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W, 그 신화와 사고를 막는 껍질에 대하여
하나의 신화에서 에토스를 살펴봤을 때에는 명확한 지점이 있다. 신화의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가치가 해당 사회에서 얼마나 많이. 지속적으로 실천되고 있는가다. 에토스를 보고자 했을 때에는 하나의 문화 내에서 지속적으로 실천되고. 구성원들이 어떠한 행동과 결과물을 내고 있는지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제 신화 그리고 에토스라는 지점에서 국내 게임시장을 바라보자.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리니지라는 시리즈는 국내 시장에서 태어난 최초의 신화와도 같다. MMORPG가 중심이 된 국내 게임 시장의 부흥기를 이끈 타이틀이자,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수 많은 사람들에게 언급되며 존재감을 드러낸 타이틀이다.
리니지의 신화는 곧, ‘성공 신화’의 형태를 가진다. 리니지는 엔씨소프트가 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밑바탕이며, 후속작에 이르러 기술력을 뽐낼 수 있는 타이틀이기도 했다. 리니지의 성공 신화 그리고 리니지가 만들어내는 막대한 수익은 엔씨소프트를 국내 게임시장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리니지의 성공이 바탕이 되었기에, 엑스틸(2010년 서비스 종료) / 시티 오브 히어로(2012년 서비스 종료) / 초기 블레이드 앤 소울과 같은 시도들이 뒤를 이어나갔다.
2000년대 초중반,엔씨소프트의 행보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면이 있었다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의 제품이자,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그리고 성공 신화와 같은 전철을 밟고자 하는 시도들이었다. 이러나 저러나 이후의 게임들에 일종의 무의식과 같은 지향점이 자리 잡았다고 평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10년 중반. 리니지의 신화가 조금씩 빛이 바래기 시작한 지점이 왔다. 시장은 PC에서 모바일로 재편되기 시작했고 새로운 유저층을 확보하는 데에도 무리가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엔씨소프트는 모바일 시장으로의 진입이 늦은 편이었다. 신화가 없었던 새로운 시장과 무대에서 다른 타이틀과 기업이 성공 신화를 써내려나갔고. 동시에 유의미한 지향점을 만들던 시기였다.
바로 이 즈음. 시기적으로는 2016년 정도. 과거 리니지의 타이틀을 재해석한 게임들이 모바일 시장에 등장한다. 이들은 당시에 저작권 분쟁이 있을 정도로 지향점이 같은 타이틀이었으며, 리니지라는 신화가 없는 시장에서 과거의 흐름을 그대로 가져와도 무방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해당 타이틀은 원스토어 매출 순위권을 기록하며, 다른 대형 국내 퍼블리셔에 인수되는 등 게임 하나로 충분한 실적을 거뒀다. 말 그대로 과거 신화의 재림과도 같았다.
그리고 1년 뒤인 2017년. 엔씨소프트는 리니지를 모바일로 가져온 ‘리니지M’을 시장에 내놓는다. 이전에 리니지2 IP를 양도하기는 했었으나, 자신들이 개발한 모바일 MMORPG를 시장에 선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모바일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늦었으나, 엔씨소프트는 여기서 또 다른 성공 신화를 써내려갔다.
새로이 써내려간 성공 신화는, 이후의 결과물의 지향점이자 한계가 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성공 신화는 성경으로 따지면 신약과도 같았다. 이 신화의 기반적 가치는 넷핵이며, 구약은 리니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구원을 약속한 신약이 리니지M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보다 더 막대한 성공을 가져온 두 번째 신화까지 이룩하면서, 이제 리니지라는 브랜드는 개발진의 생각과 시도를 규정하는 법 체계와 같이 다뤄졌다.
플레이하는 형태도 리니지의 것을 따르며, 이후의 결과물이 리니지에 한없이 근접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지향점이 모여 만들어낸 신화가, 역으로 만들어 낸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통제하기 시작했다.
