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헤일로에 등장하는 스파르탄 대원에 대해 정리한 글입니다. 1년이나 남긴 했지만, 게임 최초로 마스터 치프 이외의 스파르탄 대원들이 등장할 '헤일로: 리치' 발매에 앞서 그냥 예습 정도로 읽어 보시면 적당하지 싶습니다.
헤일로 삼부작의 시작점이 되었던 "헤일로: 전쟁의 서막"에서부터 대단원인 "헤일로 3"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의 중점에 우뚝 서서 무수한 역경을 헤치고 결국 승리를 손에 쥔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6살이란 어린 나이에 징집되어 군사훈련을 받았으며, 14살이라는 나이에 벌써 실전에 투입되어 적과 맞섰습니다. 그리고 이후 오랫동안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전투를 치르며 뛰어난 공적을 세웠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포로조차도 잡지 않는 무자비한 적들의 공세 앞에 형제 자매와도 같았던 동료 대원들이 이슬로 사라져 갈때도, 그는 끓어오르는 슬픔을 내색조차 하지 않으며 끝까지 맡은바 소임을 다하고자 분투했습니다. 그리고 42세에 접어들면서 지금까지 마무리짓지 못했던 싸움을 모두 끝내고서, 훗날을 기약하며 잠에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위에서 간략하게 애기한 인물은 바로 'Master Chief Petty Officer(최선임 상등 상사)'라는 부사관 계급명을 줄여 부르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마스터 치프"입니다. 헤일로 삼부작에서 치프는 코버넌트라는 광신적인 외계연합과 싸우고, 우주를 집어삼키려는 야망을 품은 플러드라는 기생체들과도 맞서며, 결국에는 승리를 거머쥡니다. 굳이 소설과 같이 세계관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춰보지 않고서 삼부작 속에서 드러나는 활약상만 봐도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는 충분히 가늠하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마스터 치프 말고도 그에 버금가는 인물이 더 있습니다. 치프와 마찬가지로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해군 특수전 사령부 소속 스파르탄-II 대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마스터 치프는 최후의 스파르탄이다" 라는 설명을 수도 없이 들은 까닭에 여기서 고개를 갸웃거릴 분들도 계실 겁니다.
물론 그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마스터 치프를 제외한 스파르탄 대원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실종된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게임 속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스파르탄 대원이라고는 치프 단 한 명 밖에 등장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마스터 치프라는 한 영웅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보면, 방대한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헤일로는 원래가 인류 모두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영웅의 일대기와도 같은 이야기 서술구조를 갖춘 게임입니다. 그러나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 영웅이 탄생하기까지 있었던 일련의 과정과 눈부신 활약 뒤에는 존슨 원사나 키예스 함장같은 인물처럼 겉으로 자세히 드러나지 못한 이들에 얽힌 이야기가 수도 없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스터 치프에 버금간다는 인물들에 얽힌 이야기 또한 이 뒷면에 담겨 있습니다.
이쯤에서 물음 하나가 튀어나옵니다. 그렇다면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마스터 치프에게 따라붙는 "최후의 스파르탄 생존자" 라는 수식어를 돋보이게 해줬던 동료 대원들은 누구일까요? 헤일로 공식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대강 알고들 계실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마스터 치프의 후광에 묻혔던 동료 대원들 한 명 한 명을 파고들어 일대기 식으로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이들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그 배경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헤일로 세계관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까지 폭넓게 다루겠습니다. 스파르탄 대원들은 훌륭한 군인이었기에 적에게는 데몬이라 불리며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지만, 아군에게는 뛰어난 전과를 안겨주어 사기를 증진시키고 전쟁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면에는 숱한 역경과 고난을 겪어야 했던 이들만의 정말 기구하기까지 한 삶이 숨겨져 있습니다.
지구와 모든 행성의 수호자
헤일로 삼부작과 그 사이사이 혹은 이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의 주된 시간 배경은 26세기인 2500년대이지만, 이야기는 그로부터 사백 여년 거슬러간 22세기 중반부터 시작됩니다. 당시의 인류는 태양계 내의 여러 행성을 개척하며 지구 중력권에서 벗어나 서서히 우주 공간으로 진출해 나가던 시기에 있었습니다. 처음 개척된 곳은 지구의 위성인 달이었으며 다음은 화성, 그 뒤는 목성 궤도를 도는 위성 순으로 넘어갔습니다. 이에 지구에만 국한되던 인류 정부와 각종 대기업과 자본가들까지 대거 우주로 뻗어나갔는데, 이 과정에서 우주 정거장과 같은 궤도시설이 생기고 지구상의 주요 물류도시에는 궤도 엘리베이터가 건설되는 등 진출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구에서 인구과잉 문제와 정치적 불안감이 고조되기 시작함에 따라, 강경 세력 또한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우주 개척 과정이 점차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잡다한 정부와 소수 당파 또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에 이르렀는데, 이중 대표적인 반체제 동향으로는 신 공산주의 조직인 '코슬로빅'과 신 사회주의 조직인 '프리덴' 두 세력을 들 수 있습니다. 코슬로빅 세력은 구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있었던 영광을 되찾고자 하면서 맥락을 같이하는 신 공산주의 강경파 지도자인 블라드미르 코슬로프를 지지하였고, 태양계 내 이주지와 각종 궤도 시설에서 지구 대기업과 자본가들을 타파하고자 했습니다. 반면 통합 독일 기업체로부터 지지를 받았던 프리덴 세력은 목성의 위성에 뿌리를 두면서 코슬로빅 측 노동자 개혁단체와 자주 마찰을 빚었던 반 코슬로빅 세력에서 생겨났습니다. 분리주의 세력이었던 프리덴은 국제 연합을 타파하여 평화를 쟁취한다는 명목을 내걸고 목성의 위성 일대에 자체 정부를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국제 연합은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사이 두 강경 세력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대규모로 군사력을 증강하기 시작했습니다. 군비 증강이 절정에 달할 즈음이었던 2160년, 국제 연합에서 정치·경제·군사 교섭을 목적으로 각 이주지에 파견한 이주지 고문단 중 목성의 제1위성인 '이오'에 가있던 고문단이 프리덴 세력에게 공격받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프리덴 세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주변 일대의 위성도 치고 들어갔는데, 이에 국제 연합이 군사를 동원해 즉각 무력대응에 나서면서 '목성 위성 작전'을 펼쳤습니다. 삼 개월간 양 세력간 치열하게 교전이 발생하는 동안, 국제 연합 가입국 중 태양계 곳곳에 있는 이주지를 관할하는 국가 역시 대리전쟁을 명목으로 국제 연합군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이전에도 유사한 무력 충돌이 일어나긴 했으나, 이번 일로 국제 연합은 군사주의 정책을 굳혀나가게 됩니다.
목성 위성 작전과 맞물려 대리 전쟁이 지속된 까닭에, 지구에서도 긴장이 고조되어 2162년에 이르자 결국 남아메리카 일대에 걸쳐 '열대우림 전쟁'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국제연합과 프리덴 두 조직만 대립한 것이 아니라 국제연합, 프리덴, 코슬로빅 세 거대세력이 모두 한군데서 맞붙었다는 사실입니다. 겉으로는 이데올로기 차이로 인한 전쟁이었지만, 속으로는 지구상의 주요 지역을 서로 장악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습니다. 열대우림 전쟁은 이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상에서 벌어진 전투 중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될 정도로 전사자가 극심하게 속출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한 식량난에 허덕인 인구도 일일이 수치를 산출하지 못할 만큼 많았습니다. 이때와 관련, 군사 고전으로 불리게 되는 책 "한 병사의 이야기, 열대우림 전쟁"이 전후에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열대우림 전쟁이 일어난 바로 다음해인 2163년에 연달아 국제 연합군이 '아가일 평원 작전'의 일환으로 화성에 자리잡은 코슬로빅군을 선제공격하면서, 세 세력이 다시 충돌함에 따라 화성에서도 전화가 치솟았습니다. 국제 연합이 지구를 제외한 여타 행성에 해병대를 투입했던 일은 이때가 처음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생겨난 군사 교리는 훗날 발족되는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의 전술 체계에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이때 화성에 해병대를 대규모로 투입했던 일에서 실전 경험을 얻어 후일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소속 해군 특수전 사령부에서 특수부대인 궤도 강하 타격대(Orbital Drop Shock Trooper, ODST)를 창설하게 됩니다. 화성에서 있었던 전투 이후 국제 연합은 2164년에 들어 모병과 선전 활동에 힘입어 '국제연합 우주사령부(United Nations Space Command, UNSC)'라는 강력한 연합으로 새로이 거듭나게 됩니다.
- 목성 위성 작전, 남아메리카 일대에서 벌어진 열대우림 전쟁, 화성에서 있었던 아가일 평원 작전 등, 인류는 태양계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대립과 전쟁을 숱하게 겪어야 했다. 하지만 비싼 수업료를 치른 대가로,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는 강력한 통합 정부 체제를 유지하려면 작은 불씨도 초기에 진압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국제 연합은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라는 인류 사상 전례가 없는 거대 조직으로 변천한 이후, 조직 체계화를 거치는 동시에 지구 각지와 태양계 내부 이주지로 숨어들어간 코슬로빅과 프리덴 잔당들을 찾아내어 소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2170년에 이르러 반체제 세력 소탕 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를 무렵, 코슬로빅과 프리덴 세력은 하나로 통합된 강력한 국제 연합군의 공세 아래에 완전히 진압되었습니다. 이후 2170년대에 접어들면서 지구에서는 '지구 연합 정부(Unified Earth Government)'라는 새로운 정부 체제가 성립되기에 이르렀으며, 목성 위성 작전을 시작으로 2160년에서 2170년까지 태양계 각지에서 벌어진 전투는 후대에 가서 '태양계 전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코슬로빅, 프리덴, 국제 연합 세 세력간의 각축전은 국제 연합이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로 거듭나 승리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는 잠시 승리를 자축할 틈도 없이 곧바로 표면적이지는 않지만 크나큰 위협으로 작용할지도 모르는 요소를 대처해야 하는 국면과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잠정적 위협 요소란 바로 이전부터 문제로 지적됐던 인구 과잉 현상과 고도로 훈련되고 거대화되었으나 정작 싸울 적이 없는 군대였습니다. 잇달아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여러 나라들이 전쟁 수행 비용을 부담하느라 전 지구 경제가 거의 파탄난 형국에다, 열대우림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폐허와 그로 인해 발생한 식량난까지 겹치면서 지구 전체의 상황은 벼랑까지 밀릴 대로 밀려 파국에까지 직면했습니다. 거기다 끊임없는 대립과 반목, 유혈 충돌 등으로 얼룩진 지난 역사가 증명해 주듯, 인구 과잉과 비대해진 군대로 인해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나 그렇잖아도 심각한 상황을 더욱 악화할 우려마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3세기 후반인 2291년에 들어 물리학자인 토비아스 플레밍 샤와 수학자인 월리스 후지카와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연구진이 '샤-후지카와 초광속 엔진'을 개발해 내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이 신형 추진장치는 시공 연속체, 즉 사차원상에 일시적으로 균열을 일으켜 줄여서 흔히 슬립스페이스라 부르는 '난류 우주'로 통하는 길을 생성한다는 원리를 적용해 개발됐습니다. 슬립스트림 스페이스는 물리 법칙이 교차하는 영역이기에 그 속에서는 상대론적 부작용 없이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 일이 가능했습니다. 비용이 만만찮다는 단점이 있어도 행성간 운항에 소요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다는 장점 덕분에 이후 초광속 엔진은 우주선의 기본 추진장치로 자리잡았고, 이리하여 인류는 초광속 운항 시대에 접어들어 머나먼 우주로까지 진출할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십 년이 지난 2310년, 통합 지구 정부에서 최초의 이주행성 이민선단을 세상에 공개하자 자원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인구 과잉으로 지구 상황이 계속 악화되자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방법이 매력적 해결책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초광속 엔진을 제작하고 실제로 운용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던지라, 이주행성 개척에 동원될 사람들과 군인들은 또한 엄중한 신체·정신 감정 절차를 거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이들만 선발되었습니다. 또한 대규모 이민선단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무장 세력간 의견 마찰이 발생하여 어마어마한 자본금이 허비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고자 각 이민선마다 군인과 호위선단이 배속됐습니다. 그리하여 2361년 1월 1일, 최초의 이민선단이 자원자와 테라포밍 장비를 싣고 운항에 나서게 되면서, 이때를 기점으로 내곽 이주행성 개척시대가 열렸습니다.
