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로버트 달
역자 - 한상정
출판사 - 후마니타스
쪽수 - 304쪽
가격 - 17,000원 (정가)
현실로서의 현대 민주주의는 18세기 말부터 시작되어 왔다고 볼 수 있지만, 적어도 정치학 영역에서 이론으로서의 민주주의, 즉 민주주의 이론(democratic theory)이 출현한 것은 1950년대 중반이었다. 〈민주주의 이론을 위한 서설〉은 민주주의 ‘이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이론화를 시도했던 ‘고전 중의 고전’이며, 로버트 달이 2014년 향년 98세로 타계할 때까지 평생 민주주의 이론가로 살게 되는, 그 첫발을 내디딘 책이다.
로버트 달은 두 개의 전선, 즉 매디슨주의적 민주주의와 민중 민주주의를 놓고, 둘 모두 현실의 민주주의, 작동 가능한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고 차분히 논증한다. 전자는 다수는 소수를 억압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한 헌법적?법률적?제도적 견제 장치가 바로 민주주의라는 주장이며, 후자는 정치적 평등이 절대 가치이며, 따라서 다수의 지배가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라는 주장이다. 이 두 민주주의관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도 발견할 수 있을 텐데, 로버트 달은 이 두 민주주의 모두 현실의 민주주의, 작동 가능한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민주주의 이상에도 가깝고 현실에서도 작동 가능한 민주주의를 탐색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에는 여러 요구들과 사회집단들이 존재하며, 그 사이의 힘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 즉 현실에서 다수는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소수들의 연합, 상호 견제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다두정, 폴리아키(polyarchy)다.
정치학에서 민주주의 이론을 최초로 다룬 학자
현실로서의 현대 민주주의는 18세기 말(1787년 미국 헌법)부터 시작되어 왔다고 볼 수 있지만, 적어도 정치학 영역에서 이론으로서의 민주주의, 즉 민주주의 이론(democratic theory)는 1950년대 중반에 처음 출현했는데, 정치학 영역에서 민주주의 이론을 사실상 최초로 다룬 사람이 바로 로버트 달이라고 할 수 있다.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 이론을 처음 다루면서 그 영역이 매우 넓기 때문에 자신은 서론까지만 작업해 보겠다는 의미에서 제목에 ‘서설’(preface)을 붙였다. 그러나 지금도 민주주의를 원류로부터 이해하고자 한다면, 민주주의의 고전인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전까지 민주주의는 대게 정치철학이나 규범론적으로 접근되었다. 유럽에서도 혁명이 있었지만 그것은 대부분 입헌군주정 혹은 군주정의 경계 안에 있었다. 반면 매디슨은 사실상 현실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에 가까운 헌법을 설계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로버트 달은 매디슨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매디슨의 정치론은 자의정, 전제정을 막기 위한 것이었는데, 달은 그 의도가 과도해서 민주주의론으로는 편협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두 개의 전선, 즉 매디슨주의적 민주주의와 민중 민주주의를 놓고, 둘 모두 현실의 민주주의, 작동 가능한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민주주의 이상에도 가깝고 현실에서도 작동 가능한 민주주의를 탐색한다. 그것이 다두정(polyarchy)이다.
다두정: 다수는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는 것, 소수들의 연합
로버트 달에 따르면, 다두정은 다수의 지배를 긍정한다. 시민 다수가 정당성의 기초인 것은 틀림 없지만 매디슨주의가 가정하는 ‘다수의 폭정’은 불가능한데, 그것은 다수가 하나의 균질한 존재가 아니고, 여러 소수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며, 따라서 ‘다수의 폭정’이라는 전제는 그 자체가 틀린 것이다. 반대로 민중 민주주의는, 다수 자체를 과도하게 이상화하며, 현실에서 다수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여러 소수들로부터 다수를 형성하는 것인데, 이것을 달은 다두정이라고 부른다. 다수는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는 것이며, 여러 소수들의 연합, 상호 견제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사회에는 여러 요구들과 사회집단들이 존재하며, 그 사이의 힘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 즉 엄밀하게 말하면 사회 자체가 하나의 다수 계급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수많은 계급 관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증보판의 의미: 매디슨주의적 민주주의와, 그것을 비판했던 사람과의 역사적 화해
이 책은 민주주의의 영원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순수 이론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론의 현실적 타당성을 늘 강조한다는 장점이 있다. 로버트 달은 이론적 주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의 사례를 가지고 민주주의론을 테스트해 가며, 현실에서 견딜 수 있는 것인가를 계속 입증하는 학자다. 그것이 이 증보판을 번역해 출간하는 것의 가치다. 후기가 중요한데, 로버트 달은 1956년도에 출간한 초판의 주장에서 오류를 과감하게 인정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달을 포스트 매디슨주의자라고 부르는데, 후기에서 달은 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했다. 증보판은 매디슨주의적 민주주의와, 그것을 비판했던 사람과의 역사적 화해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말의 매디슨이 상당히 진보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도 흥미롭다. 오래전 찬사받는 글을 쓰고 상도 받은 학자가 자기 수정을 행할 용기, 다른 생각들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자세는 민주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 준다.
