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모토와 인생설계]
"야 장군아! 내가 교회가자 그러면 안 간다 그럴 줄 알았냐?"
"솔직히 말해도 돼? 당연히 안 간다 그럴 줄 알았어!"
"이 새X 아무것도 모르는구만? 내 제일 친한 친구가 OO교회 다니는데 거기 뭐 한다 그럼 맨날 가!"
"아 그래? 근데 넌 왜 안 다녀?"
"그냥 오라 그러니 가는 거지. 친구 엄마가 다니라고 해서 다녀봤는데..."
하며 교회에서 얼굴에 침 맞은 이야기를 했다. 나도 때렸다는 내용은 빼고...
"너 맨날 내가 무슨 생각인지 도통 모르겠다고 했잖아? 그 형들 한번 관찰해 봐. 아마 내 생각이랑 크게 다르지 않을 형들이라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래? 그 형들도 약해빠졌어?"
"큭큭큭..."
"여튼 농구는 진짜 개잘하더라. 니가 이 정도 하는게 당연하네. 누구 형은 개빠르고 다른 누구는..."
이러면서 분석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다음 주에 다시 가기로 했다. 예배 끝나면 간댔더니 형들이 예배 안 드리면 농구 안 한다고 했단다.
'저것들이 달란트를 쿠폰이라고 속이는 것도 모자라 농구로 나를 꾀이려 하고 있어?'
그런데 난 사실 궁금했다.
'초식동물을 스스로 선택한 자들!'
그리하여 그곳으로 가 예배를 드리고 그들과 농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형들을 관찰하며 깨달았다. 마른 장군이. 안경 쓴 장군이. 하얀 장군이. 말을 약간 더듬는 장군이...
생긴 것만 다르지 저 사람들의 뇌회로는 같았다. 왜 그렇게 생각했냐면 저들도 코 좀 베어가겠다고 하면 코를 베어가라 할 것 같았다. 겉껍데기만 다르고 다 같은 장군이였다. 분명 답답한 생태계 최하위권 초식동물이었지만 따뜻한 빛처럼 느껴졌다. 외투를 벗기는 건 찬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라는 동화가 생각이 났다.
점점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이 왜 그런지 목사님이 매주 일요일 1시간씩 설명해 주셨다.
그들은 초식동물이 아니었다.
내게는 인간 생태계 최하층으로 보였지만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어느 날 들은 말로 장군이가 뭘 카피했는지도 알았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대며'를 들으니 장군이가 사과하라는 그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처음 장애인 취급을 받았는데 해명하지 못하고 빨리 내려야 했을 때도 생각났다. 저들은 '손해 이익, 이기고 짐, 기브 앤 테이크, 약육강식' 말고 다른 원리를 배우고 고민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와는 다른 모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
그것은 내가 알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예배를 들어야 그들과 같이 수준 높은 농구를 할 수 있었다.
난 중학교 때 다른 학교랑 농구 시합을 하러 가면 학교 대표로 가고, 길거리농구 대회도 나갈 정도로 농구에 자부심이 있었다. 내 나이 대가 아니어도 난 웬만한 것들은 다 바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는 세상은 너무 좁았었다.
새로운 모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여있지만 그들 중에는 나와 같은 모토를 가진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이 이해가 됐다.
나도 그 동안 이해하지 못한 장군이의 뇌회로. 장군이의 말들이 많았는데 설명을 들어도 납득이 되지 않았었다.
나에게 새로운 모토는 너무 재미났고 즐거웠다. 그곳은 밝은 빛으로 둘러 쌓인 것 같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그들과 함께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 초식동물인 사슴이 되어갔다.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는데 '문과'와 '이과'를 선택하라 했다.
그 당시 나는 '아버지 사업 따위는 물려받지 않는다. 그건 아버지가 좋아서 일구신 거고 난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뭘 하면 먹고 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답은 경호학과였다. 같이 운동하는 형 한 명이 용X대에 지원한다며 운동하는데 그 형도 보통이 아니었다. 아주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어떻게 테크를 타야 경호학과를 들어갈 수 있는지 물었더니 단증외에 뭐 별거 없었다. 그래서 원래 가졌던 목표 외에 그것도 생각하며 운동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군이에게 물어봤다.