성장을 이끈 첫 번째 성공 신화가 내부에서 다양한 방향의 타이틀을 만들고 퍼블리싱하는 형태로 이어졌다면, 이보다 더 컷던 두 번째 신화는 신화의 행동규범 안에 포함되지 않는 것을 버리고 재단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다른 형태였어야 하는 것이 신화가 가지고 있는 에토스에 억지로 맞춰지고 왜곡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당장 최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의 가치에 맞춰 내부의 지향점을 재단하고 맞춰내는 시도는 몇 년 사이 엔씨소프트가 보여준 방향성이기도 했다. 2020년 2월 말 서비스를 시작해 2021년 5월 서비스가 종료된 ‘블레이드 앤 소울 프론티어 서버’가 대표적인 사례다. 고유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리니지의 방식이 더해진 이 서버는, 그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한 기묘한 결과물이 됐었다. 내부적으로 지향점에 두고 있는 플레이 방식과 가치가 억지로 입혀진 셈이었다.
이제 그 어떠한 공식 영상도 찾아볼 수 없는. 기록이 사라진 프론티어 월드
엔씨소프트가 이번에 선보인 리니지W 또한 이러한 경향을 그대로 따른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개발했다고는 하나, 그 뼈대 자체는 엔씨소프트가 두 번의 성공에서 구축한 에토스 그 자체다. 내부적인 일면을 따져본다면, 리니지 1에서 리니지 2로 넘어갈 때의 발전이나 변화보다 적다. 다른 그 무엇보다 원초적인 성공 신화를 구축하기 위한 움직임에 가깝고. 실제로 거기에 지향점을 둔다.
여기서 에토스라 부를 수 있는 지속되는 행태와 결과물들이 눈에 띈다. 이들이 가져오는 막대한 매출이나 내부 상품을 제외하고 판단했을 때 느껴지는 요소들이 그러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에서 넷핵에서 출발했던 초장기 리니지가 보여준 ‘지속 가능한 모험’은 지워지기 시작한다. 넷핵의 흔적을 지우는 과정은 새로운 가치와 신화로 리니지를 구축하는 과정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리니지라는 새로운 신화가 역으로 내부의 행동과 시각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자사가 만든 게임들의 플레이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덧칠하고 흐리게 만드는 결과가 이어졌다. 동시에 엔씨소프트가 보여준 행동 양식-에토스-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변해서는 안되는 것이며,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하나의 경전이 됐다.
리니지의 시작점인 넷핵의 흔적은 지워지고, 경쟁과 매출이 작품의 앞에 서기 시작했다
만드는 사람들의 생각을 규정하는 지향점과 가치는 결국, 인간의 시각과 생각을 규정하며 확장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인류사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해석과 의문 없이 적용되고 변화를 가로막는 규범은 곧 무언가 폐단을 낳기 마련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하나의 성공 신화가 회사의 지향점이 됐고 공식을 따라 생각은 재단되며. 이를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는 의미를 잃어가기 시작했다는 평을 내릴 수 있다. 과거에 빛났던 의도는 왜곡됐고 동시에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와 같이 대중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리니지W는 또 하나의 매출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우려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마지막과 같은 심정으로 리니지W를 선보였다’고 이야기했지만, 신화에 맞춰 생각이 짜맞춰지는 현재의 구조가 확대 재생산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엔씨소프트는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에 더욱 그렇다. 정해진 공식과 생각을 제한하는 경전이 만들어내는 실적이 국내 게임시장의 가장 큰 가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걱정이기도 하다.
시장을 선도하는 위치에서, 생각과 발상이 제한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이기도 하다
리니지W 이전 공개했던. 플레이 측면에서 많은 것을 바꾸고자 했던 리니지 이터널은 그 유산만이 프로젝트 TL로 이전되고. 아직도 공개되지 않아 형태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상태다. 공개했던 다른 타이틀보다 신화가 규정한 형태 그 자체인 타이틀이 먼저 태어나고. 유의미한 발자국을 남기는 것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무서운 일이다.
세 번째 신화를 만들어낸 리니지W 이후, 이것이 또 다른 제한이자 규범이 될 것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마지막과 같은’ 새로운 신화가 될 것인지. 시장의 변화보다. 엔씨소프트 내부의 방향성 변화를 불안한 눈길로 기대해본다.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 고정된 시각과 껍질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과거의 신화와 행동 양식을 답습할 것인지를 말이다.
변하고자 했는가? 그렇다면 왜 신화가 규정한 생각을 벗어나지 못했는가. 이 질문에 답을 내릴 차례가 아닐까
정필권 기자 mustang@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