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내용은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실수로 눌러서 오신 분이 있을까봐 이렇게 적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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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을 플레이한지 조금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전작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남아있어서 게임패스로 플레이해보게 되었습니다. 전작에서도 단점이 없진 않았죠. 저는 길치 성향이 있는 편이라 길을 찾거나 퍼즐이 그리 썩 달갑진 않은 편임에도 몇몇 구간을 제외하면 딱히 큰 어려움없이 진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작에서의 가장 큰 불만은 그거였죠. 마지막에 갑자기 할아버지랑 판타지 전투를 벌였던 전개? 그 전까진 그냥 역병과 그 기원에 대한 탐구로 나름 흥미진진하게 진행했는데 갑자기 판타지로 넘어가면서 뭔가 붕 떠버린 느낌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던 것일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이 부분에서 만족하시는 분들도 물론 계시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이번 후속작은 일단 그래픽은 매우 좋았습니다. 5600 + 3070 조합으로 플레이했는데 대충 자동으로 설정된 사양에서 그래도 60프레임 근처에서 유지를 해 주는 것 같더라고요. 오브젝트가 많은 특정 몇몇 상황에서는 40대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말이죠. 유일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게임에서 특히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휴고가 가자던 섬에 도착해서 백작과 백작부인을 만나고 침실로 안내받아 잠자고 다음 날 밖으로 나오면서 보게 되었던 하늘 그 풍경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게임 진행을 잠시 멈추고 발코니 근처에 서서 화면을 천천히 돌려가며 그냥 잠시 멍하니 서 있었고 그 순간이 참 좋았습니다. 게임 내내 나오는 우중충한 모습과 대비되는 몇 안되는 평화로운 모습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시아는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호라이즌 제로 던의 주인공 에일로이를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제로 던은 게임 전체적으로 본다면 잘 만들어진 게임이지만 에일로이 캐릭터 하나만 놓고 보면 그렇게 매력적이진 않은 주인공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도발하면 순도 100% 도발로 받아칠 줄만 아는 페미니스트들이 좋아하는 항상 강하게 받아치는 강한 여성의 이미지가 있죠. 경우에 따라선 독선적인 면이 있다고 볼 수도 있고요. 아마시아는 에일로이 레벨은 아니지만 동생이 딸려있는 약한 맛 에일로이 MK2 느낌이 있습니다. 도발하면 한마디도 지지않고 받아치고 휴고 원툴인 느낌이 있죠. 세상 모든 일보다 휴고가 최우선입니다. 캐릭터가 겪어온 일을 짚어보면 그 행위가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너무 그쪽 측면만 강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에 쥐로 구성된 거인들과 심상세계에서 마주하면서 아마시아로 헤쳐나가야 하는 과정이 있는데 그에 대한 해답이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화로의 불을 끄는 것이라는 게 저는... 이게 무슨 메시지인가 싶었습니다. 1편부터 지금까지의 고군분투는 다 쓸모없는 여정이었고 애초에 휴고가 ■■하는 게 그럼 뭐 맞다는 이야기인가... '포기하면 편해' 의 재해석인지... 작가가 이 과정을 통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뭔가 납득이 되는 느낌이 안 들었습니다.
그리고 휴고가 갑자기 초월자가 된 것처럼 '나는 다 알아' 라는 스탠스로 나이대에 안 맞는 성숙한 의식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아... 저는 이것도 굉장히 이상했습니다. 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제 생각에 이 게임은 절대 호러 장르의 게임이 아니거든요. 쥐만 보면 그냥 무서워하시는 특정한 분들을 제외하면 말이죠. 남매가 갑자기 휩쓸린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런 인간상을 그린 드라마죠. 그렇다면 적어도 마지막 순간에서 아마시아가 휴고의 묘비를 찾아 마지막일지도 모를 작별인사를 건넬 때 화면을 보고 있는 게이머들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게 만들진 못하더라도 뭔가의 여운을 남겨줘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차라리 휴고가 원래의 그나마 아이다운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게 어땠을까요? 융합되고 모든 가능성을 보고 알아챈거죠 휴고는. 자신이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그리고 아마시아와 루카스를 만나고 그냥 그 나이대의 아이들처럼 살고 싶다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서 사랑하는 이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아직 죽고 싶지 않다고, 자신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대응하던 이전의 모습과는 다른 본심을 보여주지만 이내 곧 마음을 다잡고 사랑하는 누나가 존재하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숭고한 결정을 한다고 가정하면 어떨까요? 물론 이것도 다들 생각할 법한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적어도 저는 휴고의 아이답지 않은 희생정신과 숭고함에 눈물 한 방울 흘릴 준비가 되어있었을 것 같습니다. 작가가 휴고와 아마시아에게 최후의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순간을 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아무튼 제게는 휴고의 초월자 방식이 크게 거슬렸나 봅니다. 유독 여기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걸 보면. 그냥 게임 내내 징징거리던 꼬마가 갑자기 모든 깨달음을 얻은 신적인 존재가 되어 나타난 게 납득이 잘 안 됩니다. 꼭 그런 식으로 그려야만 했을지 그 점이 너무 아쉽네요 저는.
그리고 아마시아의 감정선이 항상 너무 MAX 상태에 있던 것도 제가 상황에 공감하거나 몰입하기 어려웠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아마시아 연기하셨던 성우 분 목이 후반부 작업 끝나고서는 쉬지 않았을까 걱정이 들 정도로, 속삭이는 상황을 제외하면 매번 갈라진 목소리로 애타게 휴고를 찾아야만 했죠. 아마시아의 격앙된 감정을 점수로 10점 만점으로 구분하면 후반부는 계속 10 10 10 10 9 10 10 10 10 10 이런 식의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화가 심하게 난 경우를 떠올려봐도 그 감정이 항상 MAX 상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 서서히 내려가죠. 작가가 계속 게이머들에게 '아마시아의 10의 감정에 몰입해줘' 라고 요구하는 느낌이 들지만 게이머는 계속 그 템포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후반부에 저는 자꾸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 게임 왜 하고 있었지?' 등의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의 영상의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요? 2편 판매량이 좋으면 후속편을 만들겠다는 의지일까요 아니면 휴고의 선대와 휴고처럼 역병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그런 단순한 메시지였을까요? 1편이 성공해서 해당 IP에 기대면 제작자 입장에서 장점이 많겠지만 이게 또 다른 어크 시리즈의 서막일지도 모른다는 제 우려가 그냥 말도 안되는 생각이길 바랍니다. 어쨌건 충분히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게임사라는 걸 두차례에 걸쳐 증명을 했으니 휴고랑 아마시아, 쥐떼는 이제 놓아주고 다른 게임을 만들어주길 기대합니다. 단점 위주로 아쉬운 점만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즐겁게 플레이한 게임이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