"야 넌 문과 갈 거야? 이과 갈 거야?"
"응? 난 이과!"
"왜?"
"의대가려고..."
"의대? 너 공부 잘하니까 의사 되게?"
"아니... 아픈 사람들 고치려고!"
"그래? 그럼 나도 이과 가야겠다!"
"너네 아버지 사업하시잖아? 그거 잘 되는 거 아니야?"
"난 그딴 거 관심 없어. 그래서 경호학과나 갈까 생각하고 있었지. 그런 거 있잖아? 양복 쫘악 빼입은 보디가드! 크으~ 멋있지 않냐? 자기 몸 하나뿐 아니라 힘이 남아 돌아서 주변 사람들까지도 지켜줄 수 있는 강한 사람! 캬아~ 근데 그거 이과 가도 들어갈 수 있는 거 맞지?"
"근데 너는 왜 격투기를 해?"
"지금 말했잖아! 그리고 단증 따놔야 돼! 태권도도 2학년 때부터 시작할 거야. 유도도. 이미 집에 다 말해놨어. 내가 그 말 한 적 있지? 나 1학년 초에 다른 학교 3학년 새끼들한테 쳐 맞았다는 거. 그 새끼들은 다시 나 보면 뒤졌어. 지금 만나면 깔끔하게 1분 안에 둘 다 죽일 수 있을 텐데. 이 새끼들이 어디 숨었나 안 보인다 야."
"보디가드 좋네...! 근데 보디가드도 좋은데 그 경호를 받는 사람이 되어 볼 생각은 없어?"
"..."
"......"
태어나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신일이 너는 이미 네 한 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지 않아?"
"..."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나 어떡해야 되냐?"
"다른 아이들에게는 없는 게 네게 있어."
"그게 뭔데?"
"사업체를 가진 아버지."
"그건 맞는데 그건 내 일이 아니야!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리고 관심도 없어!"
"그래도 한번 생각해 봐? 남들에게는 그런 아버지를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데 너는 이미 그런 아버지가 계셔."
"그래도 그걸로 빌 붙어먹고 사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난 운동하는 게 좋아. 가서 땀을 흠뻑 흘리면서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은 목표를 계속 깨나가는 그 쾌감이 있단 말야!"
"그럼 그건 계속하면 되지 않아? 꼭 그걸로 먹고 살 필요는 없잖아? 병행이 가능할 것 같은데?"
"..."
"그리고 네 아버지는 경영에 대해서 공부하신 게 아니라 원래 연구를 하시던 분이라며? 너는 경영을 배워서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것을 더 크게 키워 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전문 경영인이지!"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막연하게 '꿈'과 '돈', 그 둘을 연계 시켜보니 나온 경호학과. 그러나 저렇게 반박할 여지 없이 논리적으로 내가 생각해보지도 못한 말을 하니 나는 충격을 받았다.
'돈은 돈 버는 일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은 운동대로 한다.'
그것에 대한 명분까지 명확했다. 그리고 다 가능한 이야기였다. 머리의 크기와 생각의 크기가 비례하는 것인가 궁금했다.
그날 밤...
난 아버지 어머니를 모셔놓고 말씀드렸다.
나 내일부터 격투기랑 헬스 안 간다고.
'공부에 올인할 거다.
대학교를 갈 건데 과는 이미 정했다.
난 아버지 사업체를 키울 것이다.
그래서 경영학과에 가려 한다. 아버지는 기술쟁이다. 경영에 대해 책 몇권 읽으신 것을 빼고는 따로 공부하신 적이 없다. 나는 그 경영을 전공으로 공부를 하려 한다. 그러려면 지금 운동은 잠시 접어두고 공부에 몰빵을 해야만 한다. 조금이라도 더 낫다는 대학에서 장군이처럼 똑똑한 놈들과 같이 공부를 하고 싶다. 그리고 대학을 붙고 나면 다시 운동을 시작 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나 공부하게 지원 좀 해 달라.'
이 말을 듣고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며 엉엉 우셨다.
