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건브와는 다르다 뉴건브와는, ‘건담 브레이커 4’ 체험기
70년대 말 TVA ‘기동전사 건담’이 인기리 방영된 이래 수많은 게임이 만들어졌지만, 그 중에서도 ‘건담 브레이커’만큼 각별한 작품은 드물다. 그저 원작 내용을 재현하거나 MS로 싸우고 끝이 아니라, 제목 그대로 기체를 부수고 입맛대로 재구성하는 폭넓은 자유도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즉 ‘건담’ IP를 지탱하는 또다른 축인 프라모델을 액션 게임에 접목한 것이다. 소년소녀가 직접 조립한 건프라로 싸운다는 설정은 1982년 연재된 만화 ‘프라모 쿄시로’부터 시작된 자못 오랜 스테디셀러다.
이처럼 건프라 배틀이란 정체성은 PS3 타이틀이던 초대 ‘건담 브레이커’부터 1년 간격으로 출시된 2, 3편까지 계승 및 발전을 거듭했다. 액션 게임으로서 다소 미묘한 평가와 별개로 수많은 파츠를 모으고 취향껏 조립하는 기능은 나날이 강화됐다. 2편의 경우 도색 영역이 훨씬 더 분할되고 옵션 무장이 늘어났으며, 3편에 이르러 SD건담 참전과 조립의 다양성을 늘려줄 빌더즈 파츠가 도입됐다. 물론 온통 조립에 대한 개선만은 아니고 조작감과 육성 편의, 콘텐츠 확충 등 업그레이드가 함께 이루어졌다.
직접 커스터마이즈한 건프라로 싸운다는 컨셉은 나름 오랜 스테디셀러다
자유도 높은 조립으로 '건담 vs' 등과 차별화된 재미를 갖춘 '건담 브레이커'
반면 2018년작 ‘뉴 건담 브레이커’는 달랐다. 호기롭게 지은 ‘새롭다(New)’는 제목처럼 기존 시리즈와 방향성이 딴판이었다. 여전히 건프라 배틀 컨셉이긴 한데 사실상 3vs3 대전밖에 남지 않은 콘텐츠, 되려 축소된 커스터마이즈 옵션과 불편한 파츠 획득 방식이 팬덤을 당황케 했다. 상용 엔진인 언리얼 4를 채용했음에도 널뛰는 프레임레이트 역시 문제였다. 반다이남코가 어째서 ‘뉴 건담 브레이커’로 방향을 틀었는지 알 수 없으나 못내 아쉬운 결과였고 시리즈의 미래에 암운이 드리우는 듯했다.
그렇기에 한 명의 건덕후로서 2월 말 깜짝 신작 발표에 내심 안도했다. 시리즈가 폐지된 건 아니구나 싶어서. 참고로 연내 한국어화 발매가 확정된 ‘건담 브레이커 4’ 공식 장르 명칭은 3편까지와 동일한 창조 파괴 공투 액션. 대표 이미지서 거대화한 퍼스트 건담과 BB전사 풀아머 나이트 건담은 물론 지난해 돌풍을 일으켰던 ‘수성의 마녀’ 주역 건담 에어리얼도 보인다. 지원 기기는 PC, PS4, PS5, NS. 과연 ‘뉴건브’의 나쁜 기억을 털어낼 수 있을지, 11일 CNT(Closed Network Test)를 통해 직접 확인했다.
'뉴 건담 브레이커'도 기획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완성도가 너무 아쉬웠다
과연 시리즈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을까, '건담 브레이커 4'가 연내 발매 예정
뉴건브 아닌, 건담 브레이커 3를 잇다
론칭 빌드는 바뀔 수 있지만, 금번 CNT의 경우 GBBB 로비서 게임이 시작된다. GBBB란 GUNPLA Battle Blaze: Beyond Borders를 축약한 것으로 지비포-라 읽는다. 상점이나 대회장 등 VR 장비가 설치된 곳에 들러 건프라 배틀을 즐겼던 전작과 달리 GBBB는 일종의 온라인 게임처럼 묘사된다. 이곳에서 스토리를 진행하거나 미션에 도전하고 멀티 플레이 팀을 꾸리거나 친구 로비에 놀러갈 수 있다. 작중 세계관에 보다 밀접히 연관된 설정이라는 것 외에는 전작의 VR 행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3편과 연결되는 이야기인지 불명이나 ‘빌드 파이터즈’ 느낌의 건프라 배틀 청춘물 컨셉은 이어가는 듯하다. 코만도 건담 비슷한 무언가에 탄 활달한 안경 소년 타오(タオ)가 등장하여 GBBB의 이런저런 기능을 알려준다. 로비 한 켠 데스크에 귀여운 프티가이가 둘 있어서 빨간색에게 싱글, 노란색에게 멀티 미션을 수주한다. 본래 여기서 스토리 콘텐츠도 선택 가능한데, 아쉽지만 CNT라 일반 미션밖에 고를 수 없었다. 지원 맵은 연방군 기지 근처로 보이는 들판, 황량한 협곡, 우주 콜로니 외부까지 셋.
