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둘이 만나 투닥거리며 들어간 곳은 부산 서면의 시내의 한 일식집이었다.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소탈하지도 않은, 딱 중도의 미가 느껴지는 시라유리 다운 선택의 식당이렸다.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체리몰딩으로 된 따뜻한 분위기의 식당이 둘을 반겨주었고, 두 사람은 식당의 가장 안 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가장 안 쪽 자리였지만, 식당의 입구부터 테이블과 손님들, 그리고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이 잘 보이는 자리였다.
라인하르트는 이 또한 그녀라면 그녀다운 선택이라 생각하며 고분고분하게 자리에 앉았다. 식당은 평범한 일본식 가정식 식당이었고, 덮밥과 소바, 튀김과 주먹밥에 곁가지 반찬들이 주 메뉴였다. 둘은 덮밥과 소바에 가운데에 덴뿌라와 가라아게를 시켜놓고 느긋하게 저녁식사를 즐겼다. 새해가 지나고서 아직 추운 날씨가 가시지 않은 연초였기에, 잘 어울리는 따뜻한 메뉴가 아닐 수 없었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수업은 들을 만 하고?”
“수업 들을 때마다 항상 늘 새로운 기분이야. 항상 알렉산드라 선생님이랑 알파 선생님 두 분다 항상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 주시니깐.”
“흐음~ 알파 씨랑 알렉산드라 씨가 잘 가르쳐주신다고?”
“... 현대사랑 법과 정치 과목 정도는 나도 잘 가르칠 자신 있는데.”
“그런 걸로 질투하는 거야, 누나는?”
“글세, 나 보기보다 꽤나 속 좁은 여자거든.”
“우리 동생, 다른 사람들에게 오구오구 받고 있을 생각하면 절로 질투가 나버리는 걸?”
라인하르트는 시라유리를 보며 절로 식은 땀을 흘렸다. 눈과 입은 저리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누나는 자신에 대하여서는 생각보다 질투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리히터는 그녀가 자신의 또 다른 유모들인 알파나 요안나에게도 그런 질투심을 은연 중에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리히터는 가방 안 깊숙한 곳에 들어있는, 오늘 아침에 등교하기 직전에 집에서 엄마에게 받았던 활력제가 괜히 더욱 신경쓰였다.
시라유리는 그런 라인하르트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싱긋 웃어보이며 능숙하게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넘겼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내용 수업 들었어?”
“현대사 수업에서는 은하수 쿠데타 사건이랑 키리시마 스캔들에 대해서 배웠고, 법과 정치 수업에서는 대한민국 헌정 역사에 대해서 배웠지.”
“은하수 쿠데타랑...”
“키리시마 스캔들이라...”
“누나도 알아?”
“알지, 잘 알다 마다. 워낙에 유명한 사건들이었으니깐.”
“물론 나는 내가 직접 겪었던 사건도 아니고, 애초에 그 시대엔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말이야.”
“누나는 인류가 멸망하고 난 후에 라비아타 통령님이 유전자 씨앗을 복원해서 태어났다고 했으니깐.”
“그럼 그런 중요한 역사 사건들도 유전자 씨앗의 정보에 다 들어가 있는거야?”
“그렇진 않아. 그건 내가 찾아보고 알게된 사건들이니깐.”
“안수월 대장님이랑 비슷한 경우지. 그 분도 멸망 전 역사에 대해선 한 머리 하시니깐.”
“그렇구나.”
“그 키리시마 스캔들 말인데, 혹시 어디까지 배웠니?”
“어디까지 배웠냐니?”
“누가,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일어난 사건인지...”
“... 또 그 사건에 누가누가 연관이 되어있는지.”
“글세...”
“일단 내가 배운 걸로는 그 당시 일본국에서 키리시마라는 의원이 바이오로이드 인간에 관한 차별 정책을 발의하고, 동시에 하토모리 총리를 암살한 것이 사건의 시작인 것으로 배웠어.”
“그 당시 하토모리 총리가 사망하고 나서 부총리 체재로 가다가 키리시마 의원이 총리가 되고나서 급진적으로 바이오로이드 차별 정책을 통과시키고, 기존에 수사 중이던 바이오로이드 실종 사건들을 모두 미해결 상태로 종결시켜버렸지.”