다수의 지배를 의미하는 민주주의 정부에서 왜 다수의 요구가 항상 관철되지 않는가?
_이하 역자 후기에서
미국인의 여론을 장기간에 걸쳐 관찰하고 있는 여론조사들을 보면 대체로 미국인의 압도적 다수가 총기 소유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규제 정책을 오랫동안 선호해 왔음을 공통적으로 보여 준다. 총기 소유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기는 하나, 학교 총격 사건을 비롯한 비극적인 총기 관련 사건들이 너무 빈번하다 보니,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부가 총기 구매나 사용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은 언제나 미국인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연방 정부나 대다수 주 정부의 실제 총기 관련 정책들은 이런 여론의 요구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왜 미국 정부는 미국인 다수가 원하는 정책을 실행하지 않는가? 좀 더 일반적으로 얘기하자면, 다수의 지배를 의미하는 민주주의 정부에서 왜 다수의 요구가 항상 관철되지 않는가? 이 책은 민주주의에 관해 우리가 흔히 갖는 이런 의문이나 고민에 대한 뛰어난 길잡이가 되어 준다.
민주주의 이론의 고전 중의 고전
이 책은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민주주의 이론가 로버트 달이 1956년에 발표한 책 A Preface to Democratic Theory의 발간 50년을 기념해 2006년 출간된 증보판을 번역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으로 이미 1989년에 미국정치학회가 선정하는 벤저민 에반스 리핀콧Benjamin Evans Lippincott 상을 받은 바 있다. 이 상은 살아 있는 정치 이론가 중에서 고전이 될 저술을 낸 사람에게 수여되는데, 그 기준은 출간된 지 15년 이상이 지난 후에도 계속 중대한 저술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증보판이 나왔다는 것은, 15년을 넘어 5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나아가 향후 50년 뒤에도 여전히 읽힐 민주주의 이론의 고전임을 뜻한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인 로버트 달은 1946년 예일 대학교 정치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이래 정치학자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1964년 예일대학교 최고의 영예인 스털링 교수직에 올랐고, 1966년 미국정치학회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72년 미국 국립학술원 회원으로 선임되었다. 1986년 은퇴한 후 명예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연구와 저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 평생의 공로로 1995년에 정치학계의 노벨상인 요한 쉬테 정치학상The Johan Skytte Prize in Political Science의 제1회 수상자가 되었다.
2014년 향년 98세로 타계할 때까지 로버트 달이 끈질기게 연구하고 옹호한 주제가 바로 민주주의다. 평생 민주주의 이론가로 살게 될지 자신도 몰랐었다고 이 책의 증보판 서문에서 고백하는 저자가 민주주의 이론가로 첫발을 내디딘 것이 바로 이 책, 「민주주의 이론을 위한 서설」이다.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를 얘기하고 있으나 민주주의와 관련된 질문들에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답변을 제공하는 이론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쉬움을 저자는 서론에서 밝히고 있다. 이를테면 옮긴이가 서두에서 거론했던, 총기 규제에 대한 다수의 여론과 실제 정책 사이의 괴리처럼 우리가 현실 민주주의에서 갖게 되는 의문을 민주주의 이론은 어떻게 학문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탐구할 수 있을까?
