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현철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열린 정규 10집 ‘돛’의 음악감상회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 에프이스토어
데뷔 초기, 무엇이든 해도 잘 할 것 같았고 실제 무엇이든 해도 잘 됐다. 자존감은 하늘을 찔렀다. 자신을 최고로 대우해주지 않는 곳에는 발을 들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자존심이 센 뮤지션이었지만 어쩌면 그것은 치기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뮤지션으로서의 그릇이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은 탓일 수도 있었다. 가수 김현철은 그렇게 생각했다. 음악은 하면 할수록 다가서기 어려운 것이었고, 그 여정은 거리가 길어질수록 앞이 더욱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30년을 지내면서 김현철은 스스로를 작게 작게 추스르는 법을 배웠다. 무려 13년은 음악작업에서 스스로를 떼어놓았고, 음악을 가르치면서 스스로 칭하는 ‘음악 야인(野人)’으로서의 삶도 살았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그의 DNA는 그렇지 않았다. 결국 힘을 내고 피아노 앞에 앉고 여러 가수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작업을 의뢰했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그의 정규 10집 ‘돛’이다. 그는 지난 5월 이 앨범의 ‘프리뷰’ 앨범을 낸 후 6개월 만에 진짜 결과물을 냈다.
데뷔하면서 ‘음악감상회’라는 행사를 연 것도 처음이었다. 그는 20일 오전 서울 중구의 CKL스테이지에서 ‘돛’의 발매 기념 음악감상회를 열었다. 방송인 박경림이 사회를 본 행사에서 그는 10집 앨범의 수록곡 17곡 가운데 이미 ‘프리뷰’ 앨범을 통해 공개된 5곡을 제외한 12곡의 하이라이트를 들려줬다. 타이틀곡 ‘위 캔 플라이 하이(We Can Fly High)’는 라이브로 들려줬다.
앨범의 타이틀곡은 베이스와 기타사운드의 점층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위 캔 플라이 하이’와 스스로 ‘팬송’이라 자부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두 곡이다. 하지만 그가 앨범의 제목을 ‘돛’으로 짓게 된 것은 그룹 시인과 촌장의 2집 수록곡이었던 ‘푸른돛’ 때문이었다. 하덕규가 포크로 소화한 곡을 김현철은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통해 부피를 키웠다. 하지만 “이제부터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포부는 그대로 녹여냈다.
가수 김현철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열린 정규 10집 ‘돛’의 음악감상회에서 하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에프이스토어
김현철은 “‘위 캔 플라이 하이’도 ‘푸른돛’과 유사한 메시지를 갖고 있다. 현실은 만만치 않지만 현실과 다른 이상을 꿈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다고 있다. 특히 노래 중 가사인 ‘나는 나에게 선언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을 좋아한다”며 “제 고백과도 같으면서 제 음악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에게 함께 가자고 권유하는 노래”라고 소개했다.
공개된 12곡에는 박원 뿐 아니라 박정현, 백지영, 정인, 마마무의 휘인과 화사, 심현보와 이한철, 정지찬으로 구성된 ‘주식회사’ 등 유명 뮤지션 외에도 그가 노래를 듣고 직접 섭외한 황소윤, 일레인, 죠지, 쏠 등의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 펼쳐졌다. 그는 “선배라고 해서 무조건 후배에게 무언가를 내려준다는 생각은 아닌 것 같다. 후배를 보면서도 선배 뮤지션들이 충분히 자극을 받을 수 있다”면서 내년 봄에 공개될 앨범에서는 최백호, 정미조 등 선배가수들과 작업물이 있음을 알렸다.
김현철의 음반이 다시 선보이고, 각광을 받게 된 이유는 ‘시티팝’ 장르의 유행과 관계가 깊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경제 호황을 누리던 일본에서 유행했던 시티팝은 그 당시 윤택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나긋나긋한 감성과 낙관적인 가사, 유려한 진행 등을 특징으로 가지고 있다. 김현철은 스스로 자신의 주 장르가 ‘시티팝’인지도 모르고 살았지만 계속 이 음악을 하면서 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가수 김현철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열린 정규 10집 ‘돛’의 음악감상회에서 MC 박경림(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에프이스토어
김현철은 “시티팝을 젊은 친구들이 좋아해준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시대가 찾았다고 본다”며 “음악 자체 역시 저나 동료들이 만든 노래라기보다는 시대의 음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CD를 두 장 만들고 LP도 더블앨범으로 만드는 계획에 대해서는 “저는 이렇게 DNA가 만들어진 사람”이라며 “음원시대에 LP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생각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현철의 데뷔 30주년 앨범인 정규 10집 ‘돛’은 지난 17일부터 음원사이트에서 공개되고 있다. 그는 21일부터 3일 동안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콘서트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