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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12시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굴뚝마을의 푸펠: 약속의 시계탑
시계의 장침과 단침은 1시간에 한 번 반드시 겹친다. 단 하나, 11시대만은 예외다. 단침이 한발 앞서 달아나는 탓에, 두 바늘은 12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만난다. 그때 울리는 청명한 종소리는 마치 기다림의 보상처럼 느껴진다.
‘굴뚝마을의 푸펠: 약속의 시계탑’의 무대는 전작으로부터 1년 뒤의 할로윈이다. 친구 푸펠을 잃은 루비치는 다시 만나리라는 믿음을 내려놓은 채 하루하루를 보내다, 시간을 지배하는 이세계 ‘천년 요새’로 떨어진다. 멈춘 시계는 버려지는 이 세계에서, 고장 나지 않았는데도 11시 59분에 멈춰 선 시계탑이 하나 있다. 바늘이 겹치기 직전에서 멈춘 이 시계탑을 다시 움직여야만 루비치는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원안은 2019년에 나온 그림책 ‘틱톡 ~약속의 시계탑~’이며, 전작의 히로타 유스케 감독과 STUDIO4°C가 다시 손을 잡았다.
전작 ‘굴뚝마을의 푸펠’은 검은 연기에 뒤덮여 아무도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 마을에서, 별이 있다고 믿은 굴뚝 청소부 소년 루비치와 할로윈 밤 쓰레기 더미에서 태어난 쓰레기 인간 푸펠의 만남을 그렸다. 2016년 그림책으로 출발한 이 이야기는 2020년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져 일본에서 관객 196만 명, 흥행 수입 27억 엔을 기록했고,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았다.
‘약속의 시계탑’이란 부제를 단 속편은 지난 3월 일본서 먼저 개봉했고,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K플러스’ 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국내의 경우 제28회 부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국제 경쟁 장편 부문을 통해 관객과 처음 만났다. 원작과 각본, 제작 총지휘를 모두 맡은 니시노 아키히로는 개그 콤비 ‘킹콩’으로 데뷔한 요시모토 흥업 출신 희극인(芸人)이다. 그림책 작가로 방향을 튼 뒤 ‘푸펠’을 영화와 뮤지컬, 가부키에 이어 게임으로까지 넓혀 왔다.
BIAF 2026 참석차 방한한 일본의 희극인이자 그림책 작가, 영화 제작자 니시노 아키히로와 기다림이라는 본작의 주제 그리고‘푸펠’ IP의 앞날을 이야기 나눴다.
'굴뚝마을의 푸펠' 원작 그림책 작가이자 극장판 제작 총지휘, 니시노 아키히로(西野亮廣)
● 일본 개봉으로부터 반년 정도 흘렀네요. 이렇게 한국 부천에 오기까지, 대체로 어떻게 지내셨나요
: 영화 말고도 하는 일이 많아서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계속 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영화는 보통 어느 시점이 되면 상영이 끝나잖아요. 그걸 끝내지 않고,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계속 상영되도록 하자는 겁니다. 지금은 이벤트 상영 형태로 계속 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구독형 서비스도 접었습니다. 넷플릭스나 아마존 프라임에는 절대 올리지 않고, 그곳에서 볼 수 없게 한 대신 이벤트 상영으로 전국을 계속 돌고 있습니다.
● 요시모토 흥업의 희극인으로 출발해 그림책 작가, 영화 제작자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굴뚝마을의 푸펠’ 시리즈를 비롯한 이후 작품들은 개그물이 아니라 감동과 희망을 앞세운 이야기입니다. 과거 사람들의 웃음을 만들어 온 경험이 지금의 이야기 만들기 어디에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 아주 많이 남아 있습니다. 웃음과 감동은 굉장히 가까운 길 위에 있거든요. 심지어 호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깔아 두는 후리(振り, 웃음을 위한 전제나 설정)와 그걸 어떻게 떨어뜨리느냐는 오치(オチ, 예상을 뒤집거나 마무리해 웃음이 터지는 부분), 결국 이 작업은 웃음이든 감동이든 호러든 거의 같습니다.
예를 들어 ‘굴뚝마을의 푸펠’은 연기를 뚫고 그 너머의 별을 보러 가는 이야기잖아요. 이걸 개그로 만든다면, 힘들게 연기를 빠져나갔는데 거기가 대낮이라 별이 하나도 안 보이는 거죠. 밤이었으니까 감동적인 이야기가 됐지만, 낮이었다면 코미디가 됐을 겁니다. 구조로서는 똑같습니다.
