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의 리뷰라기 보담은 히로인 하나를 집중분석하게 될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본작에 대한 평을 하려고 합니다. 근 2주 정도 되는 시간을 현실과 세이렌섬을 오고가며 바쁘게 지내왔던 나날들이 마치 이국에서 보낸 달콤한 휴가처럼 아련하고 아쉽게 느껴지는 지금, 제 마음속에 본작 'YS 8 RACRIMOSA OF DANA'는 시리즈 최고의 스토리텔링과 액션 RPG 로서의 높은 완성도로 깊은 후유증을 남기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가가브 트릴로지를 플레이하던 때의 가슴의 고동을 느끼게 해준 팔콤에게는 비록 언어와 국가가 다르지만 다시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딱딱한 문체와 두서없는 전개로 감히 여신을 다루게 될 이후의 글을 읽어주실 당신께도 감사의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타이틀 화면 전체를 차지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이 게임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복선과 장치들이 그녀를 구성하고, 실체화하는데에 쓰이고 두 갈래로 나뉘어졌던 이야기의 흐름은 그녀가 모든 시련을 견뎌내고 아름답고도 가슴아픈 결말을 한 줄기 눈물로 받아들이는 때에 이르러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
다나가 등장하는 것은 표류촌 일행의 탐험이 거의 극에 이르러, 물리적 난관이었던 장다름 산맥을 지나 유구한 에타니아의 폐경에 이를 때입니다.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케릭터성을 가진 사실상의 주인공의 등장으로는 때늦은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때 아돌, 그리고 그와 시점을 같이하는 플레이어는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미래를 예지하는 목동 소녀. 걱정하는 부친에게 담담히 자신의 삶과 그에 따른 책임은 자신의 것이라며 오히려 위로하는 건전하고 주도적인 멘탈의 소유자.
재능을 두려워하여 그림자 속에 숨었다가 불의의 사고로 모친을 잃고, 그러한 비극에서도 마음을 닫기는 커녕 더더욱 세상과 주변에 연결되어 그들을 구하고, 이끌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 그녀는 주변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인자, 기발한 발상의 '모험가' 같은 평을 받으며 무사히 거목의 무녀가 되는 것에 성공합니다.
예언가, 박해, 덧없는 다정함, 등등의 속성들은 오래전 올드 게이머들의 심금을 울렸던
영웅전설 3 ~하얀마녀~의 게르드를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저는 본작의 다나가 게르드와는 조금 다른 케릭터성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그녀가 신이나 초월자가 아닌 너무나도 약하고, 그렇기에 정열적인 인간이라는 점이 것입니다.
그녀는 인간(에타니아인, 나아가 사람) 특유의 무구한 호기심과 모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영리하고 활발한 소녀입니다. 좁은 방과 시스템의 폐쇄성을 견디지 못해 옷감을 찢고 커튼을 꿰매어 만든 로프로 창문을 탈출하여 자연과 세상을 두 눈으로 보고자 하였던 그녀는 실제로 대단한 마당발입니다.
번성하던 에타니아의 거리를 돌아다녀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를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녀의 상징적 지위를 고려했을때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제사장과 무녀는 신과 접하는 신비한 존재로, 대부분의 경우 범속한 인간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다나는 북적이는 시장통을 뛰어 놀며 사람들의 일상과 고민을 듣고 눈으로 봅니다.
