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너머로 더 이상 한기가 스며들지 않는 때 쯤이면 바람 아닌 고양이 소리가 유리장을 뚫고 들려온다. 한놈이 카랑한 소리로 울면 어디선가 다른 녀석이 대답한다. 고양이를 키워 본 이에게 봄은 고양이들의 짝을 찾는 비명이 더 익숙하다. 고개를 돌려 하선생을 바라보니 딱히 소리에 관심 없는 듯 심드렁한 얼굴을 땅에 붙인채 누워있었다.
"하선생은 발정기에 아무렇지도 않나?"
하선생의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주섬주섬 일어나더니 벽에 등을 대고는 땅에 털썩하고 펑퍼짐한 엉덩이를 깐다.
"내가 이때까지 주인이 좋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인성이 글러먹었구만."
"응?"
"내 가랑이에 있던걸 없애버린게 누구지?"
하선생의 눈빛이 번뜩하고 빛난다. 슬쩍 고개를 돌려 시선을 회피했다. 아직은 방안의 공기가 서늘한데 식은땀이 이마에 맺히는거 같았다.
"미..미안."
"아냐아냐. 뭐 지금은 주인에게 고마워하고 있네. 어차피 고양이들에게 짝찾기란 매 월마다 찾아오는 비이성적 기간이지만. 나는 거기서 해방되었으니까 말이지."
"하선생은 짝이 있는게 싫어?"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고양이가 그렇다네만?"
"고양이가 독신주의라고?"
"독신주의보다는 개별주의라고 해주게. 그렇네. 고양이란 본디 혼자 있기를 원한다만 인간들은 유난히도 우리를 붙여 놓기를 좋아한단말이지. 심지어 같이 고양이 끼리도 아니고 다른 종들과도!"
"혼자는 외롭지 않아?실제로 누군가와 붙어 있는 고양이들도 있잖아."
"인간도 동성끼리 사랑하고 무성애자도 있고 그러지 않은가. 고양이도 그런 유별난 녀석들이 있는 법이야. 그래봤자 고양이들의 개채수를 생각하면 주인이 보는 유튜브니 트위터니 페북이니 뭐니 하는 곳에서 보이는 유별난 고양이들은 정말 소수일뿐이라네. 그외의 고양이들은 모두 개별주의니 인간같이 차별이니 뭐니 하는 짓으로 힘을 쓰지 않을 뿐이고. 그리고 외로움은 가치있는 형태가 아니라고 생각하나?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매우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거 같아보이던데 관계의 가치는 옳기만 한겐가?"
"하지만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삶을 영위하고 있는걸."
"고양이도 그런 관계는 유지하고 있네. 짝짓기를 통해서 계속 종을 유지하고 있는걸. 뭐 인간에게 관계의 포용범위가 고양이보다 넓다는 것은 고양이로서 인정은 하고 있다네. 그렇기에 문명을 발전해 온 것이겠지. 하지만 말이야. 가끔 인간은 서로가 개별적 존재임을 망각하고 서로 맞지 않는 아귀를 맞출려고 무리한단 말이지. 고양이가 보기에는 너무나 어리석은 짓일세."
"하아. 피곤할때가 있지. 내가 뭐 때문에 저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맞춰줘야 하나.. 하고 말이야. 어릴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세상 사람이 모두 나와 같다면 마음을 헤아릴 필요도 없고 나는 싸움을 싫어하고 평화를 원하니 전쟁도 없어지고 평화로운 세상도 될꺼고 그야말로 이상적인 세상이 될텐데라고 말이야."
"그야말로 고양이와 같은 생각이구만. 그러나 세상 사람이 다 주인같은 사람이면 역시 문명발전이고 뭐고 원시시대 일지도. 인간의 종이 멸종하거나.."
"방금 얘기는 반박하기 어렵네."
"고양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서로가 개별적인 존재임을 인정하면 그래도 이리 인간 세상이 혼잡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네만. 주인은 그럴수 있겠나?"
하선생이 폴짝폴짝하고 보일러 난방 버튼을 누르려는 노력과 말을 하려는 노력 두가지를 동시에 이루려는 것이 가상하여 나는 하선생을 들어 안았다.
"하선생. 이미 이번달 난방비가 하선생의 고급사료값을 구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나왔어. 개별적인건 좋은데. 나랑 같이 살고 싶으면 내 지갑도 생각해 주는게 좋을거야."
"내 여러차레 얘기한거 같지만 주인은 참 야박하이."
하선생의 꼬리가 찰싹하고 내 뺨을 때린다. 인간이 고양이보다 나은 점중의 하나는 언제나 감정을 분출하며 살지 않는 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나는 하선생을 꼬옥 안는다. 하악하며 하선생의 몸부림이 느껴지나 이내 포기하고 얌전해졌다. 아직은 차가운 공기에 닿는 살보다는 서로 맞닿는 살갖이 더욱 따뜻함을 하선생도 인정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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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대화 상대였더랬습니다. ㅎㅎ | 16.08.23 09:2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