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마이클 샌델
역자 - 함규진
출판사 - 와이즈베리
쪽수 - 420쪽
가격 - 18,000원 (정가)
마이클 샌델 10여 년 만의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 출간!
샌델, 기울어진 사회구조 이면에 도사린 ‘능력주의의 덫’을 해체하다
또 다시 ‘공정’이 화두다.
언론 미디어를 통해, 부유층과 빈곤층, 청년과 장년, 정치인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기업은 정규직․비정규직 논란에서 비롯된 ‘공정 채용’ 문제로 혼란에 빠져 있고, 정치권에선 ‘공정경제3법’과 ‘재난지원금’ 등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으로 떠들썩하다. 대통령은 “하나의 공정이 또 다른 불공정을 부르는 상황”을 언급하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렇듯 ‘공정’이라는 하나의 화두를 두고 각계각층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이후 8년 만에 쓴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란 원제로 미국 현지에서 2020년 9월에 출간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직역하면 ‘능력주의의 폭정: 과연 무엇이 공동선을 만드나?’다. 샌델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해왔던,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보상해주는 능력주의 이상이 근본적으로 크게 잘못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능력주의가 제대로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공정함=정의’란 공식은 정말 맞는 건지 진지하게 되짚어본다.
능력주의는 공정하게 작동하는가?
그리고 ‘공정함=정의’란 공식은 정말 맞는 건가?
시간이 갈수록 계층이동은 어려워지고, 불평등은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개개인의 능력을 불가침 가치로 둔 채 공정을 추구하지만,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샌델은 이 책을 통해 능력주의 하에서 굳어진 ‘성공과 실패에 대한 태도’가 현대사회에 커다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승자들 사이에서 능력주의가 만들어내는 오만과, 뒤처진 사람들에게 부과되는 가혹한 잣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샌델이 책에서 제시한 ‘귀족주의 사회’와 ‘능력주의 사회’의 예시를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문제의 본질이 압축되어 있다.
두 나라가 있다고 해보자. 둘 다 재산과 소득에서 ‘매우’ 불평등하다(불평등의 정도는 두 나라가 같다). 한 사회는 귀족정이며 소득과 재산은 어떤 집에서 태어나느냐에 달려 있고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다른 한 사회는 능력주의 사회다. 재산과 소득의 불평등은 세습 특권에 따른 것이 아니고, 각자가 노력과 재능에 따라 얻은 결과물이다. 당연히 후자가 더 정의롭게 보인다.
그렇다면 자신이 ‘부잣집에서 태어날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당신은 둘 중 어떤 사회에 태어나고 싶은가? 내가 부자일 경우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귀족제 사회가 정답일 것이다. 내가 가난하다면 노력으로 사회적 상승의 기회를 갖는 사회를 선호할 것이다. 그런데 두 경우 모두 정반대로 생각할 점이 있다. 귀족제 사회의 부자는 자신의 특권이 ‘성취가 아닌 행운’임을 인식할 것이며, 빈자는 자신의 불행이 ‘내 탓이 아닌 불운’이라 생각할 것이다. 삶이 고달프긴 해도 ‘이렇게 태어난 운’이 문제인 거지, 스스로를 탓하며 자괴감에 빠질 필요가 없다. 반대로 능력주의 사회에서의 부자는 자신의 성공이 ‘행운이 아닌 성취’임을 인식해 당당히 자랑스러워 할 것이며, 빈자는 부족한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저주하면서 깊은 좌절에 빠질 것이다.
