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투! 오파태극권과 백학권.
고로오: 선생님, 단도직입적으로 태극권과 소림권이 여러 사람 앞에서 공공연히 강함을 겨뤄, 끝장을 보도록 싸운 얘기는 없는 겁니까? 주관적인 실력 과시 얘기로는 아무리 해도 의문이 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선생: 고로오 군은 설마하니 오진비무(吳陳比武)의 이야기를 모르는 겁니까?
고로오: 뭡니까, 그 오진인가 뭔가는?
선생: 홍콩의 오파태극권(吳派太極拳)이, 마카오에서 링을 열어 백학권(白鶴拳)과 싸운 시합입니다.
고로오: 앗, 그건 재미있을 거 같군요. 그런 얘기가 있다는 건 몰랐습니다.
선생: 태극권 세계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얘기입니다.
고로오: 링 위에서라고 하면, 글러브를 끼고 실제로 치고 받은 겁니까?
선생: 글러브도 끼지 않고 맨손으로 격렬하게 치고 받은 것입니다.
고로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싫어하시는, 코피 뚝뚝 떨어진다는 유혈의 참사가 된 건 아닌가요?
선생: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시합은 제 마음에 드는 이야기입니다. 무술가다운 싸움방식이었고, 결말도 또한 무인답게 원한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의 코피 정도는 문제가 아니지요.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할까요?
고로오: 꼭 부탁드립니다. 우선 누구랑 누가 싸운 겁니까?
선생: 태극권은 오파태극권의 제3대 종가 오공의(吳公儀), 그에 대하여
도전자는 백학권의 청년권사 진극부(陳克夫)입니다.
고로오: 도대체 언제쯤의 얘기인가요?
선생: 1954년의 일입니다. 오래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없지는 않습니다만, 현대의 이야기니까 보도 기사에서부터 사진까지 기록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고로오: 오파는 양가(楊家) 초기의 실전적 측면을 이어받은 유파라던가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그렇다고는 해도 종가 정도 되는 사람이 일부러 실제로 치고 받는 시합을 승낙한 겁니까?
선생: 말하자면 길어집니다.
고로오: 그렇다면 간단히만 얘기해 주세요.
선생: 그 1년 전의 여름에 오공의가 신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태극권은 복싱과도 싸울 수 있다. 뭣하면 서로 연구를 해도 좋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도전환영" 이라는 기사가 되어 보도되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진극부가 "내가 상대해주지." 하고 이름을 내건 것입니다. 진극부는
중국무술에 자주 나타나는 미신적, 독선적인 부분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진보적인 청년이었습니다.
고로오: 호오, 저와 같은 젊은이였군요.
선생: 실제로 복싱도 좋아해서, 연습한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로오: 연령차는 상당히 있었던 겁니까?
선생: 오공의는 당시 이미 55세 정도, 진극부는 30세입니다. 오공의에게는 장성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공의 친구들은 자식을 내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진극부가 승낙하지 않았습니다.
고로오: 하지만"연구해도 좋다." 라고 말한 것뿐이니까, 도전은 본뜻이
아니었다고 말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거 아닐까요?
선생: 고로오 군은 승부를 피해줬으면 하는 겁니까?
고로오: 아뇨, 크게 한바탕 했으면 합니다만...
선생: 그렇죠? 실은 진극부의 스승 오조종(吳肇鐘)도 "연구라고 하면 무술계에선 도전과 같다." 라고 발언했었습니다. 그건 사실 그렇습니다. 내가 홍콩에 살고 있던 70년대에도 "잠시 연구해 보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하면, "한판 해봅시다." 의 의미였습니다. 난 연구자였기 때문에 "특히 '연구'와 같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도록." 이라고 선생님께 주의받았을 정도입니다.
오조종은 만년에 의업(醫業)과 서예에 전념했던 인격자였습니다만, 이 발언으로 문인의 행동을 지지했던 것입니다.
