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오오, 소환 되다니 한심하구나, 용사여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남들처럼 12년의 인생을 교육과정에 바치는 인생이 지루하지는 않았다. 소설이나 만화에서처럼 트럭에 치인다거나, 금화를 줍거나, 아니면 무언가 빛에 휩싸여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꿈을 꾼 적도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 정말 평~범하게 남들처럼 수능을 치고, 성적을 잘 받고 적당한 대학에 진학해, 장학생으로 선발되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후 평범한 직장에서 평범하게 일하면서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아내와 평범한 자식을 보며 평범하게 늙어죽는 인생을 꿈꿨었다.
그런데 지금의 내 상황은 그런 꿈과는 거리가 멀잖아.
“젠장.”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날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그도 그럴게 12년 동안 교육과정에 바쳐왔던 인생의 결말을 보는 날 직전이었으니까. 수능 예비 소집일을 맞아서 친구들과 수험장이 될 학교를 둘러보고, 여러 푸념을 늘어놓으며 집으로 귀가하던 중이었다.
“그럼 내일 보자.”
“그래. 내일 보자.”
먼저 버스에서 내린 친구와 인사를 한 뒤 나는 두 정거장을 더 가서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네, 엄마. 응. 둘러보고 왔어요. 응. 지금 집에 갈게.”
어머니와 그렇게 통화를 한 뒤 나는 집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11월이라 그런지 날씨도 쌀쌀했다. 역시 수능한파가 있다더니, 그거 사실이었구나. 왜 2년 동안 나는 그런 걸 느끼지 못 했을까. 그 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나는 집으로 빨리 갈 수 있는 골목길에 들어섰다.
“오늘은 수능금지곡 같은 거 안 듣게 조심해야지.”
집 근처가 상가라서 여러모로 위험하다. 1년 전에 나온 그 자기 뽑아달라고 하는 노래 같은 건 특히나 위험하다. 내 친구 놈도 그걸 듣고 마지막 모의고사 망쳤으니까.
“링딩동 링딩동 링디기딩기디딩딩딩……. 응? 아, 신발 끈 풀렸네.”
뭔가 위험한 노래를 부르다 휘청거려서 아래를 보니 신발 끈이 풀려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신발 끈을 고쳐 멨다. 망할,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고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부모님이랑 같이 운세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위험해.”
“네?”
“자네, 조심해야겠어. 인생에 딱 두 번 액이 끼이는데, 그 액만 잘 피하면 남은 인생은 피겠네 그려.”
“아, 네.”
“자네가 몇 살이랬지?”
“어, 열일곱 살이죠?”
“2년 뒤, 중요한 날에 신발 끈 조심하게. 그게 자네 인생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거야.”
이건 또 무슨 악담이냐, 하고 그때는 넘겼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어머니 말대로 촛농으로 고정시켰어야 되는 건데.
신발 끈을 묶고 나는 다시 길을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고, 내 눈 앞에는 익숙한 길이 아니라 웬 이상한 옷을 입고 지팡이를 높이 치켜든 에메랄드색 눈을 한 여자애를 중심으로 비슷한 복장을 한 아저씨들이 서 있었다.
“응?”
“서, 성공, 성공했다아!”
아저씨들의 외침과 함께 여자애는 지팡이를 내렸다. 그리고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에게 온갖 찬사…… 같은 걸 받는 것 같았다. 이건 무슨 상황이냐. 난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가 안 되고 있는데요. 얼빠져 있는 나를 놔두고 자기들끼리 기뻐하던 중, 지팡이를 들고 있던 여자애가 돌아서며 나와 시선을 맞췄다.
“어서 오세요. 여기는 당신이 살던 세상과는 다른 차원의 세상인 큐에르입니다.”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마왕의 침략에 맞서서, 저희를 구해주세요, 용사님!”
……그러니까, 이건 즉.
“뭔 미친 소리야!”
나는 그렇게 소리치며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아저씨를 밀치며 뛰쳐나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여긴 정말 처음 보는 곳이다. 익숙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상으로만 익숙한 거지, 내가 여기를 안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벽돌로 만들어진 벽에 뚫린 창문으로 밖을 보자 그곳에는 커다란 매가 날아다니고, 말과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에나 나오는 복장을 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앗, 아아앗…….”
말도 나오지 않는다.
누가 그랬던가.
이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트럭에 치이거나, 유물 같은 물건을 줍거나, 혹은 죽거나 해야 한다고. 그러면 여신이 나타나서 특수능력을 주고, 여차할 경우에는 그 여신을 특수능력으로 받아서 가면 된다고. 그딴 거 다 엿 먹으라 그래. 그냥 신발 끈 조심해라.
그렇게 해방된 민족까지 24시간 정도를 남기고, 내 교육과정 인생 12년은 허망하게 날아가 버렸다. 트럭에 치이지도, 물건을 주운 적도, 심지어 트랙터에 치어 죽지도 않았는데, 나는 이렇게 이세계로 소환되어 버렸다.
“웃기지 마아아아아아!”
그리하여, 내 이세계 라이프가 성대하게 막을 열어버렸다. 그것도 제멋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