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편에 대한 내용도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 점을 참고해주셨으면 합니다
1편 때부터 특유의 분위기와 소재가 취향에 맞아 꽤나 마음에 들었던 시리즈였었고 개인적으론 이번 2편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실 다른 컴파일하트 게임에 비하면 스토리다운 스토리가 있는 게임이 데엔리 시리즈와 신옥탑 시리즈뿐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적어도 오타쿠 취향의 일러스트를 기반으로 일정 수준 이상은 보장하는 스토리 및 설정이 곁들여저 있는 게임이 많지 않은 편이라 더 애착이 가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데엔리2가 갓겜이라 하기엔 역시 게임으로서나 스토리로서나 부족한 점도 많지만...완벽은 아니더라도 취향에 맞는 사람에게는 이만한 게임은 찾기 힘들다고 봅니다.
1편 때부터 이 시리즈의 문제점이라고 생각됐던 부분들이 고쳐진 것도 있고 더 안좋아진 것도 있고 다양하지만...시리즈를 다 끝내고 시간이 좀 지난 지금 개인적으로 생각을 정리할 겸 하나하나 감상을 적어볼라고 합니다.
1. 게임성
게임성은 전작에 비하면 난이도가 엄청 쉬워지고 접근성과 편의성이 좋아졌다고 봅니다. 1편에서는 양날의 검이었던 오염도 시스템이 패널티는 아예 사라져서 사용하기 쉬워지고 배드엔딩을 회수할 때 마지막 선택지로 돌아가는 기능의 추가, 아이템이나 기믹 발견이 안내를 해주는 보이스 시스템에 전투승리후 캐릭터일행들의 만담같은 소소한 재미요소도 추가되는 등 게임성에 관해선 발전했다고 생각됩니다. 다만...개인적으론 그만큼 게임이 쉬워진 바람에 오히려 1편 때 느꼈던 매력이 하나 사라져버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발의 역전을 노릴 수 있는 각성인 동시에 자칫하면 즉사해버리는 양날의 검이었던 오염도 시스템과 체력 감소 및 각종 디버프를 부여하지만 오염도의 조절을 위해서 감수해야하는 버그장판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게임이 진행될 수록 단조로워지는 컴파겜에서 보기 드문 전략 요소라 생각되어서 마음에 들었던 요소입니다. 물론 이런 시스템이 있었어도 결국 후반부에는 단조로운 전투 패턴이 고착화되긴 하였지만 그래도 나름 중후반까지는 방심했다가 훅 가버리는 요소여서 전투에 몰입하기 좋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2편에 들어와서 이런 페널티 요소들은 전부 사라졌고 결국 중반부터 전투가 시작되면 빠르게 글리치화 > 각성기 난무의 전투로 고정화 되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이런 쉬워진 전투 난이도 때문인지 몬스터들의 피통이나 방어력이 터무니없이 높게 설계되는 경우도 많아 단단한 나무목각을 얼마나 빨리 깎아내나 싸움이 되버린 점은 아쉽다고 생각됩니다.
몬스터의 스테이터스 설계의 경우도 이상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분명 스테이터스를 봤을땐 방어력이 50뿐인 몬스터인데 방어력이 2000대인 몬스터와 받는 데미지가 큰 차이가 없거나 똑같이 방어력이 6000대인 몬스터인데 한 놈은 천 단위의 데미지가 박히는가하면 한 놈은 1~2밖에 박히지 않는가 하고...상성의 차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들쑥날쑥한 데미지 차이에 후반부터는 몬스터의 스텟을 확인하여 약점을 찾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이 점은 페인에리어 지역에 가면 더 크게 느껴져서...페인에리어 지역의 최종보스는 피통이 천만 단위를 찍어서 전투 자체는 원패턴인데 그 원패턴으로 몇 십분 가까이 후드려 패야하는 등 아직 게임으로선 부족한 점도 많다고 느껴집니다.
