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세인트루이스는 아름다운 외관과 잘 알려진 그 멋드러진 이름에 비하면 치안이 매우 좋지 않은 도시였다. 어느 정도냐면 디트로이트시나 뉴욕 할렘가를 재치고 매년 미국에서 가장 강력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도시 1위로 선정이 될 정도였다. 정확히는 북부 세인트루이스가 그랬는데, 세인트루이스의 버스 정류장들이 모여있는 델마대로를 중심으로 남부 세인트루이스는 백인 중산층 가정이 많이 사는 반면, 북부 세인트루이스는 흑인 빈곤층이 많이 사는 동네였기 때문이었다.
세금 하나는 기똥차게 걷어내고 사용하는 미국답게 세인트루이스도 다른 미국의 독립시처럼 주민들로부터 걷어낸 재산세로 치안인력을 배치하여 치안을 유지하는데, 당연히 돈 많은 사람들이 사는 남부 세인트루이스의 주민들은 재산세를 더 많이 내고, 그렇게 되면 치안인력은 당연히 그 구역에 많이 배속이 된다. 반면에 빈곤한 북부 세인트루이스는 재산세를 낼 여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으니 자연스레 배치할 치안 인력이 줄어들고, 그 때문에 치안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인류 문명의 이기가 극도로 발달했던 연합전쟁 이전 시기에도 백인, 흑인 인종 차별 문제와 그로 인한 각종 강력범죄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동네였다. 심지어 이 시기엔 바이오로이드 출신 인간보다 여전히 흑인이 차별받는 시기이기도 했었다. 애초에 바이오로이드 출신 인간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미모가 빼어나게 태어나니 인종차별 할 건덕지 조차 없었지만. 그래서 자신이 경찰이라 굳이 이 지역에 배치되는 게 아닌 이상 이 곳에 갈 일 조차 없을 정도로 그 명성은 미국에 사는 바이오로이드 커뮤니티 사회에서도 악명높았다.
인류 문명이 연합전쟁으로 아주 초전박살이 난 후에는 어느 곳을 가던 세인트루이스 꼴이었지만 말이다.
“유미님, 안테나 높이는 이 정도면 될까요?”
“잠시만요...”
“으음~... 조금만 더 높혀보도록 하죠. 이대로라면 주파수는커녕 신호 자체도 잡히질 않겠어요.”
“알겠습니다!!”
터치패널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하던 유미는 174번 T-1 고블린에게 철충 신호 유도기의 안테나를 좀 더 높이 올려줄 것을 요구하였다. 철충 신호 유도기에 연결된 터치 패널에 주파수는커녕 신호 감도가 0.1%조차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와이오밍 주 데빌스 타워에 설치한 철충 신호 유도기는 신호 감도가 금방 잡힌 반면에 높은 고도의 지형이 없는 세인트루이스는 신호 감도를 잡는 것부터가 고된 일이었다. 그렇다고 높은 빌딩이 있냐 물어보면 두 차례의 연합전쟁과 멸망 전쟁으로 인하여 멀쩡한 빌딩이 거의 남아나지 않았다.
펙소 콘소시엄이 아무리 인류가 멸망할 때를 대비해서 일곱 레모네이드 비서들을 대기시켜놓고 미국의 인프라를 재건 시켜 나가도록 지시하였지만, 세인트루이스는 대학 도시라는 것 외에는 펙스가 복원하기에는 큰 매리트는 없는 도시였다. 앞서 말했듯 멸망 전부터 치안은 꽝이었기에 그다지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도 아니었고, 대학 도시 답게 대학생들과 그 임직원, 교직원들이 도시의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곳이었는데, 인간이라곤 위대하신 오드리스콜 총재님 한 분 빼고 다 죽은 마당에 바이오로이드 따위가 대학에 가서 뭘 배우려고.
설령 정말 나중에라도 펙스가 교육 기관을 복원해도, 그것은 오로지 펙스에, 펙스에 의한, 펙스를 위한 세상만을 가르치는 사상 주입 교육 시설이 될 게 불 보듯 뻔했다. 유미는 그런 세상이 오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철충 신호 유도기를 설치하는 것도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뭐 어쩌겠나? 그 위대한 콜름 오드리스콜 펙소 콘소시엄 총재님의 위대하신 비서가 내리는 명령인데. 인간은커녕 오메가의 말 마저도 거절할 권리 따위는 자신에게 없었다.
자신의 한탄스러운 처지를 알기나 하는 건지, 와이오밍 주에서 만난 저 174번 T-1 고블린은 앙헬 리오보로스의 얼굴을 한 것과 다르게 싹싹하면서도 건실한 청년같은 인상을 내뿜으며 유미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그녀의 지시를 한치의 의심도 없이 성심성의껏 따라주었다. 거기다가 고블린들도 고블린 나름이라 저마다 체격도 인상도 제각각인데, 저 174번 T-1 고블린은 유독 순둥순둥하고 수려한 인상을 풍기고 있는지라 더욱 이질감이 짙게 느껴졌다.