이후 2390년에 이르러 이주행성은 모두 210곳으로 늘어났는데, 동시에 새로운 삶을 찾아 이민가는 인구도 늘면서 지구의 인구 부담이 많이 줄었습니다. 이에 힘입어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통제하의 우주 공간 또한 차차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인류는 과거 지구의 중력장에서 벗어나 태양계로 진출했던 때처럼, 이제는 통합 지구정부와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라는 강력한 정부체계를 구축하고서 빛의 속도를 뛰어넘어 태양계 밖으로 빠르게 팽창해 나갔습니다. 내곽 이주행성이 안정되면서 다시 현지에서 이주선과 군함 생산이 활발히 진행됨에 따라 인류는 더욱 멀리 뻗어나가 외곽 이주행성 또한 개척하였고, 2490년에 이르러 전체 이주행성의 수는 800여곳을 훌쩍 넘어서게 됩니다. 이제 코슬로빅이나 프리덴과 같이 체제에 중대한 위협이 되었던 세력은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 스파르탄 양성계획의 시초라 불리는 오리온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목표치를 무리하게 잡았던 탓에 사실상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수확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양성된 병사들 중 소수는 이후로도 현역에 남아 컬라이더스코프, 탱그우드 작전 등에서 뛰어난 전과를 올렸으며, 이때 얻은 교훈이 이후 계획된 프로젝트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국제연합 사령부가 한창 우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갈 무렵인 25세기에 이르러, 예기치 못한 곳에서 다시 대립의 불길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엡실론 에리다누스 행성계를 비롯해 여러 이주행성에서 반란군 봉기가 일어난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지난 몇 세기간 이주행성 개척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마당에 반란군 세력이 튀어나와 느닷없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보여도,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주행성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통합 지구 정부와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에서는 새로이 생겨난 이주지와 그곳에 거주할 이주민 모두를 통합 정부 체제 아래에서 관리할 목적으로 '이주행성 관리당국'이라는 산하 조직을 창설했습니다. 그렇게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에서는 자신들의 입지를 굳건히 하고자 관리당국을 통해 때로는 강압 정책도 불사하며 이주민들의 삶을 억압하고 간섭하기까지 했습니다.
생활 곳곳까지 관리당국의 영향력이 끼치는 꼴을 이주민들은 당연히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처음에는 이에 항의하는 정도로 이주행성의 개별 의사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이주행성 관리당국 측에서는 정작 걸핏하면 폭정을 일삼으면서도 왜 이주행성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나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함에 따라 불만은 점점 쌓여만 갔고, 결국은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단일 체제에 반하는 분리주의 세력이 다시 생겨나고 말았습니다. 수 세기 전 통합 정부를 위협으로 몰아넣었던 반체제 세력이 또 다시 고개를 듦에 따라, 반체제 봉기가 내전 발발로 이어져 민간 피해와 인명 손실이 막대하게 발생하기 전에 신속하게 상황을 진압할 특수부대를 창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이주행성 군사당국이 외곽 이주행성에서 비밀리에 군사작전을 수행할 정밀 타격대를 양성한다는 계획이 해결책으로 떠올랐습니다.
그 결과로써 2491년부터 해군 정보국 특수전 사령부 주관으로 시행된 계획이 바로 '오리온 프로젝트'입니다. 오리온 프로젝트에서는 해병대에서 자원병을 모집하고 이들에게 강도 높은 훈련과 신체 강화수술을 실시, 유전적으로 강화된 병사들을 양성하여 반란 전선에 투입하는 데 주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체 강화수술을 거치다 사망하는 병사가 속출했으며, 양성비용 또한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는 등 예상했던 실효성과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해 결국 2506년에 접어들어 계획이 전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훈련을 받던 병사들도 모두 각기 다른 부대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오리온 프로젝트를 거쳐간 이들 중에는 이후 반란군 진압작전 혹은 암살 임무 등을 수행하며 전공을 세운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은밀하게 시행된 계획이었던지라 이때 자원한 장병들이 모두 몇 명인지 조차도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외곽 이주행성 일대에서 생겨난 반란군 세력인 '분리주의자 연맹'에 뒤이어, 26세기 초반에 들어서는 아예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최대의 군사 거점인 리치 행성이 있는 곳이자 각종 거대 시설과 경제 기반이 즐비하게 깔린 엡실론 에리다누스 행성계에서까지 '에리다누스 반란군'이 생겨나 소요사태를 일으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이들에게 자치권을 인정해 주고서 행성계에서 철수하여 불필요한 인명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함대 사령부나 대규모 공업 단지와 같은 주요 기반 시설이 엡실론 에리다누스 행성계 내 이주행성에 많았던 까닭에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는 결코 여기서만큼은 물러날 수 없다고 단호히 입장을 표명하며 강경하게 반란군 세력과 맞섰습니다. 이에 2513년부터 2524년까지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되었던 대규모 반란군 진압작전인 '트레뷰셋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트레뷰셋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측에서는 구축함과 항공모함으로 구성된 함대를 동원하고 해병대를 투입하는 등 대대적으로 전면전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후벼 파면 팔수록 살을 파고드는 가시처럼, 아무리 군사력을 동원해 가면서 축출하려 들어도 반란군 세력은 오히려 여러 행성계로 세력을 확장해 나가며 지속해서 게릴라전을 펼쳐 계속해서 국제연합우주사령부의 골머리를 썩였습니다. 반란군은 날이 갈수록 더 조직적인 공격을 펼쳤으며, 이에 맞서는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측의 보복 공격도 잔혹해져만 갔습니다. 결국 작전이 장기화되면서 부수적 민간 피해만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반란군 진압에 동원할 특수부대를 창설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다시금 대두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지구와 모든 이주행성의 수호자가 될 이들을 필요로 하는 중대한 국면에 접어든 것입니다.
전설이 탄생하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해군 정보국 주관으로 반란군을 진압할 수퍼 솔져를 양성한다는 계획이 극비리에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과거 실패로 끝났던 오리온 프로젝트를 계승한다는 의미로서, 차기 양성계획은 "스파르탄-II 프로젝트"라 명명되었습니다. 큰 손실 없이 반란군 소요 사태를 초기에 진압할 정예병을 양성,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훨씬 적은 비용만을 들여 민간 피해를 최소화하며, 궁극적으로는 사태가 내전으로까지 번지지 않도록 막는다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주목표로, 뼈대가 되는 사항은 지난번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양성 과정 면에 있어서는 이전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오리온 프로젝트에서는 이미 해병대에서 복무하는 장병 중에서 자원병을 뽑아 계획에 동원하였지만, 스파르탄-II 프로젝트에서는 "스파르탄"이라는 이름에 걸맞기라도 하듯 아예 어린 아이들을 동원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스파르탄-II 프로젝트에서 논란이 가장 많았던 부분 역시 이 훈련대상 선발에 있었습니다. 오리온 프로젝트의 실패를 교훈삼아 성공 확률을 높이고자 처음부터 선천적으로 육체·정신적 면에서 뛰어난 유전 형질을 타고난 이들을 선발하게 되면서, 최종적으로 계획에 동원할 최적의 대상은 여섯 살 가량 된 어린 아이들로 좁혀졌습니다. 결국 옛 그리스의 스파르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말로 아이들에게 군사 훈련부터 시작해서 지정 양성단계를 차근차근 밟도록 한 뒤, 적당히 성장한 시기를 보아 실전에 투입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허울이야 어찌되었든 성년 이하의 아이들에게 가혹한 훈련을 실시하고 다시 극도로 위험한 신체 강화수술까지 시술한다는 점 자체로도 이는 매우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차기 프로젝트는 비난의 목소리를 피하고자 더더욱 극비리에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리하여, 2517년을 시작으로 스파르탄-II 프로젝트는 해군 정보국 제3과 소속 민간 고문인 캐서린 핼시 박사의 주도 아래에 서서히 진행되었습니다. 백오십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적정 후보로 선정되었으며 처음에는 이들 모두를 선발할 예정이었으나, 예산 문제로 인하여 이중 절반인 일흔다섯 명만이 징집되었습니다. 해군 정보국에서는 아이들을 모두 비밀리에 납치하여 해군 사관학교를 비롯해 각종 군사 시설이 밀집한 리치 행성으로 데려왔으며, 복제인간을 만들어 각 아이들의 빈자리를 메우는 식으로 기밀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인간복제 기술은 26세기에 이르러서도 완벽하게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때 탄생한 복제인간은 모두 유전적인 문제로 얼마 살지 못하고 모두 죽었습니다. 이리하여 영문도 모른 채 납치당한 아이들은 핼시 박사가 해주는 간략한 설명만을 듣고서 곧장 군사훈련에 들어갔습니다.
해군 교관들은 여섯 살 난 아이들을 상대로 한다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가혹하게 훈련을 시켰습니다. 아이들은 기초 체력 단련을 거쳐 응급 처치법, 전술 전략, 각종 화기의 조작·사격·분해·관리법, 차량 운전법은 물론이고 항공기 조종법까지도 배웠으며, 교육 담당 인공지능에게서는 기본 소양과 대수학, 역사(그 중에서도 특히 전쟁사) 등을 차차 배워갔습니다. 초기 훈련은 모두 리치 행성 해군 사관학교에서 진행되었으나, 나중에는 해스콕 기지 등으로 장소를 옮기며 생존 훈련이나 모의 전투도 치렀습니다. 충격 속에서도 아이들은 군생활에 완전히 적응해 나갔는데, 그렇게 칠 년이 지나자 아이들이었던 대원들은 어느새 모두 건장한 육신과 해군 사관학교 수석 졸업생의 두뇌를 지닌 우수한 군인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하지만 2525년에 이르러, 자신들 중 절반의 목숨을 앗아가게 되는 "신체 강화 수술" 단계를 밟게 됩니다.
이때 대원들이 받은 수술은 과거 오리온 프로젝트에서 자원병들에게 시행했던 수술과 같았는데, 삽십 여년이 지난 이때까지도 위험성이 개선되지 않았으며 실험 또한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책임자였던 핼시 박사는 안정성을 검증할 때까지만 절차를 연기하려 했지만, 해군 정보국에서 압력을 넣은 까닭에 예정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결국 대원 중 절반 이상이 수술을 받는 도중 혹은 이후 죽거나 불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대원들은 근육 밀도가 증가하여 자기 몸무게의 세 배가 넘는 무게를 들어올리고, 맨주먹으로 철판을 우그러뜨리며, 어둠 속에서도 앞을 뚫어보고, 시속 55km라는 엄청난 속도로 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텔레파시와도 같은 팀워크 능력을 지니게 되었으며 반사 신경 또한 보통 사람의 배 이상으로 향상되어 말 그대로 초인적인 능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 제각기 다른 행성과 환경에서 살던 여섯 살난 어린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납치·징집당해 스파르탄-II 양성 계획에 투입되었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곧장 고된 군사훈련을 받게 된 까닭에 물심양면으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나, 가혹한 훈련 속에서도 차차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회복기도 지나자, 상부에서는 시험 삼아 대원들을 실전에 투입했습니다. 대원들은 엡실론 에리다누스 행성계 내 소행성대에 주둔하던 반란군 기지로 잠입하여 지도자를 생포해 오라는 임무를 맡게 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반란군 지도자는 과거 트레뷰셋 작전에서 주요 포획 대상이었던 변절자 로버트 와츠 대령으로,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에서는 대규모 함대를 동원하면서까지 총력을 기울였으나 끝내 잡지 못했던 인물입니다. 대원들은 이때 처음으로 실전에 나섰음에도 고작 다섯 명이 소행성 기지로 잠입하여 대령을 생포하여 무사히 귀환하는데 성공, 탁월한 임무 수행 능력을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2525년 후반에 들어 갑작스레 예기치 못했던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코버넌트라는 미지의 외계 세력이 외곽 이주행성 하베스트를 완전히 파괴하고 인류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해온 것입니다.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에서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전체 경계태세를 발령하였으며, 하베스트 행성을 탈환하고자 대규모 함대를 소집함에 따라 전 이주행성 군사당국 소속 병력 전원이 위기상황 동안 해군 사령부와 지상군 사령부에 배속되었습니다. 원래는 신체 강화수술을 거친 뒤에도 과정이 몇 단계 더 있었으나, 이 일을 계기로 프로젝트 전체 진행에 다소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이로써 훈련이 사실상 모두 끝나게 되자 최종단계인 '묠니르 프로젝트'로 예정이 크게 앞당겨졌으며, 그와 동시에 스파르탄 양성계획 목표 자체가 원래의 '반란군 진압'에서 '코버넌트로부터 인류 수호'로 백팔십도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다급한 시류에 발맞추기라도 하듯, 이때를 즈음해서 최종단계에 사용할 목적으로 연구 중이던 특수 강화 장갑복이자 후일 대원들의 상징이 되는 '묠니르 전투복'이 완성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묠니르 프로젝트란 과거부터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에서 연구해 왔던 외골격 장갑복 계획을 계승하여 스파르탄 대원들이 사용할 동력 전투복을 제작한다는 계획으로써, 이 역시 스파르탄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핼시 박사의 직접 감독 하에 진행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시험적으로 선보였던 동력 전투복은 하나같이 부피가 지나치게 크고 전원 공급에 제한이 있는 등의 문제점으로 인해 양산하여 실전에 배치하기에는 비효율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기에 소수 시험제작 선에서 끝이 났으며, 시제품은 제한된 목적에만 사용하거나 모두 폐기 처분됐습니다. 하지만 핼시 박사는 전투복 자체에 소형 핵융합 전지를 내장하고 부피를 확 줄여, 그동안 있었던 단점도 보완하는 동시에 통신 장치나 동작 탐지기를 포함해 전방 투영 장치까지 탑재하는 등 동력 전투복이라는 이름에 걸맞게끔 새로이 전투복을 설계하고 제작하였습니다.