이렇게 단점만 나열한 전투 시스템이긴 하지만 전작보다는 플레이어 캐릭터간의 밸런스는 잘 맞아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2편의 메인 파티원인 마이, 로트, 릴리아나가 저마다파티에서의 포지션과 역할을 사이좋게 나눠가진 밸런스라고 생각됩니다. 1편의 경우 각 캐릭터간의 스테이터스 및 스킬의 개성이 강했지만 그 때문에 결국 쓰는 캐릭터들만 쓰게되는 문제점이 있던 거에 비하면 버려지는 캐릭터가 없다고 느껴져 좋았습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2편의 메인 파티원 기준인거지, 추가된 1편 캐릭터들은...여전히 1편의 밸런스를 그대로 가져온 덕분인지 손이 안가서 결국 쓰지않게 되더군요. 게다가 위에서 말한 승리 후 만담파트도 1편 캐릭터들에겐 구현되지 않아서 승리모션이 단조로워 보는 맛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전작을 했던 유저들을 위한 팬서비스 및 다양한 플레이를 즐기고 싶어할 유저들을 위해 선택의 폭을 넓혀주려 추가한 1편 캐릭터같지만...스토리 상으로 연관성도 없고 전투 관련하여 밸런스도 개선되지 않은데다 전투에 관련된 소소한 재미요소조차 누락되어 있으니 오히려 추가해서 마이너스인 느낌이었습니다.
이 시리즈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한 배드엔딩 수집요소도 편의성은 좋아졌지만 그 대신 다양성이 감소되어 마냥 좋다고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배드엔딩 선택 후 되돌아가는 편의성까지 추가해놓고 왜 배드엔딩의 분량은 반토막을 낸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물론 전작처럼 별 시덥잖아서 보고나면 얼척 없어지는 배드엔딩이나 마지막 세이브 포인트랑 멀리 떨어져있는데 전투에서 패배해야만 회수되는 배드엔딩, 보스와의 전투 도중에 탈주하여 일정 거리를 벗어나야 회수되는 신박하다 못해 왜 이렇게까지 조건을 까다롭게 만든건지도 의심되는 배드엔딩 등 불편한 요소들은 제거되어서 잘됐지만 그래도 챕터당 1편 뿐인 분량인건 이 게임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를 버린게 아닌가 싶어 불만스러웠습니다. 차라리 편의성도 그대로였다면 모를까, 개선점을 만들어놓고 왜 그 개선점을 활용하지 못했나하는 생각만 듭니다.
그리고 배드엔딩 관련하여 불만인 점은 분량 뿐만이 아니라 전작에 비해 어둡고 절망적인 느낌이 죽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작에서는 파티원이 버그에 침식당해 서로를 죽이거나 몰살하는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배드엔딩도 있었는데 이번작에서는 몬스터 혹은 흑막세력에게 당해버리는 전개뿐이라 심심하다 못해 밋밋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무대 배경이 되는 리즈 쇼아라 자체가 저주받은 도시이다 보니 부정적인 감정에 침식당해 미쳐버린 동료에게 살해당하는 절망적인 엔딩들이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 너무 주인공세력 vs 적대세력의 구도로 끝나는 배드엔딩 뿐이라 이 시리즈의 매력이라고 느꼈던 꿈도 희망도 없는 느낌의 전개가 옅어져서 불만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5챕터에서 악마때문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새도우 매터가 되어버려 자기 손으로 죽여버리게 된 릴리아나가 그 사실에 절망하고 미쳐버려 마이와 로트를 공격한다거나, 6챕터에서 마을 주민들을 몰살하는 환상을 본 상태에서 수많은 새도우 매터들을 베어넘기던 마이가 지나친 전투로 인해 주민들을 죽이는 환상의 이미지와 손도끼로 살을 베는 현실의 감촉이 오버랩되어 결국 정신이 무너진 채 살아움직이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고자 로트 일행을 공격한다거나, 7챕터에서 진실의 방에 도달하여 미드라의 진실을 알게되어버린 로트가 결국 자신이 믿어왔던 것들이 모두 무너지자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해 마이가 말릴 틈도 없이 자살해버린다거나 등등...충분히 시리즈 특유의 다크하고 씁쓸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았던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아쉽습니다.