자, 이런 상황에서 어느 사회를 택할 것인가? 당신은 어느 사회가 ‘더 낫다(또는 정의롭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 CHAPTER 5. 성공의 윤리학 中 일부 내용 축약
승자에겐 오만을 패자에겐 굴욕을 주는 ‘능력주의의 민낯’
능력 있는 자들만을 위한 낙원, 현대사회의 그림자를 들추다
또한 샌델은 해결책도 모색한다. “하면 된다”는 공통의 신념이 무자비하게 흔들리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타개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기본적으로는 ‘운’이 주는 능력 이상의 과실을 인정하고, 겸손한 마인드로 연대하며, 일 자체의 존엄성을 더 가치 있게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과 함께 샌델은 몇 가지 대안을 내놓는데, 특히 교육 영역에서의 다음과 같은 구체적 제안은 충격적이면서도 그 발상이 매우 기발하다.
“4만 명의 지원자들 가운데 하버드나 스탠포드에 다니기 힘들어 보이는 일부와, 동료 학생들과 잘 해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일부만 솎아낸다. 그러면 아마 3만 명, 또는 2만 5,000명이나 2만 명의 지원자가 남으며 이들은 누가 합격하더라도 충분히 잘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을 두고 극도로 어렵고 불확실한 선별 작업을 다시 할 것이 아니라 제비뽑기 식으로 최종 합격자를 뽑는다. 달리 말해 그들의 지원 서류를 집어던져 버리고 아무나 2,000명을 골라잡는 것이다.
이 대안은 능력주의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능력이 있는 사람만 합격 가능하다. 그러나 능력을 극대화되어야 할 이상으로 보기보다 일정 관문을 넘을 수 있는 조건으로만 본다. 이 대안이 의미 있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현실적 타당성이 있다는 데 있다. 가장 현명한 입학사정관이라 해도,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따져본다고 해도 18세 청소년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훌륭한 경력을 쌓았는지 판별하기 어렵다. 우리가 재능을 높이 평가한다고 해도 대학입시의 맥락에서 재능이란 모호하고 둔한 개념이 된다. 아마 수학 신동을 가려내기란 쉬울 것이다. 그러나 재능의 일반적 평가는 더 복잡하고 더 예측하기 어려운 과제다.”
- CHAPTER 6. ‘인재 선별기’로서의 대학 中
샌델은 이렇게 ‘파격적’ 제안을 하면서도 한 발 더 나아가, 이에 대한 반론(학업능력 저하, 다양성 확보, 동문우대 및 기부금 입학, 대학명예 실추 등)을 예상하고 나름의 대답까지 준비해놓는다. 독자들은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했던 사안들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훌훌 털어져 나가는 믿지 못할 논리적 경험을 하게 된다.
교육에서뿐만이 아니다. 샌델은 직업과 현실적 삶에 대한 대안도 제시한다. 그는 사회적 기여 측면에서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카지노왕과 고등학교 교사 사이의 소득(보상) 격차 등을 예로 들며 ‘일의 존엄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논쟁하자’고 주장한다. 또한 ‘삶의 어떤 영역은 운수가 좌우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함으로써, 능력의 오만을 혼내주자고 제안한다.