과연 그 앙헬 리오보로스의 유전자를 쓴 T-1 고블린이 맞나 싶을 정도다.
“유미님, 이 높이가 최대입니다! 여기서 더 이상 올릴 수 없습니다!”
“그렇군요,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흐으으음...”
174번 고블린이 철충 신호 유도기의 안테나를 최대 높이로 세우자, 유미는 다시 한 번 터치 패널을 조작해 철충 유도 신호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신호가 영원히 안 잡혔으면 좋겠다.’
최장 30m 까지 올라간 안테나 마스트에 연결된 터치 패널을 다시 조작하면서도 속으로 철충 신호가 안 잡히길 바랐다. 하지만 여기서 안 잡히면 기껏 설치한 안테나를 다시 내리고 위치를 옮겨서 케이블을 연결하고 안테나를 세우고 하는 과정을 반복해야했다. 언제까지? 철충 신호가 잡힐 때까지. 만약에 세인트루이스에서 철충 유도 신호를 잡질 못한다면 아예 지역을 바꿔 움직여야만 했다.
유미는 펙소 콘소시엄을 위해 그런 수고를 들이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귀찮아서가 아니라, 펙스의 흉악스러운 야욕 따위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싫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원정군이 절대 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철충으로 인해 원정군은 필연적으로 피해를 보게 될 것이 분명했다. 유미는 원정군이 조금이라도 피해를 보면 펙스 본진인 동부 전선으로의 진격에 차질이 생길까 그게 걱정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원정군은 일부러 철충 신호 유도기를 설치하는 자신들을 선제공격하지 않았다.
유미 뿐만 아니라 베타까지 나서서 철충 신호 유도기에 대한 정보를 연방에 까발린 덕분에 원정군은 진즉에 철충 신호 유도기를 파괴하기 위하여 눈독들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진격 속도를 높혀 선제 타격을 하지 않는 이유는 원정군, 나아가서 연방군의 조력자인 유미의 존재를 숨기고, 펙스가 철충 신호 유도기에 대한 존재를 모르고 있음을 눈속임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기 때문이었다.
적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은, 때론 적의 의심을 사기 충분한 행동이었다. 통신부대 작전과장으로 있다가 소령으로 전역한 유미도 잘 알고 있었다.
단지, 그걸 알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주파수 신호가 잡히긴 잡히네요.”
“하지만 이걸론 어림도 없어요. 출력을 최대로 올렸는데도 철충 신호 대역 주파수에 연결이 끊겼다, 잡혔다 하는 걸 보면 철충들이 정상적으로 응집하지 않을 게 분명해요. 아니면 잘못해서 녀석들이 우릴 공격할 지도 모르구요. 확실하게 주파수 대역이 잡혀야만 합니다.”
“아무래도 안테나의 높이 문제 같은데, 위치를 바꿔볼까요?”
“예, 그렇게 해야할 것 같군요. 더 높은 지대를 찾아야만 하겠어요.”
“하지만 무슨 수로 안테나를 높이 세울 장소를 물색할까요? 여긴 반경 수 백 킬로미터 안으로 산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데...”
“아니면 저긴 어떻습니까?”
“어디요?”
174번 T-1 고블린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무너져 내린 빌딩들 사이로 아직 꼿꼿히 세워져 있는 마천루 하나. 다른 빌딩들은 진즉에 다 무너져 내리고 성한 곳이 없어서였을까?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빌딩 하나는 멀리서 봐도 유달리 높아보였다. 다만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속까지 안전할 지는 모르겠다. 일단 멀리서 봐을 때 겉으로 균열이 생기거나 하는 부분은 없어보였다. 철충의 침공에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제법 견고하게 지어진 건물같아 보였다.
“저 정도 높이라면 데빌스 타워랑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옥상에 올라가서 안테나를 다시 세우고 하면 분명 철충 주파수를 잡을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 달리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네요. 우리가 우물쭈물 하다가는 원정군이 미주리랑 아칸소까지 쳐들어올 수도 있을테니.”
“전 대원, 지금하는 모든 작업을 철수하고 저기 보이는 빌딩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옥상까지 올라가서 안테나를 세우고 다시 철충 신호를 잡아보도록 하죠.”
“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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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중 삽화로 사용되는 그림과 사진의 출처는 구글링과 핀터레스트입니다.
라오가 안팏으로 많이 아픈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수 많은 루머들이 나오고 있고, 그 중에선 사실로 확인된 것들도 있기에 현재로선 중과부적인 상황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래도 부디 라오가 이 세상의 마지막까지 함께할 수 있도록 남아줬으면 합니다. 소설은 계속해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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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4.18 01: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