고로오: 그래서 결국 도망가지 못하게 된 오공의는 스스로 도전을 받게끔 된 것입니까? 점점 상황이 절박해져 싸움이 폭발하다니, 정말로 통쾌하군요. 그래서 링 위에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선생: 홍콩에서는 잘못하면 폭력사태가 될만한 기획이라고 하여 좀처럼 허가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마카오의 유력자의 협력을 얻어, 병원기부금 모집의 자선사업으로서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고로오: 권법시합을 폭력사태랑 똑같이 취급하다니 괘씸하군요. 하지만, 선생님. 이야기가 여기까지 오니까, 이젠 시합 그 자체에 신경이 쓰여 죽겠습니다.
슬슬 링 위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들려주십시오.
선생: 때는 1954년 1월 17일의 일입니다. 마카오 신화원(新花園)에 특설 링이 열렸습니다. 관중은 8000명이 모였습니다. 그 중에는 미국에서 온 화교도 있었습니다.
고로오: 선생님, 주변 얘기는 이제 전부 생략하고, 링 위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싸웠는가 얘기해주시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선생: 그런가요? 하지만 그 전에 이 사진을 보세요. 두 사람이 링 위에 등장하는 때의 모습입니다. 오공의는 소매가 긴 전통적인 중국옷, 진극부는 복싱과 같은 가운이군요. 두 사람 모두 차분한 분위기입니다.
고로오: 차분한 건 좋습니다만, 공이 울리고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선생: 아니, 승부 그 자체는 짧았습니다. 그 때문에 서론이 길어져서 미안하군요.
고로오: 선생님, 이젠 참을 수 없습니다. 공이 땡하고 울렸습니다.
선생: 먼저 움직인 것은 역시 도전자인 진극부입니다. 빙글 반 바퀴 돌아서 빈틈을 찾은 진은, 단숨에 간격을 좁혀서 좌우의 손을 계속 쳐내어, 금세 오공의를 로프 가까이 몰아넣었습니다. 이건 "표자연환수(豹子連環手)" 라고 하는 기술인 것 같습니다.
고로오: 음, 그래서요?
선생: 로프 가까이에서 오공의가 간신히 몸을 뒤로 젖힌 순간, 진의 연환수가 한순간 닿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때 로프의 반동으로 몸을 일으킨 오공의가 상단으로 곧게 지르기를 했습니다. 태극권의 기술로는 "반란추"라고 하는 곧게 지르기를 사용한 게 됩니다. 거의 동시에 진도 왼쪽 중단 지르기를 내었습니다.
고로오: 로프의 반동을 사용하다니, 과연 유파(柔派)의 태극권이군요.
이 사진이 그 순간입니까? 오공의의 상단 지르기가 안면에 들어가고,
진의 왼쪽 스트레이트가 오공의의 배를 찌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선생: 서로 친 것처럼 보입니다만, 하지만 양쪽의 몸의 각도를 보면, 오공의는 진의 찌르기를 살짝 피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고로오: 상대의 공격을 피하면서 찔러넣는다는 것이군요. 제법하는데요.
이걸로 코피가 퍽하고 터진 것입니까?
선생: 그래요. 진극부의 흰 셔츠가 자기 피로 새빨갛게 물들었습니다.
시간은 여기까지 겨우 2분.
고로오: 1 라운드 3분제입니까?
선생: 1 라운드 5분, 6회전으로 약속되어 있었죠.
고로오: 거기서 승부가 결정된 것입니까?
선생: 심판장은 일단 중지시키고, 진극부에게 물어본 순간, 코피 정도 복싱에선 흔한 일이라고 시합 속행을 주장했습니다.
고로오: 그래야 도전자지요. 코피 따위가 뭡니까. 그 한 발을 제외하면 진극부가 우세했었으니까 아직 승부는 반반입니다.
선생: 그렇지요.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5분의 휴식을 두고, 제 2 라운드에 들어갔습니다. 자, 고로오 군은 어느 쪽이든 맘에 드는 쪽을 맘껏 응원하세요.
고로오: 젊은이의 한 사람으로서, 전 진극부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쩐지 태극권에는 속임수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서 마음이 안 갑니다. 모쪼록 이 기회에 철저히 태극권의 위선을 벗겨버려줬으면 좋겠습니다.
선생: 후후후. 젊군요, 그렇게 나오다니. 고로오 군이 그런 기분이라면, 나는 태극권법가로서 전면적으로 오공의를 응원하겠습니다.