2. 캐릭터
전작에 비해 등장하는 캐릭터의 수가 줄어들어서 그만큼 각 캐릭터들에게 집중하기 좋았습니다. 게다가 캐릭터가 줄어든 만큼 스토리도 메인 캐릭터들에게 집중되어 전작보다 주인공 일행에게 감정이입하기 좋았다고 봅니다. 전작의 경우 시이나와 아라타라는 2인 체제에 그 둘과 밀접하게 관련된 인물들도 많아서 각각의 인물들간의 밸런스가 좋지 않았다고 느꼈었는데 이번작에서는 딱 마이와 로트, 릴리아나 3인에게 이야기의 흐름이 집중이 되어서 좋았습니다. 물론 등장인물들의 총합으로 따지만 19명의 기숙사생이라는 물량공세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서브캐릭터로서 스토리 전개에 필요한 희생양 혹은 서브스토리를 통해 마이 일행의 캐릭터성을 알려주는 촉매재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편이었다고 봅니다.
특히 이번작의 주요 콤비였던 마이와 로트 두 캐릭터가 매우 취향이었습니다. 불우한 가정사로 인해 남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던 마이가 밝고 활기찬 로트 덕분에 점점 마음을 열고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이나 세상 고민없이 밝고 천연스러웠던 로트가 마이와 함께하면서 진실을 알아가게 되고 점점 마음이 연약해져가는 모습 등 두 캐릭터의 상반된 모습이 좋았습니다. 티격태격대고 일방적으로 혼내고 혼나는 관계이면서도 언제나 둘이 함께고 서로 마음이 무너질 뻔한 위기의 순간이 와도 서로를 격려하고 도와주는 모습 등 서로 처음엔 맞물리지 않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가까워지고 마지막엔 둘도 없는 친구처럼 여기는 변화와 과정만 보면 한 편의 소설같은 전개였습니다. 어떻게보면 너무나도 정석적인 흐름일 수도 있지만 마이와 로트라는 캐릭터의 설정이 궁합이 잘 맞아서 그런 정석적인 흐름이었어도 매우 달달하게 느껴졌습니다. 덕분에 트루엔딩에서 현대에서도 알콩달콩하게 잘 살고있는 마이와 로트의 모습을 보면서 매우 흐뭇했습니다. 리즈 쇼아라 시절에는 마이가 아무리 떨쳐내도 끝까지 달라붙던 로트가 현대에서는 마이의 눈치를 보면서 사리는 반전도 재밌었고요.
다만...주인공 일행은 전작에 비하면 정말 만족스럽긴 했지만 여전히 악역 포지션의 캐릭터들에 대한 퀄리티는 떨어진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실질적인 최종 흑막인 줄리에타는 정체가 공개되기 직전까지 너무 떡밥조차 없어서 갑자기 급전개가 펼쳐지는 것 같은 불만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더 불만이었던 건 어째서 줄리에타가 최종 흑막이 된 것인지 그 내막이나 사연이 정체가 공개된 뒤에 챕터 끝자락에 가서야 밝혀진다는 것입니다. 정체가 공개되기 전부터 넌지시 떡밥이나 암시를 던져주고 그 뒤에 그 내막을 밝혀주는 것이 정석이라 생각하는데 줄리에타의 경우 뜬금없이 정체가 공개된 뒤 왜 이 캐릭터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나중에 되서 설명해주는 느낌이라 매우 짜증났습니다. 적어도 미드라처럼 진실이 완벽하게 공개되기 전부터 넌지시 떡밥을 던져줬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록 불만입니다. 게임 자체의 분량이 1편에 비하면 줄었다곤 하지만 적어도 9챕터까지 진행되면서 줄리에타에 대한 언급이나 암시가 한 번도 안나올 수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예를 들자면, 마이와 릴리아나를 데리고올 때 뿐만이 아니라 자주 워즈워스에 방문하여 마이에게 이것저것 관심을 가진다거나, 작중 초반부에 넌지니 지나가는 투로 미드라가 줄리에타를 성까지 풀 네임으로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거나, 리즈 쇼아라에서 고립되어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된 뒤에도 자주 리즈 쇼아라를 들락날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폐쇄적인 마을 축제인 카니발에 참여하여 마을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충분히 유저들이 줄리에타를 의심할 만한 장치들을 이야기 내에서 깔아둘 수 있었다고 봅니다.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겨우 2번 밖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캐릭터가 갑자기 최종 흑막이라고 폭로하는 장면은 처음 봤을때 너무 개연성이 없어서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미 페이크 흑막인 미드라가 충분히 어그로를 끌고 있었던 전개인데도 줄리에타라는 캐릭터에 대해 너무 공개하지 않은 채로 진실을 폭로한 점이 2편의 캐릭터 중에서 제일 불만인 점이었습니다.