목 차
서론: 대학 입시와 능력주의
입시의 윤리 | 능력 지표 따내기
CHAPTER 1. 승자와 패자
포퓰리즘적 불만에 대한 진단 | ‘테크노크라시’와 시장 친화적 세계화 | 빈부격차를 그럴싸하게 설명하는 법 | 능력주의 윤리 | 굴욕의 정치 | 기술관료적 능력과 조직적 판단 | 포퓰리즘의 준동
CHAPTER 2. “선량하니까 위대하다” 능력주의 도덕의 짧은 역사
왜 능력이 중요한가 | 우주적 능력주의 | 구원과 자기 구제 | 과거와 지금의 섭리론 | 부와 건강 | 자유주의적 섭리론 | 역사의 옳은 편 | 도덕 세계의 궤적
CHAPTER 3. 사회적 상승을 어떻게 말로 포장하는가
고된 노력과 정당한 자격 | 시장과 능력 | 자기 책임의 담론 | 재능과 노력이 허용하는 한도까지 | 마땅히 받을 것을 받는다 | 포퓰리즘의 반격 | 과연 “하면 된다”가 맞나? | 보는 것과 믿는 것
CHAPTER 4. 최후의 면책적 편견 –학력주의
무기가 된 대학 간판 | 불평등의 해답은 교육? | 최고의 인재들 | 스마트해지기 위한 일 | 대중을 내려다보는 엘리트 | 학위가 있어야 통치도 한다 | 학력 간 균열 | 기술관료적 담론 | 테크노크라시냐 데모크라시냐 | 기후변화 논란
CHAPTER 5. 성공의 윤리
기술관료의 지배나 귀족의 지배냐 | 능력주의의 어두운 면 | 능력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 완벽한 능력주의는 정의로운가? | 재능은 자신만의 것인가? | 노력이 가치를 창출하는가? | 능력주의의 두 가지 대안 | 능력주의에 대한 거부 | 시장과 능력 | 시장 가치냐 도덕적 가치냐 | 쟁취한 자격인가, 권리가 인정된 자격인가? | 성공에 대한 태도 | 운수와 선택 | 재능 계산하기 | 능력주의의 등장
CHAPTER 6. ‘인재 선별기’로서의 대학
능력주의 쿠데타 | 능력주의의 폭정,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다 | 코넌트의 능력주의 유산 | 돈 따라 가는 SAT 점수 | 불평등의 토대를 더욱 다지는 능력주의 | 명문대가 사회적 이동성의 엔진이 되지 못하는 이유 | 능력주의를 더 공평하게 만들기 | 인재 선별 작업과 사회적 명망 배분 | 상처 입은 승리자들 | 또 하나의 불타는 고리를 넘어라 | 오만과 굴욕 | 유능력자 제비뽑기 | 인재 선별기 부숴버리기 | 명망의 위계질서 | 능력에 따른 오만 혼내주기
CHAPTER 7. 일의 존엄성
일의 존엄성 하락 | 절망 끝의 죽음 | 분노의 원인 | 일의 존엄성 되살리기 | 사회적 인정으로서의 일 | 기여적 정의 | 일의 존엄에 대해 논쟁하자 | ‘열린 어젠다’의 오만 | 금융, 투기 그리고 공동선 | 만드는 자와 가져가는 자
결론: 능력, 그리고 공동선
추 천 사
역시 마이클 샌델답다. 이번에는 이 시대 가장 예민한 이슈에 수술 메스를 대었다. 부의 양극화와 이를 공고화하는 고학력 세습화의 심화, 그리고 승자들의 오만함과 패자들의 굴욕감 사이 팽팽한 긴장감.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이 어둡고 불길한 징조의 근원을 그는 CT로 스캔을 하듯 뒤지고 있다.
- 문용린 / 서울대 명예교수
이 책은 능력주의 신화에 균열을 내는 좋은 시도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능력주의의 신화가 뿌리 깊게 스며들어 있다. 성적 기반 능력주의적 인식과 구조를 극복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미래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미래를 개척하는 데 샌델의 새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 조희연 서울특별시 교육감
정의와 능력주의가 공존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답을 찾고, ‘과연 다음 세대에서도 그럴 것인가?’에 대한 겸허한 물음을 던져 보게 만든 책.
- 조영태 / 서울대 교수
승자들 사이에서 능력주의가 만들어내는 오만과, 뒤처진 사람들에게 부과되는 가혹한 잣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해결책을 모색한다. 가장 필요한 타이밍에 가장 알맞은 책이 나왔다.
- 홍성국 / 국회의원
포퓰리즘적 분노를 이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필독서이며, ‘아메리칸 드림’은 왜 많은 미국인들에게 약속이 아닌 조롱처럼 느껴지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책이다.
― 타라 웨스트오버 / 《배움의 기술》 저자
이 책은 독창적이고 생동감 있으며, 단순 비판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회를 ‘승자와 패자’로 분류해 생각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달리, 샌델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공동체의 종류에 대해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하고 있다.
