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내 동생, 에스켈,
계절이 벌써 여름으로 변해가, 초목이 무성해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야.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아버지의 강요를 못 이겨 네가 변방의 경비대장으로 발령을 간지도 이제 3개월이 다 되어간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곳에서도 여전히 장난꾸러기인 모양이더구나. 아버지께서 그곳으로 당장 내려가신 다는 것을 말리느라 진땀 뺐단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잘 말씀을 드리고 있으니 이 곳의 문제는 걱정 말거라. 아버지께서도 실은 너를 매우 아끼시고 있다는 걸 네가 잘 알고, 네 스스로의 일은 잘 처신하리라 믿는다.
그건 그렇고, 요즘 수도에서는 네가 없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단다..
(중략)
..근황에 대한 보고는 이정도만 해두고, 이번에 편지를 보낸 이유는 근방의 유지, 루셔 백작 영애의 생일파티에 관한 건 때문이란다. 최근에는 일이 바빠 아버지도 나도 그런 곳까지 내려갈 여력이 안 되어서, 미안한 얘기지만 네가 딜라이트가의 대표로 인사를 드리고 와줬으면 고맙겠다.
강제할 생각은 없지만, 아버지께서는 이 것으로 네 능력을 보고, 자칫하면 지원을 끊어버리겠다 으름장을 놓으셨단다. 비단 아버지의 말씀이 아니라해도 루셔가에는 이전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고, 너도 안면을 익혀둬 나쁠 일은 없다고 나 또한 생각한단다. 그리 크지 않은 파티라곤 해도 사교계에 얼굴을 알릴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 부디 무례를 끼치지 말고 조심히, 잘 다녀오렴.
그럼 내 용건은 이것으로 끝이다. 편지가 길어졌으니 이만 줄이마. 다음에는 언제 한번 수도로 올라와 식사도 하고 얼굴도 봤으면 좋겠구나. 가까운 시일 내에 말이야.
p.s.
1. 아, 참고로 루셔가 영애의 생일은 귀부인의 달, 스물하고 엿새째란다. 이 편지가 귀부인의 달 스무 번째 날 적혔으니, 편지가 도착할 즈음이면 사나흘정도의 시간이 있겠구나.
2. 루셔가에는 멋진 호수가 있다더구나. 네가 꼭 보고 형에게 말해주렴.
3. 그리고 그곳에는 민물고기가 맛있다더구나. 파티를 한다면 반드시 테이블에 올라오겠지. 먹는 것을 좋아하는 너이기에, 이런 정보도 귀하다 여겨 여기에 첨한다. 이제 정말 끝이 야. 형의 말이 길다고 너무 싫어하진 말아줬으면 좋겠구나.
언제나 너를 아끼는 형, 펠릭스 W 딜라이트가.
라일락이 지는 계절의 초입에서.
“아, 이런..”
서너쪽이 넘는 장문의 편지를 다 읽고난 에스켈은 작게 탄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이를 어쩌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편지를 매만지던 에스켈은 편지를 다시금 접어 봉투에 집어넣었다. 오랜만에 수도의 소식이나, 꾹꾹 눌러쓴 정성어린 형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야 반가웠지만, 형의 편지에 적힌 요청은 반가운 얘기가 아니었다.
“아아.. 루셔가라..”
에스켈은 작게 한숨을 쉬며 탁자 위에 놓여있는 달력을 집어 들었다. 펠릭스의 편지에 의하면 편지가 보내진 것이 20일, 그리고 도착한 것이 전날이었던 24일 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에스켈이 괜한 변덕으로 경비대장을 때려치운 탓에 편지의 배송이 늦어졌고, 결과적으로 삼일도 채 남지 않은 오늘이 돼서야 편지를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에스켈은 여러 가지 후회들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을 느끼며 가볍게 머리카락들을 쥐었다.
“며칠만 더 늦게 때려치울걸..”
에스켈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이내 은화주머니를 뒤적여 여행 경비를 확인했다. 절걱거리는 은화들이 손 안에서 촤르륵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묵직한 은화주머니는 ‘(낙하산이었던 경비대장이었지만) 그래도 대장은 대장이라고, 아버님께 잘 말해 달라’는 말과 함께 상관에게 받은 뇌물 섞인 금품이었다.
평범한 모험가가 혼자서 여행을 하기에는 1년도 충분할 정도로 많은 양이었지만, 귀족의 파티에 참여하려면 그에 걸맞은 격식이 필요한 법이었다. 파티에서 입을 격식 있는 옷과 늘씬한 말, 그리고 얼굴도 모를 백작영애의 취향에 걸맞을 법한 화려한 선물을 산다 치면, 그 다음의 여행지는 노발대발하는 아버지가 기다리는 집뿐이었다.