이때 탄생한 전투복이 바로 '묠니르 마크 IV'형으로, 일정 기간 시험을 거친 뒤에 스파르탄 대원들에게 지급되었습니다. 우선 전체적 성능이 이전까지 제작된 시제품에 비해 대폭 향상되었으며, 전투복 내부 층에는 착용자의 힘과 민첩성 등을 대폭 강화해 주는 '반작용 액체금속 크리스털'이 내장되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전투복 자체 시스템을 감당해 낼만한 신체 조건을 갖추지 못해 착용과 사용이 불가능했으나, 스파르탄 대원들은 이미 신체 강화 수술을 거쳐 전투복을 충분히 다룰 만한 힘과 민첩성을 체득했기에 이를 효과적으로 제어했습니다. 또한 처음부터 코버넌트와의 교전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기에 플라즈마 계열 화기에 대한 내구성이 뛰어나고, 공기 여과장치와 함께 산소 공급장치가 내장됨과 동시에 완벽하게 기밀 처리되어 진공 상태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반동억제 장치에서부터 외부 충격을 완화하여 착용자를 보호하며 체온을 유지하는 유체 젤층, 응급 처치에 사용하는 생체포말 주사기 등등 추가장비가 내장되었기에, 실전에서의 효용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그렇잖아도 강화 수술을 거쳐 사실상 초인에 가까운 신체 능력을 지니게 된 상태에서 전투복을 착용해 운동 능력을 더욱 끌어올림으로써 대원들은 전투력이 극한까지 증대되었습니다. 실제로 대원들은 처음 시착용에 들어갔을 때는 전투복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으나,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개개인의 전투력은 물론이고 팀웍에 있어서도 더욱 민첩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전체 전투력 또한 크게 올라갔습니다. 이리하여 2517년부터 시작된 "스파르탄-II 프로젝트"는 묠니르 전투복이 지급된 2525년에 이르러 종료되었으며, 최종 양성된 스파르탄 대원 모두 곧바로 실전에 투입되었습니다.
- 스파르탄 대원들은 부대 특유의 전유물이라 부를 만한 묠니르 전투복 항상 착용하고 다니는데, 이점 때문에 아군들 사이에서조차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 덩어리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반톤이나 나가는 육중한 장갑 탓도 있겠지만, 헬멧 때문에 얼굴은커녕 표정조차도 읽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비윤리적이라는 비난도 있었고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신체 강화 수술을 강행함으로 인해 희생도 컸으며 전체 양성 과정에서 천문학적 예산이 들기는 했지만, 스파르탄-II 대원들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투력으로 그간의 노력에 걸맞은 위력을 전장에서 선보였습니다. 2525년에 코버넌트와 전쟁이 발발한 이례로, 대원들은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각지에서 코버넌트와 맞섰습니다. 대원들은 임무를 수행하며 크나큰 전과를 올려 왔는데, 한 예로서 외곽 이주지 중 하나인 제리코 VII 행성에서 있었던 지상전에서 스파르탄 대원들로 구성된 소규모 분대 셋이 해병대 세 개 사단과 맞먹는 전과를 낸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점은 이들이 원래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라는 체제에 반대하는 세력을 잠재울 목적으로 양성되었으나, 이제는 인류 전체를 구하고자 코버넌트를 막는데 투입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어찌되었건 스파르탄 대원들은 코버넌트와 전쟁이 터진 이례로 외곽 이주행성 일대에서 벌어진 여러 전투에 참전하면서 뛰어난 공적을 세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병대 소속 장병 중에는 이들을 직접 본 이들도 있었으며, 스파르탄 대원들은 일선 장병에게 '걸어다니는 전설'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평판이 그러하다 보니, 2547년에 이르러서는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해군 장성 측에서 군 전체의 사기를 고취하고자 그제까지도 기밀로 남아있던 그들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프로젝트 이면에 숨어있는 문제 소지가 다분한 '진실'에 대해서는 공개를 꺼렸으나, 세간에서 스파르탄 대원들의 영웅성에 이목을 집중함에 따라 아무도 이들의 명성 뒤편에 가려져 있는 진실에 대해서 일절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결국 장성 측 의도대로 사기를 올리는 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하베스트 행성에서 있었던 최초의 대규모 함대전 이후로 국제연합 우주사령부가 코버넌트를 상대로 전세를 뒤바꿀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전술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방법 뿐이라는 사실이 자명이 드러난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전략 전술을 펼친다 한들, 전반적 기술 수준과 화력, 규모 면에서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측이 코버넌트 함대를 상대로 열세를 피하지 못했기에 결국에는 패배에 패배를 거듭했고, 간혹 승리한다 한들 피해가 아군의 막심해 이겼다고 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 빈번했습니다. 이는 스파르탄 대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사항이었습니다. 대원들이 아무리 날고 기는 실력으로 소규모 국지전에서 코버넌트 지상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쥔다 해도, 머리 위에서 벌어지는 함대전에서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함대는 항상 코버넌트 함대의 압도적 위력 앞에 맥을 못추기만 했습니다.
이처럼 지상전에서의 승리는 곧 함대전에서의 패배로 이어졌고,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측이 입은 피해를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승리라 부르기조차도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오리온 자리 곳곳에 산재한 이주행성을 모두 지킬 함대도 병력도, 애초부터 없다시피 했기에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는 그마저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중에는 외곽 이주행성 방어를 아예 포기하고 함대 사령부가 위치한 리치 행성을 비롯해 각종 주요 시설이 있는 내곽 이주행성을 보호하고자 함대는 모두 후방으로 빼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맙니다. 2536년 이후 같은 식으로 외곽 이주행성이 하나씩 코버넌트의 손에 떨어져 불모지로 변해갔고, 결국에는 전쟁이 발발한지 삼십 년도 채 지나지 않아 팔백 곳에 달하던 이주행성의 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져 불과 몇개월 뒤면 나머지 행성도 모두 함락되리란 예측까지 나오는 참담한 상황에 치닫았습니다.
2552년 8월 27일, 각지에서 싸우던 스파르탄 대원들이 코버넌트의 전진을 일거에 막을 작전을 수행하고자 모두 리치 행성으로 소집되었습니다. 파손된 코버넌트 함선에 침투, 컴퓨터 시스템을 해킹하여 놈들의 근거지를 알아낸 다음 함선을 수리하여 근거지로 침투, 사제라 불리는 지도세력을 생포하여 정전 혹은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 이번 작전의 목표였습니다. 수십 년간 전투를 치렀음에도 놈들이 전쟁을 일으킨 동기는 물론이요 전체 규모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 이런 유례없는 작전을 펼친다는 사실 자체가 어찌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허나 분전을 거듭해도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측이 패퇴만 거듭하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 이번 작전은 전세를 역전시킬지도 모르는 마지막 기회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스파르탄 대원들 모두의 운명을 뒤바꿀 사건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스파르탄은 결코 죽지 않는다
작전을 돌입하기까지 불과 삼 일 남짓한 시간 동안, 스파르탄 대원들은 신형 묠니르 전투복을 지급받게 됩니다. 새 '묠니르 마크 V'형은 이전의 묠니르 마크 IV형을 바탕으로 성능을 대폭 향상한 전투복으로서, 두 가지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하나는 바로 그간 연구만 거듭해 오던 에너지 방어막 기능이 탑재되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내부 층에 초전도체 메모리 처리장치로 이루어진 새 층이 탑재되었다는 점입니다. 전자는 코버넌트의 기술을 응용한 기능으로, 에너지 방어막이 전투복 전신을 감싸기 때문에 방어력이 더욱 증가했으며 소진될 시에도 함께 개량된 핵융합 전지에서 전력을 공급받아 자동 재충전이 됩니다. 후자는 이번 임무에서 코버넌트 통신망 해킹을 담당하게 될 인공지능을 전투복 내부에 저장할 용도로 탑재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수백 가지가 넘는 소소한 부분이 개량되어 효율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새 전투복을 지급받은 뒤, 대원들은 작전에 사용될 용도로 개수를 거친 구식 순양함 '필라 오브 어텀' 에 올라 작전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필라 오브 어텀으로 코버넌트 함선 한 척을 기동 불능상태로 만들면 그때 대원들이 침투하여 통제권을 장악·탈취한다는 계획이었기에, 대원들은 침투정으로 사용하게끔 펠리컨 수송기를 개조하는 등의 준비는 물론이고 각자 사용할 무기를 점검하는 등의 기본적인 준비도 모두 철저히 끝마쳤습니다. 무엇보다도 코버넌트의 근거지는 어디에 있으며 놈들의 지도부는 누구인가 등과 관련한 사전 정보 자체가 부족하다 못해 전무하다시피 했기에 차기 작전은 여느 때보다도 벅차리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임무의 성패에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와 인류의 사활이 걸렸기 때문에, 대원들은 모두 비장한 마음으로 작전이 시행될 날을 기다리며 각오를 다졌습니다.
작전을 실행에 옮기기 직전인 2552년 8월 30일,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의 최대 군사 거점인 리치 행성에 대규모 코버넌트 함대가 침공해 오는 사태가 벌어지고 맙니다. 필라 오브 어텀으로 코버넌트 함선을 기동 불능상태로 만들어 임무를 도울 예정이던 키예스 함장은 전투 벌어지는 와중에 원 계획대로 코버넌트 함선 한 척에 손상을 입혀 스파르탄 대원들이 작전을 수행할 수 있기를 빌었으나 결국 계획은 틀어지고 맙니다. 결국 스파르탄 대원들은 궤도 방어위성에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를 방어하고 지구의 위치가 담긴 항법 데이터를 코버넌트로부터 지키고자 각각 리치 행성 지표면과 궤도 정거장으로 향했습니다. 대원 셋은 궤도 정거장에, 나머지 대원들은 모두 행성 지표면에 투입되었는데, '스파르탄-117'을 비롯해 정거장에 투입된 대원들은 항법 데이터를 파괴하여 놈들로부터 지구의 위치를 감추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행성 지표 쪽은 그리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이동하던 과정에서 코버넌트 전투기한테 공격을 받아 수송기가 격추되는 바람에 대원 모두 행성 상공에서 뛰어내려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크게 부상을 당하거나 전사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살아남은 대원들은 몇 개로 분대를 나눠 분대마다 각 지점을 맡아 방어전에 들어갔습니다. 코버넌트 지상군의 진격을 어느정도 저지하는 데는 성공하나, 적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 분전을 펼쳤음에도 끝내 발전소는 파괴되었으며, 발전소가 파괴되면서 전력 공급이 차단되자 행성 궤도 방어위성도 잇달아 침묵했습니다. 직접적인 위협이 모두 사라지자 나머지 코버넌트 함대는 한데 집결하여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측 잔존 함대를 처리하고서 행성을 유리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리치 행성은 함락되었고, 이때를 기점으로 전세는 코버넌트 쪽으로 크게 기울게 됩니다.
스파르탄-117은 항법 데이터를 파괴한 뒤 필라 오브 어텀으로 무사 귀환하였으며, 지표에 투입된 대원들 중에도 스파르탄-104, 087을 비롯한 소수가 살아남았으나, 사실상 리치 행성 전투가 일어난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스파르탄 대원 대부분이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걸어다니는 전설이라 불리던 이들의 무용담도 여기서 끝나는 듯했습니다. 전투에서 패배하자, 키예스 함장은 코버넌트 함대의 추격을 피해 리치 행성이 있는 엡실론 에리다누스 행성계에서 탈출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함장의 지휘 아래 필라 오브 어텀은 콜 교전수칙에 따라 무작위 좌표를 산출하여 슬립스페이스 항해에 돌입하게 됩니다. 잘못 전해지긴 했으나, 궤도 정거장에서 항법 데이터를 제거하고 무사히 함선으로 돌아오면서 리치 행성 전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최후의 스파르탄-II 대원으로 알려진 이가 바로 스파르탄-117 '마스터 치프'였습니다.
- 스파르탄 대원들은 코버넌트와 전쟁이 발발한 이후로 기나긴 세월 동안 최전방에서 전선 너머, 심지어는 선조의 유적에 이르기까지 별의 별 전장을 다 누비며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하지만 아무리 전설적인 군인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인간인지라, 죽음까지 피해가지는 못했다.
여기서 잠시 이야기를 돌리고 다른 부분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스파르탄 대원들은 실전에 투입된 이례로 뛰어난 전투력으로 자신들의 작전 수행 능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였습니다. 리치 행성 전투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이십여 년간 코버넌트와 싸워 오면서도 극소수의 대원만이 전사했지만, 상부에서 이들의 존재를 공개하기로 결정한 이후 해군 정보국에서는 그와 관련해 특단의 조치를 내렸습니다. 전설이라 불릴 정도로 스파르탄 대원들이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소속 장병 전체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에, 해군 정보국에서도 특히 선전 활동을 담당하는 제2과에서는 930번 지령을 내려 "스파르탄 대원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 라는 환상을 널리 심어주고자 대원들이 실전에서 전사하는 경우에도 결코 기록상에 '전사'가 아니라 반드시 '실종'혹은 '부상'으로만 기재했습니다.