그런 그녀를 이해하고 난 다음, 그녀가 저지르는 모든 일들이 사실은 합리적이며 합당한것임을 우리들은 깨달아 갑니다. 성지에 고여있는 성수는 사실은 산불때문에 죽어갈 사람들의 목숨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며, 만물을 도태시키고 진화시키는 자연의 섭리같은 것은 하루를 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기 위해 발버둥치는 생명의 열정 앞에서 또한 하찮은 것임을 다나는 이미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망설이지 않습니다. 곁에 있는 누군가의 희망을 지키기 위해서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시리즈 전통의 묵묵한 붉은 머리의 히어로 아돌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다나를 알기 위해서는 본작에서 그녀의 '소울메이트'인 아돌 크리스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부하고 오글거리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표현할 더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했던 저를 부디 용서하기 바랍니다. 붉음과 푸름, 고대와 현재, 남과 여, 머물지 못하는 방랑벽의 탐험가와 민족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섬을 떠나지 못하는 무녀. 일견 두 사람은 여러 모로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건물을 폐허로 만들고, 묘목을 거대한 나무로 만드는 시간 처럼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저는 처음에 생각했답니다.
16세에 드래곤을 때려잡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집을 나선 아돌 크리스틴은 서양권에서 말하는 소위 'BADASS'라는 밈에 딱 어울리는 영웅입니다. 바람처럼(해안가에 떠밀려와서) 나타나 그 지역 일대에 꼬이꼬 꼬인 고통과 불행들을 전설의 검으로 베어버리고, 현지의 수많은 미소녀들의 첫사랑을 뒷모습으로 강탈한채로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다음 바다로, 대지로 모험을 떠나는 그는 방랑자이며 '모험가'입니다. 마조히스트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고통과 역경, 의외와 미지를 즐기는 그는 불타는 에너지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그를 영웅으로 만드는 또다른 요소는 바로 그의 무결한 정신과 의지입니다.
최근에 와서는 달라지는 이야기이기는 합니다만, 그는 기본적으로 혼자 싸우는 히어로였습니다. 한치앞을 분간하기 힘든 폐광에서 광부들을 구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덮쳐오는 괴물들의 혀를 자를때, 오만한 문명을 심판하기 위해 마법의 방주가 또 한번 죽음의 해수를 방사하려 할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포기하고 도망쳤을 상황에서도 아돌은 언제나 혼자서 그 모든 것을 돌파해 왔습니다. 영웅의 자손도 아니고, 마법의 힘을 지니지도 않은 그가 가진 가장 위대한 힘은 역경을 보고 물러서지 않는 의지와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좌시하지 않는 따뜻하고 관대한 마음일 것입니다.(그리고 플레이어의 절륜한 컨트롤, 세이브 등등이 있겠습니다.)
이윽고 모래와 연금술의 대모험을 지나 알타고를 향해 롬바르디아호에 '임시'선원으로 승선한(그 많던 골드는 누가 다) 아돌 크리스틴은 다도해의 한 복판에서 고대종 오케아노스의 습격을 받아 24인의 표류자와 함께 배를 집어삼키는 마성의 섬, 세이렌 섬의 해안에 밀려들게 됩니다. 아하- 이번 시리즈는 조금 다르군요. 표류한 그를 지켜보고, 돌봐주는 미소녀가 없는 상황, 아돌은 자력으로 몸을 일으켜 녹슬고 이가 빠진 검을 주워서 주변의 마물과 험한 자연으로부터 몸을 지켜 나갑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때부터 그는 이미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본작의 히로인, 많은 반대의견과 욕설을 먹을 것을 알지만 감히 선언하고 싶은 이스 시리즈의 진 히로인이 시공을 초월하여 그와 함께 숨을 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돌 크리스틴과 다나 이클루시아, 두 사람의 주연은 본작 내내 서로의 삶을 마치 자신의 삶인 것처럼 꿈과 환영을 통해 체험하며, 서로의 마음과 이상에 크게 공감하고 서로에 대한 경외와 애정을 키워 나가게 됩니다. (이는 절묘하게 본작의 플레이 알고리즘을 구성합니다.) 이는 단순한 연애감정을 넘어서는 감정으로 대척점에선 다나와 아돌이 본질적으로 유사하며, 비슷한 기질의 인물임을 드러내는 장치로서 사용되게 됩니다. 얼마나 서로 비슷하면 텔레파시까지 통하겠어요.