3. 스토리
2편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큰 불안요소가 스토리였었지만 적어도 1편보단 기승전결의 느낌을 잘 살려내서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워낙 1편의 진엔딩 급전개가 충격적이고 어이가 없어서 반면교사가 된 건지도 모르지만요. 개인적으로 2편 스토리의 주요 전개인 리즈 쇼아라에서의 이야기는 1편보다 스토리다운 구성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1편에서 월즈오딧세이라는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라는 커다란 스케일을 다루던 것에 비하면 리즈 쇼아라라는 작은 마을 규모의 스케일로 줄어들긴 했지만 스케일이 줄어든 덕분에 다른 불필요한 전개가 많이 쳐졌다고 생각합니다. 캐릭터의 경우도 그랬지만 2편의 스토리와 관련된 분야들은 전체적으로 자기 분수에 맞는 크기와 스케일로 택해서 과유불급, 혹은 용두사미의 느낌을 많이 덜어냈다고 봅니다. 너무 크고 많은걸 다루려다가 제대로 다루지도 못한 채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결말이 아니어서 이 점이 만족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실질적으로 1편과 깊게 관련된 스토리나 떡밥, 혹은 후속작을 암시하는 전개들은 2회차에 나누어서 전개해뒀기 때문에 1회차의 데엔리2 스토리는 그 자체만으로 평균 이상은 보장하는 스토리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1편까지 플레이했던 제가 봤을때 1회차의 스토리는 1편을 해보지 않아도 이야기가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다거나 크게 지장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스토리 내에서 언급되는 세계관에 대한 설정을 최대한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1편을 알고있어야 한다는 전제는 동일하지만 '이 설정은 대강 이런 개념이구나' 정도로 뭉뚱그려 이해하고 넘겨도 괜찮은 분들이라면 크게 지장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어디까지나 1회차의 스토리만 가지고 하는 이야기지만요. 2회차에서 추가되는 스토리들은 1편의 스토리를 알지 못한다면 매우 이해하기 힘드니 결국 이 시리즈를 완전히 즐기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1편도 진행하시는걸 권장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꼭 1편 완결후 2편 진행이 아니더라고 1편이나 2편 1회차 중에서 순서에 상관없이 즐기시고 마지막은 2편 2회차를 진행하시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거 생각해보니 신옥탑2와 비슷한 플롯이네요.
다만...정작 2회차의 추가 스토리는 1편 스토리나 2편의 1회차 스토리만큼 스토리에 흥미와 집중을 유발하는 요소가 적었다고 생각됩니다. 추가된 분량 자체도 적었지만 가장 큰 문제점으로 생각되는건...2회차 시작할 때 나오는 변경된 오프닝에서 이미 핵심 떡밥을 다 던져버려서 정작 인게임에 추가된 스토리에선 오프닝만큼의 흥미를 유발할 요소가 없어져버린게 문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핵심적인 스포일러는 오프닝 영상으로 다 보여줘놓고 정작 인게임 스토리에선 그 스포일러에 대한 언급이 마지막 EX엔딩 끝자락에 잠깐 나오고 끝나는 정도니...이렇다보니 개인적으로 2회차의 추가된 스토리는 단순히 후속작을 내기 위한 떡밥들을 뿌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재미없는 스토리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사실 이것도 1편의 진엔딩만큼 어이없고 힘빠지는 전개지만 적어도 1편의 진엔딩과는 달리 '앞으로 이런 전개가 진행되겠구나' 라는 기대와 예측은 남겨줘서 충격이 덜했습니다. 1편의 진엔딩은 '앞으로 이렇게 되겠구나' 가 아니라 '왜 이렇게 끝나는 건데?' 라는 의문만 남긴 채 끝나버렸으니까요...심지어 왜 그렇게 끝나야 했었는지에 대한 당위성도 개연성도 하나도 언급되지 않은 채 끝나버렸으니...