아군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고자 함이라 하나 지난 이십 여년간의 세월과 리치 행성 전투에서 여실히 드러나듯, 이는 순전히 거짓말이었습니다. 당장 2525년 당시 치 세티 행성에 있는 다마스커스 장비시험 연구실에서 묠니르 IV 전투복을 시착용한 직후 소형 코버넌트 함선과 교전이 발생했는데, 이때 대원들이 코버넌트 함내로 침투하여 폭탄을 설치하고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대원 하나가 벌써 전사한 일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원이 전사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했음에도 기록상으로는 '실종'이라고만 기재되었습니다. 이후 각각 하베스트 행성 전투와 미리뎀 전투에서 대원 둘이 더 전사하였으며, 나머지 한 명은 정말로 실종되어 2552년까지 스파르탄 대원은 모두 약 서른 명 가량 남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해군 정보국의 계획대로 스파르탄 대원은 무적이라는 신화가 리치 행성 전투 이전까지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애당초 과거 국제연합 우주사령부가 정규군을 동원하면서 엄청난 군사비를 소모하지 않고 소규모 정밀 타격대를 운용, 외곽 이주행성 일대에서 불쑥불쑥 생겨나 체제를 위협하는 반란군 세력과 운송이나 관광과 같은 각종 민간 운항을 어지럽히는 해적들을 소탕하고자 시행했던 계획이 바로 스파르탄 프로젝트였던 만큼, 군사정권 아래에서 태생한 계획답다는 느낌이 짙게 묻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2525년 이례로 코버넌트와의 기나긴 전쟁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스파르탄 대원들은 원래 계획대로 에리다누스 행성계 일대를 비롯해 각종 이주행성에 산재한 반란군들과 연일 전투를 벌이며 이들을 완벽하게 진압,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단일 체제에 안정을 안겨다주는 데는 크게 공헌했을지 몰라도, 반란군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자 다양성을 존중하는 내곽 이주행성 주민들 일부로부터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코버넌트와의 전쟁으로 인해 인류는 점점 멸망이라는 벼랑 끄트머리까지 밀렸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스파르탄 대원들을 양성하는 도중 코버넌트와 전쟁이 터지면서부터 프로젝트의 최종 목적이 '반란군 진압'이라는 다소 무자비한 의도에서 '인류 수호'라는 고귀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완전히 뒤바뀌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대원들이 싸우는 명분 또한 다소 정당화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사람이 아니라 외계인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다 보니, 이제까지 사람에게만 적용되던 기존의 윤리관 따위에 거슬릴 요소가 없다시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섯 살 밖에 되지 않는 어린 아이들을 납치하여 고된 훈련을 받게 하고 결국에는 수술을 도중 절반을 죽이고 불구로 만들었다는 비윤리성에서 대원을 구해준 이들은 열심히 은폐를 해댄 해군 정보국도, 영웅을 열렬히 환호한 세인들도 아니라 코버넌트였습니다.
스파르탄-II 프로젝트의 책임자이자 스파르탄 대원들의 어머니와도 같은 인물인 핼시 박사는 프로젝트 시작 초기부터 양심의 가책에 시달려 왔습니다. 앞에서도 누누이 말했다시피, 여섯 살 난 어린 아이들을 징집했던 가장 근본적인 점에서부터 이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게 하고 해군 정보국의 독촉에 못 이겨 위험도가 극도로 높은 수술을 거치게 하던 때까지, 박사는 지치다 못해 환멸감까지 받아왔습니다. 자신이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당사자였기에 결국에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라도 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어찌되었든 핼시 박사는 '소수를 희생하여 인류 전체를 구원한다'는 대의명분을 지고서 그 믿음 하나로 버티며 계획을 쭉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함락되지 않을 성 싶었던 리치 행성마저도 무너지고 수많은 목숨이 한줌 재로 사라지게 되자, 그간 마음속에 억눌러 왔던 후회가 터져나오고 맙니다.
- 스파르탄 프로젝트에 동원할 아이들을 선별하러 나선 중에 핼시 박사가 젊은 시절의 키예스 중위에게 귀띔하길, 언젠가는 이 아이들이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나 구축함 함대, 해군 중위 수천 명, 심지어는 자신보다도 더 유용한 존재로 거듭날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그 말대로, 종국에 가서는 이들이 인류를 구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렇다고 해서 스파르탄 대원들에 얽힌 신화가 여기서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필라 오브 어텀이 무작정 코버넌트 함대의 추격을 피해 달아난 이후, 스파르탄-117은 신비에 휩싸인 선조의 고대 유적인 '헤일로'에 도착해 그곳에서 단신으로 코버넌트와 맞섰으며, 결국에는 헤일로를 파괴하여 뜻하지 않게도 뒤를 쫓아온 코버넌트 함대까지 사실상 모조리 격멸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는 헤일로 전투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소속 생존자들과 힘을 합쳐 코버넌트 기함을 탈취, 리치 행성이 있는 엡실론 에리다누스 행성계까지 돌아오는 데 성공합니다. 스파르탄-117은 다시 리치 행성 지표로 내려가 생존한 소수의 대원과 다른 생존자도 찾아 힘을 합치는데, 그와 동시에 코버넌트 대규모 함대가 지구로 향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서 이를 막고자 또 다시 작전에 들어갑니다.
리치 행성 함락으로부터 반달 정도 2552년 9월 13일, 생존한 스파르탄 대원 다섯 명을 필두로 선제공격 작전이 개시됩니다. 스파르탄 대원 다섯은 리치 행성 전투에서 잃은 동료 대원들의 원한을 갚고자 하는 각오로 코버넌트 수송기를 탈취하여 지구로 향하려는 코버넌트 대규모 함대가 집결한 정거장 내부로 침투해 들어갔습니다. 작전 목표는 정거장에 있는 원자로를 폭파한 뒤 탈출하여 정거장은 물론이고 주변에 집결한 코버넌트 함대까지 모두 없애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스파르탄 대원 한 명이 전사하고 다른 생존자 둘이 전사했지만 결과적으로 계획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원자로가 폭주하여 정거장 전체와 집결해 있던 약 오백 척에 달하는 대규모 함대가 모조리 파괴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원들은 리치 행성 전투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고 다시 한 번 위기에서 지구를 구해냈습니다.
생존 스파르탄 대원들은 지구로 귀환한 뒤에도 2553년 3월을 기해서 기나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투에 몇 차례 더 참가했습니다. 선제공격 작전에서 살아남은 코버넌트 함선 열세 척으로 구성된 소규모 함대가 지구를 침공해 오면서 벌어진 1차 지구전투에서부터, 헤일로와 같이 선조가 남긴 실드 월드에서 벌어졌던 오닉스 전투, 그리고 코버넌트 쇠락의 길에 접어들면서 내전으로 인해 상헬리가 떨어져 나와 인류와 동맹을 맺은 시점부터 전개된 2차 지구전투, 인류-코버넌트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이로써 코버넌트를 몰락하게 했던 아크 전투에 이르기까지, 리치 행성 전투 이후로도 대원들의 앞에 펼쳐진 길은 험난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스파르탄 대원들은 끝까지 맡은바 임무를 완수했으며, 결과적으로는 풍전등화의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인류를 구원해 내는데 크게 한 몫을 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들은 무사히 귀환하지 못했습니다. 최전선 너머에서 비밀 작전을 수행하다 2552년 이후 사실상 전원 실종되어 버린 그레이 팀 소속 대원 셋을 포함해, 오닉스 전투 끝에 핼시 박사와 함께 실드 월드 내부에 갇혀버린 스파르탄-104, 058, 087, 그리고 아크 전투 끝에 탈출하던 도중 탑승하던 프리깃함이 파손되는 바람에 지구로 귀환하지 못하고 정처 없이 우주를 떠도는 신세가 되어버린 스파르탄-117에 이르기까지,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삼십 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전투를 벌인 끝에 살아남은 소수의 대원들은 당당히 귀환하여 영웅 대접조차도 받아보지 못한 채 제각기 우주 저편에 뚝뚝 떨어져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습니다. 이로써 그간 실종으로 처리된 대원들 중 '진짜 실종된' 대원들과 더불어 전후에 생존한 대원들 역시 대부분 똑같이 실종으로 처리되고 말았습니다.
"헤일로" 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선조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겹치자면 스파르탄 대원들에 얽힌 이야기는 그저 자그마한 일부분에 불과할지 몰라도, 위에서처럼 쭉 살펴보면 스파르탄 대원들이 얼마나 발자취를 많이 남겼는지 잘 드러납니다. 비록 가상의 인물이지만 경의를 표한다 해도 이상하지 하지 않을 정도로, 대원들이 쌓아온 업적은 실로 대단합니다. 전쟁이 끝난 지 삼 년이 지난 2556년 9월 25일, 스파르탄-117 "마스터 치프"가 살아온 생애와 전설을 기리고자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교향악단에서는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스파르탄-117 한 인물의 삶을 조명한다고는 하나, 이 뒷면에는 어느 날 느닷없이 납치당해 특수 부대원으로 성장해, 제각기 달리 살았을 지도 모르는 인생 전부를 군 복무에 바치며 인류를 위해 투쟁하고 또 쓰러져 갔던 수많은 스파르탄 대원들을 기리는 뜻 또한 함께 깃들었으리라 봅니다.
글머리에서 마스터 치프 위주로 글을 쓰지 않고 다른 대원들에 얽힌 이야기를 모두 하면서 그 배경도 함께 설명하겠다고 했습니다. 쭉 써놓고 보니 얼추 그에 맞게 써내려갔지 싶습니다. 원래 헤일로라는 게임 자체가 마스터 치프라는 한 명의 영웅을 중심으로 한, 소위 말하는 '미국식 영웅주의 서사시'와 비슷한 줄거리이다 보니 여차저차해도 결국에는 마스터 치프에 얽힌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끝을 맺게 됩니다. 하지만 게임 제목이 암시하듯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와 코버넌트 사이에 각축전이 벌어지는 배경은 모두 선조와 긴밀하게 관계를 맺은 곳이 대부분이고, 게임에 드러나는 부분보다도 드러나서 반짝이는 주연들을 받쳐주고자 설정 속에만 조용히 묻힌 요소 또한 세지 못할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열렬한 팬층에서는 삼부작만으로 게임을 마무리 지어 버리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다고들 말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LA에서 열렸던 E3 2009에서 번지 스튜디오는 "헤일로: ODST"에 뒤이을 새로운 헤일로 후속작, "헤일로: 리치"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팬들에게는 올 가을 출시를 앞둔 헤일로: ODST 관련 정보만으로도 숨이 벅찬데 2010년에 또 다른 후속작이 발매된다고 하니 즐거운 비명의 연속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헤일로: 리치 공개 트레일러 한 편 속에 든 정보를 토대로 추측해 보건데, 이번 후속작에 나올 스파르탄 대원들은 마스터 치프도, 그간 소설이나 그래픽 노블 속에 등장한 대원들도 아님이 분명합니다. 스파르탄-III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과 더불어 위 글에서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스파르탄-II 프로젝트가 종료된 뒤 이차로 스파르탄-II 대원들을 더 양성하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대전 격투게임 DOA에 등장했던 니콜-458이 있으며, 나머지 대원들에 관한 정보는 아직까지 비밀에 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헤일로: 리치 트레일러에 등장하는 두 스파르탄 대원에 붙은 '259'과 '320' 번호로 추측하건데, 이들은 소설상에도 일절 등장한 적이 없는 인물일 겁니다. 리치 행성 지표에서 벌어진 전투를 다루자면 스파르탄-104, 086, 043을 포함한 기존 대원들이 스파르탄-117과 나머지 생존자들과 합류하는 장면이 등장할 테며, 그리되면 세 번째 헤일로 소설 "선제공격 작전" 줄거리와 거의 동일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될테니 말입니다. 게다가 번지 스튜디오 역시 이미 드러나서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가지고서 게임을 제작, 차기작에 실리는 비중과 신선도를 반감하는 우는 결코 범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그동안 헤일로 삼부작의 줄거리를 맡아왔으며, 다섯 번째 헤일로 소설인 "하베스트 행성 전투"의 저자인 조셉 스테이튼이 이번에도 실력을 발휘하여 이야기를 멋지게 이어주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상헬리 특수부대 사령관 르타스 바둠이, 스파르탄-I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존슨 원사, 가정을 꾸리고파 하는 퇴역 스파르탄-II 대원 마리아, 1차 지구 전투에서 아비규환이 된 뉴 몸바사 한복판에서 있었던 한 기자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이야기를 엮어 출판했던 헤일로 첫 그래픽 노블에 이어, 헤일로 2 에서 3 사이에 마스터 치프와 지구에서 있었던 일을 그린 "헤일로: 업라이징", 아직 출판하지는 않았지만 '헤일로: ODST' 에 등장하는 두 대원 더치와 로미오에 얽힌 뒷이야기를 담을 예정인 "헤일로: 헬 점퍼즈", 그리고 극비리에 작전을 수행하는 스파르탄 부대와 소속 대원들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는 "스파르탄 블랙" 등, 헤일로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어들임에 따라 세계관도 여전히 함께 덩치를 키워가는 중이기에, 그 속에서 스파르탄 대원들의 전설은 계속해서 현재 진행형으로 남을 것입니다.