에스켈에게 이런 식의 귀환이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긴 도주여행을 준비하며 (평민 모험가의 기분도 느낄 겸) 차근차근 모아온 돈이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질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에스켈에게 조금 서글픈 기분을 안겨주었다.
‘잘 가라, 내 귀여운 반짝이들아.’
에스켈은 부러 소리가 나게끔 동전들을 손사이로 미끄러뜨리다가, 돈주머니를 꽉 조여 매곤 허리에 걸었다. 옷, 선물, 말과 남은 기간 생각하면 루셔가로 향하는 여행은 절약하면서도 서둘러야만 했다.
‘일단은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에스켈이 짐 가방을 챙겨들고 자신의 여관 방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아, 어딜 그리 급히 가십니까, 에스켈님?”
열리는 문 틈으로 뱀처럼 휘감겨 들어온 손과 목소리에, 에스켈은 잡고 있던 문고리를 도로 잡아당기며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문은 단단히 고정된 듯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에스켈은 문은 포기한 채 황급히 문고리를 놓고는 창문으로 달려갔다.
“라, 라이얀, 창문 값은 자네가 내..”
“-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에스켈님.”
목덜미를 낚아챈 손길과 동시에 차가운 목소리가 목 뒤를 간질이듯 가깝게 붙어 들려오자, 에스켈은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를 억누르고, 억지 웃음을 지어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하.. 그렇겠지..?”
에스켈의 목덜미를 잡아 챈 자는 금발의 머리를 단정하게 잘라낸 푸른 눈의 청년으로, 이름은 라이얀 D 모스. 에스켈의 최측근이며 그의 시종이기도 하였다. 몰락한 귀족가의 장손으로 팔리듯 딜라이트가에 들어온 그는 10여년이 넘는 긴 시간을 에스켈과 함께 해온 절친한 친우이며, 동시에 에스켈의 전담 감시자이기도 했다. 덕분에 에스켈이 사고를 칠 때마다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혼내 키는 것은 그의 주 책무이기도 했다. 즉, 지금의 에스켈이 가장 만나기 싫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일부러 가명까지 써가면서 숙소에서 가장 먼 여관을 잡았는데..’
그를 피하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찬바람을 마시며 한 일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진 데에 대한 서글픔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지그시 감는 에스켈의 목을 끌어당겨 자신의 옆에 놓으며, 라이얀은 테이블에 있는 의자를 발로 끌어와 그 위에 앉았다.
그리곤 흥분을 가라앉히듯 기다란 속눈썹을 내리깔며 심호흡을 한 라이얀은 친애하는 주인을 대하는 친절한 시종의 모습으로 에스켈에게 미소를 지었다. 다분히 안심을 시키려는 미소였지만 에스켈의 눈에는 그것이 요놈을 어떻게 요리해줄까 고민하는 쉐프의 모습으로 보였고, 라이얀은 그 걱정을 종식시킬 생각이 없는 듯 지체 없이 품속의 새하얀 종이를 두 손가락으로 집어 끄집어냈다.
“이 쪽지, 기억하시지요. 직접 쓰셨으니까요?”
“아아.. 그 추천서..를 왜 자네가?”
의아한 표정으로 주눅이 들어 라이얀을 바라보는 모습에는 주인 되는 자의 위엄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라이얀은 그 모습에 한숨을 길게 내쉬며 추천서라 불린 그 종이를 펼쳐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갔다.
“안녕하세요, 시장님, 경비대장 에스켈 T 딜라이트입니다. 오늘은 좋은 날이군요. 어제 시장에 갔는데 좋은 경비대장감이 있기에 이렇게 추천해드립니다. 좋은 날 되십시오, 이만.”
냉랭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읽어나가는 목소리는 감정을 죽이려는 낌새가 느껴졌지만, 오랜 시간 그를 알아온 에스켈이 아니더라도 모습의 표정에 드러난 깊은 짜증은 가릴 수가 없었다. 라이얀은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믿을 수 없는 것을 보듯이 몇 번이고 그 추천서를 훑어보고는 그것을 꾸깃꾸깃 뭉쳐 방바닥에 내던졌다.
“왕립학교 초등부가, 아니 유아부가 적어도 이보단 나을 겁니다!”
“그, 그 정도까지는 아니..”
“-지 않다고요!”
라이얀이 내던진 추천서였던 종이덩이를 발로 짓밟으며 외치자, 에스켈은 찔끔 놀라 뒷걸음질을 치다, 어느새 자신이 창문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깨닫고는 순간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이만큼 창문이 가깝다면 아무리 라이얀이 반응이 좋다고 해도 자신을 잡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에스켈은 그 생각이 들자마자 슬금슬금 창문 쪽으로 자리를 잡으며 말했다.