― 닉 티모시 / 〈데일리 텔레그래프〉
지금은 좌우 진영 모두 이 책을 읽고 진지한 대화를 나눠야 할 타이밍이다.
― 앨리 혹실드 / 사회학자, 〈뉴욕 타임스〉
이 책의 매력적이고 시기적절한 비판은, 분열된 사회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매튜 굿윈, 정치학자, 〈타임스〉
능력주의적 이상이 현대 정치에 어떤 위기를 불러오는지 풍부하고 예리하게 분석했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이 책은 능력주의의 결점과 오류를 능숙하게 드러낸다. 샌델은 불평등을 뿌리 뽑고, 참된 정의의 원칙에 입각한 더 공정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설득력 있는 사례를 명쾌히 제시하고 있다.
― 대런 워커 / 포드 재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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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능력을 평가받을수 있는 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음. => 그러나 실패시의 리스크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함. 누구나 노력만 있으면 성공할수 있다는 상식을 시대에 관계없이 보편화함. => 그러나 노력에 들어가는 시간과 돈, 노력이 평가받을수 있는 영역은 인간의 가능성에 비해 매우 폭이 좁다. 실력이 있으면 누구나 대접받을수 있고, 실력을 쌓기 위한 장소와 기회는 충분히 부여되어 있다. => 그 실력을 쌓기 위한 모든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돈과 시간이 속속들이 들어가고, 그게 크면 클수록 실력의 질이 보통은 비례해서 늘어난다. 부자와 일반시민의 선천적인 능력차이가 노이만과 범부수준의 격차는 일반적으로 나지 않으니. 인재를 양성하는 방법이 수많은 닭들중에서 학을 뽑는 군계일학형이든, 수많은 독물들중에서 생존자만을 가리는 고독을 뽑아내는 듯한 극단의 약육강식형이든 나라의 사정이나 국민의 정서에 따라 다를것이지만, 아무래도 소수의 엘리트보다는 다수의 필부필부들이 형식적으로나마 나라를 끌어가는 구조에서는 경쟁이 필요이상으로 심해지지 않는 편이 아무래도 삶의 질이 보다 좋을것이니. 인재의 발생 빈도가 더디고 심지어는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치더라도 안정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성공에 대한 갈망을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필요이상으로 최저치를 높이지 말고 타인에 대한 이해를 최대화한 시점에서 만족과 성취를 기준으로 논하는것이 이상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어려운 세상에서 영웅의 존재를 보다 갈망하듯이 현 시대에서는 인간이 갈리고 갈려나가는 세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기 보다는 사회의 어느 영역에서든 일정 이상의 눈에 띄는 활약을 상시 해줄수 있는 그런 전지전능에 가까운 존재를 원한다는게 어쩌면 공정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높여주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각자가 추구하는 이상과 성공에 대한 목표치는 저마다 다를것이고, 태어나서 물고 있는 수저에 따라서 어쩔수 없이 추구하는 목표의 양과 질은 분명히 다를수 밖에 없는데 그걸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노력' 에 대한 극상의 결과만을 이상향으로 보는 이상 노력에 대해서는 갈수록 냉소적이 될것이며, 성공에 대한 보편적인 커트라인은 갈수록 높아질수 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삶이 아닌 생존을 위해서 노력은 필요불가결한건 분명하지만, 그 노력을 부스팅하는건 가지고 있는 재화와 시간및 환경이니 만큼, 그 노력으로 제 한몸 부지할수 있을정도의 위치만 성취하고 간간히 가족과 타인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줄수 있는 정도만 가능해져도 그걸 성공에 대한 보편적인 라인으로 설정하고 그 초과는 없도록 하는것이 옳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현실은 제 한몸 부지하기에도 쉽지 않은경우가 다반사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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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루에서 태어난 놈들이 홈인하고 노력하라는 건 그나마 나음 (걔는 그래도 한 루 진루는 했음) 홈플레이트 근처에 구멍파서 거기서 나와 몰래 홈인한 놈들이 지가 잘나서 그런 줄 알면 진짜 ㅈ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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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열 작가는 묶어놓고 눈알에 테이프 붙여놓고 이책을 100번정독시켜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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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나 경쟁을 부정하는게 아니라 좀 더 제대로 된 평가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엔터테이먼트 분야도 뒤에 거대한 자본이나 미디어에 영향 없이 오로지 능력만으로 달성된거라고 생각하는지? 