헤일로 삼부작의 시작점이 되었던 "헤일로: 전쟁의 서막"에서부터 대단원인 "헤일로 3"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의 중점에 우뚝 서서 무수한 역경을 헤치고 결국 승리를 손에 쥔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6살이란 어린 나이에 징집되어 군사훈련을 받았으며, 14살이라는 나이에 벌써 실전에 투입되어 적과 맞섰습니다. 그리고 이후 오랫동안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전투를 치르며 뛰어난 공적을 세웠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포로조차도 잡지 않는 무자비한 적들의 공세 앞에 형제 자매와도 같았던 동료 대원들이 이슬로 사라져 갈때도, 그는 끓어오르는 슬픔을 내색조차 하지 않으며 끝까지 맡은바 소임을 다하고자 분투했습니다. 그리고 42세에 접어들면서 지금까지 마무리짓지 못했던 싸움을 모두 끝내고서, 훗날을 기약하며 잠에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위에서 간략하게 애기한 인물은 바로 'Master Chief Petty Officer(최선임 상등 상사)'라는 부사관 계급명을 줄여 부르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마스터 치프"입니다. 헤일로 삼부작에서 치프는 코버넌트라는 광신적인 외계연합과 싸우고, 우주를 집어삼키려는 야망을 품은 플러드라는 기생체들과도 맞서며, 결국에는 승리를 거머쥡니다. 굳이 소설과 같이 세계관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춰보지 않고서 삼부작 속에서 드러나는 활약상만 봐도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는 충분히 가늠하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마스터 치프 말고도 그에 버금가는 인물이 더 있습니다. 치프와 마찬가지로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해군 특수전 사령부 소속 스파르탄-II 대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마스터 치프는 최후의 스파르탄이다" 라는 설명을 수도 없이 들은 까닭에 여기서 고개를 갸웃거릴 분들도 계실 겁니다.
물론 그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마스터 치프를 제외한 스파르탄 대원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실종된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게임 속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스파르탄 대원이라고는 치프 단 한 명 밖에 등장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마스터 치프라는 한 영웅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보면, 방대한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헤일로는 원래가 인류 모두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영웅의 일대기와도 같은 이야기 서술구조를 갖춘 게임입니다. 그러나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 영웅이 탄생하기까지 있었던 일련의 과정과 눈부신 활약 뒤에는 존슨 원사나 키예스 함장같은 인물처럼 겉으로 자세히 드러나지 못한 이들에 얽힌 이야기가 수도 없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스터 치프에 버금간다는 인물들에 얽힌 이야기 또한 이 뒷면에 담겨 있습니다.
이쯤에서 물음 하나가 튀어나옵니다. 그렇다면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마스터 치프에게 따라붙는 "최후의 스파르탄 생존자" 라는 수식어를 돋보이게 해줬던 동료 대원들은 누구일까요? 헤일로 공식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대강 알고들 계실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마스터 치프의 후광에 묻혔던 동료 대원들 한 명 한 명을 파고들어 일대기 식으로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이들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그 배경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헤일로 세계관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까지 폭넓게 다루겠습니다. 스파르탄 대원들은 훌륭한 군인이었기에 적에게는 데몬이라 불리며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지만, 아군에게는 뛰어난 전과를 안겨주어 사기를 증진시키고 전쟁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면에는 숱한 역경과 고난을 겪어야 했던 이들만의 정말 기구하기까지 한 삶이 숨겨져 있습니다.
지구와 모든 행성의 수호자
헤일로 삼부작과 그 사이사이 혹은 이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의 주된 시간 배경은 26세기인 2500년대이지만, 이야기는 그로부터 사백 여년 거슬러간 22세기 중반부터 시작됩니다. 당시의 인류는 태양계 내의 여러 행성을 개척하며 지구 중력권에서 벗어나 서서히 우주 공간으로 진출해 나가던 시기에 있었습니다. 처음 개척된 곳은 지구의 위성인 달이었으며 다음은 화성, 그 뒤는 목성 궤도를 도는 위성 순으로 넘어갔습니다. 이에 지구에만 국한되던 인류 정부와 각종 대기업과 자본가들까지 대거 우주로 뻗어나갔는데, 이 과정에서 우주 정거장과 같은 궤도시설이 생기고 지구상의 주요 물류도시에는 궤도 엘리베이터가 건설되는 등 진출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구에서 인구과잉 문제와 정치적 불안감이 고조되기 시작함에 따라, 강경 세력 또한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우주 개척 과정이 점차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잡다한 정부와 소수 당파 또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에 이르렀는데, 이중 대표적인 반체제 동향으로는 신 공산주의 조직인 '코슬로빅'과 신 사회주의 조직인 '프리덴' 두 세력을 들 수 있습니다. 코슬로빅 세력은 구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있었던 영광을 되찾고자 하면서 맥락을 같이하는 신 공산주의 강경파 지도자인 블라드미르 코슬로프를 지지하였고, 태양계 내 이주지와 각종 궤도 시설에서 지구 대기업과 자본가들을 타파하고자 했습니다. 반면 통합 독일 기업체로부터 지지를 받았던 프리덴 세력은 목성의 위성에 뿌리를 두면서 코슬로빅 측 노동자 개혁단체와 자주 마찰을 빚었던 반 코슬로빅 세력에서 생겨났습니다. 분리주의 세력이었던 프리덴은 국제 연합을 타파하여 평화를 쟁취한다는 명목을 내걸고 목성의 위성 일대에 자체 정부를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국제 연합은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사이 두 강경 세력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대규모로 군사력을 증강하기 시작했습니다. 군비 증강이 절정에 달할 즈음이었던 2160년, 국제 연합에서 정치·경제·군사 교섭을 목적으로 각 이주지에 파견한 이주지 고문단 중 목성의 제1위성인 '이오'에 가있던 고문단이 프리덴 세력에게 공격받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프리덴 세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주변 일대의 위성도 치고 들어갔는데, 이에 국제 연합이 군사를 동원해 즉각 무력대응에 나서면서 '목성 위성 작전'을 펼쳤습니다. 삼 개월간 양 세력간 치열하게 교전이 발생하는 동안, 국제 연합 가입국 중 태양계 곳곳에 있는 이주지를 관할하는 국가 역시 대리전쟁을 명목으로 국제 연합군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이전에도 유사한 무력 충돌이 일어나긴 했으나, 이번 일로 국제 연합은 군사주의 정책을 굳혀나가게 됩니다.
목성 위성 작전과 맞물려 대리 전쟁이 지속된 까닭에, 지구에서도 긴장이 고조되어 2162년에 이르자 결국 남아메리카 일대에 걸쳐 '열대우림 전쟁'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국제연합과 프리덴 두 조직만 대립한 것이 아니라 국제연합, 프리덴, 코슬로빅 세 거대세력이 모두 한군데서 맞붙었다는 사실입니다. 겉으로는 이데올로기 차이로 인한 전쟁이었지만, 속으로는 지구상의 주요 지역을 서로 장악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습니다. 열대우림 전쟁은 이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상에서 벌어진 전투 중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될 정도로 전사자가 극심하게 속출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한 식량난에 허덕인 인구도 일일이 수치를 산출하지 못할 만큼 많았습니다. 이때와 관련, 군사 고전으로 불리게 되는 책 "한 병사의 이야기, 열대우림 전쟁"이 전후에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열대우림 전쟁이 일어난 바로 다음해인 2163년에 연달아 국제 연합군이 '아가일 평원 작전'의 일환으로 화성에 자리잡은 코슬로빅군을 선제공격하면서, 세 세력이 다시 충돌함에 따라 화성에서도 전화가 치솟았습니다. 국제 연합이 지구를 제외한 여타 행성에 해병대를 투입했던 일은 이때가 처음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생겨난 군사 교리는 훗날 발족되는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의 전술 체계에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이때 화성에 해병대를 대규모로 투입했던 일에서 실전 경험을 얻어 후일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소속 해군 특수전 사령부에서 특수부대인 궤도 강하 타격대(Orbital Drop Shock Trooper, ODST)를 창설하게 됩니다. 화성에서 있었던 전투 이후 국제 연합은 2164년에 들어 모병과 선전 활동에 힘입어 '국제연합 우주사령부(United Nations Space Command, UNSC)'라는 강력한 연합으로 새로이 거듭나게 됩니다.
- 목성 위성 작전, 남아메리카 일대에서 벌어진 열대우림 전쟁, 화성에서 있었던 아가일 평원 작전 등, 인류는 태양계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대립과 전쟁을 숱하게 겪어야 했다. 하지만 비싼 수업료를 치른 대가로,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는 강력한 통합 정부 체제를 유지하려면 작은 불씨도 초기에 진압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국제 연합은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라는 인류 사상 전례가 없는 거대 조직으로 변천한 이후, 조직 체계화를 거치는 동시에 지구 각지와 태양계 내부 이주지로 숨어들어간 코슬로빅과 프리덴 잔당들을 찾아내어 소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2170년에 이르러 반체제 세력 소탕 작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를 무렵, 코슬로빅과 프리덴 세력은 하나로 통합된 강력한 국제 연합군의 공세 아래에 완전히 진압되었습니다. 이후 2170년대에 접어들면서 지구에서는 '지구 연합 정부(Unified Earth Government)'라는 새로운 정부 체제가 성립되기에 이르렀으며, 목성 위성 작전을 시작으로 2160년에서 2170년까지 태양계 각지에서 벌어진 전투는 후대에 가서 '태양계 전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코슬로빅, 프리덴, 국제 연합 세 세력간의 각축전은 국제 연합이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로 거듭나 승리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는 잠시 승리를 자축할 틈도 없이 곧바로 표면적이지는 않지만 크나큰 위협으로 작용할지도 모르는 요소를 대처해야 하는 국면과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잠정적 위협 요소란 바로 이전부터 문제로 지적됐던 인구 과잉 현상과 고도로 훈련되고 거대화되었으나 정작 싸울 적이 없는 군대였습니다. 잇달아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여러 나라들이 전쟁 수행 비용을 부담하느라 전 지구 경제가 거의 파탄난 형국에다, 열대우림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폐허와 그로 인해 발생한 식량난까지 겹치면서 지구 전체의 상황은 벼랑까지 밀릴 대로 밀려 파국에까지 직면했습니다. 거기다 끊임없는 대립과 반목, 유혈 충돌 등으로 얼룩진 지난 역사가 증명해 주듯, 인구 과잉과 비대해진 군대로 인해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나 그렇잖아도 심각한 상황을 더욱 악화할 우려마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3세기 후반인 2291년에 들어 물리학자인 토비아스 플레밍 샤와 수학자인 월리스 후지카와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연구진이 '샤-후지카와 초광속 엔진'을 개발해 내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이 신형 추진장치는 시공 연속체, 즉 사차원상에 일시적으로 균열을 일으켜 줄여서 흔히 슬립스페이스라 부르는 '난류 우주'로 통하는 길을 생성한다는 원리를 적용해 개발됐습니다. 슬립스트림 스페이스는 물리 법칙이 교차하는 영역이기에 그 속에서는 상대론적 부작용 없이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 일이 가능했습니다. 비용이 만만찮다는 단점이 있어도 행성간 운항에 소요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다는 장점 덕분에 이후 초광속 엔진은 우주선의 기본 추진장치로 자리잡았고, 이리하여 인류는 초광속 운항 시대에 접어들어 머나먼 우주로까지 진출할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십 년이 지난 2310년, 통합 지구 정부에서 최초의 이주행성 이민선단을 세상에 공개하자 자원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인구 과잉으로 지구 상황이 계속 악화되자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방법이 매력적 해결책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초광속 엔진을 제작하고 실제로 운용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던지라, 이주행성 개척에 동원될 사람들과 군인들은 또한 엄중한 신체·정신 감정 절차를 거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이들만 선발되었습니다. 또한 대규모 이민선단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무장 세력간 의견 마찰이 발생하여 어마어마한 자본금이 허비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고자 각 이민선마다 군인과 호위선단이 배속됐습니다. 그리하여 2361년 1월 1일, 최초의 이민선단이 자원자와 테라포밍 장비를 싣고 운항에 나서게 되면서, 이때를 기점으로 내곽 이주행성 개척시대가 열렸습니다.