“너, 너무하네, 라이얀! 나, 나는 상처받았다고?”
“다 보입니다, 에스켈님.”
라이얀은 뻔히 보이는 연극 투의 말투와 어색한 표정, 행동에 에스켈의 의중을 파악하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에스켈은 개의치 않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생각에 골몰해 라이얀의 표정을 살피지 못하는 것인지 계속해서 행동을 이어가며 창문에 손을 짚었다.
“나, 나는! 상처받았다고오!”
그리곤 크게 외치며 창문을 어깨로 들이박아 창문을 깨부수며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에스켈을 보며, 라이얀은 편지를 읽고 난 직후처럼 깊은 짜증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러니까.. 보인다고 했는데.. 창문은 왜 깨냐고..”
라이얀은 짜증을 눌러 담듯이 중얼거리며 손을 창문을 향해 뻗고는 나직이 주문을 외웠다.
“노움의 장난.”
라이얀의 영창과 동시에 창밖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라이얀은 천천히 창문가로 걸어가 깨진 창문을 팔꿈치로 마저 치워내곤 차가운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바닥에 드러누워 연신 몸을 꿈틀대며 일으키려는 에스켈이 보였다.
“우, 우왓, 뭐야, 뭔데 이건!”
라이얀은 마구를 전개한 건지 그사이 전신에 경갑을 두른 형태로 바뀐 에스켈을 내려 보다, 천천히 창가에서 멀어져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에스켈은 자신의 마구 ‘뒤늦은 불꽃’의 힘을 빌어 몸을 일으키려 이리저리 애쓰다가, 움직임의 뒤에 이어지는 뒤늦은 불꽃에 자꾸만 몸이 데여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추하시군요, 에스켈님.”
차가운 목소리로 라이얀은 기름통이 엎어진 땅 위를 구르듯 이리저리 미끄러지고 있는 에스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에스켈은 그제야 이 기묘한 현상의 원인이 라이얀이란 것을 깨달은 건지 자신의 전신을 뒤덮은 경갑을 해제하며 포기한 듯 땅 위에 드러누웠다. 작게 숨을 헐떡이는 에스켈의 몸 위로 파편처럼 나뉜 경갑이 모여들어 대검이 되어 떨어지자, 라이얀은 작게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노움의 장난, 땅 위에 노움들이 기름을 뿌린 듯이 미끄러워지는 하급의 마법입니다, 에스켈님.”
“아.. 설명.. 참 고맙다..”
에스켈은 숨을 헐떡이며 자신을 짓누르는 마구를 옆으로 밀어 떨어뜨리곤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금 미끄러져 바닥에 코를 박았다. 욱,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코를 쥔 에스켈은 왜 아직도 마법을 해제 안한 거냐는 듯이 원망의 눈초리를 라이얀에게 보냈다. 라이얀은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검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창문 값은 에스켈님의 월급으로 내세요.”
한참을 물끄러미 대검을 바라보고 있던 라이얀이 여전히 시선을 거기에 둔 채 입을 열었다. 에스켈은 코피는 나지 않는지 코를 매만지며 확인하다, 라이얀의 말에 고개를 살짝 뒤로 꺾어들며 말했다.
“으.. 얼만데?”
“은화 하나정도 라던데요.”
돌아온 라이얀의 답에 에스켈은 무슨 창문이 그리 비싸냐며 항의를 하려다가, 자신이 귀족 도련님이라 그런 시세를 잘 모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턱을 쓸어 만지며 수긍했다. 에스켈의 생각에, 귀족이란 이런 사사로운 것에 언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었고, 이럴 때 시원스레 지갑을 여는 것이 귀족의 품위라는 생각도 있었다. 물론 그런 것이 멋진 귀족을 만드는 것은 아니었고, 귀족의 품위란 그런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지만 비뚤어진 교육관을 지닌 아버지와 그를 싸고도는 형의 사이에서 자란 에스켈의 가정교육 수준은 불행히도 그리 좋은 편이 되지 못한 편이었다.
“좋아, 까짓것, 내면 되지.”
에스켈은 최대한 어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은화주머니를 열려다 다시금 옆으로 미끄러져 넘어지곤, 다시 코를 쥐며 라이얀을 올려다보았다.
“라이얀.. 이거..”
“아, 그거요. 시간제한이 있는 마법이라 못 풉니다만.”
라이얀은 코를 쥐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에스켈에게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분명 추천서나 창문을 깨고 도망치려한 보복으로 이런 마법을 건 것이리라, 그리 짐작하며 에스켈은 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은 라이얀에게 승리감을 덧붙여줄 뿐이었다. 조금 얄미울 정도의 미소를 지으며 서있는 라이얀을 분한 듯 올려다보다, 에스켈은 허리춤의 은화주머니를 라이얀에게 밀듯이 던지고는 다시금 바닥에 납죽 엎드려버렸다.
