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풍경은 모든 것이 낯섭니다. 제가 살던 동네에 비해선 공기도 너무나 매캐하고. 빌딩은 하늘을 가릴 만큼 서 있고, 나무는 자연적인 느낌이 아니라 인위적인 느낌으로 심어져 있고, 거리는 밤에도 빛이 꺼지지가 않아서 커튼을 치고 자야만 합니다.
이런 도시의 풍경에서 변치 않는 몇 안되는 건 햇살뿐입니다. 그 사실이, 아침의 밝은 햇살은, 오히려 불쾌하리만큼 절 자극하고 맙니다. 그렇기에 전 고향에서 살 때보다 아침 일찍 잠을 깨버리고는 하는 것이었습니다.
변치 않는 또 다른 하나는 제가 기르던 금붕어입니다. 제가 여름 축제에서 주워서, 지금까지 길러왔습니다. 새 집까지 옮기는데 꽤나 힘들었습니다. 일단 옮기는 동안 무사하도록 주의하는게 큰일이었고, 어항이랑 펌프도 가져와야 하지, 먹이도 가지고 와야 하지, 마지막으로 어항을 또 새 물로 채워넣어야 하지...
그렇지만 전 그 아이를 여름 축제에서 건져내고 난 뒤, 몇 년 동안이나 함께 해왔습니다. 항간에선 금붕어의 기억력이 3초짜리라곤 하지만, 3초가 몇 년을 가면 적어도 깊은 부분에 제 모습이 각인되어 있겠죠. 말도 못하고 울음소리도 못 내지만, 적어도 제가 눈 앞에서 사라졌는지, 아니면 눈 앞에 있는지 정도는 분별할 거에요.
여름 축제 금붕어들의 운명은 참 기구하기 짝이 없습니다. 잠시동안의 우와 하는 감탄사가 끝나고 나면 곧잘 근처에 있는 강가에 버려지고 말죠. 방생? 방생은 무슨. 금붕어는 수온이 큰 폭으로 갑작스레 달라지면 쇼크로 죽을 수도 있어요. 참으로 가련하지 않나요. 금붕어도 생명인데 말이죠. 그렇게나 많은 생명이 사람들의 유희를 위하여 퍼덕대다가 사라져버리다니.
도시의 환경은 저같은 사람에겐 참 가차없습니다. 지하철은 차라리 걸어가고 싶을 만큼 복잡합니다. 거기에 사람들은 또 말해 무엇합니까. 구석진 동네라고 해서 꼭 인심이 넘쳐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여긴 모든 사람이 다 남일 뿐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햇빛은 그저 거슬리기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밤이 꼭 좋은 것도 아니에요. 저 불빛. 저 형광등 불빛과 네온사인 불빛. 전광판 불빛과 스마트폰 불빛. 저 불빛도 이젠 진저리가 납니다. 그렇기에, 전 오늘도 커텐을 최대한 빈틈없이 치고 잠에 듭니다.
"...어째서죠?"
"어째서냐니?"
"당신... 당신은... 당신은 이번에도 날 지켜보고 있었던 거죠? 내가 혹시 이상한 짓 하지는 않나 캐묻고 싶어서? 내가 레슨 안하고 농땡이나 치는 아이로 보여서? 당신의 눈에는 그렇게도 못미더운 거죠?"
나는 당신 하나만 믿고 왔다고요. 버스로 몇 시간은 가야 하는 동네에서 내 모든 것을 가지고 왔다고요. 당신의 말만 믿고요. 나는 당신을 믿고 있어요.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요. 그런데 당신은 왜... 왜 날 믿지 못하냐고요.
"...하아."
"그래요. 나도 알아요. 내가 못미더울 수도 있다고요! 그렇지만! 어차피 촌에서 온 아이다 그거죠! 다른 애들보다 춤도! 노래도! 비주얼도! 다 모자라다 그거잖아요!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전 할 거에요. 해내지 못하면 차라리 물 속에 빠져 죽을 거에요. 날 위해서 다 끌어올릴 거라고요. 그러려고 여기 왔다고요. 당신도 그러려고 날 여기 부른거잖아요. 할 거에요. 할 거라고요.