그저 상대방의 의견을 반대하며 극단으로 몰고 가지 말고, 왜 저런 의견이 나왔는지 한 번 제대로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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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열 작가는 묶어놓고 눈알에 테이프 붙여놓고 이책을 100번정독시켜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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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능력을 평가받을수 있는 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음. => 그러나 실패시의 리스크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함. 누구나 노력만 있으면 성공할수 있다는 상식을 시대에 관계없이 보편화함. => 그러나 노력에 들어가는 시간과 돈, 노력이 평가받을수 있는 영역은 인간의 가능성에 비해 매우 폭이 좁다. 실력이 있으면 누구나 대접받을수 있고, 실력을 쌓기 위한 장소와 기회는 충분히 부여되어 있다. => 그 실력을 쌓기 위한 모든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돈과 시간이 속속들이 들어가고, 그게 크면 클수록 실력의 질이 보통은 비례해서 늘어난다. 부자와 일반시민의 선천적인 능력차이가 노이만과 범부수준의 격차는 일반적으로 나지 않으니. 인재를 양성하는 방법이 수많은 닭들중에서 학을 뽑는 군계일학형이든, 수많은 독물들중에서 생존자만을 가리는 고독을 뽑아내는 듯한 극단의 약육강식형이든 나라의 사정이나 국민의 정서에 따라 다를것이지만, 아무래도 소수의 엘리트보다는 다수의 필부필부들이 형식적으로나마 나라를 끌어가는 구조에서는 경쟁이 필요이상으로 심해지지 않는 편이 아무래도 삶의 질이 보다 좋을것이니. 인재의 발생 빈도가 더디고 심지어는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치더라도 안정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성공에 대한 갈망을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필요이상으로 최저치를 높이지 말고 타인에 대한 이해를 최대화한 시점에서 만족과 성취를 기준으로 논하는것이 이상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어려운 세상에서 영웅의 존재를 보다 갈망하듯이 현 시대에서는 인간이 갈리고 갈려나가는 세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기 보다는 사회의 어느 영역에서든 일정 이상의 눈에 띄는 활약을 상시 해줄수 있는 그런 전지전능에 가까운 존재를 원한다는게 어쩌면 공정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높여주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각자가 추구하는 이상과 성공에 대한 목표치는 저마다 다를것이고, 태어나서 물고 있는 수저에 따라서 어쩔수 없이 추구하는 목표의 양과 질은 분명히 다를수 밖에 없는데 그걸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노력' 에 대한 극상의 결과만을 이상향으로 보는 이상 노력에 대해서는 갈수록 냉소적이 될것이며, 성공에 대한 보편적인 커트라인은 갈수록 높아질수 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삶이 아닌 생존을 위해서 노력은 필요불가결한건 분명하지만, 그 노력을 부스팅하는건 가지고 있는 재화와 시간및 환경이니 만큼, 그 노력으로 제 한몸 부지할수 있을정도의 위치만 성취하고 간간히 가족과 타인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줄수 있는 정도만 가능해져도 그걸 성공에 대한 보편적인 라인으로 설정하고 그 초과는 없도록 하는것이 옳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현실은 제 한몸 부지하기에도 쉽지 않은경우가 다반사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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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벚꽃
능력주의나 경쟁을 부정하는게 아니라 좀 더 제대로 된 평가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엔터테이먼트 분야도 뒤에 거대한 자본이나 미디어에 영향 없이 오로지 능력만으로 달성된거라고 생각하는지? 그저 상대방의 의견을 반대하며 극단으로 몰고 가지 말고, 왜 저런 의견이 나왔는지 한 번 제대로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 20.11.28 12:4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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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이해안되는 부분이 전쟁에서 진다고 국민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건 역사의 교훈치곤 짧지않음? 전쟁은 기사나 왕계급의 것이어서 그 밑에 농노는 걍 지배자만 바뀌고 생활이 달라지지않았던 인류사가 압도적이지 않음?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를 즐기는것도 맞지만 그 품질이 좋아도 공정치 못하거나 부정등에도 대중들은 이미지 깍여서 싫어하는 사례도 부지기수인데 님 말은 한 쪽면만 말씀 하신듯 | 20.11.28 12:58 | | |
