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지옥의 문이 다시 열린다”
바람이 텅 빈 교실을 휘저었다.
부서진 창틀 사이로 먼지가 흘러 들어왔고,
책상 위에 앉은 소녀는 바닥에 내려진 그림자를 조용히 바라봤다.
연보라색의 단발머리 하얀셔츠에 검정레자 미니스커트를 입은 눈맑은 광기의 소녀
폭탄의 악마 이자 덴지의 첫사랑 소녀 레제.
그녀는 어릴 적 다녔던 이 학교에 다시 돌아왔다.
이젠 학생도 없고, 종소리도 울리지 않는 죽은 공간.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곳이 곧… 무언가가 깨어나는 장소가 될 것이라는 걸.
문이 열렸다.
끼익—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가 나타났다.
불의 악마.
이 세계의 지옥과 연결된 수문장이자, 살아있는 ‘불의 심판자’.
그는 불길한 외투를 걸친 채, 붉은 불꽃 같은 눈동자로 레제를 바라봤다.
입가엔 어두운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불의 악마: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군.”
레제(고개를 돌리지 않고):
“…넌 항상 알고 있잖아.
내가 어딨는지, 뭘 생각하는지.”
불의 악마는 미소만 지은 채 레제 앞으로 걸어왔다.
책상 위에 앉은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불의 악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덴지에게 ‘선택’을 줄 때가… 곧 다시 온다.”
레제(조용히):
“그는… 잘 지내?”
불의 악마(짧게):
“잘 지낸다.”
그 짧은 대답 속에 담긴 의미를 레제는 읽어냈다.
‘살아는 있다. 하지만, 곧 휘말릴 것이다.’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엔 하얀 교복를 입은 여성이 들어왔다.
레제와 같은 동갑내기 여고생이며 하얀 짧은 샤기컷트머리, 온화한 미소, 그러나 눈빛은 차가웠다.
죽음의 악마, 시이.
지옥 깊은 곳에서 존재를 심판하는 자.
시이(부드럽게):
“오랜만이야, 레제.”
레제(시이 바라보며 약간 미소를 지으며):
“시이… 너까지 나타나다니, 이제 곧이구나.”
시이(고개를 끄덕이며):
“연옥의 문이… 열릴 기미가 보여.
히메노, 아키, 파워, 그리고 엔젤.
그들은 ‘기억의 형체’로 살아 있고…
곧, 이쪽 세계로 돌아올 거야.”
마지막으로 문을 조심스럽게 연 건, 작은 체구의 소녀였다.
양손을 꼭 모은 채, 마치 늘 누군가에게 사과하는 듯한 태도.
작고 약한 목소리. 시이와 같은 교복이자 햐안 짧은 커트머리 그러나 그녀 또한, 악마다.
기아의 악마, 카기.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결핍을 품은 존재.
카기(조심스럽게):
“레제… 그, 그게… 미안한데…
마키마가 곧… 너랑, 덴지를… 노릴지도 몰라…”
레제(미소를 지으며):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거야.”
시이(무표정 레제바라보며):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어.
육신은 없어졌지만, 영혼은 살아 있지.
그리고… 나유타. 그녀조차도 완벽한 대체물이 아니었어.”
불의 악마가 교탁 위에 손을 얹었다.
그가 손을 댄 곳에서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교실 안 공기가 뒤틀렸다.
불의 악마(무표정):
“마키마가 돌아오면, 모든 것이 불타오를 것이다.
이 세계, 이 기억, 이 시간… 모두가 선택받지 못한 자들에 의해 다시 쓸려나간다.”
레제(입술을 깨물며):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거잖아.”
시이(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넌 트리거야.
이번엔 네가, 덴지에게 마지막 ‘선택’을 줄 차례야.”
각오는 되있지?
그때, 교실 뒤편.
부서진 창문을 따라 종이 하나가 휘날려 들어왔다.
순간 레제는 종이를 재빨리 잡는다 종이에 적힌 글씨를 바라본다
한 줄의 문장. 나유타의 필체.
“덴지 오빠, 내가 사라지더라도 잊지 마…
그녀는 항상 너의 가장 사랑하며 소중한것들을 빼앗아간 뒤에 나타나.”
레제는 그 종이를 조용히 집어 들었다.
표정이 굳었다.
레제(작게 중얼이며):
“…이번엔… 내가 뺏을 차례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