4. 의문점
1편 때도 모든 엔딩을 다 봤지만 이해하지 못한 요소와 떡밥, 전개가 많아 이번에는 그런 의문을 최대한 줄이고자 모든 서브스토리와 1.5편 소설까지 다 봤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의문들은 하나하나 스토리를 다시 흝어보면서 풀리기도 하고 어떤 의문들은 도저히 풀리지 않아 까먹어버리기도 하고...그 중에서 결말 부분에 대한 의문과 되풀이되는 워즈워스의 참극 사건의 저주, 그리고 작중에 '검은 그림자' 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을 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2편 결말에 보면 마르바스로 각성한 마이가 디그레이드를 해서 시간회귀를 하는 것으로 결말이 납니다. 다만 단순히 시간만 되감은 것이 아니라 마이와 로트, 릴리아나의 기억은 보존한 채로, 그리고 줄리에타와 미드라의 존재를 말소한 채로 디그레이드가 됩니다(이 부분은 에피소드 차트에서도 이렇게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정확히 얼마나 시간을 되감았는지는 언급되지 않지만 1.5편 소설의 내용을 참고해보면 아마 아라타가 리즈 쇼아라에서 죽기 전의 시간, 대략 1년 전의 시간으로 되감은 것으로 추측됩니다(1.5편 소설에서 아라타는 줄리에타와 만나 죽음을 당하기 전에 마이에게 보내는 메세지들을 남겼습니다). 리즈 쇼아라와 워즈워스의 비극의 시작인 줄리에타와 미드라의 존재가 말소된 채로 디그레이드 되었지만 회귀된 시간에서도 리즈 쇼아라와 워즈워스는 여전히 폐허인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디그레이드로 시간을 되감은 '부분부터' 줄리에타와 미드라의 존재가 없어진 것이어서 30년 전의 비극이 일어났던 과거는 그대로인 것이라고 이해하려고 했는데...이후에 워즈워스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기숙사생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메리와 앤이 기숙사로 오게되는 장면까지 보여주는 것을 보면 과거에 있었던 '반복되는 1년' 이 그대로 되풀이되는 것처럼 보이고요. 하지만 이 장면에서 미드라는 존재하지 않고 로트도 기숙사생들 사이에서 잊혀진 것이 드러납니다. 제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엔딩에서 보여준 워즈워스의 이야기는 미드라와 줄리에타가 없어진 30년 전의 과거의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현대에서는 폐허도시로 변해버린 리즈 쇼아라와 워즈워스인데 과거가 변하여 참살이 벌어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는 건...과거의 시점에서도 미드라와 줄리에타의 존재는 지워졌고 그와는 별개로 본래 있었던 유독 가스 유출 사고는 그대로 발생하여 변함없이 리즈 쇼아라와 워즈워스는 몰살당하는 전개인 것인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일부러 엔딩에까지 참극이 사라진 워즈워스의 모습을 보여줘놓고 결국 모두 사고로 죽어버리는 결말인 걸로 마무리지은게 참 찝찝한 결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리즈의 시나리오 라이터가 쓴 작품이 콥스파티인걸 생각해보면...콥스파티에서도 이와 비슷한 설정과 전개가 있었던게 떠올라서 제가 생각한게 유력한 결말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또다른 의문점은 리즈 쇼아라에 걸린 저주에 대해서입니다. 줄리에타는 리즈 쇼아라에 저주를 걸어 미드라가 기숙사생 22명을 참살하는 1년간의 비극이 되풀이되도록 만들었고 이 저주를 30년간 반복하여 마르바스에게 바칠 666명의 제물을 충족시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개인적으로 의문이 든 점은 이미 30년 전에 죽은 영혼들을 다시 죽이는 것으로 그 조건이 충족되는 것일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워즈워스에 있던 기숙사생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고 살아있는 자들이 아닌데 죽은 자들이 또 죽는 것으로 제물의 조건이 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22명을 참살했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면 인게임의 배경이 되는 시점에서 기숙사생은 마이와 로트, 릴리아나까지 포함해야 22명이었습니다. 게다가 30년 전 사건때도 로트는 죽지 않았고요. 그럼 실질적으로 30년 전의 사건으로 죽은 기숙사생들의 수는 19명이지 않나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그 당시에 메이드들도 죽였다고 했으니 메이드들까지 포함하여 22명이었던 것인지 의문이 남습니다. 이 외에도 리즈 쇼아라의 도시전설에 대한 호기심으로 방문했다가 붙잡혀 죽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작중에서도 아라타와 시이나, 그리고 시이나를 도와주러 왔던 1편 캐릭터까지 해서 저주로 반복되는 22명의 제물 이외에도 사망자가 많이 나왔을 텐데 그 사람들은 제물의 머릿수에 포함되지 않은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애초에 22명으로 30번 반복하면 660명이라 줄리에타가 말했던 666명의 제물과도 맞지 않지만요...