이후 2390년에 이르러 이주행성은 모두 210곳으로 늘어났는데, 동시에 새로운 삶을 찾아 이민가는 인구도 늘면서 지구의 인구 부담이 많이 줄었습니다. 이에 힘입어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통제하의 우주 공간 또한 차차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인류는 과거 지구의 중력장에서 벗어나 태양계로 진출했던 때처럼, 이제는 통합 지구정부와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라는 강력한 정부체계를 구축하고서 빛의 속도를 뛰어넘어 태양계 밖으로 빠르게 팽창해 나갔습니다. 내곽 이주행성이 안정되면서 다시 현지에서 이주선과 군함 생산이 활발히 진행됨에 따라 인류는 더욱 멀리 뻗어나가 외곽 이주행성 또한 개척하였고, 2490년에 이르러 전체 이주행성의 수는 800여곳을 훌쩍 넘어서게 됩니다. 이제 코슬로빅이나 프리덴과 같이 체제에 중대한 위협이 되었던 세력은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 스파르탄 양성계획의 시초라 불리는 오리온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목표치를 무리하게 잡았던 탓에 사실상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수확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양성된 병사들 중 소수는 이후로도 현역에 남아 컬라이더스코프, 탱그우드 작전 등에서 뛰어난 전과를 올렸으며, 이때 얻은 교훈이 이후 계획된 프로젝트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국제연합 사령부가 한창 우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갈 무렵인 25세기에 이르러, 예기치 못한 곳에서 다시 대립의 불길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엡실론 에리다누스 행성계를 비롯해 여러 이주행성에서 반란군 봉기가 일어난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지난 몇 세기간 이주행성 개척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마당에 반란군 세력이 튀어나와 느닷없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보여도,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주행성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통합 지구 정부와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에서는 새로이 생겨난 이주지와 그곳에 거주할 이주민 모두를 통합 정부 체제 아래에서 관리할 목적으로 '이주행성 관리당국'이라는 산하 조직을 창설했습니다. 그렇게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에서는 자신들의 입지를 굳건히 하고자 관리당국을 통해 때로는 강압 정책도 불사하며 이주민들의 삶을 억압하고 간섭하기까지 했습니다.
생활 곳곳까지 관리당국의 영향력이 끼치는 꼴을 이주민들은 당연히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처음에는 이에 항의하는 정도로 이주행성의 개별 의사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이주행성 관리당국 측에서는 정작 걸핏하면 폭정을 일삼으면서도 왜 이주행성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나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함에 따라 불만은 점점 쌓여만 갔고, 결국은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단일 체제에 반하는 분리주의 세력이 다시 생겨나고 말았습니다. 수 세기 전 통합 정부를 위협으로 몰아넣었던 반체제 세력이 또 다시 고개를 듦에 따라, 반체제 봉기가 내전 발발로 이어져 민간 피해와 인명 손실이 막대하게 발생하기 전에 신속하게 상황을 진압할 특수부대를 창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이주행성 군사당국이 외곽 이주행성에서 비밀리에 군사작전을 수행할 정밀 타격대를 양성한다는 계획이 해결책으로 떠올랐습니다.
그 결과로써 2491년부터 해군 정보국 특수전 사령부 주관으로 시행된 계획이 바로 '오리온 프로젝트'입니다. 오리온 프로젝트에서는 해병대에서 자원병을 모집하고 이들에게 강도 높은 훈련과 신체 강화수술을 실시, 유전적으로 강화된 병사들을 양성하여 반란 전선에 투입하는 데 주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체 강화수술을 거치다 사망하는 병사가 속출했으며, 양성비용 또한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는 등 예상했던 실효성과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해 결국 2506년에 접어들어 계획이 전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훈련을 받던 병사들도 모두 각기 다른 부대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오리온 프로젝트를 거쳐간 이들 중에는 이후 반란군 진압작전 혹은 암살 임무 등을 수행하며 전공을 세운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은밀하게 시행된 계획이었던지라 이때 자원한 장병들이 모두 몇 명인지 조차도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외곽 이주행성 일대에서 생겨난 반란군 세력인 '분리주의자 연맹'에 뒤이어, 26세기 초반에 들어서는 아예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최대의 군사 거점인 리치 행성이 있는 곳이자 각종 거대 시설과 경제 기반이 즐비하게 깔린 엡실론 에리다누스 행성계에서까지 '에리다누스 반란군'이 생겨나 소요사태를 일으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이들에게 자치권을 인정해 주고서 행성계에서 철수하여 불필요한 인명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함대 사령부나 대규모 공업 단지와 같은 주요 기반 시설이 엡실론 에리다누스 행성계 내 이주행성에 많았던 까닭에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는 결코 여기서만큼은 물러날 수 없다고 단호히 입장을 표명하며 강경하게 반란군 세력과 맞섰습니다. 이에 2513년부터 2524년까지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되었던 대규모 반란군 진압작전인 '트레뷰셋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트레뷰셋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측에서는 구축함과 항공모함으로 구성된 함대를 동원하고 해병대를 투입하는 등 대대적으로 전면전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후벼 파면 팔수록 살을 파고드는 가시처럼, 아무리 군사력을 동원해 가면서 축출하려 들어도 반란군 세력은 오히려 여러 행성계로 세력을 확장해 나가며 지속해서 게릴라전을 펼쳐 계속해서 국제연합우주사령부의 골머리를 썩였습니다. 반란군은 날이 갈수록 더 조직적인 공격을 펼쳤으며, 이에 맞서는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측의 보복 공격도 잔혹해져만 갔습니다. 결국 작전이 장기화되면서 부수적 민간 피해만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반란군 진압에 동원할 특수부대를 창설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다시금 대두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지구와 모든 이주행성의 수호자가 될 이들을 필요로 하는 중대한 국면에 접어든 것입니다.
전설이 탄생하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해군 정보국 주관으로 반란군을 진압할 수퍼 솔져를 양성한다는 계획이 극비리에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과거 실패로 끝났던 오리온 프로젝트를 계승한다는 의미로서, 차기 양성계획은 "스파르탄-II 프로젝트"라 명명되었습니다. 큰 손실 없이 반란군 소요 사태를 초기에 진압할 정예병을 양성,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훨씬 적은 비용만을 들여 민간 피해를 최소화하며, 궁극적으로는 사태가 내전으로까지 번지지 않도록 막는다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주목표로, 뼈대가 되는 사항은 지난번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양성 과정 면에 있어서는 이전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오리온 프로젝트에서는 이미 해병대에서 복무하는 장병 중에서 자원병을 뽑아 계획에 동원하였지만, 스파르탄-II 프로젝트에서는 "스파르탄"이라는 이름에 걸맞기라도 하듯 아예 어린 아이들을 동원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스파르탄-II 프로젝트에서 논란이 가장 많았던 부분 역시 이 훈련대상 선발에 있었습니다. 오리온 프로젝트의 실패를 교훈삼아 성공 확률을 높이고자 처음부터 선천적으로 육체·정신적 면에서 뛰어난 유전 형질을 타고난 이들을 선발하게 되면서, 최종적으로 계획에 동원할 최적의 대상은 여섯 살 가량 된 어린 아이들로 좁혀졌습니다. 결국 옛 그리스의 스파르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말로 아이들에게 군사 훈련부터 시작해서 지정 양성단계를 차근차근 밟도록 한 뒤, 적당히 성장한 시기를 보아 실전에 투입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허울이야 어찌되었든 성년 이하의 아이들에게 가혹한 훈련을 실시하고 다시 극도로 위험한 신체 강화수술까지 시술한다는 점 자체로도 이는 매우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차기 프로젝트는 비난의 목소리를 피하고자 더더욱 극비리에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리하여, 2517년을 시작으로 스파르탄-II 프로젝트는 해군 정보국 제3과 소속 민간 고문인 캐서린 핼시 박사의 주도 아래에 서서히 진행되었습니다. 백오십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적정 후보로 선정되었으며 처음에는 이들 모두를 선발할 예정이었으나, 예산 문제로 인하여 이중 절반인 일흔다섯 명만이 징집되었습니다. 해군 정보국에서는 아이들을 모두 비밀리에 납치하여 해군 사관학교를 비롯해 각종 군사 시설이 밀집한 리치 행성으로 데려왔으며, 복제인간을 만들어 각 아이들의 빈자리를 메우는 식으로 기밀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인간복제 기술은 26세기에 이르러서도 완벽하게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때 탄생한 복제인간은 모두 유전적인 문제로 얼마 살지 못하고 모두 죽었습니다. 이리하여 영문도 모른 채 납치당한 아이들은 핼시 박사가 해주는 간략한 설명만을 듣고서 곧장 군사훈련에 들어갔습니다.
해군 교관들은 여섯 살 난 아이들을 상대로 한다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가혹하게 훈련을 시켰습니다. 아이들은 기초 체력 단련을 거쳐 응급 처치법, 전술 전략, 각종 화기의 조작·사격·분해·관리법, 차량 운전법은 물론이고 항공기 조종법까지도 배웠으며, 교육 담당 인공지능에게서는 기본 소양과 대수학, 역사(그 중에서도 특히 전쟁사) 등을 차차 배워갔습니다. 초기 훈련은 모두 리치 행성 해군 사관학교에서 진행되었으나, 나중에는 해스콕 기지 등으로 장소를 옮기며 생존 훈련이나 모의 전투도 치렀습니다. 충격 속에서도 아이들은 군생활에 완전히 적응해 나갔는데, 그렇게 칠 년이 지나자 아이들이었던 대원들은 어느새 모두 건장한 육신과 해군 사관학교 수석 졸업생의 두뇌를 지닌 우수한 군인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하지만 2525년에 이르러, 자신들 중 절반의 목숨을 앗아가게 되는 "신체 강화 수술" 단계를 밟게 됩니다.
이때 대원들이 받은 수술은 과거 오리온 프로젝트에서 자원병들에게 시행했던 수술과 같았는데, 삽십 여년이 지난 이때까지도 위험성이 개선되지 않았으며 실험 또한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책임자였던 핼시 박사는 안정성을 검증할 때까지만 절차를 연기하려 했지만, 해군 정보국에서 압력을 넣은 까닭에 예정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결국 대원 중 절반 이상이 수술을 받는 도중 혹은 이후 죽거나 불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대원들은 근육 밀도가 증가하여 자기 몸무게의 세 배가 넘는 무게를 들어올리고, 맨주먹으로 철판을 우그러뜨리며, 어둠 속에서도 앞을 뚫어보고, 시속 55km라는 엄청난 속도로 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텔레파시와도 같은 팀워크 능력을 지니게 되었으며 반사 신경 또한 보통 사람의 배 이상으로 향상되어 말 그대로 초인적인 능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 제각기 다른 행성과 환경에서 살던 여섯 살난 어린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납치·징집당해 스파르탄-II 양성 계획에 투입되었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곧장 고된 군사훈련을 받게 된 까닭에 물심양면으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나, 가혹한 훈련 속에서도 차차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회복기도 지나자, 상부에서는 시험 삼아 대원들을 실전에 투입했습니다. 대원들은 엡실론 에리다누스 행성계 내 소행성대에 주둔하던 반란군 기지로 잠입하여 지도자를 생포해 오라는 임무를 맡게 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반란군 지도자는 과거 트레뷰셋 작전에서 주요 포획 대상이었던 변절자 로버트 와츠 대령으로,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에서는 대규모 함대를 동원하면서까지 총력을 기울였으나 끝내 잡지 못했던 인물입니다. 대원들은 이때 처음으로 실전에 나섰음에도 고작 다섯 명이 소행성 기지로 잠입하여 대령을 생포하여 무사히 귀환하는데 성공, 탁월한 임무 수행 능력을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2525년 후반에 들어 갑작스레 예기치 못했던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코버넌트라는 미지의 외계 세력이 외곽 이주행성 하베스트를 완전히 파괴하고 인류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해온 것입니다.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에서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전체 경계태세를 발령하였으며, 하베스트 행성을 탈환하고자 대규모 함대를 소집함에 따라 전 이주행성 군사당국 소속 병력 전원이 위기상황 동안 해군 사령부와 지상군 사령부에 배속되었습니다. 원래는 신체 강화수술을 거친 뒤에도 과정이 몇 단계 더 있었으나, 이 일을 계기로 프로젝트 전체 진행에 다소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이로써 훈련이 사실상 모두 끝나게 되자 최종단계인 '묠니르 프로젝트'로 예정이 크게 앞당겨졌으며, 그와 동시에 스파르탄 양성계획 목표 자체가 원래의 '반란군 진압'에서 '코버넌트로부터 인류 수호'로 백팔십도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다급한 시류에 발맞추기라도 하듯, 이때를 즈음해서 최종단계에 사용할 목적으로 연구 중이던 특수 강화 장갑복이자 후일 대원들의 상징이 되는 '묠니르 전투복'이 완성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묠니르 프로젝트란 과거부터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에서 연구해 왔던 외골격 장갑복 계획을 계승하여 스파르탄 대원들이 사용할 동력 전투복을 제작한다는 계획으로써, 이 역시 스파르탄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핼시 박사의 직접 감독 하에 진행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시험적으로 선보였던 동력 전투복은 하나같이 부피가 지나치게 크고 전원 공급에 제한이 있는 등의 문제점으로 인해 양산하여 실전에 배치하기에는 비효율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기에 소수 시험제작 선에서 끝이 났으며, 시제품은 제한된 목적에만 사용하거나 모두 폐기 처분됐습니다. 하지만 핼시 박사는 전투복 자체에 소형 핵융합 전지를 내장하고 부피를 확 줄여, 그동안 있었던 단점도 보완하는 동시에 통신 장치나 동작 탐지기를 포함해 전방 투영 장치까지 탑재하는 등 동력 전투복이라는 이름에 걸맞게끔 새로이 전투복을 설계하고 제작하였습니다.