고로오: 선생님, 제 2 라운드의 공이 울렸습니다.
선생: 오, 역시 먼저 움직인 것은 진입니다. 반 바퀴 빙글 돌면서 접근한 진은, 중단으로 예리한 지르기를 넣었습니다. 오공의도 짧은 훅으로 반격합니다.
고로오: 태극권에 훅 같은 게 있습니까?
선생: 있습니다. 태극권에는 크게 나눠 다섯 종류의 지르기가 있습니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태극오추라고도 말합니다.
고로오: "추(手+垂)" 라고 하는 것은 "지르기" 의 의미이지요?
선생: 그렇습니다. 여기서 오공의는 "주저간추" 라고 하는 짧은 돌려 지르기, 말하자면 훅을 쳐냈습니다. 여기서부터 오공의가 맹렬히 반격합니다. 우선, 오는 진의 오른팔을 죽이기 위해 강타를 쳐냈습니다.
오른팔에 충격을 받은 진은, 엉겁결에 앞차기를 찼습니다. 깜빡했었는데, 이 시합에서는 발차기는 금지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오공의는 "누슬요보" 라고 하는 하단 막기{걷어내기..쪽이 가까울 듯.}로 아슬아슬하게 진의 발차기를 처리했습니다.
고로오: 이 사진이 그 순간이군요. 막는 쪽의 자세가 제법 흐트러져 있습니다만, 그만큼 긴박한 상황이 엿보이는군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선생: 반칙에 노한 오공의도 왼쪽 분각(分脚), 말하자면 직선적인 앞차기를 냈습니다. 두 사람이 흥분했다고 본 링사이드의 심판장은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고 판단, 단번에 승부를 중단시키고, 심판단과 협의 끝에 무승부로 시합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시간은 제 2 라운드의 겨우 1분입니다.
고로오: 으음. 벌써 끝나버린 겁니까. 저로서는 좀더 보고 싶은 참입니다만. 대체 싸웠던 두 사람은 여기서 무승부라고 하는 것에 납득한 것입니까?
선생: 난 말이예요, 한순간이라도 전력으로 싸운 두 사람이 가장 잘 납득했다고 생각합니다. 밖에서 보고 있으면 짧은 시간도 본인들에게는 길고 긴 시간이었던 겁니다.
고로오: 그렇군요. 짧았다고는 해도, 긴박한 진검승부의 순간을 2회나 볼 수 있었다고 하는 생각이 안 들 수 없군요.
선생: 시합에 이르기까지의 준비의 시간을 생각해보면, 두 사람으로서는 정말로 긴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로오: 무승부라면, 쌍방의 체면도 설 것이겠군요.
선생: 두 사람은 링 위에서 깨끗하게 악수를 하고 헤어져, 뒷날 각자의 문파가 연 파티에 초대하고 했습니다. 자선금도 많이 모였고 하니 원만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남방의 중국인들은 혈기가 왕성해, 일단 싸움이 났다 하면 원한이 길게 꼬리가 남아, 깨끗하게 끝나는 일이 적습니다. 심판장이었던 마카오의 유력자는 그 점을 잘 분별하고 있던 것이겠죠.
고로오: 생각지도 않게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야아, 얘기를 듣고 난 후에 사진을 보니, 왠지 모르게 타인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친밀감마저 느껴지네요.
선생: 네, 시합후의 사진입니다. 두 사람 모두 좋은 인상으로 찍혀있군요.
고로오: 여기에는 세 사람이 찍혀있습니다만, 가운데 있는 사람은 누굽니까?
선생: 펜네임을 "염불산인(念佛山人)" 이라고 하는 중국 남방에서는 유명한 무술작가입니다. 옛날부터 오파와는 친했던 인물입니다.
...지금까지 중국무술대가들의 엄청난 싸움이었습니다
하여간 폼만 화려한 무술치고 실전성 없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역시 현실은 영화와 다르군요
저 해석글만 보면 참...꿈보다 해봉이 좋다고.
저사람들 k-1이나 프라이드 나가면 몇초나 버틸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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