격투기를 시작하게 된 고1, 4월. 어머니 생각에는 아들이 슬슬 진로를 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인데 학교 정규 수업만 듣고 운동을 하겠다 하니 3일을 앓아 누우셨었다.
아버지는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 한다며 지원해 주시기로 하고 운동을 하든 뭘 하든 나만 즐거우면 된다고 하셨다. 그런 아들래미가 갑자기 운동을 다 끊고 공부를 한다니 얼마나 기쁘셨을까?
나는 운동을 그렇게 죽기 살기로 하다 보니 수업 시간에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졸 때가 많았다. 선행 학습도 몇 과목만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부분까지 한 게 전부라 첫 입학은 반에서 4등이었는데 마지막 시험은 반에서 32등을 했다. 어머니는 성적이 이게 뭐냐 했지만 나는 어차피 그걸로 먹고살게 아니라 큰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장군이와 상의했다.
장군이는 넌 체력이 좋으니 겨울동안 1학년 과정을 최대한 빠르게 5번 반복해서 보라 했다. 1학년 것을 마스터해야 하는 이유는 그 뒤의 내용이 연계가 되기 때문이라고 지금 그것부터 얼른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후
나는 새벽 2시 이전에 잔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시간이 없었다. 지체하면 2학년이 시작된다. 그러면 나는 할 게 점점 쌓여간다. 처리할 것부터 빨리 처리하자! 마음먹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보고 까먹고 보고 까먹고 보고 까먹고' 의 연속이었다.
모르는 게 나오고, 안 외워지고, 답답해도 난 엉덩이는 떼지 않았다. 떼면 지는 거고 죽는 거였다.
그 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장군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군이는 우리 반 1등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고 전교 한 자릿수 등수다.
그렇게 2학년이 시작되자 나는 문과, 장군이는 이과로 가서 반이 갈리게 되었다.
[장군이와 8년의 계획]
나는 수업이 끝나고 야간자율학습시간이 되면 장군이네 반으로 가서 공부했다.
모르는 걸 따로 모아 둔 것도 물어봐야 했고 또 공부를 하다 모르는 게 생기면 바로바로 물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반에 갔더니 안면 있는 양아치들이 집에 가고 싶은데 강제로 남아 있게 되어 시끄럽게 떠들고 장난을 쳤다.
이런 건 기선제압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냥 참으면 그래도 되는 줄 알고 시끄러운 게 계속된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점점 거기 동조해 나날이 더 시끄러워진다.
그래서 본보기로 그 반에 가장 힘이 세다는 친구가 떠들 때 조용히 하라고 소리쳤다. 잠시 조용해졌다가 다시 떠들어서 2번. 그리고 3번째 다시 떠들 때
"3번째다. 마지막이다."
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자존심이 상했는지...
"야 넌 우리 반도 아니면서 왜 와서 지X이야?"
하고 호기롭게 욕까지 섞어 대답을 해주었다.
'걸려 들어쓰!'
기분 좋게 날라가서 아까 참았던 마음이 풀릴 때까지 때려주었다. 그 당시 인내심을 기준으로 많이 참았었다. 이름도 기억 안 나지만 미안하다. 친구야.
여튼 그래서 그 반에서는 나부터도 장군이에게 뭐 물어볼 때 소근 소근이었다. 다른 애들도 다 마찬가지라 공부하기 참 좋은 환경이 되었다.
어느 날
그 반 담임선생님이 야자 시간에 들어와 넌 왜 니 반에서 공부 안 하고 맨날 남의 반에서 공부하냐고 했다.
‘내가 공부 좀 해보려는데 장군이가 필요하다. 장군이는 나 조금 돕는다고 자기 성적이 떨어질 하수가 아니다.
야자 시간이 끝나고 밤 10시부터는 집에 가서 혼자 공부하는데 물어야 할 것들이 쌓인다. 해소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시끄럽게 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엄청 빼앗는 것도 아니다. 학교에 있는 시간만큼은 날 이 반에서 공부하게 해 달라!‘라고 납득 가능하게 설명을 드렸다.