● 전작이 꿈을 좇는 이들을 위한 응원이었다면, 2편은 기다리는 이들을 향한 위로처럼 느껴집니다. 다만 주변의 만류에 꺾이지 말고 꿈을 좇으라,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명제에 비해, 기다림은 보상받는다는 메시지는 반론의 여지가 많고 그만큼 대중의 공감대 역시 약할 수 있습니다. 2편의 주제의식에 대해 어떻게 자평하시나요
: 이 이야기는 실제로 저와 콤비 파트너였던 카지와라 군의 이야기가 바탕입니다. 둘이서 쭉 활동해 왔는데, 어느 날 카지와라 군이 일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실종됐습니다. 3일 뒤에 발견되긴 했지만, 그때는 이미 마음의 병으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상태였습니다. 도저히 일에 복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결국 소속사가 킹콩의 무기한 활동 중지를 발표했고, 그 뒤로 저희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났을 때 소속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카지와라 군의 상태가 전혀 나아지지 않았으니, 이대로는 복귀가 어려울 것 같다며 저 혼자 다시 데뷔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아직 스물두세 살이었고 조급한 마음도 있어서, 한순간은 혼자 갈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혼자 활동해서 만에 하나 잘되기라도 하면, 카지와라 군이 돌아올 자리가 없어지겠더라고요. 그래서 요시모토 흥업에 기다리겠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기다리지 않으면 돌아올 수조차 없는 일도 있습니다. 불상사를 일으켰거나 부상으로 빠진 경우라면, 남은 사람이 혼자 이름을 알리고 킹콩이라는 성을 쌓아 둔 다음 “이제 돌아와도 돼”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때는 마음의 병이었기 때문에, 제가 혼자 잘돼 버리면 카지와라 군은 절대 돌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 원안 그림책 ‘틱톡 ~약속의 시계탑~’은 본래 별개의 이야기인데, 이를 ‘굴뚝마을의 푸펠’ 2편으로 각색하면서 두 이야기를 하나로 엮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타이틀롤인 푸펠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이러한 구성을 취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 말씀대로 이번 작품에는 푸펠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푸펠을 되찾기까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화면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루비치를 움직이는 동기로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 별개의 이야기를 ‘굴뚝마을의 푸펠’ 2편으로 만드신 데서, 앞으로도 푸펠의 세계를 이어 가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푸펠 IP를 어떻게 가꿔 가고자 하시나요? 아니면 푸펠과 무관한, 전혀 다른 창작의 욕심도 있으신가요
: 어쩌면 전혀 다른 IP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후(モフ, 작중 루비치와 함께 모험하는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푸펠이 나오지 않는 별개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새로 만들 수도 있고요.
● 그간 작업은 그림책에서 애니메이션, 다시 무대로 이어지는 흐름이 일관된데, 올해는 ‘로블록스’로 게임도 냈습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로블록스’가 소통 수단이 된 만큼, 거기에 IP가 없는 건 영화에 공식 SNS가 없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걸 봤습니다. 미디어믹스의 한 축으로서 게임을 어떻게 여기시는지 궁금합니다
: 입구, 그러니까 작품과 만나는 접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봅니다. 뮤지컬로 들어오는 사람도, 영화로 들어오는 사람도, 그림책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으니 여러 입구를 만들어 두는 편이 좋겠죠. 어릴 때 좋아하게 된 캐릭터는 평생 좋아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어릴 때 키티를 좋아했던 사람이 어른이 돼서도 좋아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어린 팬들이 어릴 때부터 ‘굴뚝마을의 푸펠’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여러 채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만 게임은 아마 저보다 회사 스태프들이 더 열의가 있을 겁니다. 제 관심은 그림책, 영화, 뮤지컬, 이벤트 쪽이에요. 원래 희극인이라 극장에서 나고 자랐거든요. 역시 극장이 좋습니다.
● 바쁜 일정 와중에 다른 상영작을 보실 기회가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몇 해 전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칼럼으로 분석하신 적 있으시죠. 그렇다면 한국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소설 등 스토리텔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한국 작품 좋아합니다. 특히 ‘극한직업’을 정말 좋아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었습니다. 잠입하려고 차린 치킨집이 대박이 나면서 장사에 자부심까지 느끼게 되는 설정이 특히 재밌었고요.