다나와 아돌, 두 사람의 속성이 동일한 참 속성인 것처럼.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삶을 공유하게 됩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 복잡하지만, 다른 길을 살아왔던 오랜 소꿉친구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하겠습니다. 아돌은 언덕 위 작은 목장의 귀여운 딸이었던 다나의 모습을 알고있고, 다나는 종결부의 고백을 통해 이미 표류하기 전의 아돌의 모습까지도 보아왔다는 사실을 전하고 결국 그녀를 찾아 여기까지 온 그녀의 분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두 사람의 포옹은 보는 이를 답답하고, 따뜻하고, 숙연하고, 또한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어떠한 시련에도 눈물흘리거나 좌절하는 일이 없던, 모든 수단이 막혀 종언만이 기다리고 있을때도 울거나 슬퍼하기 보담은 다음 방법을 생각하던 그녀가 눈물로써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마도
여신이 되어, 진화라는 의미로 승화되어 실존세계에 접할 수 없는 자기자신에 대한 포기 보다도, 기어이 모험과 구원을 찾아 떠나갈 아돌을 결코 붙잡을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은 아니었을까요.(아돌강아지야) 자신이 여신이 되었다 한들, 차원과 실체가 다르다 한들 다나는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녀가 포기하지 않을 것처럼 아돌 또한 모험의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을 것을 조심스레 짐작해 봅니다.
조금 속물같은 이야기를 해볼까요. 하고싶은 이야기 입니다.
다나는(아돌은) 아돌을(다나를) 좋아했을까요? 원초적인 이야기 입니다. 나무 아래에 하트 문양을 그리고 그 안에 이름을 써 넣는 유치한 연애의 이야기 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세간의 분석과는 달리 '매우 그렇다' 라고 판단했습니다. 제 판단기준은 결국 저의 것이고 , 이유를 설명하자면 제 이야기를 하지 않을수 없겠군요. 예, 저는 아재 유부남입니다. '사랑하고 좋아해 마지 않는 저의 처'가 있지요. 불같은 사랑도 했고, 상식을 넘어서는 연애도 해왔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함께 살아가고 타인을 '사랑'하고 동반자로써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는 서로에게 동감하고 존중하게 되는 경외의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첨언이 필요 없겠습니다. 아돌 크리스틴이 직접 언급한 '경외'라는 감정은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과 크게 다를것 없는 순정의 결정입니다. 그리고 아돌은 수십년이 지나 모험을 회고할때 그녀의 이름을 '사랑'의 감정으로 기억하고 있지요. 두 사람의 관계가 건조하다고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그녀를 아돌은 플래쉬 무브까지 써가며 공주님 안기로 받았고, 다나는 그와의 헤어짐을 두려워해 어린아이처럼 몰래 표류촌을 탈출하는 몹시 그녀답지 않은 일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꽤 의미가 깊습니다. 다나는 여태의 행적을 보아 어떤 것에서도 본질을 회피하는 행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본작을 통틀어서 다나가 유일하게 회피하려고 했던 라크리모사(비탄의 날)는 수많은 동포들의 죽음이나, 그 무게를 지고 살게된 자신의 숙명이 아니라 결코 붙잡아둘 수 없는 붉은 머리의 난봉꾼과의 이별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혹시 지고지순한 사랑일런지.
결언으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이 글을 보는 피나파 여러분들께는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의견의 차이라고, 관점의 차이라고 우아하게 보아 넘겨주실것을 부탁드리며, 세이렌섬과 다나를 보내지 못하는 저는 강하게 다나가 포기하지 않기를, 그리고 아돌이 다시한 번 다나를 생각해주기를 바랍니다. 다나의 라크리모사가 영원한 눈물속에서 잠겨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후속작의 사정, 설정의 섭리 등등을 뛰어넘어 두 사람이 함께 있고싶다는 의지만으로 다시한 번 만나기를 강하게 바랍니다. 진화와 도태의 섭리 속에서도 결국 다시 만나 서로를 끌어안았던 그 모습 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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