서 자리를 일어났다.
내 이름은 수즈. [302호실] 소속의 탐정이며 내 전문분야는 위작판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