이때 탄생한 전투복이 바로 '묠니르 마크 IV'형으로, 일정 기간 시험을 거친 뒤에 스파르탄 대원들에게 지급되었습니다. 우선 전체적 성능이 이전까지 제작된 시제품에 비해 대폭 향상되었으며, 전투복 내부 층에는 착용자의 힘과 민첩성 등을 대폭 강화해 주는 '반작용 액체금속 크리스털'이 내장되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전투복 자체 시스템을 감당해 낼만한 신체 조건을 갖추지 못해 착용과 사용이 불가능했으나, 스파르탄 대원들은 이미 신체 강화 수술을 거쳐 전투복을 충분히 다룰 만한 힘과 민첩성을 체득했기에 이를 효과적으로 제어했습니다. 또한 처음부터 코버넌트와의 교전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기에 플라즈마 계열 화기에 대한 내구성이 뛰어나고, 공기 여과장치와 함께 산소 공급장치가 내장됨과 동시에 완벽하게 기밀 처리되어 진공 상태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반동억제 장치에서부터 외부 충격을 완화하여 착용자를 보호하며 체온을 유지하는 유체 젤층, 응급 처치에 사용하는 생체포말 주사기 등등 추가장비가 내장되었기에, 실전에서의 효용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그렇잖아도 강화 수술을 거쳐 사실상 초인에 가까운 신체 능력을 지니게 된 상태에서 전투복을 착용해 운동 능력을 더욱 끌어올림으로써 대원들은 전투력이 극한까지 증대되었습니다. 실제로 대원들은 처음 시착용에 들어갔을 때는 전투복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으나,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개개인의 전투력은 물론이고 팀웍에 있어서도 더욱 민첩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전체 전투력 또한 크게 올라갔습니다. 이리하여 2517년부터 시작된 "스파르탄-II 프로젝트"는 묠니르 전투복이 지급된 2525년에 이르러 종료되었으며, 최종 양성된 스파르탄 대원 모두 곧바로 실전에 투입되었습니다.
- 스파르탄 대원들은 부대 특유의 전유물이라 부를 만한 묠니르 전투복 항상 착용하고 다니는데, 이점 때문에 아군들 사이에서조차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 덩어리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반톤이나 나가는 육중한 장갑 탓도 있겠지만, 헬멧 때문에 얼굴은커녕 표정조차도 읽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비윤리적이라는 비난도 있었고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신체 강화 수술을 강행함으로 인해 희생도 컸으며 전체 양성 과정에서 천문학적 예산이 들기는 했지만, 스파르탄-II 대원들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투력으로 그간의 노력에 걸맞은 위력을 전장에서 선보였습니다. 2525년에 코버넌트와 전쟁이 발발한 이례로, 대원들은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각지에서 코버넌트와 맞섰습니다. 대원들은 임무를 수행하며 크나큰 전과를 올려 왔는데, 한 예로서 외곽 이주지 중 하나인 제리코 VII 행성에서 있었던 지상전에서 스파르탄 대원들로 구성된 소규모 분대 셋이 해병대 세 개 사단과 맞먹는 전과를 낸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점은 이들이 원래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라는 체제에 반대하는 세력을 잠재울 목적으로 양성되었으나, 이제는 인류 전체를 구하고자 코버넌트를 막는데 투입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어찌되었건 스파르탄 대원들은 코버넌트와 전쟁이 터진 이례로 외곽 이주행성 일대에서 벌어진 여러 전투에 참전하면서 뛰어난 공적을 세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병대 소속 장병 중에는 이들을 직접 본 이들도 있었으며, 스파르탄 대원들은 일선 장병에게 '걸어다니는 전설'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평판이 그러하다 보니, 2547년에 이르러서는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해군 장성 측에서 군 전체의 사기를 고취하고자 그제까지도 기밀로 남아있던 그들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프로젝트 이면에 숨어있는 문제 소지가 다분한 '진실'에 대해서는 공개를 꺼렸으나, 세간에서 스파르탄 대원들의 영웅성에 이목을 집중함에 따라 아무도 이들의 명성 뒤편에 가려져 있는 진실에 대해서 일절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결국 장성 측 의도대로 사기를 올리는 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하베스트 행성에서 있었던 최초의 대규모 함대전 이후로 국제연합 우주사령부가 코버넌트를 상대로 전세를 뒤바꿀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전술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방법 뿐이라는 사실이 자명이 드러난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전략 전술을 펼친다 한들, 전반적 기술 수준과 화력, 규모 면에서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측이 코버넌트 함대를 상대로 열세를 피하지 못했기에 결국에는 패배에 패배를 거듭했고, 간혹 승리한다 한들 피해가 아군의 막심해 이겼다고 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 빈번했습니다. 이는 스파르탄 대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사항이었습니다. 대원들이 아무리 날고 기는 실력으로 소규모 국지전에서 코버넌트 지상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쥔다 해도, 머리 위에서 벌어지는 함대전에서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함대는 항상 코버넌트 함대의 압도적 위력 앞에 맥을 못추기만 했습니다.
이처럼 지상전에서의 승리는 곧 함대전에서의 패배로 이어졌고,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측이 입은 피해를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승리라 부르기조차도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오리온 자리 곳곳에 산재한 이주행성을 모두 지킬 함대도 병력도, 애초부터 없다시피 했기에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는 그마저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중에는 외곽 이주행성 방어를 아예 포기하고 함대 사령부가 위치한 리치 행성을 비롯해 각종 주요 시설이 있는 내곽 이주행성을 보호하고자 함대는 모두 후방으로 빼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맙니다. 2536년 이후 같은 식으로 외곽 이주행성이 하나씩 코버넌트의 손에 떨어져 불모지로 변해갔고, 결국에는 전쟁이 발발한지 삼십 년도 채 지나지 않아 팔백 곳에 달하던 이주행성의 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져 불과 몇개월 뒤면 나머지 행성도 모두 함락되리란 예측까지 나오는 참담한 상황에 치닫았습니다.
2552년 8월 27일, 각지에서 싸우던 스파르탄 대원들이 코버넌트의 전진을 일거에 막을 작전을 수행하고자 모두 리치 행성으로 소집되었습니다. 파손된 코버넌트 함선에 침투, 컴퓨터 시스템을 해킹하여 놈들의 근거지를 알아낸 다음 함선을 수리하여 근거지로 침투, 사제라 불리는 지도세력을 생포하여 정전 혹은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 이번 작전의 목표였습니다. 수십 년간 전투를 치렀음에도 놈들이 전쟁을 일으킨 동기는 물론이요 전체 규모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 이런 유례없는 작전을 펼친다는 사실 자체가 어찌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허나 분전을 거듭해도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측이 패퇴만 거듭하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 이번 작전은 전세를 역전시킬지도 모르는 마지막 기회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스파르탄 대원들 모두의 운명을 뒤바꿀 사건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스파르탄은 결코 죽지 않는다
작전을 돌입하기까지 불과 삼 일 남짓한 시간 동안, 스파르탄 대원들은 신형 묠니르 전투복을 지급받게 됩니다. 새 '묠니르 마크 V'형은 이전의 묠니르 마크 IV형을 바탕으로 성능을 대폭 향상한 전투복으로서, 두 가지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하나는 바로 그간 연구만 거듭해 오던 에너지 방어막 기능이 탑재되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내부 층에 초전도체 메모리 처리장치로 이루어진 새 층이 탑재되었다는 점입니다. 전자는 코버넌트의 기술을 응용한 기능으로, 에너지 방어막이 전투복 전신을 감싸기 때문에 방어력이 더욱 증가했으며 소진될 시에도 함께 개량된 핵융합 전지에서 전력을 공급받아 자동 재충전이 됩니다. 후자는 이번 임무에서 코버넌트 통신망 해킹을 담당하게 될 인공지능을 전투복 내부에 저장할 용도로 탑재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수백 가지가 넘는 소소한 부분이 개량되어 효율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새 전투복을 지급받은 뒤, 대원들은 작전에 사용될 용도로 개수를 거친 구식 순양함 '필라 오브 어텀' 에 올라 작전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필라 오브 어텀으로 코버넌트 함선 한 척을 기동 불능상태로 만들면 그때 대원들이 침투하여 통제권을 장악·탈취한다는 계획이었기에, 대원들은 침투정으로 사용하게끔 펠리컨 수송기를 개조하는 등의 준비는 물론이고 각자 사용할 무기를 점검하는 등의 기본적인 준비도 모두 철저히 끝마쳤습니다. 무엇보다도 코버넌트의 근거지는 어디에 있으며 놈들의 지도부는 누구인가 등과 관련한 사전 정보 자체가 부족하다 못해 전무하다시피 했기에 차기 작전은 여느 때보다도 벅차리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임무의 성패에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와 인류의 사활이 걸렸기 때문에, 대원들은 모두 비장한 마음으로 작전이 시행될 날을 기다리며 각오를 다졌습니다.
작전을 실행에 옮기기 직전인 2552년 8월 30일,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의 최대 군사 거점인 리치 행성에 대규모 코버넌트 함대가 침공해 오는 사태가 벌어지고 맙니다. 필라 오브 어텀으로 코버넌트 함선을 기동 불능상태로 만들어 임무를 도울 예정이던 키예스 함장은 전투 벌어지는 와중에 원 계획대로 코버넌트 함선 한 척에 손상을 입혀 스파르탄 대원들이 작전을 수행할 수 있기를 빌었으나 결국 계획은 틀어지고 맙니다. 결국 스파르탄 대원들은 궤도 방어위성에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를 방어하고 지구의 위치가 담긴 항법 데이터를 코버넌트로부터 지키고자 각각 리치 행성 지표면과 궤도 정거장으로 향했습니다. 대원 셋은 궤도 정거장에, 나머지 대원들은 모두 행성 지표면에 투입되었는데, '스파르탄-117'을 비롯해 정거장에 투입된 대원들은 항법 데이터를 파괴하여 놈들로부터 지구의 위치를 감추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행성 지표 쪽은 그리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이동하던 과정에서 코버넌트 전투기한테 공격을 받아 수송기가 격추되는 바람에 대원 모두 행성 상공에서 뛰어내려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크게 부상을 당하거나 전사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살아남은 대원들은 몇 개로 분대를 나눠 분대마다 각 지점을 맡아 방어전에 들어갔습니다. 코버넌트 지상군의 진격을 어느정도 저지하는 데는 성공하나, 적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 분전을 펼쳤음에도 끝내 발전소는 파괴되었으며, 발전소가 파괴되면서 전력 공급이 차단되자 행성 궤도 방어위성도 잇달아 침묵했습니다. 직접적인 위협이 모두 사라지자 나머지 코버넌트 함대는 한데 집결하여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측 잔존 함대를 처리하고서 행성을 유리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리치 행성은 함락되었고, 이때를 기점으로 전세는 코버넌트 쪽으로 크게 기울게 됩니다.
스파르탄-117은 항법 데이터를 파괴한 뒤 필라 오브 어텀으로 무사 귀환하였으며, 지표에 투입된 대원들 중에도 스파르탄-104, 087을 비롯한 소수가 살아남았으나, 사실상 리치 행성 전투가 일어난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스파르탄 대원 대부분이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걸어다니는 전설이라 불리던 이들의 무용담도 여기서 끝나는 듯했습니다. 전투에서 패배하자, 키예스 함장은 코버넌트 함대의 추격을 피해 리치 행성이 있는 엡실론 에리다누스 행성계에서 탈출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함장의 지휘 아래 필라 오브 어텀은 콜 교전수칙에 따라 무작위 좌표를 산출하여 슬립스페이스 항해에 돌입하게 됩니다. 잘못 전해지긴 했으나, 궤도 정거장에서 항법 데이터를 제거하고 무사히 함선으로 돌아오면서 리치 행성 전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최후의 스파르탄-II 대원으로 알려진 이가 바로 스파르탄-117 '마스터 치프'였습니다.
- 스파르탄 대원들은 코버넌트와 전쟁이 발발한 이후로 기나긴 세월 동안 최전방에서 전선 너머, 심지어는 선조의 유적에 이르기까지 별의 별 전장을 다 누비며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하지만 아무리 전설적인 군인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인간인지라, 죽음까지 피해가지는 못했다.
여기서 잠시 이야기를 돌리고 다른 부분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스파르탄 대원들은 실전에 투입된 이례로 뛰어난 전투력으로 자신들의 작전 수행 능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였습니다. 리치 행성 전투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이십여 년간 코버넌트와 싸워 오면서도 극소수의 대원만이 전사했지만, 상부에서 이들의 존재를 공개하기로 결정한 이후 해군 정보국에서는 그와 관련해 특단의 조치를 내렸습니다. 전설이라 불릴 정도로 스파르탄 대원들이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소속 장병 전체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에, 해군 정보국에서도 특히 선전 활동을 담당하는 제2과에서는 930번 지령을 내려 "스파르탄 대원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 라는 환상을 널리 심어주고자 대원들이 실전에서 전사하는 경우에도 결코 기록상에 '전사'가 아니라 반드시 '실종'혹은 '부상'으로만 기재했습니다.