“그 과정에서 야쿠자 조직 카사하네구미랑...”
“덴세츠 엔터테인먼트가 키리시마 중의원과 뒤에서 유착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그렇게 배웠어.”
“맞아, 카사하네구미는 키리시마 의원에게 의뢰를 받고 킬러를 보내 하토모리 총리를 암살을 시도하였고, 덴세츠 엔터테인먼트는 일본이 국제 사회에 바이오로이드 인권을 철폐하라는 목소리를 낼 수 있게 UN의 상임이사국이 될 수 있도록 뒤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었지.”
“아무리 국제연합이 만장일치제도라 해도, 상임이사국 한 국가의 영향력은 무시 못할 테니깐 말이야.”
“왜 그런 일을 벌어진 건지도 알고 있니?”
“그 당시에 키리시마 의원은 일본이 강력한 힘을 가졌던 시절의 국가로 회귀하기를 원했고, 덴세츠 엔터테인먼트는 바이오로이드를 인간이 아닌 상품이나 노예로 다룰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원했다고 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상호 간에 이득을 위해서 손을 맡잡은 거라고 배웠어. 중간에 있는 카사하네구미라는 야쿠자 조직은 키리시마가 하토모리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꾸준히 커넥션을 해왔다고 그렇게 배웠고.”
키리시마 중의원은 일본의 헌법을 개정하고 자위대를 군대로 바꾸어 일본이 미국 못지 않는 강력한 국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던 극우 인사였다.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일이 보통인 자유민주당 소속의 의원들의 정치적 성향을 감안하더라도, 키리시마 중의원의 성향은 꽤나 파격적이었는데,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이 NATO를 탈퇴한 것도 키리시마 중의원을 위시로 한 정치 계파들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일본이 NATO를 탈퇴한 것은 꽤나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움직임이었다.
일본은 UN이 NATO를 견제하고 있음을 애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러나 NATO 최대의 가입국이자 UN의 상임이사국인 미합중국의 눈치를 안 볼 수는 없었기에 UN이 NATO에 대하여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퇴출당한 중국의 뒤를 이어 차기 상임이사국들의 후보가 나오던 가운데, 일본은 UN이 견제하는 NATO를 과감히 탈퇴하는 초강수를 둔 것이었다.
당연히 상임이사국 후보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의 견제 또한 분명히 있었다. 이 시기에도 여전히 한국과 일본은 독도 문제와 과거사 청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골머리를 썪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상임이사국 진출을 통해 정치 외교적으로 대한민국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할 기회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를 모를 리 없었던 대한민국도 일본 못지 않게 UN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했다.
거기에 평소에도 바이오로이드 인간들에 대해 차별의 시선을 보내고 있던 키리시마 의원에게 덴세츠 엔터테인먼트가 일본이 UN 상임이사국으로 나갈 수 있도록 뒤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는 대신, 법적으로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인권을 철폐하고, 나아가서 국제 사회에 일본이 反바이오로이드 인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뒤에서 움직이기 위하여 정경유착을 벌인 것이었다.
즉, 키리시마는 대전간기 시절의 일본 제국으로의 회귀를, 덴세츠 엔터테인먼트는 바이오로이드를 인간이 아닌 돈이 되는 상품으로 공식적으로 규정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이 이후에 벌어진 제1차 연합전쟁에서 아예 국가 단위로 기업군에 가담하여 전쟁을 벌인 유일한 국가가 일본이었음을 생각해본다면 참으로 소름 끼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기업은 그렇게까지 한 나라를 뒤에서 조종해서라도 바이오로이드들을 노예로 부리고 싶어했을까?”
“노예도 아니야. 상품이지.”
“기업들은 예나 지금이나 바이오로이드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았으니깐.”
“어째서?”
“돈이 되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그런 상황에서 생명을 창조해내는 기술인 만큼 정부가 기업들을 엄격하게 감독하고 있으니, 기업으로선 당연히 정부를 좋지 못하게 보고 있었고.”
