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KAMP 싱가포르 2019’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는 가수 손승연. 사진 AMP LIVE
가수 손승연은 지난 9월 데뷔 7년 만에 거대한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바로 K팝의 여성 솔로 아티스트로서 미국 진출을 감행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미국 본토진출이라고 하면 보통 과거에는 남자 솔로 그것도 댄스를 기반으로 하는 가수의 전유물이었고, 최근에는 아이돌그룹을 중심으로 공략이 이뤄지고 있다. 여성 솔로 그것도 발라드를 기반으로 하는 아티스트로서 손승연의 도전은 화제가 됐다.
하지만 그의 도전사의 1막은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고 보는 편이 맞다. 각종 지표가 그의 의도에 맞지 않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반에 과도한 ‘홍보’로 기대치만 한껏 높여놓은 탓에 지금의 성과가 더욱 보잘 것 없어졌다. 과연 미국시장은 안일하게 도전해도 되는 곳인가. 하물며 전 세계적인 인기의 방탄소년단도 본격적인 현지 데뷔앨범을 조심스러워하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손승연은 지난 9월19일 자정 아이튠즈와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디저(Deezer) 등의 글로벌 음원사이트를 통해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200여개 국가에 신곡 ‘아임 낫 어 워리어(I’m Not A Worrior)’를 냈다. 손승연 측이 미국 진출을 홍보하면서 대대적으로 꺼내든 것은 바로 화려한 제작진이었다.
그의 앨버은 미국의 유명 프로듀서 월터 아파나시에프(Walter Afanasieff)와의 프로젝트 앨범이었다. 월터 아파나시에프는 셀린 디온의 ‘마이 하트 윌 고 온(My Heart Will Go On)’, 머라이어 캐리의 ‘원 스위트 데이(One Sweet Day)’와 ‘히어로(Hero)’ 그리고 디즈니 영화 ‘미녀와 야수’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등 여러 곡을 작곡하며 명성을 쌓았다.
월터 아파니시에프와의 협업사실은 손승연이 당장이라도 그들과 근접할 수 있는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주요 원인이었다. 그리고 그에 앞서 13일 국내 단독 공개 후 빌보드지의 팝 칼럽에 ‘아임 낫 어 워리어’가 소개되며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 그의 미국 진출은 어떠한 성과를 거뒀는지 분석도 필요하다. 그가 13일 미리 공개해 화제가 됐던 ‘아임 낫 어 워리어’의 가창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에서 14만건에 머물러있다. 신인 아이돌 그룹이 100만건, 500만건의 조회수를 홍보하는 것에 비하면 부진한 성적이다. 무엇보다 국내에서의 성적이 저조하다. 발매 3개월이 됐다는 점을 고려해도 음원사이트 멜론에서 그의 신곡 순위는 최고 순위가 667위에 그쳤다. 100위를 ‘차트 인’이라 생각해도 순위는 낮다. 게다가 3개월 동안의 감상자 수 역시 619명에 그쳤다.
지난달 10일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KAMP 싱가포르 2019’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는 가수 손승연. 사진 AMP LIVE
멜론에서 가수에 대한 팬덤의 지표로 쓰이는 ‘좋아요’ 수 역시 5일 현재 1387개에 그쳤다. 히트곡의 경우 보통 1만건을 넘어서는 사례를 생각하면 역시 낮은 수치다. 무엇보다 국내보다 미국 행보에 역점을 둔다던 그의 활동이 미국에서 관측되지 않는 것이 큰 문제다. 3개월이 지나도록 미국의 라디오나 TV쇼에서 그의 모습을 찾아보긴 힘들었으며 그가 해외 무대라고 섰던 곳은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 한류콘서트 무대뿐이었다.
그가 현재 매진 중인 뮤지컬에서도 성적은 신통치 않다. 현재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상연 중인 뮤지컬 ‘보디가드’에서 영화 속 휘트니 휴스턴이 맡았던 레이첼 마론 역을 연기 중인 손승연의 공연은 12월이 연말이라는 이점을 고려하고도 곳곳에 빈 좌석을 볼 수 있다. 회차에 따라 많은 공연에는 100이 훌쩍 넘는 공석이 지속되고 있다.
대대적인 홍보 그리고 여기에 따르는 기대감 하지만 이에 부합하지 못하는 성적은 손승연을 좋아하던 이들에게도 우울한 소식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부풀려진 기대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전적으로 홍보전략의 미스다. 미국이라는 큰 시장에 도전하는 가수라면 사전에 세계 팬들에게 다양한 형태를 통해 스스로를 각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손승연은 국내에서의 인지도와 셀린 디온 작곡가의 명성에만 기대는 안일한 방식의 마케팅으로 실패를 자초했다.
그에게 쏟아진 기대와 현재의 괴리가 중요한 이유는 손승연 이후 세계시장을 두드릴 가수들에게 커다란 심리적 장벽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세계시장, 미국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아티스트에게 손승연 측의 판단착오는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세계시장의 높은 벽을 실감하게 하는 학습효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탄탄한 준비로 나서도 어려운 미국시장인데 손승연 측은 너무 안일하게 나섰다. 이 이후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손승연 측의 과대포장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