“그걸로 볶든 지지든 마음대로 해!”
“네, 그럼 이걸로 볶든 지지든.. 오.”
라이얀은 은화주머니를 집어 올리며 그 묵직함에 제법 놀란 듯 작게 탄성을 지르곤 자신의 허리춤에 은화주머니를 갈무리 했다. 그리곤 여관 안으로 걸음을 옮기는 라이얀을 보며 에스켈은 자신의 손을 떠나간 빛나는 짤랑이들에게 애도를 표하다, 순간 품 속에 갈무리한 편지를 떠올리며 라이얀에게 손을 뻗었다.
“아, 아! 잠시만! 라이얀! 라이얀!”
“음? 아직도 미련이 남으셨습니까? 에스켈님, 창문 값을 지불하고 난 뒤 남은 돈은 금전 감각이 없는 에스켈님을 대신해 제가 관리할테니..”
에스켈의 절박한 목소리에 라이얀은 안심하라는 듯 돌아서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에스켈의 부름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기에, 에스켈은 이리저리 미끄러지면서도 손사레를 치며 편지를 품속에서 꺼내 라이얀에게 내밀었다.
“그, 게, 아니라.. 아, 이 마법 짜증나!”
“에스켈님, 귀족으로의 체면을 생각해서 짜증이 나더라도 속이 끓는구나. 정도로 말씀하셔야죠.”
“그게 왜 귀족의 체면이랑 상관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거 보라고!”
지적하듯 말하는 라이얀에게 에스켈이 답답하단 듯이 편지를 내밀자, 라이얀은 의아한 눈으로 에스켈의 손끝을 바라보다 가까이 다가와 편지를 받아들었다.
“이 편지는.. 딜라이트가의 인장이군요.”
편지를 봉했던 밀랍을 보며 중얼거린 라이얀은 잠시 편지를 봉투째로 앞뒤로 살펴보곤,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꺼내들었다. 명문가인 딜라이트가로 오는 편지 중에는 간혹 가문을 질투해 편지류 안에 독을 숨겨 암살을 꾀하는 사례도 있었기에, 사역인으로써 몸에 익은 습관 중 하나였다.
“펠릭스님의 필체는 확실하군요. 그리고.. 음.. 흠흠.. 그렇습니까.”
라이얀은 고개를 끄덕이며 필적 검사라도 하듯 꼼꼼히 편지를 살펴보곤, 이내 납득했다는 듯 편지를 접어 봉투 안에 집어넣었다.
“그렇군요. 그러니까, 26일까지는 루셔가에 도착해야한다..”
“응, 그러니까 그 돈은 다 쓰면 안 돼.”
“응? 잠시만요. 오늘이 분명.. 24일 아니었습니까?”
라이얀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에스켈에게 묻자, 에스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래, 그러니까 그 돈은 다 쓰면 안 된다고.”
“아니, 그 전에.. 루셔가면.. 말로 3일은 달려야 하는 곳 아닙니까!”
“좋은 말이면 이틀 안엔 가.”
에스켈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라이얀은 기가 질린 듯한 표정으로 에스켈을 바라보았다.
“그건 말을 쉬지 않고 달렸을 때겠지요! 말을 죽일 셈입니까? 좋은 말이라도 이틀 내에는 무리에요!”
현실을 좀 아시죠, 이 답답이야! 라이얀은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억지로 되삼키며 주먹을 꾸욱 쥐었다가 천천히 손을 풀어내었다. 자신의 주인이 얼마나 멍청한 인간인지, 그리고 말이 통하지 않는지는 지난 10여년을 함께하며 잘 알게 되었기에, 굳이 그를 질책하며 시간을 버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말을 빌리도록 하죠.. 길 도중에 작은 마을이나.. 역참이 있는지도 확인해보죠. 밥 먹을 시간을 아껴서 부지런히 달리면.. 어떻게든 되겠죠..”
라이얀은 화를 내보내듯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손가락을 튕겨 마법을 해제했다. 라이얀이 마법을 해제한 것은 눈치 채지 못한 듯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기뻐하는 에스켈의 모습에 라이얀은 거짓말을 둘러대지 않아도 좋은 주인의 멍청함에 감사하며 역참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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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첫글이네요. 조금 밝은 분위기의 판타지 소설을 생각하며 글을 적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https://bbs.ruliweb.com/family/212/board/300068/read/30560373?
2화입니다.
http://bbs.ruliweb.com/family/212/board/300068/read/30560387
3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