(IP보기클릭)118.37.***.***
그렇게 말씀하시니 고견을 여쭙고 싶네요. 말씀하시는 '평가 기준'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혹시 '노력'이나 '재능'인가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노력하는 성향은 타고난 것인데 이런 차이는 불합리하다거나 불평등하다고 하지 않고 '자본'의 차이만이 불합리하거나 불평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능력주의는 결과물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고 주어진 환경이 다르니까 그것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겁니다. 자본의 차이가 있으니까 그걸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돈을 뺏어야 한다는 논리는 뛰어난 재능은 타고난 것이고 개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니 감금을 시켜서라도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게 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집니다. 거대한 자본이나 미디어가 아무런 희망도 없는 아이템에 스포트라이트를 주지는 않습니다. 가능성을 어필하고 자본을 끌어다가 성공으로 연결하는 것도 능력입니다. | 20.11.28 15:0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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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농노의 삶이 바뀌지 않은 이유는 이미 2등이나 3등 계급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제 시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소속된 국가나 사회에서 2등 국민 취급한다면 당신은 참을 수 있습니까? 실제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일제 시대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저런 대우 때문입니다. 2등 국민은 태어날 때부터 차별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성공할 수 있는 즉 지배 계급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것을 감수하실 수 있다면 저는 하차하겠습니다. | 20.11.28 15:1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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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과정11년차김박사
돈보다 귀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돈을 택하지 않고 다른 것을 택한다는 것. 이것은 누군가가 돈보다 다른 가치를 택해서 그 가치가 존엄해지는 것인데,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말하는 것. 그 누군가가 내가 되긴 싫음. 주위를 둘러봅시다. 돈보다 다른 가치를 택하는 사람이 있는가? 막말로 10억을 받는 일과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을 하는 일 중 전자를 택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적당한 일탈 = 눈감는 정도로 = 얻어지는 이득이 크다면 ? 이게 결국 문제가됨. | 20.11.29 09:06 | | |
(IP보기클릭)119.203.***.***
석사과정11년차김박사
이러한 문제로, 사회 전체의 방향이 계속 배금주의, 금전만능주의로 흐르는 것임.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의 책에서도 결국 모든 것이 돈으로 팔리는 것을 지적하지 않음? 근본적으로 돈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자본주의에서는 극복 못하는 한계라 봄. | 20.11.29 09:0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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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루에서 태어난 놈들이 홈인하고 노력하라는 건 그나마 나음 (걔는 그래도 한 루 진루는 했음) 홈플레이트 근처에 구멍파서 거기서 나와 몰래 홈인한 놈들이 지가 잘나서 그런 줄 알면 진짜 ㅈ같음
(IP보기클릭)203.229.***.***
3루에서 태어난놈들이 지들 노력으로 3루 전진한줄 알면 그때부터 속 뒤집어짐 | 20.11.28 17:4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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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건가
우리나라는 음서제로 역행하고 있죠 | 20.11.29 09:02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