“그런데 차기 정부 수반이란 사람이 기업이랑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좀 쉬워지겠지. 어떻게든 이 사람이 정권을 잡게 하고, 그 사람이 정치적 목소리를 더욱 쉽게 낼 수 있도록 뒤에서 몰래 도와주는 거야.”
“그게 바로 정경유착인거고.”
“그렇구나...”
“경우는 좀 다르지만, 너가 오늘 배웠던 은하수 쿠데타 사건도 별반 다를 바는 없어. 단지 거기는 기업이 아니라 군대가 정부수반이랑 유착관계였다는 차이일 뿐이지.”
은하수의 쿠데타.
키리시마 스캔들과 함께 현대사 수업 시간에 배운 또 다른 사건.
보수당의 대통령이 정권을 장악하고 장기 집권하기 위하여 계엄령을 선포하고 육사 출신 사조직을 이용하여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려다가 실패하여, 정권과 유착관계에 있던 육사 사조직 은하수가 독단적으로 친위 쿠데타를 벌이려고 했던 사건. 군인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 사건이었으며, 이 때문에 육군사관학교는 키리시마 스캔들의 키리시마 의원처럼 사실상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20세기부터 이어져온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군사를 동원하여 정권을 찬탈하려고 한 네 건의 사건에서, 육군사관학교는 변두리던 중심이던 항상 연관되어 왔었다. 그들의 엘리트 의식은 군부 독재의 잔재였으며, 군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대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였다. 이들의 엘리트 의식은, 수 십년이 지나도록 대한민국 국군의 발전을 저해한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었다고 봐도 부방했다.
여담이지만, 서울로 진격하던 은하수의 반란군을 저지하고 진압하였던 계엄사령관이, 바로 자신들 벨리코프 형제의 작은 아버지인 민하준 원수였다.
은하수의 반란군이 합동참모의장의 공관을 습격하여 죽이는 바람에 계엄사령관인 합참의장의 권한이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이었던 민하준 원수에게 넘겨졌기 때문이었다.
계승서열 두 번째인 육군참모총장은 애초에 은하수의 수장이었다.
“다 같이 평화롭게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지금의 오르카처럼.”
“그럴 순 없어.”
“어째서?”
“각자의 가치관과 추구하는 이익의 방향이 다 다르니깐.”
“지금이야 다들 철충와 펙스와의 전쟁을 대비하고, 인류 재건이라는 목표로 뭉쳐있지만, 인류가 다 재건되고 난 후의 사회는 그렇지 않을 거야.”
“굉장한 격동의 시대가 도래하고 말겠지.”
“안 그럴 수도 있잖아.”
“아니, 이건 필연적으로 벌어질 일이야. 그 누구도 못 막아.”
“되게 염세적이네, 누나는.”
“나 오래 봤으면 알만 하지 않니?”
“그런 것 만큼은 알고 싶지 않은데.”
“...”
시라류이가 도끼눈을 뜬 채로 라인하르트를 주욱- 쳐다봤다.
뭔가 묘하게 불만이 있는데,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 뭐, 뭐?”
“난 잘못한 거 없다?”
“...”
“하아아아... 우리 라인하르트.”
“통령님 닮아서 열정이 넘치는 건 좋지만, 때로는 현실적인 면도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난 충분히 현실에도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흐음...”
“그래 좋아, 그러면 내가 수업 시간 때 가르쳐주지 않았을 내용 하나를 가르쳐주도록 하지.”
“뭐?”
“키리시마 스캔들에 대해서 배웠을 때 연관되어있던 사람들이 키리시마 총리, 요시미츠 회장, 그리고 카사하네구미의 후쿠다. 이렇게 셋이라고 배웠을거야, 맞지?”
“응, 그렇게 배웠어.”
“그럼 있지...”
“그 셋 말고도 키리시마 스캔들에 연관되어있는 조직이 더 있었다는 거 알아?”
“... 뭐?”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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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아예 그냥 키리시마 게이트라는 하나의 사건으로 재구성을 해봤습니다. | 24.01.19 18: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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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1.19 18:3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