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다스 스피드팩토리 신발제작과정. 아디다스 제공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브랜드 아디다스는 2017년 여름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동남아 신발 공장을 24년 만에 독일로 옮긴 뒤 맞춤형으로 신발을 제작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게 ‘스피드팩토리’입니다. 한 켤레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5시간뿐입니다. 그냥 단순히 제작하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AI), 빅데이터, 3D 프린트 등 첨단기술을 이용해 고객에게 딱 맞는, 전 세계 한 켤레뿐인 신발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대량 생산에 따른 원가 절감보다는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차별적인 방식으로 생존하기 위한 혁신적인 시도입니다.
우리는 제품이 너무 많아 고르기 힘든 ‘소비자 중심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생산자가 만들고 싶은 제품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때가 됐습니다. 아디다스는 그동안 개인별로 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왔습니다. 발 모양, 걷고 뛸 때 무게 중심 이동 등을 데이터로 수집해 맞춤형 신발을 만들어준 ‘마이 아디다스’가 그것입니다. 마이 아디다스는 5~6주가 걸려야 신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걸 스피드팩토리가 첨단기술을 이용해 획기적으로 단축했습니다. 스피드팩토리 1년 생산량은 50만 켤레입니다. 전체 아디다스 신발 생산량의 0.2%도 안 됩니다. 아디다스는 지난해 4월 미국 애틀란타에 두번째 스피드팩토리를 지었습니다. 아디다스는 소비력이 높은 나라를 중심으로 스피드팩토리를 더 지을 계획입니다.
한국 제조업은, 분야를 막론하고, 참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기술은 높은 편인데 브랜드 파워가 너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원가를 낮추기 위해 제품을 중국과 동남아 공장에서 만들었습니다. 원가는 맞출 수 있었지만 품질 향상, 납품 시기 준수, 신속한 피드백, 혁신적 시도 등은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카미스타 윤현식 대표가 부산 본사에서 2000년 전후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만든 미국프로야구단 로고들이 새겨진 유니폼(왼쪽)과 올해로 3년째 공급 중인 NC 다이노스 유니폼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세훈 기자
한국 스포츠용품 브랜드 중 국내 생산공장을 가진 곳들이 적잖게 있습니다. 야구 유니폼을 제작하는 ‘카미스타’는 부산에 공장이 있습니다. 신체 부위별 사이즈, 개인 취향 등에 맞게 디자인한 뒤 최정상급 원단을 이용해 맞춤형 유니폼을 만듭니다. 원단 관리부터 유니폼 제작까지 모두 부산에서 이뤄집니다. 카미스타는 2000년 전후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유니폼을 ‘마제스틱’ 이름으로 제작해 납품할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국내프로야구 NC 다이노스 유니폼 공식 제작업체이기도 합니다.
박호용 아이러브핏 대표가 경기 남양주 본사에서 아이러브핏이 프로야구 간판타자 이승엽과 최정을 위해 스파이더 브랜드로 제작한 맞춤형 배팅 장갑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세훈 기자
‘아이러브핏’은 골프장갑, 야구배팅 장갑 등을 맞춤형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3D 프린터로 손을 직접 스캔한 뒤 최고급 인도네시아산 양가죽으로 장갑을 만듭니다. 공장은 남양주에 있습니다. 아이러브핏은 주문자생산방식으로 ‘스파이더’ 배팅 장갑을 만들고 있습니다. 스파이더는 국내 간판 프로야구 선수 20여명이 사용하는 세계적인 브랜드입니다. 아이러브핏이라는 자제 브랜드로 만든 골프장갑은 적잖은 국내 프로골퍼들과 정상급 아마추어 골퍼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맞춤형 제품은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딱 맞는 제품이기 때문에 한 번 사용한 사람들은 다른 제품으로 옮기기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맞춤형 제품의 생명은 신속한 피드백입니다. 수정, 보완 등 재생산을 하려면 공장은 반드시 국내에 있어야 합니다. 맞춤형 제품들은 사업 확장 및 국내 인력 고용뿐 아니라 향후 동종 업계에 발생할 수 있는 변화에도 미리 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신발과 장갑 제작공장이 없어진다면 기술자들은 금방 사라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국내 기술자가 없어서 나중에 공장을 국내에 짓고 싶어도 하지 못할 겁니다.
이밖에 코리아 이름으로 국내 공장을 가동해 품질력이 좋은 제품을 만들며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한국 회사들은 더 있습니다.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한 세계 시장에서 ‘코리아’ 이름으로 고군분투하는 한국 기업들을 기억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