마지막 의문점은 작 중에서 등장하는 '검은 그림자' 의 존재에 대한 것입니다. 게임 내 스토리에서도 리즈 쇼아라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시발점이기도 하고 필드에서도 중간중간 나타나 길을 방해하거나 붙잡히면 그대로 게임오버 당하는 등 보통의 새도우 매터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지만 정작 스토리에선 비나를 붙잡은 이후로 비중 자체가 증발해 버렸습니다.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일반 몬스터와는 다른 무언가 떡밥을 가지고 있을 법한 느낌의 몬스터인데 너무 싱겁게 다뤄지고 버려져서 의문이었습니다. 비주얼부터 평범하지 않고 보통 붙잡은 인간을 죽이던 새도우 매터들과는 달리 이 검은 그림자에게 붙잡혔던 비나는 죽지 않고 살아남죠. 게다가 검은 그림자와 조우했던 비나가 사나에와 똑같은 말을 중얼거림으로써 검은 그림자에게 뭔가가 있다는 뉘앙스를 풍겨놓고는 1편의 루덴스처럼 쓰다버린 장기말 취급이 되어서 이상합니다.
예를 들자면, 검은 그림자는 보통의 새도우 매터가 아닌 강림에 가까워진 마르바스의 사념체같은 설정이였으면 그 비주얼과 비중에 걸맞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강림이 가까워진 마르바스가 자신이 강림할 수 있는 그릇이 될 인간을 찾아 리즈 쇼아라를 배회하고 붙잡은 인간을 보고 그릇인지 아닌지만 판단하고 놓아주는 거죠. 그리고 마르바스와 마주친 인간들은 그릇이 아니기에 마르바스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바르보스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인식해 '바르보스가 보고 있어' 라고 중얼거리게 되는 거였다면, 초반에 바르보스라고 언급되었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마르바스였다라는 전개에 대한 떡밥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거기에 마이를 발견한 검은 그림자가 필드에서 뿐만이 아니라 스토리 내에서도 마이를 집요하게 쫓아다니고 결국 마이가 검은 그림자와 접촉하게 되는데 이 때 마이는 검은 그림자를 마르바스라고 올바르게 인식하게 되는 장면을 넣는다면 바르보스라고 인식했던 사나에가 아닌 마르바스로 인식한 마이가 결말 부분에서 마르바스의 그릇이 되는 전개에 대한 떡밥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쓰다보니 검은 그림자에 대한 의문에 대해선 '이랬으면 어땠을까' 식으로 가정의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그만큼 검은 그림자에 대한 떡밥의 출현과 기대가 컸었는데 아무런 영향 없이 지나가는 엔피씨 취급되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1편의 리프카가 그 비주얼과 작중 활약을 가지고도 중요한 비중을 가지지 못한 채 소모적으로 버려졌던 경우가 생각나서 너무 아쉬운 존재였습니다.
감상을 쓰다보니 글이 엄청 길어져 버렸습니다. 1편 때에도 이것저것 생각할 요소가 많았던 시리즈였는데 2편까지 와서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들도 많아지고 해소된 떡밥들을 통해 또 궁금해진 떡밥들도 생기고 해서 키보드만 몇 시간째 붙들고 마구잡이식으로 글을 써버렸습니다.
마지막에 와서 간략하게 이 시리즈에 대한 감상을 적자면, 너무 의도적으로 다음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려는 떡밥의 전개도 있고 스토리나 세계관, 설정 등이 한 눈에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부분들도 있지만 시리즈 특유의 암울하고 다크한 분위기, 그리고 현실세계를 프로그래밍한다는 특이한 소재와 컨셉, 개성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들 등 컴파일하트 계열의 게임이 조금이라도 취향이신 분들이라면 만족스러운 게임이라고 생각됩니다. 적어도 저는 컴파일하트 게임 중에서는 신옥탑 시리즈 다음으로 데엔리 시리즈가 잘 만들었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