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길 따라 인생길 따라, 시골버스 떠나갑니다~”
KBS 1TV ‘6시 내 고향’의 시골버스 안내양 김정연이 ‘안내양’ 유니폼을 입은 지 꼭 10년이 됐다. ‘6시 내 고향’에서 고향 어르신의 삶을 그려낸 따끈따끈한 사연들을 대거 펼쳐 보인 ‘시골길 따라 인생길 따라’는 평범해서 더욱 특별한 감동을 전했다. 3평 남짓한 시골 버스 안에서 달고 짭짜래한 사연들이 쉼 없이 이어졌다. 김정연은 그 코너를 통해 ‘국민 안내양’이란 닉네임을 얻게도 했다.
김정연은 그 코너의 리포터로 첫 등장한 것이 지난 2010년 1월19일이니, 올해로 만 10년을 꽉 채운 셈이다. 10년이 되어 변한 강산은 김정연을 아이 엄마로 만들었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물을 쫙 뺀 채 ‘트로트 가수’로 ‘행사 전문MC’ ‘강연자’로 다양한 옷을 갈아 입혔다. 그 중 시골버스를 타며 보여준 ‘국민 안내양’ 김정연의 영상들은 그녀 역시 걸어가야할 ‘인생길’이며, 우리 모두 함께 가야할 ‘삶의 길’이다.
■ ‘국민안내양’에서 ‘딸내미’로
10년 전 이날(1월19일) 김정연은 ‘국민 안내양’으로 첫 번째 오른 버스는 경상북도 성주군 군내버스다.
“‘6시 내 고향’에서 안내양 컨셉으로 ‘시골 버스’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들어 왔다. 그 당시 1집 앨범을 내고 ‘사랑하니까’로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가수로 활동 중이었는데 시골 버스 안내양 컨셉이 가슴을 툭 쳤다. 무엇보다도 어르신들을 만나는 게 좋았다. 그때 남편과 결혼하면서 친정과 담을 쌓고 살아 많이 외로웠다. 어르신들을 만나면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녹을 거 같아 시범 프로그램 제작에 적극 참여했다.”
김정연은 ‘국민안내양’ 10년 동안 가족하고 화해도 했다. 새 가정에서는 2세도 태어나 엄마로 ‘억척 주부’의 역할까지 덤으로 하게 됐지만, 그만큼 강하게 세상의 굴곡을 이겨왔다.
“솔직히 안내양 유니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방송사 소품을 입고 촬영을 했는데 옷이 너무 컸고 촌스러웠다. 그런데 첫 방송 후 시청자 반응 너무 좋아 안내양 유니폼이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처음 안내양 유니폼을 입는 순간 ‘이 옷을 입으면 다시는 못 벗겠구나’하는 예감이 들더란다. 처음 ‘김정연의 시골 버스’란 코너명은 ‘시골길 따라 인생길 따라’ 고향 버스로 타이틀이 바뀌었다. 내가 빨간 안내양 유니폼을 입고 시골 버스에 탑승하면 어르신들의 팬심은 뜨겁게 닳아 오른다. 그야말로 어르신들에게는 항노화 아이콘이다.”
김정연은 시골버스에서 어르신을 만나면 눈높이를 맞춰 무릎을 꿇고 앉아 ‘아프신 데는 없는지, 남자 친구 여자 친구는 있는지, 사돈은 잘 계시는지…’ 마음을 살피며, 시골버스의 애환과 응어리를 풀어낸다. 어르신들에게 ‘국민 안내양’은 ‘국민 딸내미’가 됐다.
■ 10년의 기록, 알고보니 기네스 신기록
김정연이 시골버스를 타면서 10년이 된 지금, 그녀가 걸어온 길은 역사가 됐다. 지금까지 만 10년을 매주 2~3일은 길 위에서 살았다. 김정연은 시골 버스 탑승 3년만인 지난 2013년 한국 기네스북에 ‘대한민국에서 버스를 가장 많이 탑승한 연예인’으로 등재됐다. 김정연은 “버스로만 달린 거리를 따져보면 1년 4만 ㎞ 정도”라고 말했다. 이를 10년으로 어림잡아 보면 시골버스로 40만㎞를 넘게 달린 셈이다. 지구 한 바퀴 둘레가 4만㎞ 정도이니, 지난 10년간 지구 10바퀴를 돈 셈이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김정연은 가족 여행 등을 포함해 일본·베트남 정도를 다녀온 게 전부다.
더욱 의미가 남다른 것은 그녀가 만나온 시골 어르신들이다. 방송으로 소개한 어르신이 한주에 10여 명 정도이니, 현재까지 그 수가 5000여 명에 이른다. 대한민국에 120개의 시·군이 있는데, 이 모든 곳을 가본 방송인은 송해 선생을 제외하고는 김정연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는 것.
게다가 김정연의 숨은 이력은 ‘노찾사’ 출신 제1호 트로트 가수다. ‘노찾사’ 시절 그녀는 민중가요 ‘사계’의 가창자로 대중에게 기억됐다. 문승현 작사·작곡 ‘사계’와 안치환 작곡 ‘솔아 솔아 푸른 솔아’는 떼려야뗄수없는 그녀의 인생 곡이다.
그녀가 어르신들의 희노애락에 발목 잡힌 삶을 살아온 것은, ‘노찾사’ 시절 민중가요로 노동의 현장에서 분투하는 이들의 땀과 눈물을 봐왔던 이력이 김정연의 마음 속 깊이 알알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김정연은 “앞으로 내 노래 인생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건 또 한 번의 도전을 시도할 것이고 머지않은 시간에 지금과는 다른 색깔의 노래로 저를 사랑해주는 팬들을 만날 것같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