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코치님 돌봐준 덕분”
바르보라 크레이치코바(26·체코·세계랭킹 33위)는 테니스 골수팬이면 이름을 들어봤을 만한 선수다. 2018년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에서 두 번이나 메이저대회 여자 복식 챔피언을 차지했던 데다가 복식 세계랭킹 1위도 올랐던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적으로는 매우 낯선 이름이기도 하다. 그만큼 프로테니스에서 복식은 단식에 비해 소외된 분야다. 심지어 메이저대회 상금도 단식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2021년 6월13일을 기점으로 크레이치코바는 모든 테니스팬이 아는 이름이 됐다.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프랑스오픈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아나스타시야 파블류첸코바(30·러시아·32위)를 2-1(6-1 2-6 6-4)로 제압하고 정상에 오른 덕분이다.
크레이치코바는 1세트 시작부터 적극적인 공세로 상대를 거세게 밀어붙여 쉽게 제압했지만, 2세트는 범실이 늘어나며 내줬다. 그러나, 파블류첸코바가 2세트 막판 왼쪽 다리 통증으로 메디컬 타임아웃을 부른 이후 점점 힘이 빠진 모습을 보아자 이를 놓치지 않았다. 3세트 게임스코어 3-3으로 팽팽한 상황에서 잇따라 게임을 따내며 기세를 올려 끝내 승리를 가져왔다.
스승의 길을 따라간 우승이었기에 너무나 뜻깊었다. 크레이치코바의 스승인 야나 노보트나는 체코 테니스의 전설로 역시 복식으로 성공한 뒤 단식에서도 강자로 대활약했던 인물이다. 크레이치코바의 부모가 열여덟살 때 현역에서 은퇴한 노보트나를 찾아가 조언을 구한 뒤 사제의 인연을 맺었다.
불행히도, 노보트나는 2017년 제자의 대성을 보지 못하고 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크레이치코바에게 “나가서 테니스를 즐기고, 메이저대회 우승에 도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후 이듬해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에서 연속으로 복식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해부터는 단식에서도 차근차근 랭킹을 올린 뒤 마침내 메이저 챔피언에 올랐다.
특히 서른 살이던 1998년에야 윔블던에서 유일한 단식 우승을 일궈낸 스승보다 네 살이나 빠르게 위업을 이뤘다. ‘청출어람’으로 스승의 마지막 소원을 완성한 크레이치코바는 “코치님이 저 하늘 어디선가 나를 늘 돌봐주고 있었다. 코치님도 하늘에서 행복해하실 것”이라고 감격의 우승 소감을 밝혔다.
서필웅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