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버지는 한량이셨습니다.
젊으셨을 때는 시골에서 도시락 싸가며 도시에 있는 공고에 다니시면서 늘 1~2등 하셨다고 하고
둘째는 대학교에 안 보내겠다는 할머니를 설득시키기 위해 학교 선생님들이 시골에 찾아가신 적도 있다고 하구요
아무튼 아버지는 대학진학을 포기하시고,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면서 일을 하시다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엄니를 만나고 결혼하셨다고 합니다.
그 뒤로는 자리를 잡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 벌이를 좀 포기하고 단순한 일을 하시기 시작했다고 하던데
이 때 할머니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가 '남들 다 집 사려고 평생을 일 하는데 난 서른에 집이 있다' 하시면서 일을 거의 안 하셨고
엄니는 집이 있던 뭐던 일 하시는게 습관이 배어 계셨기 때문에 이 일, 저 일 하셨구요
그러다 엄니가 세탁소를 차리시게 되면서 아버지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엄니 세탁소에서 다림질을 하셨습니다.
당연히 엄청 자주 싸우고, 일 하다가 사라지고, 금요일이면 오전에 슬쩍 빠져나가서 주말내내 친구들이랑 놀다 들어오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다가 엄니가 다른 남자를 만나셨습니다. 뭐 어린 마음에 엄니가 원망스러웠지만 다른 남자 만나려던 이유가 이해는 갔죠
그 뒤로는 엄니가 전화 한 번만 안 받아도 자기 전화 부수고, 엄니 전화 부수고, 집기들 부수고 난리도 아니었고, 약간 의처증같은게 생겼습니다.
일도 안 했으니 하루종일 집에서 술만 퍼먹다가 엄니 퇴근하고 오면 시비걸기 일쑤였죠
이혼하네 마네 얘기 하다가도 아버지는 막상 법원에 가면 그냥 집에 가자면서 돌아왔고
한 번은 변호사사무소 가서 50만 원 주고 엄니의 재산포기각서를 쓰게 한 후에 또 법원 입구에서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전 그런걸 보면서 빨리 집에서 나가고싶다는 생각이랑 돈을 벌어야겠다, 내가 변해야 가족들도 변한다는 생각을 했고, 부사관을 지원했는데
임관식날이 진짜 최고였습니다. 임관날 며칠 전에 집에 전화를 해서 임관식 날짜를 가족들에게 설명하는데
엄니 핸드폰이 없는 번호라길래 집으로 전화를 하니 동생이 받더라구요
동생보고 '야 엄마 바꿔줘' 하니까 엄마가 집 나간지 몇 주 됐다고.. 알겠다 하고 끊었습니다.
근데 가족들이 우편으로 도착한 임관식 통지서를 읽고 찾아왔더리구요.. 임관식장에서 어깨에 견장 달아 줄 사람이 없어서 고개 숙이고 있었더니
동기 어머님분께서 '아이고.. 달아줄 분이 안 오셨구나..' 하고 한쪽 어깨에 달아주시는 찰나에 '왔어요 왔어!' 하면서 엄니가 뛰어오시고
그 뒤로 아버지랑 동생이 같이 걸어오길래 되게 감동적이었는데, 임관식 끝나고 가는 길에 오랜만에 만난 부부가 어찌나 반가웠는지 차에서 싸우더군요
듣다듣다 너무 ㅈ같아서 이럴거면 왜 왔냐고 나 혼자서도 돌아갈 수 있었다고 울부짖으니까 한 1분 조용하다가 다시 싸움
논산에서 저희 집 올라가다가 이모네 집 들르더니 이번엔 아부지랑 이모랑 싸움ㅋㅋ 지금이야 군인 싫어서 전역했지만 그때만 해도 되게 영광스러운 날이었는데 개-판
당연히 그 뒤로도 그런식으로 생활했고, 군생활 하다가도 엄마가 나갔네 아버지가 쓰러졌네 소리 듣다보면 군생활에 집중할 수도 없었고..
전역하고 부모님이 별거하는동안 아버지랑 살게 됐는데, 차라리 이혼하시고 저랑 살자고 얘기했더니
그딴여자 필요없다느니 꼴도보기 싫다느니 쌍욕을 하다가 밥 안먹고 드러누워서 엄니한테 너무 아프다고 한 번만 보고싶다고 이ㅈㄹ해서 다시 불러들이고
아버지 몸 좀 나아져서 엄니가 다시 나가면 또 도박중독으로 이혼한 등신같은놈 하나 불러다 새벽 서너시까지 엄마 욕 하고
그거 들리니까 열받아서 잠도 안 오고, 출근은 해야 하고 열 받아서 나갔다가 죽빵치길래 그 뒤로는 툭하면 차고박고 싸웠구요
슬슬 저도 사람인걸 포기하고 아버지를 대했더니 아버지도 몸은 사리더라구요, 그 뒤로 엄마를 때리거나 집기를 부수는건 사라졌습니다.