다음 날 아침...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야 이 ㅁㅊㅅㄲ야! 넌 왜 니 반 놔두고 남의 반에 기어 들어가서 야자를 해 가지고 아침부터 열받게 만들어?"
하며 다짜고짜 욕을 했다. 아니 선생이 학생 공부 좀 하자는데 말들 더럽게 많았다.
어머니는 매년 초 담임선생님께 책 한 권을 선물한다. 그 책 안에는 두툼한 봉투가 하나 끼워져 있다. 저렇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어머니의 책이 전달되기 전이기 때문인 듯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자신에게 미리 감사함을 담은 마음을 책으로 표현해 준 학부형의 아들에게는 한마디라도 따스하게 건네게 되어있다.
그러나 곧 일어날 미래의 일을 모르는 이 담임 선생님 입장에서는 1학년 때 반에서 32등 하던 놈이 야자 한답시고 남의 반에 가서 그 반 1등을 괴롭히니 누가 봐도 이것은 위험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욕을 한 것 같았다.
더러워서 우리 반에서 공부하기로 했다.
'하아...'
조용히 만드는 작업을 또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웬걸 우리 반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서 해도 생각보다 괜찮은데? 궁금한 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몰아뒀다 묻지 뭐'하고 나는 반에서 야자를 했다.
그런데 며칠 뒤 야자 시간에 장군이네 반 담임선생님이 우리 반으로 찾아왔다.
잠깐만 나와보라 했다. 저 선생님이 나를 찾을 이유는 없었다. 궁금해서 나가보았다. 선생님이 한 말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전화를 한 통 받았다고 했다.
자기 반 아이의 엄마가 요즘 야자 시간에 애들이 시끄럽게 떠들어서 자기 아들이 공부를 못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장인 장군이에게 원래 우리 반 야자 분위기 좋았는데 누가 문제냐고 물으니 내가 문제라고 했다는 것이다. 내가 사라지고 점점 시끄러워졌다는 말을 듣고 뛰쳐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거봐요!! 그냥 냅두면 알아서 잘 하는데!!"
"니가 뭔데? 왜 니가 가니까 그런 건데?"
"제가 어험처엉나게 열심히 공부하니까 이게 애들한테도 전달이 되는 거라니까요? 아 저 쓰레기도 저렇게 공부한다고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 뭐 이런 거 아닐까요? 하하"
"그럼 니가 다시 우리 반에서 야자를 하면 다시 그런 전화가 안 걸려온다는 거야?"
"백퍼!!!
아 그러게 그냥 놔뒀으면 되는 걸 왜 괜히 우리 담임선생님한테 이야기해서 이렇게 서로 불편하게 만들어요? 선생님도 심심하면 제가 지금 그 반 가서 공부할 테니까 오셔서 한번 지켜보세요. 제 말이 맞나 틀리나. 선생님 계셔도 애들 떠들죠?"
"..."
"장군이 성적 떨어지면 제가 다신 안 갈 테니까 그럼 저 선생님네 반 프리권 주시는 겁니다."
"일단... 좀 보고..."
난 책과 필기구를 들고 장군이 옆자리로 갔다. 서로 말은 안 하고 씨익 웃었다. 그리고 내가 온 것을 본 3번 경고받은 친구와 그 무리들은 갑자기 졸린지 엎드려 잤다. 그들 주변만 어두운 밤이 된 것 같았다.
그 후 매년 연례행사로 하던 어머니의 책이 전달이 되었다. 중간 기말 중간 기말 16, 8, 4, 2등을 했다. 거짓말같이 딱 절반씩 줄어들었다.
한번은...
어떤 과목 시험을 보고 나서 장군이와 답을 맞춰보러 갔는데 딱 한 문제 내 답이 틀렸다. 장군이는 그 문제 정답이 왜 그런지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시험 점수가 나왔는데 내 답이 맞은 것이었다. 틀린 건 장군이였다.
살면서 누구를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놀린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내가 장군이에게 배운 공부를 하는 방법에 대해 장군이에게 다시 설명도 해주고, 너처럼 공부하면 그렇게 1문제씩 틀리는 거라고 그게 반복되면 점점 틀리는 게 익숙해지고 그럼 너는 의대는 커녕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대학에 가게 될 거라며 놀렸다. 근데 선이 살짝 넘어가자 장군이의 표정이 근엄하게 바뀌어서 아쉽지만 놀리는 것은 그날 하루로 끝냈다.
