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담그는 노인
언제고 저 노인도 죽고
말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하나도 안 슬프다
장례 절차며 소식을 들은 다른 노인이며
남보다 못한 친지들이
생각나고 지지난 가을께에 아니 그보다 오래전
아무도 없는 집에 굴 들어간 김장김치를 보낸
노인에게
화를 냈었다 다니는 회사 앞 사거리 굴다리에서
전화통을 붙잡고 그러지 좀
말라고 화를 냈었다 노인에게
노인은 알았다고
그런 생각은 하나도 안 슬프다
친지들은 말했다 손이 빠른 여자라고
노인은 노인이 될 때까지 혹은
죽을 때까지 손이 빠른 채로
가을이다
이윽고 겨울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미칠 것만 같다고
나랑 같은 성씨의 인간들의 김치 씹는 턱을 생각하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고
노인에게
말해봐야 소용없다 노인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지 죽음으로 쌓아올린 굴껍질 같은
노인의 시아버지와 남편의 묘가
나란히 붙어 손자를 기다린다 그런 생각을 하면
미쳐 돌아버릴 것 같고 꼭지가 열리고
그때 그 김치는 냉장고 구석에서 쉬다못해
유기된 시신처럼 썩고 있다 나는
오른뺨과 왼뺨을 번갈아 내민다 손이 빠른
노인에게
언제든 이러다 나도 죽고
말겠지 손 빠른 노인보다 빠르게 죽는다면
그건 슬플 것이다
친지들이 붌쌍한 우리 할매를
업고 다닐 것이다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서효인, 문학동네시인선 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