아군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고자 함이라 하나 지난 이십 여년간의 세월과 리치 행성 전투에서 여실히 드러나듯, 이는 순전히 거짓말이었습니다. 당장 2525년 당시 치 세티 행성에 있는 다마스커스 장비시험 연구실에서 묠니르 IV 전투복을 시착용한 직후 소형 코버넌트 함선과 교전이 발생했는데, 이때 대원들이 코버넌트 함내로 침투하여 폭탄을 설치하고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대원 하나가 벌써 전사한 일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원이 전사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했음에도 기록상으로는 '실종'이라고만 기재되었습니다. 이후 각각 하베스트 행성 전투와 미리뎀 전투에서 대원 둘이 더 전사하였으며, 나머지 한 명은 정말로 실종되어 2552년까지 스파르탄 대원은 모두 약 서른 명 가량 남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해군 정보국의 계획대로 스파르탄 대원은 무적이라는 신화가 리치 행성 전투 이전까지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애당초 과거 국제연합 우주사령부가 정규군을 동원하면서 엄청난 군사비를 소모하지 않고 소규모 정밀 타격대를 운용, 외곽 이주행성 일대에서 불쑥불쑥 생겨나 체제를 위협하는 반란군 세력과 운송이나 관광과 같은 각종 민간 운항을 어지럽히는 해적들을 소탕하고자 시행했던 계획이 바로 스파르탄 프로젝트였던 만큼, 군사정권 아래에서 태생한 계획답다는 느낌이 짙게 묻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2525년 이례로 코버넌트와의 기나긴 전쟁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스파르탄 대원들은 원래 계획대로 에리다누스 행성계 일대를 비롯해 각종 이주행성에 산재한 반란군들과 연일 전투를 벌이며 이들을 완벽하게 진압,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단일 체제에 안정을 안겨다주는 데는 크게 공헌했을지 몰라도, 반란군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자 다양성을 존중하는 내곽 이주행성 주민들 일부로부터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코버넌트와의 전쟁으로 인해 인류는 점점 멸망이라는 벼랑 끄트머리까지 밀렸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스파르탄 대원들을 양성하는 도중 코버넌트와 전쟁이 터지면서부터 프로젝트의 최종 목적이 '반란군 진압'이라는 다소 무자비한 의도에서 '인류 수호'라는 고귀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완전히 뒤바뀌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대원들이 싸우는 명분 또한 다소 정당화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사람이 아니라 외계인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다 보니, 이제까지 사람에게만 적용되던 기존의 윤리관 따위에 거슬릴 요소가 없다시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섯 살 밖에 되지 않는 어린 아이들을 납치하여 고된 훈련을 받게 하고 결국에는 수술을 도중 절반을 죽이고 불구로 만들었다는 비윤리성에서 대원을 구해준 이들은 열심히 은폐를 해댄 해군 정보국도, 영웅을 열렬히 환호한 세인들도 아니라 코버넌트였습니다.
스파르탄-II 프로젝트의 책임자이자 스파르탄 대원들의 어머니와도 같은 인물인 핼시 박사는 프로젝트 시작 초기부터 양심의 가책에 시달려 왔습니다. 앞에서도 누누이 말했다시피, 여섯 살 난 어린 아이들을 징집했던 가장 근본적인 점에서부터 이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게 하고 해군 정보국의 독촉에 못 이겨 위험도가 극도로 높은 수술을 거치게 하던 때까지, 박사는 지치다 못해 환멸감까지 받아왔습니다. 자신이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당사자였기에 결국에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라도 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어찌되었든 핼시 박사는 '소수를 희생하여 인류 전체를 구원한다'는 대의명분을 지고서 그 믿음 하나로 버티며 계획을 쭉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함락되지 않을 성 싶었던 리치 행성마저도 무너지고 수많은 목숨이 한줌 재로 사라지게 되자, 그간 마음속에 억눌러 왔던 후회가 터져나오고 맙니다.
- 스파르탄 프로젝트에 동원할 아이들을 선별하러 나선 중에 핼시 박사가 젊은 시절의 키예스 중위에게 귀띔하길, 언젠가는 이 아이들이 국제연합 우주사령부나 구축함 함대, 해군 중위 수천 명, 심지어는 자신보다도 더 유용한 존재로 거듭날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그 말대로, 종국에 가서는 이들이 인류를 구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렇다고 해서 스파르탄 대원들에 얽힌 신화가 여기서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필라 오브 어텀이 무작정 코버넌트 함대의 추격을 피해 달아난 이후, 스파르탄-117은 신비에 휩싸인 선조의 고대 유적인 '헤일로'에 도착해 그곳에서 단신으로 코버넌트와 맞섰으며, 결국에는 헤일로를 파괴하여 뜻하지 않게도 뒤를 쫓아온 코버넌트 함대까지 사실상 모조리 격멸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는 헤일로 전투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소속 생존자들과 힘을 합쳐 코버넌트 기함을 탈취, 리치 행성이 있는 엡실론 에리다누스 행성계까지 돌아오는 데 성공합니다. 스파르탄-117은 다시 리치 행성 지표로 내려가 생존한 소수의 대원과 다른 생존자도 찾아 힘을 합치는데, 그와 동시에 코버넌트 대규모 함대가 지구로 향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서 이를 막고자 또 다시 작전에 들어갑니다.
리치 행성 함락으로부터 반달 정도 2552년 9월 13일, 생존한 스파르탄 대원 다섯 명을 필두로 선제공격 작전이 개시됩니다. 스파르탄 대원 다섯은 리치 행성 전투에서 잃은 동료 대원들의 원한을 갚고자 하는 각오로 코버넌트 수송기를 탈취하여 지구로 향하려는 코버넌트 대규모 함대가 집결한 정거장 내부로 침투해 들어갔습니다. 작전 목표는 정거장에 있는 원자로를 폭파한 뒤 탈출하여 정거장은 물론이고 주변에 집결한 코버넌트 함대까지 모두 없애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스파르탄 대원 한 명이 전사하고 다른 생존자 둘이 전사했지만 결과적으로 계획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원자로가 폭주하여 정거장 전체와 집결해 있던 약 오백 척에 달하는 대규모 함대가 모조리 파괴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원들은 리치 행성 전투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고 다시 한 번 위기에서 지구를 구해냈습니다.
생존 스파르탄 대원들은 지구로 귀환한 뒤에도 2553년 3월을 기해서 기나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투에 몇 차례 더 참가했습니다. 선제공격 작전에서 살아남은 코버넌트 함선 열세 척으로 구성된 소규모 함대가 지구를 침공해 오면서 벌어진 1차 지구전투에서부터, 헤일로와 같이 선조가 남긴 실드 월드에서 벌어졌던 오닉스 전투, 그리고 코버넌트 쇠락의 길에 접어들면서 내전으로 인해 상헬리가 떨어져 나와 인류와 동맹을 맺은 시점부터 전개된 2차 지구전투, 인류-코버넌트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이로써 코버넌트를 몰락하게 했던 아크 전투에 이르기까지, 리치 행성 전투 이후로도 대원들의 앞에 펼쳐진 길은 험난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스파르탄 대원들은 끝까지 맡은바 임무를 완수했으며, 결과적으로는 풍전등화의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인류를 구원해 내는데 크게 한 몫을 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들은 무사히 귀환하지 못했습니다. 최전선 너머에서 비밀 작전을 수행하다 2552년 이후 사실상 전원 실종되어 버린 그레이 팀 소속 대원 셋을 포함해, 오닉스 전투 끝에 핼시 박사와 함께 실드 월드 내부에 갇혀버린 스파르탄-104, 058, 087, 그리고 아크 전투 끝에 탈출하던 도중 탑승하던 프리깃함이 파손되는 바람에 지구로 귀환하지 못하고 정처 없이 우주를 떠도는 신세가 되어버린 스파르탄-117에 이르기까지,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삼십 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전투를 벌인 끝에 살아남은 소수의 대원들은 당당히 귀환하여 영웅 대접조차도 받아보지 못한 채 제각기 우주 저편에 뚝뚝 떨어져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습니다. 이로써 그간 실종으로 처리된 대원들 중 '진짜 실종된' 대원들과 더불어 전후에 생존한 대원들 역시 대부분 똑같이 실종으로 처리되고 말았습니다.
"헤일로" 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선조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겹치자면 스파르탄 대원들에 얽힌 이야기는 그저 자그마한 일부분에 불과할지 몰라도, 위에서처럼 쭉 살펴보면 스파르탄 대원들이 얼마나 발자취를 많이 남겼는지 잘 드러납니다. 비록 가상의 인물이지만 경의를 표한다 해도 이상하지 하지 않을 정도로, 대원들이 쌓아온 업적은 실로 대단합니다. 전쟁이 끝난 지 삼 년이 지난 2556년 9월 25일, 스파르탄-117 "마스터 치프"가 살아온 생애와 전설을 기리고자 국제연합 우주사령부 교향악단에서는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스파르탄-117 한 인물의 삶을 조명한다고는 하나, 이 뒷면에는 어느 날 느닷없이 납치당해 특수 부대원으로 성장해, 제각기 달리 살았을 지도 모르는 인생 전부를 군 복무에 바치며 인류를 위해 투쟁하고 또 쓰러져 갔던 수많은 스파르탄 대원들을 기리는 뜻 또한 함께 깃들었으리라 봅니다.
글머리에서 마스터 치프 위주로 글을 쓰지 않고 다른 대원들에 얽힌 이야기를 모두 하면서 그 배경도 함께 설명하겠다고 했습니다. 쭉 써놓고 보니 얼추 그에 맞게 써내려갔지 싶습니다. 원래 헤일로라는 게임 자체가 마스터 치프라는 한 명의 영웅을 중심으로 한, 소위 말하는 '미국식 영웅주의 서사시'와 비슷한 줄거리이다 보니 여차저차해도 결국에는 마스터 치프에 얽힌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끝을 맺게 됩니다. 하지만 게임 제목이 암시하듯 국제연합 우주사령부와 코버넌트 사이에 각축전이 벌어지는 배경은 모두 선조와 긴밀하게 관계를 맺은 곳이 대부분이고, 게임에 드러나는 부분보다도 드러나서 반짝이는 주연들을 받쳐주고자 설정 속에만 조용히 묻힌 요소 또한 세지 못할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열렬한 팬층에서는 삼부작만으로 게임을 마무리 지어 버리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다고들 말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LA에서 열렸던 E3 2009에서 번지 스튜디오는 "헤일로: ODST"에 뒤이을 새로운 헤일로 후속작, "헤일로: 리치"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팬들에게는 올 가을 출시를 앞둔 헤일로: ODST 관련 정보만으로도 숨이 벅찬데 2010년에 또 다른 후속작이 발매된다고 하니 즐거운 비명의 연속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헤일로: 리치 공개 트레일러 한 편 속에 든 정보를 토대로 추측해 보건데, 이번 후속작에 나올 스파르탄 대원들은 마스터 치프도, 그간 소설이나 그래픽 노블 속에 등장한 대원들도 아님이 분명합니다. 스파르탄-III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과 더불어 위 글에서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스파르탄-II 프로젝트가 종료된 뒤 이차로 스파르탄-II 대원들을 더 양성하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대전 격투게임 DOA에 등장했던 니콜-458이 있으며, 나머지 대원들에 관한 정보는 아직까지 비밀에 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헤일로: 리치 트레일러에 등장하는 두 스파르탄 대원에 붙은 '259'과 '320' 번호로 추측하건데, 이들은 소설상에도 일절 등장한 적이 없는 인물일 겁니다. 리치 행성 지표에서 벌어진 전투를 다루자면 스파르탄-104, 086, 043을 포함한 기존 대원들이 스파르탄-117과 나머지 생존자들과 합류하는 장면이 등장할 테며, 그리되면 세 번째 헤일로 소설 "선제공격 작전" 줄거리와 거의 동일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될테니 말입니다. 게다가 번지 스튜디오 역시 이미 드러나서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가지고서 게임을 제작, 차기작에 실리는 비중과 신선도를 반감하는 우는 결코 범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그동안 헤일로 삼부작의 줄거리를 맡아왔으며, 다섯 번째 헤일로 소설인 "하베스트 행성 전투"의 저자인 조셉 스테이튼이 이번에도 실력을 발휘하여 이야기를 멋지게 이어주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상헬리 특수부대 사령관 르타스 바둠이, 스파르탄-I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존슨 원사, 가정을 꾸리고파 하는 퇴역 스파르탄-II 대원 마리아, 1차 지구 전투에서 아비규환이 된 뉴 몸바사 한복판에서 있었던 한 기자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이야기를 엮어 출판했던 헤일로 첫 그래픽 노블에 이어, 헤일로 2 에서 3 사이에 마스터 치프와 지구에서 있었던 일을 그린 "헤일로: 업라이징", 아직 출판하지는 않았지만 '헤일로: ODST' 에 등장하는 두 대원 더치와 로미오에 얽힌 뒷이야기를 담을 예정인 "헤일로: 헬 점퍼즈", 그리고 극비리에 작전을 수행하는 스파르탄 부대와 소속 대원들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는 "스파르탄 블랙" 등, 헤일로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어들임에 따라 세계관도 여전히 함께 덩치를 키워가는 중이기에, 그 속에서 스파르탄 대원들의 전설은 계속해서 현재 진행형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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