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온臥溫 가는 길
보라색 눈물을 뒤집어쓴 한그루 꽃나무*가 햇살에 드러
난 투명한 몸을 숨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궁항이라는 이름을 지닌 바닷가 마을의 언덕에는 한 뙈
기 홍화꽃밭**이 있다
눈먼 늙은 쪽물쟁이가 우두커니 서 있던 갯길을 따라 걸
어가면 비단으로 가리어진 호수가 나온다
* 멀구슬나무라고 불리며 초여름에 보라색 꽃이 온 나무에 핀다.
꽃이 진 뒤 작은 도토리 같은 열매가 앵두 열듯 열리는데 맛은
없다. 겨울이 되면 잎 진 가지에 황갈색 열매가 남는다. 눈이 온
산야를 덮으면 먹을 것이 없어진 산새들이 비로소 이 나무를 찾
아와 열매를 먹는다. 남녘 산새들의 마지막 비상식량이 바로 멀
구슬나무 열매다. 깊은 겨울 누군가를 끝내 기다려 식량이 되는
이 나무의 이미지는 사랑할 만한 것이다.
** 삼베나 비단에 분홍빛 염색을 할 때 쓰인다. 연분홍 치마가 봄
바람에 휘날리더라, 할 때 연분홍의 근원이 바로 이 꽃이다. 김
지하 시인은 천연 염색으로 빚어진 한국의 빛들을 꿈결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홍화로 염색한 이 분홍빛이야말로 꿈결 중의
꿈결이라 할 것이다.
와온 바다
곽재구, 창비시선 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