"츠무기."
"...왜죠?"
"...미안한데. 이제 그럴 필요 없어."
"네!?"
"나도 지쳤어. 너처럼 독설만 하고, 나를 믿어주지 않는 애한테는 질렸다고. 그리고 내가 너만 담당하는 것도 아니잖아."
"......"
내가 당신을 못 믿었다고요? 무슨 소린데요. 의심한 적 없어요. 의심한 적 없다고요. 당신은 지금까지 성공해왔잖아요. 나보다 훨씬 유명한 아이돌들도 이전부터 프로듀싱 해왔잖아요. 애초에, 누구 때문에 내가 여기 온 건데요. 당신을 믿지 못할 리가 없잖아요...
"아니야. 필요없다는 건 말이 너무 심했어. 그냥... 그냥 비즈니스 관계로만 있자. 그동안 스트레스 받은 거 알아. 내가 너무 터치 안 할게."
"아... 아니... 내는..."
아니요.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난 아직 아무 말도 못 했는데. 당신은 뭘 안다고 말하는 건데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내가 말 한마디는 하게 해줘요. 말 한마디는 하게 해 줄 수 있잖아요. 말 한마디는 하게 해 달라고요. 말 한마디는...
"으... 흑... 끄흑... 으으..."
...전 온 몸이 눈물과 땀으로 젖은 채로 일어났습니다.
참... 참으로 기분나쁜 꿈이었습니다.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기분나쁜 꿈이에요. 전 털고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우리 애 밥도 챙겨주고, 저도 같이 밥을 먹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 으, 아."
제가 밥을 먹는 시간도 지나고, 전철을 타러 가는 시간도 지나고, 출근 시간도 지나고, 당신에게서 전화가 올 때 까지, 전 이불 속에서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울리는 전화에 손을 뻗는 것이 다였어요.
"여보세요. 츠무기?"
"...예."
"괜찮아? 어디 아파?"
"전... 전 괜찮습니다. 곧 갈테니까. 늦긴 했지만... 곧 갈 테니까..."
"혹시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한 건 아니야?"
"당신이 신경써주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럴 시간에 당신의 일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당신이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할 순 없어요. 오늘은 극장에 못 갈 것 같긴 하지만요. 그래도 저는 어차피 오늘 그렇게 큰 일정은 없어요. 라이브도 없고, 촬영도 없고, 라디오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오늘 전 있으나 마나한 존재인 거에요.
"그렇지만..."
"전 괜찮습니다. 당신의 일에... 집중을..."
"츠무기!"
"치아라!!!"
...어째서인지, 전 당신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만해주실래요?"
그래요. 예지몽이었던 거군요. 제가 꾼 꿈은.
이제 끝이네요. 이제 나중에 제가 울고불고 매달려도. 앞으론 완전히 거절당할 거에요. 당신의 말이라면 철썩같이 믿는 주제에. 전 당신이 온다는데 거절이나 하고 있네요. 그도 그럴게, 어차피 저같은 거한테 당신이 올 필요는 없으니까.
자신한테 맞지 않는 곳까지 올라온 사람에게 참 어울리는 결말이에요.
"...거기서 기다려. 당장 갈테니까."
"......"
당신은 그리고 바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 어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항 속의 금붕어도 절 바라보고 있습니다. 전화소리가 꺼진 지금, 방에는 공기 펌프 돌아가는 소리밖에 들리지가 않습니다. 어서 밥 줘야 하는데. 물도 갈아줘야 하는데...
몸에 힘이 풀리니, 땀이 멈추지도 않고 계속 난다는 게 실감이 납니다. 이불 속에 있다 보니 더워서 땀이 나는 건지. 몸이 으슬으슬하고, 근육이 덜덜 떨리는 느낌에, 입에 아무것도 넣지를 않았는데 배가 고프다는 느낌도 안 듭니다.
몸이 떨리는 느낌이 너무나도 꺼림칙해서, 어떻게든 떨쳐보고 싶었지만, 그조차도 되지 않았습니다. 가위에 눌렸을 땐 깰 수라도 있지, 지금은 깨어 있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 합니다. 그리고, 그 때, 밖에서 쿵쿵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츠무기? 지금 집에 있어?"