한국 엔터테인먼트가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도 좋아합니다. 브로드웨이에서 한국 팀이 움직이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브로드웨이는 굉장히 작고 폐쇄적인 커뮤니티인데, 그 안에서 자기 말을 앞으로 내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고민하고 있어요. 일본은 작품을 완성해 두고 브로드웨이에서 누군가 연락해 주길 기다리는 쪽인데, 한국은 적극적으로 나가서 어필합니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한국 뮤지컬이 종종 오르는 것도 그런 노력의 결과라고 봅니다.
● 과거 칼럼도 그렇고 방금 말씀도 주로 한국의 방법론,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일본과 다른 한국 작품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그건 딱히 느끼지 않습니다. ‘기생충’도 좋아하지만, 한국적이어서라기보다 그냥 재밌는 작품이라서 좋아요. 한국에도 훌륭한 각본이 있고, 어느 나라에나 훌륭한 각본은 있으니까요.
● ‘굴뚝마을의 푸펠’ 첫 편이 개봉한 2020년과 비교해 보면, 지난 6년간 가장 큰 변화의 물결은 AI일 겁니다. 굉장히 다재다능한 크리에이터로 유명하신데, AI가 창작 영역으로 빠르게 들어오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 저는 AI로 만들 수 없는 것들을 ‘앵커’라고 부릅니다. 배를 붙잡아 두는 닻 말이죠. 땅이나 시간 같은 것들입니다. 수령 천 년 된 나무처럼 시간이 쌓인 것, 역사나 제작 과정, 추억, 그리고 사람이 무언가에 품는 애착 같은 것들이요.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엮여 있지 않은 콘텐츠는 모두 도태될 겁니다. 전부 AI로 대체되겠죠.
그냥 잘 그린 그림에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예쁜 음악에도 가치가 없고요. 이제는 초등학생도 AI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AI로 만들 수 없는 것을 자기 콘텐츠에 확실히 엮어 두는 게 무척 중요합니다. 그와 동시에, 지금 AI로 ‘굴뚝마을의 푸펠’ 실사판도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굴뚝마을을 정말 실사로 찍으려면 어마어마한 대작이 돼야 하니 쉽지 않잖아요. 완성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할 생각입니다.
● 한국에서는 일본 극장 애니메이션 하면 ‘귀멸의 칼날’, ‘체인소 맨’처럼 유명 만화 원작이라는 인식이 큽니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굴뚝마을의 푸펠’처럼 원작 팬덤 없이 시작한 오리지널 작품이 살아남으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 말씀대로 굉장히 어렵습니다.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작품을 불쑥 내놓으면, 애초에 아무도 모르는 상태잖아요. 이걸 히트시키기는 정말 어려워요. 턱 내놓고 “터져라, 터져라” 빌어 봐야 소용없죠. 그래서 필요한 건 구조입니다. 작품을 죽이지 않는 구조죠. 일본에서는 개봉 후 3일 동안 숫자가 따라오지 않으면 끝났다는 분위기가 되는데, 저희는 그 게임에 올라타지 않습니다. 자기 작품이 계속 살아남는 구조는 자기 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재밌는 걸 하고 있는데요, ‘굴뚝마을의 푸펠’ 1편의 권리는 전부 저희가 사들였습니다. 지금도 일본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는데, 그렇게 된 건 전국 누구에게나 이 영화를 상영해도 된다고 열어 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 학교 선생님이 상영회를 하고 싶다고 찾아오면, 그분께 상영권을 파는 겁니다. 그러면 그분들이 알아서 관객을 모으죠. 그래서 일본 어딘가에서는 계속 ‘굴뚝마을의 푸펠’이 상영되고 있습니다. 이것도 구조입니다. 개봉한 지 6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상영되고, 상영장 출구에서는 굿즈가 계속 팔립니다. 굿즈 역시 상영하겠다고 손을 들어 준 분들께 저희 회사가 도매로 넘겨 팔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2편으로 노리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상설 극장을 만드는 겁니다. ‘굴뚝마을의 푸펠’ 전용 극장이죠. 장소도 사실상 정해졌는데, 후지산 바로 근처입니다. 관광지는 비 오는 날 할 게 없잖아요. 후지산 주변은 의외로 비가 꽤 옵니다. 그래도 숙박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그런 날 호텔에 묵는 분들께 10년, 20년 계속 보여 드리려는 겁니다. 영화 상영을 끝내지 않는 거죠. 평생 극장에서 틀 생각입니다.
|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
굴뚝마을의 푸펠: 약속의 시계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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