알콜중독으로 병원도 몇 번을 보냈는데 막상가면 불쌍한척 하면서 빼달라고 하고, 엄니는 빼주고, 빼주면 또 술퍼먹고 시비걸고, 병원가느니 죽는다고 하고
아부지 몸이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엄니도 그냥 반쯤 포기하고 집에 돌아오셔서 아버지 간호하면서 사셨는데, 전 그런 것 자체도 너무 싫었고..
저도 집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여서 그냥 집 나와서 회사생활 하면서 먹고살고 있었고
엄니한테 매달 돈이나 좀 보내드리고 가끔 고향 가서 밥 한끼 사드리는걸로 예의상 '아들노릇' 만 하는 중이었는데
아침에 울먹이는 엄니에게서 전화가 왔더라구요 아버지가 쓰러져서 응급실에 있는데 연명치료 할거냐 안 할거냐, 안 할거면 싸인하거나 녹취록이 필요하다고..
뭐 저는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고, 평소에 본인도 술 퍼먹고 자기관리 안 하면서 죽으려고 한다는 소리만 했었고
사실상 죽으려는 시도만 안 했을 뿐이지 죽기위해 산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같이 있기 싫을 때가 많았구요
엄니도 체념하면서 살고있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셔서 연명치료는 포기한다고 했고
지금 치료는 계속 진행중이라는데 몸 상태가 유지조차 안 된디고 하더라구요.. 뭐 의식도 있다 없다 한다고 하는데
처음에 이 얘기 듣고 제가 슬픈건지, 화가 나는건지 복잡하더라구요, 딱히 가고싶다는 느낌도 안 들고 그냥 회사일도 바쁜데 회사일에나 집중하고 싶다..
회사에도 괜히 생색내는거같이 보일까봐 죽고 나서야 장례식이나 잠깐 갔다올게요 하고 갔다오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이유도 참 그 사람 인생에 어울리는게.. 한 달 전부터 내장이 망가져 항문이 열린채로 집에 똥칠을 하고 다니다가
일요일에 친구 딸 결혼식인데 아침부터 술을 먹고 갔고, 거기서도 술을 진탕 퍼먹다가
집에 돌아와서 이틀을 누워있었고, 수요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쓰러졌다네요
저도 막 생각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주위에 몇 분께 말 해보니 당연하게도 하는 말은 다 똑같더라구요
아무리 싫어했어도 나중에 후회하니까 여건상 임종 지켜볼 때 까지 같이 있어드릴 수는 없다고 해도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 뵈라구요
솔직히 의식도 오락가락 한다는데 그게 무슨의미인지도 잘 모르겠고..
이런 감정이 든다는게 나도 참 인간성 많이 사라졌구나 하기도 싶으면서 내가 이렇게 된게 누구때문인가 싶고
우선 엄니도 평소처럼 일 나가셨을 정도로 티를 안 내고 계시긴 한데, 아버지 한 번 뵈고싶다는 생각보다는 엄니 옆에 좀 있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고향 갔다오려고 일은 좀 쉬겠다고 했습니다.
과연 누워있는 아버지를 봤을 때 슬플지, 아닐지도 모르겠고.. 심경이 영 복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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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아비 였지만 아빠는 아니었던 사람이네요. 저도 그 누군가처럼 똑같은 말 밖에 드릴 수가 없네요. 거기 가시면 예상했던 그 느낌 받으실 겁니다. 그래도 직접 가서 느끼는 것과 막연히 예상하는건 다르니깐요. 직접 가서 느껴보세요. 가는 사람은 가더라도, 살 사람은 어느정도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가서 잠시라도 앉아서 두 눈으로 지켜보시고 정리하세요. 병약한 이 노인이 나한테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 인생에 어떤 명암을 가져다 주었는지 어찌되었든 내 인생에 영향을 끼쳤고, 끼치고 있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정리할 시간을 가져보세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가보세요. 그리고 마음의 짐을 덜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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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입니다. 방금 병원 와서 잠깐 얼굴 뵈었습니다. 울지 안 울지 모르겠다 하면서 들어왔는데 입만 헤 벌리고 옴짝달싹 못 하는거 보고 한심하다고 생각했는데, 눈알만 굴리면서도 아는척 하는거 보니 불쌍하다는 생각에 눈물이 좀 돌긴 하더라구요.. 암 말 없이 서로 몇 분 바라보다가 귓속말로 '저 갈게요, 먼저 가세요, 사랑해요' 하고 나왔습니다. 뭐 알아들었을지 아닐지는 모르겠는데 몇 년 전에 혼자 지내다 객사해서 사촌들이랑 마지막 대화 한 번 못 하고 돌아가신 큰아버지(이쪽이 진짜 오리지널 한량)때 보다는 의식 있을 때 얼굴이라도 비출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이래놓고 또 안 돌아가셔서 멀쩡하게 돌아나오시면 속으로 원망하고, 욕할 것 같긴 한데 뭐 당장은 좀 후련해진거 같네요.. 진지하게 답변주신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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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세요. 생전 아버지같지 않은 사람이긴 했지만 마지막 임종인데 또 안갈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손해보는 것도 아니고. 안가시면 분명 후회할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당장 꼴 보기 싫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분명 내가 왜 그때 가지 않았을까라고 후회하실거라 생각해요. 뭐 훗날 후회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사람 심경이 정말 한날 한순간에 바뀔 수 있는 거라서요.