"아... 당신..."
그리고 당신은 기어코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다 제쳐두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한테 무슨 가치가 있다고 여기까지 온 건지 물어보고 싶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가 않습니다.
"문... 문 비밀번호..."
"츠무기!? 내 말 들려?"
"비밀번호... 안 들리나요. 비밀번호..."
당신은 문을 두들겨댑니다. 제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두들겨대기만 합니다. 저는 당신이 문을 따고 들어와도, 아무 말도 못 하고 뻐끔대기만 하겠죠. 전 제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어요. 아파요. 아프다고요. 차라리 죽게 내버려둬요...
그렇게 생각할 즈음, 핸드폰이 또 울렸습니다.
"츠무기. 지금 집에 있어?!"
"...있어요."
"문좀 열어줄래?"
"못 열어요..."
"그럼 비밀번호라도 알려줄래?"
비밀번호... 그렇게 비밀번호를 말했는데. 당신은... 당신은 못 들었나요. 그렇게 굴면 아예 여기서 말 안하고 죽어버릴 수도 있는데. 하긴. 그래봤자 나쁜 쪽은 저 뿐이죠. 아픈건 저지 당신이 아니니까 밑지는 건 저 뿐이란 말이죠.
"말 했어요. 못 들었나요. 노크할때부터 계속 했어요. 말... 흐끅... 말..."
"...다시 한번만 더 말해줄래?"
"아... 훌쩍... 당신이란 사람은..."
저는.. 나는... 당신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줬습니다.
"츠무기! 츠무기! 괜찮아!?"
"...아니요."
"어우... 열이 심하네. 어서 병원 가자."
"병원 말고 극장에 데려다주세요."
"왜!?"
"지금 늦었잖아요. 일정도 다 빼먹었잖아요. 지금이라도 어서 극장에 가야..."
"싫어."
"......"
당신은... 역시 당신이라면 그럴 줄 알았어요. 당신은 날 차 뒷자석에 뉘였습니다. 당신의 차는 너무나도 낡았습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당신의 차는 너무나도 허름하고 초라합니다. 너무나도...
이 차가 너무나도 낡았다는 사실이, 그리고, 당신이 그런 차로 나를 데리러 왔다는 사실이...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 사실이 너무나도 마음이 이파옵니다.
"어디 배기는 곳은 없어?"
"없어요..."
"조금만 참아..."
"...당신은 지금까지 계속 이 차를 타고 다닌 건가요."
"응. 처음 입사했을때부터. 그동안 안 타는 차를 엄마한테 얻어가지고 타고 다닌 거니까."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765는 처음엔 영세기업이라고 했었죠. 그 때부터 함께해온 차... 지금까지 놓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당신 같은 사람이 새 차를 못 살 정도로 벌이가 나쁘진 않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어째서...
"흑... 훌쩍..."
"츠무기?"
"아... 흑... 불쌍해요. 당신이 너무나도 불쌍해요..."
"어째서?"
"당신 같은 사람이 이런 차나 타고 다닌다는게 너무나도 마음이 아파요. 당신 같은 사람이..."
"그렇지만 난 이 차가 마음에 드는데... 모두의 추억이 있다고. 하루카도 여기 탔었고, 치하야도, 미키도, 유키호도, 히비키도..."
"...전부 다 말 안하셔도 괜찮아요. 나는, 그냥. 그냥 서러워요. 당신은 그렇게나 혁혁한 공을 이뤘는데도 이런 취급인가요."
"이런 취급이라니? 난 지금이 마음에 드는걸. 마음에 안 들었으면 다른데로 옮겼어. 너도 마찬가지잖아."
"나는 그럴 그릇이 못 돼요..."
"아닐텐데?"
당신은... 당신은... 그렇게 말하면서 당신은 병원 주차장에 차를 데고는 날 어깨로 부축해주었습니다. 평소에는 따스하게 느껴지던 어깨가 오늘은 차갑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몸에 열이 심한 걸까요.
"...있잖아요. 나한테 있는 것이라고는 의구심 뿐이었어요."