여튼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우리 반은 등 수가 떨어지면 떨어진 등수만큼 담임 선생님이 빠따를 쳤다. 그 빠따 시간 집합에는 열외가 없었는데 난 굳이 갈 필요를 못 느껴서 장군이 옆자리로 가서 공부를 했다. 그런데 문이 열리더니 우리 반 친구가 나를 부르러 왔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급히 찾는다며 너 X된 것 같다고 했다.
올라갔더니 내 성적이 적힌 부분에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었고 얘가 반에 들어올 때 32등이었는데 이번 시험 4등을 했고 점수가 뭐가 어쩌고 너희도 신일이처럼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라 했다. 생애 태어나 처음 받아보는 극찬이었다.
바보같이 그 말을 듣고 난 울었다.
참 스승이었다. 제자를 사랑하는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빠따도 사실 '아무 관심이 없으면 안 치겠구나' 하고 빠따의 참 의미도 깨달았다.
'선생님께서는 그동안 나의 노력을 다 알고 계셨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어머니의 책을 받자 180도 달라진 여느 선생들과 같다고 오해를 했다. 책을 주는 타이밍이 늦어서 욕을 먹었다고 생각한 것을 후회했다.
근데 진짜로 울었다. 눈물 몇 방울 뚝...뚝... 그 자리에서 나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빛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참스승님께 칭찬을 받았는데 다음 시험에 내가 빠따를 맞을 수는 없었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중에 참스승에게 빠따를 맞을 순 없다는 것이 추가되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처음에는 내가 뭘 하는 건가 이건 왜 배워야 하고 내가 이걸 알아서 무엇이 도움이 될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들이 들었다. 나는 궁금한 것을 잘 못 참는다. 그래서 스스로 답을 찾았다.
내가 갈 대학의 아이들도 이런 지루하기 짝이 없고 쓸모없어 보이는 것을 참고 이겨내는 과정을 견디고 그 자리에 왔을 것이다. 내가 공부 한 양이 그 친구들의 공부한 양과 비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점점 알게 되자 가속도가 붙었다. 더 반복해서 봐야 했고 더 외워야 했다. 그리고 희한하게 지난번 봤을 때는 X소리이던 것이 다음번에 봤을 때는 이해가 되는 신기한 경험들도 반복되었다.
이 쓸모없는 행위도 점점 재미가 생겼다.
어머니는 내가 공부한다고 방에 틀어박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매일 2시까지 공부하는 나를 보자 공부를 하지 말라 했다. 적당히 쉬엄쉬엄해야지 그렇게 하다가는 골병 난다고 쉬라 했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지금 시간이 촉박하단 말이다. 그리고 거기 가면 어떤 희한한 애들이 올지 궁금했다. 또 그런 대학 생활은 어떨지도 너무 궁금했고. 안 그래도 늦게 출발해서 바쁜데 하라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하니까 그만하라고? 세상에 무슨 저런 청개구리가 다 있나 싶었다.
대화하지 않았다. 깔끔하게 무시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1번은 이것이었고 나는 그동안 어마어마한 체력을 길러왔다. 이 정도는 힘든 것도 아니었다. 간간이 너무 열 받아서 이 문제를 만든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 뚜렷한 목표와 정해진 분량이 있었다. 그걸 반복해서 봤다. 그렇게 나는 모든 시험을 오픈북처럼 봤다. 내 머릿속 기억에 남겨두었다. 간혹 까마귀 고기를 먹어 기억이 안 나는 것도 있지만 그것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난 그 싸움에서 만족할 만한 승리를 거두었다.
계획대로 순조롭게 흘러가던 내 삶이 대학 졸업을 1년도 안 남겨두고 모조리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야심찼던 이 8년의 계획은 완성되지 못하고 끝났다.
우리 가족은 도망자가 되었고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되는 존재가 되어 어둠속으로 스스로 들어가 사라졌다.
출처
https://blog.naver.com/daki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