(IP보기클릭)218.153.***.***
제 지인 중이 비슷한 가정사를 겪고 부친상을 치룬 사람이 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덤덤하더라고요. 그 지인은 친부랑 성인이 된 이후 연을 끊고 살다시피 하다 전화로 소식을 들어서 부친상을 치르러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지인은 오히려 먼저 저한테 농담도 하고 홀가분해 보였습니다. 사실 저는 그 지인이 그렇게 반응하는 게 어느정도 이해가 갔습니다. 사실 호적상으로만 父일 뿐, 암적 존재나 다름 없었다고 했으니까요. ('그 양반'이 어땠는지 몇 번 얘기해줬는데 그것만으로도 저는 끔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성자께서 스스로 자문하고 결과 내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정말 이 사람이 떠나는 것을 보지 않더라도 후회할까?' 고민해보시고, 딱히 후회할 것 같지 않다 생각이 들면 굳이 보러 가실 필요 없습니다. 글 쓰신 것처럼 '어머니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시면 그 생각에 맞춰서 행동하시면 되리라 봅니다. 어쨌든 인생에서 큰 전환점을 맞으실텐데 부디 이후에는 만사형통하시길 바랍니다.
(IP보기클릭)211.208.***.***
여기계신분들 대부분도 아마 다녀오라고 말씀하실거같네요 가서 마음의 화를 좀 내려놓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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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아비 였지만 아빠는 아니었던 사람이네요. 저도 그 누군가처럼 똑같은 말 밖에 드릴 수가 없네요. 거기 가시면 예상했던 그 느낌 받으실 겁니다. 그래도 직접 가서 느끼는 것과 막연히 예상하는건 다르니깐요. 직접 가서 느껴보세요. 가는 사람은 가더라도, 살 사람은 어느정도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가서 잠시라도 앉아서 두 눈으로 지켜보시고 정리하세요. 병약한 이 노인이 나한테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 인생에 어떤 명암을 가져다 주었는지 어찌되었든 내 인생에 영향을 끼쳤고, 끼치고 있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정리할 시간을 가져보세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가보세요. 그리고 마음의 짐을 덜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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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세요. 생전 아버지같지 않은 사람이긴 했지만 마지막 임종인데 또 안갈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손해보는 것도 아니고. 안가시면 분명 후회할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당장 꼴 보기 싫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분명 내가 왜 그때 가지 않았을까라고 후회하실거라 생각해요. 뭐 훗날 후회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사람 심경이 정말 한날 한순간에 바뀔 수 있는 거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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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계신분들 대부분도 아마 다녀오라고 말씀하실거같네요 가서 마음의 화를 좀 내려놓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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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지인 중이 비슷한 가정사를 겪고 부친상을 치룬 사람이 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덤덤하더라고요. 그 지인은 친부랑 성인이 된 이후 연을 끊고 살다시피 하다 전화로 소식을 들어서 부친상을 치르러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지인은 오히려 먼저 저한테 농담도 하고 홀가분해 보였습니다. 사실 저는 그 지인이 그렇게 반응하는 게 어느정도 이해가 갔습니다. 사실 호적상으로만 父일 뿐, 암적 존재나 다름 없었다고 했으니까요. ('그 양반'이 어땠는지 몇 번 얘기해줬는데 그것만으로도 저는 끔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성자께서 스스로 자문하고 결과 내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정말 이 사람이 떠나는 것을 보지 않더라도 후회할까?' 고민해보시고, 딱히 후회할 것 같지 않다 생각이 들면 굳이 보러 가실 필요 없습니다. 글 쓰신 것처럼 '어머니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시면 그 생각에 맞춰서 행동하시면 되리라 봅니다. 어쨌든 인생에서 큰 전환점을 맞으실텐데 부디 이후에는 만사형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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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홀가분함. 그 사람이 지은 죄 만큼, 가족들은 홀가분하고 그게 죄가 아님. | 19.06.13 05: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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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셨어요 안갔으면 두고두고 마음의 짐이 됐을겁니다 | 19.06.13 10: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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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쓰레기같은 부모라도 결국에는 자신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건 사실이더라구요. 적어도 '이렇게는 살지 말아야겠다'라는 반면교사라도 되죠..님의 아버님이 그렇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잘 다녀오셨습니다. | 19.06.13 10: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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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네요. | 19.06.13 12: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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