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살
채식주의자와
합석하여 소를 구웠다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말하더군 그래서
안 들은 걸로 하는 귀
핏물을 머금은 살을 내밀고 자, 지금이야 권하며
닫힌 귀를 본다 소고기를 먹지 않는 귀라니
믿을 수 없어 꼬집어본다 소고기를 먹는 것이
꿈은 아니겠지 빨간 고기를 자주 먹으면
사람이 맹렬해진다 고기라는 게 그래
이 부드럽고 선량한 살을 가진
소에게도 사나운 성격이 있다
숯처럼 달아오른 네 표정
안 본 걸로 하는 눈
살칫살 갈빗살 치맛살
허리며 등이며 손을 대며
짐짓 가르친다 큰아버지가 정형을
했는데 아버지라는 게 그래 맹렬한 믿음 사나운 확신
몸에 좋다는 것을 먹으며 최대한 오래 살았다
채식주의자의 앞접시로 기름진 안개가 손을 뻗는다
안 먹은 걸로 하는 입
주문한다 무엇이든 자, 지금부터 다시
얼룩배기 소처럼 선량하게 너에게
몸에 좋은 것을 권유할 뿐인데
맹목적이며 착한 믿음과 확신이
축사를 사납게 채우고
큰아버지는 당뇨와 심장병을 오래 앓았다
상추를 든 채식주의자를 쳐다보며
국에 뜬 선지의 등에
젓가락을 꽂는다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서효인, 문학동네시인선 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