'GBBBB'라는 VR 게임이 무대로, 조력자는 칸사이벤을 구사하는 소년 타오
싱글 혹은 멀티 플레이로 미션에 도전하거나 스토리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미션에 돌입했을 때 첫인상은 퍽 괜찮다. 언리얼 4 엔진을 채용하고도 최적화에 고배를 마신 ‘뉴건브’와 달리 안정적인 플레이 환경을 제공한다. 그래픽이야 너무 큰 기대를 걸면 곤란하나 전세대기인 PS4, 스위치에 대응하는 작품임을 참착할 필요가 있다. 딱히 칭찬은 아니지만 ‘건담 브레이커 3’ 보다는 확실히 나은 편. 특히 타격 시 검붉은 스파크 이펙트가 더해져 쏘고 때리는 맛이 좋아졌다. ‘뉴건브’서 지적된 느리고 심심한 움직임 역시 개선되어 전체적으로 과거 시리즈를 즐기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세 미션 모두 몰려드는 적 웨이브를 처리하면 브레이크 콤보, 클리어 타임, 에이스 포인트가 합산되어 점수를 받는 식이었다. 제압 퀘스트라고 따로 구분된 것으로 보아 네트워크 테스트라는 취지에 따라 미션을 제한한 듯하다. ‘뉴건브’의 피곤한 PvPvE가 완전히 폐지됐는지 알 수 없어도 큰 걱정을 하나 덜었다. 유니콘 건담과의 거대 보스전도 체험했는데, 내구력이 엄청나게 높고 강력한 범위 공격을 가하며 경직이 걸리지 않는다. 대신 부위별로 대미지를 누적시켜 잠시간 무력화는 가능하다.
건담 게임 팬이 아니라면 공감하기 힘들 수 있는데, 그래픽이 꽤 좋아진 것
거대 보스전 역시 돌아왔다. 부위별로 대미지를 누적시켜 무력화하면 된다
이도류와 아킴보, 비대칭은 남자의 로망
파츠는 ‘뉴건브’의 즉석 착용이 아니라 과거처럼 미션에서 적을 격파하여 보상으로 얻은 뒤 별도로 조립한다. 마이룸을 통해 기체 조립, 도색, 사진 촬영이 모두 가능하며 최대 보유량은 부위별 1,500개까지. 등장 MS는 새롭게 참전한 ‘수성의 마녀’를 포함하여 250기가 넘고 그 부위 역시 11종으로 시리즈 최대 규모다. 도색 분할이 크게 늘어나 하이곡그 몸통 하나에 일곱 곳을 다르게 칠할 수 있을 정도. 무기도 마찬가지라 자쿠 머신건 도색 분할이 또 일곱 곳이다. 여기에 웨더링은 덤이다.
이처럼 조립 부위가 늘어난 건 이제 좌우 팔과 무기를 각각 장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자쿠 2 改의 우람한 어깨와 건담 알렉스의 하박 개틀링 건을 겸비한 ‘주머니 속 전쟁’ 특선 조합이 실제로 가능하다. 혹은 앗가이의 뭉텅한 팔을 한쪽에만 붙여 언밸런스한 귀여움을 연출할 수 있다. 심지어 팔뿐 아니라 무기도 각각 따로 든다. 빔샤벨 두 자루든 빔라이플 두 자루든 자유롭게. 대표 이미지 속 건담이 빔샤벨과 빔나기나타 이도류를 펼치듯 다소 부피가 큰 무기라도 문제없이 한손으로 장착한다.
참전 MS는 250기 이상, 조립부터 도색까지 역대 최고의 자유도를 자랑한다
가장 큰 변화는 양 팔을 다르게 달 수 있고 이도류, 아킴보도 지원한다는 것
‘건담 브레이커 4’ 조작 체계는 기존 시리즈-나아가 대다수 3D 건담 액션 게임-와 대동소이하지만 이도류가 추가되며 도드라지게 바뀐 부분이 하나 있다. 근접 시 컨트롤러 기준 □가 왼손, △가 오른손 공격을 담당하는 것. □→□→△→△→△ 혹은 □→□→□→□→△ 같은 식으로 조작 순서를 섞어주면 다양한 콤보가 가능하다. 끊어 치기나 EX 스킬 연계 외에 이렇다 할 근접전 손기술이 부족하던 시리즈로선 장족의 발전이다. 트리거 버튼을 쓰는 원거리 무기 역시 모으기나 재장전이 개별 동작한다.
