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아이파크 조덕제 감독이 지난 9일 부산 강서공원 내 클럽하우스 감독실에서 올해 연간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휴가를 반납한 채 내년 계획을 채울 계획이다. 부산 | 황민국 기자
“승격하면 푹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9일 부산 강서공원 내 부산 아이파크 클럽하우스 1층 한 켠. 새벽부터 불이 환했던 곳은 내년 농사 걱정에 밤잠을 설친 조덕제 부산 감독(54)의 사무실이었다.
꿈에 그리던 1부리그 승격의 기쁨은 하루를 넘기지 못한 듯 했다. 부산 관계자는 새벽녘 풍경을 떠올리며 “올해 클럽 하우스를 비운 날이 20일이 넘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인 분이시지만, 시즌을 마친 선수들을 휴가보낸 날도 그러실 줄은 몰랐다”고 귀띔했다.
조 감독은 ‘스포츠경향’과 만나 “구단 직원들이 ‘승격했는데 느끼시는 게 없느냐’고 묻는데, 승격의 기쁨은 어제(8일)의 일입니다”며 “내년 성적을 걱정하는 게 우리 감독들의 생활이자 운명”이라고 말했다.
■“두 번의 실패는 싫다”
조 감독이 머릿 속에서 승격의 기쁨을 지운 것은 1부 생존이 승격 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어서다. 4년 전인 2015년 수원FC 사령탑으로 부산처럼 플레이오프를 거쳐 1부에 승격했으나 이듬해 꼴찌로 강등됐다. 구단과 선수들의 굳은 신뢰 아래 강등팀 감독으로 경질되지 않은 유일한 사례로 남았지만, 결국 2017년 8월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났다.
“분명 1부 올라가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1부에서 내려오는 것은 쉽더군요.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금세 떨어지는 게 K리그 승강제의 냉혹한 현실이죠.”
한 번의 실패는 실수로 치부할 수 있지만, 반복되면 실력이 된다. 그래서 조 감독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휴가를 떠난 시점에서 스스로 휴가를 반납한 채 1부리그 생존 로드맵을 그리기로 했다. 실패로 끝났던 수원 시절 만들었던 ‘오답노트’를 꺼내 부산의 현실에 맞춰가는 작업이다. 조 감독은 “수원 시절에는 시·도민구단의 한계로 충분한 예산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승격에 초점을 맞추느라 선수단 구성까지 늦춰지면서 시행 착오를 겪었습니다”며 “올해 부산도 같은 상황이지만, 그 시행 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방법은 생각해둔 게 있습니다”고 말했다.
■오답노트 첫 페이지는 선수단 재편
조 감독이 준비한 오답노트의 첫 페이지의 내용은 역시 선수단 재편이다.
축구 전문가들은 2부에서 검증된 주전급 선수들은 1부에서 통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기량이 조금 떨어지는 벤치 멤버들이다. 어린 유망주라면 기량이 발전할 여지가 있지만, 나이가 있는 선수들은 새 팀에서 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편이 낫다. 조 감독이 “1년간 호흡한 선수들과의 정과 현실을 어느 정도 분리해야 합니다”고 조심스럽게 말한 배경이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자 “부산은 주전 11명 뿐만 아니라 벤치에 앉는 18명까지는 괜찮은 편이지만, 어느 정도 변화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부연했다.
조덕제 부산 아이파크 감독이 지난 9일 부산 강서공원 내 클럽하우스 감독실에서 내년 선수단 재편 계획을 그려가고 있다. 부산 | 황민국 기자
선수단 재편에선 전력 보강도 중요한 대목이다. 부산은 올해 2부 정규리그 36경기에서 72골을 쏟아내면서 화끈한 공격력을 자랑한 반면 수비에선 47실점을 기록해 약점을 노출했다. 2부에서 검증된 공격력은 더욱 갈고 닦고, 부족한 수비력은 탄탄하게 바꿔야 1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기존 선수들을 배려해 구체적인 언급은 꺼렸지만 외국인 선수부터 국내 선수들까지 전방위로 영입 계획은 세운 것으로 보였다. 조 감독은 “1부와 2부는 분명 수준이 다릅니다”며 “경기를 보면 템포와 피지컬, 기술적인 부분까지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사실 한 끝 차이라지만, 그 차이가 실력을 가른다고 봐야합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대표 선수들도 유럽에서 뛰는 선수와 국내파 사이에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조금이라고 낫기에 외국에서 뛰는 겁니다. 우리 부산도 그 차이를 넘을 정도의 준비가 필요합니다”고 덧붙였다.
■목표는 윗물…“위를 노려야 살아남는다”
조 감독의 2020년 첫 목표는 분명 1부 생존이다. 부산은 1부 승격에도 올해와 비교해 예산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2015년 2부 강등에도 기존 예산을 깎지 않았다지만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정해진 예산 아래 조금이라도 나은 전력을 짤 수 있는 방안을 찾으면서 아예 그 위를 노려보겠다는 욕심까지 생겼다.
조 감독은 “사람 욕심에는 끝이 없다는 말이 있죠. 1부에 재도전하는 제 심정도 그렇습니다”며 “사실 우리 팀은 1부 수준으로 보면 신생팀이나 마찬가지니 어리석은 생각일 수도 있지만 파이널 라운드(정규리그 33경기를 마친 뒤 1~6위와 7~12위로 나뉘어 5경기를 치르는 최종 라운드)에선 꼭 윗물에서 놀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이 윗물을 노리는 것은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2017년과 2018년 각각 1부 준우승을 자랑했던 제주 유나이티드와 경남FC가 올해 강등되는 것을 봤으니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조 감독은 “축구는 진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운동”이라며 “내년 부산이 같은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르기에 내년 봄까지 이를 악물고 준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