"...그 마음 이해해."
"나는 너무나도 많은 것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 도시에 대한 의구심, 극장에 대한 의구심, 동료들에 대한 의구심, 나에 대한 의구심..."
"나도 딱히 못미더웠겠구나."
"아니에요."
그럴 리 없잖아요.
"나는 너무나도 많은 것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당신에 대한 건 하나도 없어요. 당신에 대한 게 아니에요. 절대로 아니에요. 나는 당신 말 하나만 믿고... 당신만 믿고... 여기까지..."
"진정해. 무리해서 이야기 안 해도 괜찮으니까."
"......"
병원에 들어서서, 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게 눈만 뜨고 있었습니다. 주사를 맞기 전까지는요. 한 대 맞고 시간이 좀 지나니까 확실히 열이 내려가고 몸도 움직일만 해지더라고요. 역시. 도시의 기술력이란...
"츠무기. 의사선생님 말 들었어?"
"...못 들었어요."
"과로 때문에 쓰러진 거래. 츠무기. 몸이 못 버텨서 그렇게 된 거니까 오늘은 그냥 쉬고, 당분간은 페이스 조절 좀 하는게 좋을 것 같아."
"...과로요?"
"응. 과로."
"내가 그렇게나 열심히 했을 리가 없어요."
"......"
당신은, 아무 말도 없이 내 얼굴에 손을 올려주었습니다. 손의 감촉이, 자잘한 굳은살과 손 너머로도 느껴지는 피로의 감촉. 그 모든 것이 지금은 너무나도 시원합니다. 흙이 묻은 얼굴을 물로 씻어주는 것 같이 시원해서... 나는...
"괜찮아."
난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실 괜찮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괜찮다는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싶습니다. 내가 이래도 괜찮다는 말에. 내가 이대로 있어도 된다는 말에. 내가 나여도 된다는 말에...
"...이렇게까지 해주셨는데, 부탁을 하나 들어달라 하는 건. 너무한... 거겠죠?"
"무슨 부탁인데?"
"아이가..."
"아이!?"
"그... 있어요... 집에 금붕어가."
"어휴... 깜짝 놀랐네."
"있잖아요. 금붕어는 강해보이지만, 생각보다 되게 연약한 아이에요. 물도 자주 갈아줘야 하고. 이따금씩 공기펌프도 손을 봐줘야 하고. 밥도 제때 줘야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손이 너무나 가네요. 내가 어쩌자고 이런 아이를 주워와가지고 지금까지 키우고 있는지. 버리자면 진작에 버릴 수도 있는 걸. 왜 지금까지 같이 두고 지내고 있는 건지.
"...수온도 관리를 해줘야 해요. 그러니까... 내가 쉴 동안 집에 가서 그 아이한테 밥 주실 수 있나요... 부탁드릴게요... 나머진 알아서 관리할테니까..."
"물론이지. 먹이는 얼마나 줘야 해?"
"집에 도착하면 전화 주세요. 그럼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그래. 병원비는 내가 냈어."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몸 관리좀 잘 해."
"...있잖아요. 나는 지금같은 일이 한번만 일어날거란 생각이 안 들어요. 난 당신을 쭉 힘들게 할 거에요. 지금처럼 마음대로 아파하거나, 계속 짜증만 내거나...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괜찮아. 아까도 말했잖아. 괜찮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는 거야."
"내가 안 괜찮다면..."
"괜찮게 만들어줄게."
"...훌쩍."
난 잠시 훌쩍였습니다. 슬슬 떠날 준비를 하는 당신을 보고 눈물이 나와서, 당신이 뒤를 돌았을 때 즈음엔 아주 고개를 숙여버렸습니다. 우선 당신의 모습이 안 보였고, 그 다음엔 당신의 온기가 멀어졌고, 그 뒤로는 당신의 발소리가 사라졌고, 마지막으로, 다시 눈을 떴을 때 당신의 발자국까지도 사라져버렸을 적. 나는 당신이 없는 병상에서, 홀로 울어버렸습니다.
다음엔 당신 곁에서 울 거에요. 꼭.
제가 제일 처음 썼던 츠무기 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