두 가지 전선: 매디슨주의적 민주주의와 민중 민주주의
저자는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데 흔히 사용되는 두 가지 논리를 검토하고 각각의 이론적?실제적 약점에 대해 논한다. 첫째는 매디슨주의적 민주주의인데 이는, 다수는 소수를 억압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한 헌법적?법률적?제도적 견제 장치가 바로 민주주의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이는 민주주의를 헌법이나 법률, 혹은 정부 운영에만 연결시키는 좁은 사고틀이라고 비판하며, 민주주의는 정치 영역을 넘어서 사회 전체에서 충족되어야 할 조건들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비판을 받는 또 다른 논리는 민중 민주주의인데, 이는 정치적 평등이 절대 가치이며, 따라서 다수의 지배가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이런 식의 규범적 주장이 현실 정치에는 도움이 될 수 없음을 여러 방식으로 보여 주는데, 예컨대 강력한 선호를 가진 소수집단이 약한 선호를 가진 다수를 제치고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현실 정치에서는 흔하다는 것이다. 누가 수적으로 우세한가는 물론 중요하지만, 때로는 선호의 강도가 현실에서는 더 결정적일 수도 있는데, 이는 강력한 선호가 더 활발한 정치 활동이나 더 많은 정치 기부금과 같은 더 큰 정치적 영향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앞서의 논리들처럼 최대화되어야 할 정치적 목적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현실의 민주적 조직들이 공통으로 가진 실제 특성들에 관심을 갖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할 때, 이런 특성들이 얼마나 충족되어 있는지에 따라 어떤 정체polity가 민주주의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 민주적인지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저자는 다두제정 민주주의라 부르는데, 민주주의적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전제 조건들의 충족 여부가 핵심이다. 이상의 모든 논의를 종합해 저자는 미국 정치를 평가해 보는데,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미국은 중요한 가치에 대해 대다수 국민이 합의하고 있어서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논쟁이나 그 결론이 이런 기본적인 합의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규범이나 가치에 대한 이런 높은 수준의 합의 덕분에 설사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조차 소수의 이익을 완전히 침해하지 않으며 그런 의미에서 소수는 보호받는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내놓은 개념들과 이론 틀을 다듬어 민주주의를 더욱 본격적으로 연구했는데, 예를 들어 1961년에 출간한 「누가 통치하는가?」는 다수나 소수 어느 쪽이 지배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넘어 실제 현실에서 정치적 권력과 영향력을 누가 소유하고 행사하는지를 실증적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1971년 출간된 「폴리아키」에서 저자는, 민주주의를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이념형이라고 할 때 그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인 민주화의 진척 정도를 경험적으로 평가하거나 결과적으로 어떤 정치체제가 민주주의인지 아닌지를 평가하기 위한 구체적 지표로서 ‘폴리아키’(이 책에서 역자는 다두제, 다두제정 등으로 번역했다)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1980년대 이후로는 현대 민주주의에 위협을 가하는 기업 권력이나 불평등처럼 구체적 사안에 대한 비판을 담은 저서들을 계속 내놓았다.
증보판
영문 증보판에는 1991년과 2005년에 그가 학술지에 기고한 두 편의 글이 추가되어 있다. 한 편은 “「민주주의 이론을 위한 서설」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이고, 다른 글은 “제임스 매디슨, 공화주의자인가 민주주의자인가?”이다. 증보판은 이 논문 두 편을 서문과 후기로 배치했는데, 이번 한글 번역본에서는 이를 모두 본문의 뒤로 배치했다. 1956년에 출간한 원문 그대로를 먼저 읽고 난 후, 나중에 추가된 글을 읽는 것이 이 책을 처음 접하는 국내 독자들을 위해서는 훨씬 유익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한 서평은 이 책이 일반인보다는 사회과학 전문가에게 더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민주주의 이론이라는 용어조차 당시 널리 사용되고 있지 않았다는 저자의 이야기처럼, 이 책이 검토하고 제기한 문제의식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경하게 들렸을 법하다. 또한 저자가 이 책에서 시도하는 분석 방식도 제법 과학적이고 분석적이어서 더욱 그런 평가를 받았을 터이다. 하지만 오늘의 독자에게는 이 책이 지나치게 새롭다거나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으리라 옮긴이는 생각한다. 이는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이 출간된 이후 민주주의 이론이 사회과학의 주요 연구 분야로 자리 잡았고, 그 결과 우리는 이 책의 문제의식이나 핵심 주제들을 직간접적으로 이미 많이 접해 왔기 때문이다.
목 차
증보판에 붙여
서론
1. 매디슨주의적 민주주의
2. 민중 민주주의
3. 다두제 민주주의
4. 평등, 다양성, 강도
5. 미국식 혼합 체제
증보판 서문: [민주주의 이론을 위한 서설]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
증보판 후기: 매디슨주의적 민주주의의 재평가
옮긴이의 글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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