EX, 옵션 스킬은 4개씩. L1, R1 + 버튼이라는 직관적인 조작 체계다. 여전히 파츠와 스킬이 연동되는 구조라 조립할 때 특히 신경을 써줘야 한다. 몇 성급이냐로 성능이 확 체감되는 일반 파츠와 달리 옵션 무장은 어디까지나 보조 역할이지만 전황에 따른 유연한 대처를 가능케 한다. MS 본체는 근접전 위주로 설계하되 양 어깨 위로 다연발 미사일을 달아주는 식이다. 필살기인 EX 스킬의 경우 전작에선 숙련도를 다 올리면 특정 파츠 없이도 쓸 수 있었는데, 짧은 테스트로 거기까지 확인할 순 없었다.
두 버튼으로 펼치는 콤보, 액션 장르서 흔한 사양이지만 본작에겐 장족의 발전
전황에 따른 유연한 대처를 가능케 하는 EX, 옵션 스킬. 각각 네 개씩 장착한다
아쉬운 발전상, 그럼에도 반가운 이유
이외에도 파츠 크기를 확대하거나 축소하고, 데칼 가짓수와 붙이는 숫자가 늘어나는 등 커스터마이즈 관련 개선점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촬영 기능 역시 강화되어 아예 디오라마를 꾸밀 수 있게 됐는데, 이 또한 CNT서 직접 체험하긴 한계가 따랐다. 홍보 자료에 따르면 다수의 건프라를 원하는 위치에 다양한 포즈로 두고 각종 건축물과 자연물은 물론 화염과 연기 같은 이펙트도 배치 가능하다고. 촬영이 모두가 애용하는 기능이라 보긴 어렵지만 어쨌든 전작보다 한층 발전했음은 분명하다.
결국 뭇 건덕후가 ‘건담 브레이커’ 시리즈에 기대하는 바는 쾌적한 파츠 수급과 무한대에 가까운 자유로운 조립, 그걸로 재차 미션을 돌며 고성능 기체를 완성해가는 순환 구조일 터다. 당연히 쾌적한, 이라는 표현에 앞서 ‘뉴건브’가 놓친 안정적인 플레이 환경과 PvE 콘텐츠 자체의 재미가 포함된다. 이러나저러나 3편이 여태 기억되는-출시 초기 난입, 피돼지 문제로 욕을 엄청 먹었지만- 비결은 건프라 배틀이란 정체성이니까. 3D 건담 액션 게임이야 ‘건담 vs’도 있겠으나 건프라 배틀로는 달리 대체제가 없다.
강화된 촬영 기능. 태양 만ㅅ…가 아니라 보라! 동방은 붉게 타오르고 있다!
CNT서 직접 체험하진 못했지만 이렇게 멋진 디오라마 제작도 가능하다고
되돌아보면 ‘뉴 건담 브레이커’가 만들어진 2018년이 유독 ‘오버워치’니 ‘배틀그라운드’니 라이브 서비스 PvP 게임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세계적인 IP ‘기동전사 건담’에 힘입어 반다이남코 역시 청운의 꿈을 품었으리라. 몇 년이나 지난 후 일이지만 ‘건담 에볼루션’이 등장하고 또 사라져간 맥락과 닿아있는 셈이다. 때문에 ‘건담 브레이커 4’는 3편부터 세었을 때 무려 8년 만에 신작이면서도 그렇게까지 진일보한 게임성은 아니다. 공식 배포된 홍보 자료서 강조하는 특징이 이도류랑 디오라마 모드일 정도니까.
CNT만으로 게임이 어떻다 평하기 조심스러우나, 그래도 비유하자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아니라 1보 후퇴 후 1보하고 반 보쯤 더 나아간 모양새다. 여러모로 3편의 마이너 업그레이드스럽다는 것. 다만 전작이 수명을 다하고 ‘뉴건브’는 흑역사가 되어버린 마당에 그 정도면 준수하다. 적당히 봐줄 만한 그래픽, 250기가 넘는 MS 참전, 이도류로 강화된 액션과 커스터마이즈, 사람에 따라 디오라마 모드까지. 이만하면 적어도 건덕후는 올해 기대작 목록에 ‘건담 브레이커 4’를 올려도 좋지 않을까 싶다.
멀티를 통해 나만의 건프라를 뽐내는 것도 이 시리즈만의 작은 즐거움이다
마이너 업그레이드스럽긴 해도, 건덕후라면 기대작 목록에 올려야 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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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