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악!!! 죽어!!! 죽어!!! 죽어버려!!!"
"라펠, 조금만 진정하고 내 말을..."
"싫어!! 싫어!! 왜 내가!! 왜 내가 아니야!!! 아아악!!!"
늘 고요했던 국왕의 집무실엔 이성을 잃은 채 절규하는 공주의 고성으로 가득찼다.
광증에 휩싸여 날뛰던 공주는 왕비가 자신의 어머니인 걸 잊은 듯 그녀에게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나보다 아름다워서!! 내가 당신보다 아름답지 못해서!!! 너 같은 건 죽어야 해!!! 죽어!!! 죽어!!!!"
이윽고 공주가 근처에 자리한 물건들을 집어 들곤 왕비에게 내던진다.
뾰족한 촛대와 두꺼운 책 등이 왕비의 몸을 구타하고 뺨을 스쳤지만, 왕비는 일말의 미동조차 없이 딸의 울분 섞인 분노를 몸소 받아낼 뿐이었다.
"허억... 헉... 죽어... 죽어..."
공주의 투석은 오래가지 못했다.
평소 잘 쓰지도 않는 몸으로 단시간에 거칠게 움직인 탓인지 금세 숨을 헐떡였고, 움직임은 급격하게 느려졌다.
"라펠. 나는 용사... 알티엔과 아무런 사이도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불결한 관계가 아니란다. 제발 나를... 이 어미를 믿어줄 수 없겠니?"
"거짓말... 거짓말...! 거짓마알...!!"
전부 거짓말이다. 저 말도, 애처로운 눈빛도 전부 거짓이 분명하다.
오가헤아 왕국의 왕비이자, 왕국의 어머니로 불리는 저 여자가 내 어머니라는 것이, 내가 저 여자의 딸로 태어난 것이 죽도록 밉고 싫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남자들의 시선과 관심이 내가 아닌 저 여자에게 더 많이 향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니까. 나를 낳고 품어준 사람이니까.
그런데 왜... 왜!!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까지 빼앗아가는 건데!!
"언제부터야... 언제부터 그 사람과 내통한 거냐고..."
"라펠... 나는 그 자와 그런 사이가 아니..."
"정말 아니오?"
의자에 앉아 깊은 상념에 빠져있던 국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까지 저를 의심하는 건가요?"
"작금의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소? 무엇보다 용사... 그자가 왕비를 원한 것 자체가 합리적 의심이 타당하지 않나?”
그 말에 왕비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손톱이 보드라운 살갖을 살짝 파고들며 작은 핏방울이 새어나왔다.
"아니라는 건 전하께서 더 잘 아실 텐데요. 지난 20년간 한결같이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계시니까요."
"..."
왕비의 대답에 국왕은 차마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말처럼 지난 2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녀가 모르게 사람을 붙여 감시한 게 맞기에.
'왕비 전하의 용모는 저희 엘프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없이 아름답습니다.'
무거운 공기 속, 10여년 전 순례 중이던 엘프가 궁중에 방문하여 한 말이 문득 스쳐갔다.
엘프는 미(美)에 대한 자긍심이 특히나 드높은 종족.
그렇기에 미(美)를 판단하는 척도 역시 매우 박하고 까다롭다.
"아버지!! 빨리!! 이 여자를 내쫓고 당장 알티엔을 방면시켜 주세요!! 알티엔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요!! 저 여자가 먼저 꼬리를 친 게 분명해요!! 확실해요!!"
"...라펠은 끝까지 저를 믿지 못하는군요. 만백성의 총애를 받는다고 한들, 어머니로서 딸에게조차 신뢰받지 못한다면 왕비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겠지요. 저는... 전하의 판단과 처분에 따르겠습니다."
"하아... 일단 생각을 좀..."
국왕이 터질 것처럼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시름할 때,
콰아앙-!!!
왕궁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거대한 폭발음이 메아리쳤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 허락도 없이 집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휘황찬란한 황금색 갑주를 갖춰 입은 사내가 국왕 일가의 안위를 우선 확인한 뒤에 낮지만 선명하게 말했다.
"용사... 죄인 알티엔이 탈옥했습니다."
피와 어둠이 뒤엉킨 듯한 검붉은 마력 안개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신성한 태양조차 감히 그 빛을 내뿜지 못하도록. 마왕 알티엔은 인간들이 손가락만하게 보일 정도의 높이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왕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저건... 마왕이 아닌가..."
"그럴리가요... 마왕은 용사가 소멸시켰..."
왕비의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공주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아... 알티엔... 나의 용사..."
인간의 모습이 대부분 지워졌음에도 공주는, 라펠은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저게... 용사라고?"
누가봐도 마왕이다. 그런데 저게 용사 알티엔?
국왕과 왕비의 안색이 순식간에 공포와 경악으로 물들었다.
"알티엔... 그 모습은 뭐냐. 진정 마왕이라도 된 것이란 말이냐..."
국왕의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던 사내, 왕국 기사단장 루조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올려다보며 검을 빼 들었다.
일련의 소란으로 점차 모여들기 시작하는 사람들.
상황을 인지한 루조는 기사단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명령했다.
"오가헤아 기사단!! 국왕 전하와 왕비 전하, 공주님이 계신 곳에 집중적으로 보호막을 펄쳐라!! 그 외 인원은 나뉘어서 인파를 보호하도록!!"
저게 마왕, 용사가 맞다면 찰나의 피신은 의미가 없다.
"돈콤. 성검을 가져와라."
그렇게 판단한 루조는 옆에서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던 부기사단장에 명령했다.
"성검이라니... 진심이십니까?"
"어서!!"
만악의 근원인 마왕을 죽일 수 있는 건 오직 성검 뿐.
루조가 핏발이 선 눈으로 마왕이 된 용사를 응시하며 결의를 다지는 순간,
"오늘부로 왕비는 만인의 노예가 될 것이다."
마왕 알티엔이 창백한 손으로 저 아래에서 관망하고 있는 왕비를 가리키며 선언했다.
본문
[잡담] "오늘부로 왕비는 만인의 노예가 될 것이다" [3]
2026.03.24 (15: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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