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직전. 갑자기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서 옛날에 누군가가 가져다준 술을 따서 술잔에 따라 마셔보았다.
맛이 없었다. 그러나 욕망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욕망은 전혀 충족되지 않았다.
그때 옛날에 함께 술을 마신 누군가의 말을 떠올렸다.
술은 맛 때문에 먹기도 하지만 분위기 때문에 먹기도 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그 말을 따라보기로 했다.
술과 술잔을 가지고 방을 나섰다.
“무슨 일이신지요, 주인님?”
방을 나서자마자 방 밖에서 나를 지키는 바이오로이드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고작 술 마시겠다고 밖으로 나서는 나를 용납할까 싶어서 거짓말을 할까 했지만, 그래도 나를 위하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기 싫어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응. 그냥 술이 마시고 싶어져서. 잠시 갑판에서 한잔할까 싶어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소첩이 동행해도 될는지요?”
다행히 그녀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옛날에 함께 술을 마시던 누군가가 했던 말을 하나 더 떠올렸다.
술은 함께 마시는 사람에 따라서 맛이 달라진다고 했던가.
내 눈앞에 있는 자와 함께 술을 마시면 술이 맛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그것도 좋은데……같이 한잔할래?”
그녀는 조금 놀란 듯 했다. 그러나 그녀. 금란은 살포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주인님께서 원하시온데 어찌 거절할 수 있겠사옵니까.”
* * *
아무것도 깔지 않은 갑판 위에 앉아서 간단한 안주와 함께 술을 마셨다.
술은 귀한 것이라곤 하나 내 입에는 썼고, 안주는 누구나 구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가 채워짐을 느꼈다.
그것은 가득 찬 달 덕분이기도 하고, 소금 냄새를 가득 품은 바닷바람 덕분이기도 하고, 넋놓고 듣게 만드는 파도 소리 덕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앞에 함께 술잔을 기울여주는 이 덕분이었다.
은색 달빛 아래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나에게 맞춰서 술잔을 기울이는 금란.
술은 분위기에 마시고, 사람에 의해 취한다고 했던가. 나는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녀의 모습만으로도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고, 그녀만으로도 취할 것 같았다.
금란은 술 한잔을 기울인 후에 달을 올려다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술은 본디 달을 담아 마신다고 하지요. 술에 담아 마시기에 좋은 달이옵니다.”
금란을 따라 달을 올려다보았다. 금란처럼 무언가 풍취 있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가득 찬 달과 금란에 경도되어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금란이 이어 말했다.
“달은 오래전부터 많은 이의 술벗이었지요. 달을 벗 삼아 술잔을 기울인 이는 많으나 그 중 으뜸은 이백이란 이일 것이옵니다.”
“이백?”
“당나라의 시인으로서 별명은 시선(詩仙). 시가 신선의 경지에 올랐다는 자이옵니다.”
“어떤 시를 지었기에 그런 평가를 받았어?”
“이백은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그대로 시가 된다고 할 정도로 시재가 뛰어난 자였다고 하옵니다. 입에서 흘려 바람에 실어보낸 시는 많으나 다행히 종이 위에 남긴 시도 많은데 제가 그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여기는 시는 이것이옵니다.”
금란도 취한 걸까. 그녀의 말은 평소와 달리 감성적이었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열고 시 한 수를 읊기 시작했다.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 친한 이 없이 홀로 술을 따르네.
잔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며, 그림자를 마주하니 셋을 이루었구나.
달은 본디 술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단지 나를 따를 뿐이구나.
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하여, 이 봄 가기 전에 즐겨보노라.
내가 노래하면 달은 거닐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는 덩실대니.
깨었을 때는 함께 기쁨으로 사귀고, 취한 후에는 각자 흩어지는구나.
얽매이는 것 없는 연 길게 맺어, 아득한 은하수에서 다시 만나세.
시 한 수를 읊은 금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마지막 한숨까지도 마치 시의 일부분 같았다.
잘 쓴 시는 무언가 감정적으로 동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나, 지금 내 마음을 더욱 동하게 만드는 것은 금란이었다.
“후후. 부족한 실력으로 괜히 주인님의 귀를 어지럽힌 것은 아닌지 두렵사옵니다.”
“아냐. 멋졌어.”
시도 아름다웠지만, 금란은 더욱 아름다웠다.
“‘달 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라는 제목인데 지금 상황에는 맞지 않는 시였사옵니다.”
그렇게 말하며 금란은 나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그러면 지금 상황에 맞는 다른 시를 알려줄래?”
시를 알고 싶기보다는 금란이 읊는 시를 더 듣고 싶었다.
내 말에 금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조금만 더 주인님의 귀를 어지럽히겠사옵니다.”
* * *
서로 술을 주고받으니 많다고 생각되던 술병은 순식간에 비워졌다.
그러나 술병을 비운 우리는 곧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술은 없었으나 달과 바다와 바람과 서로가 있었다.
금란은 술을 마시기 전과 마찬가지로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 금란은 평소에 감고 다니던 눈을 천천히 떴다.
황금색 눈이 은색 달빛 아래에 빛났다.
“괜찮아?”
예민한 감각 때문에 오래 눈을 뜨기 힘들다고 하던 그녀가 걱정되어 물으니 금란은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달빛이 부드럽사옵니다.”
그녀는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오를 정도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후후후.”
그리고 그녀는 웃었다. 어떠한 계산속도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웃음이었다.
“무척이나 기분이 좋사옵니다.”
그녀의 모습을 보다가 나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물었다.
“혹시 술은 처음 마셔봐?”
금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사옵니다. 후우.”
그녀는 술기운이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술은 건강에 나쁘고 감각을 둔하게 한다고 하여 지금까지 입에 대지도 않았으나, 술을 즐기는 선인들이 많아 흥미는 있었사옵니다. 건강에 나쁜 것을 알면서 왜 마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직접 마셔보니 무척이나 이해되옵니다.”
그녀는 언제나 끼고 다니던 장갑을 벗었다. 이 역시도 예민한 감각 때문에 끼고 다니던 것이었다.
“달빛은 부드럽고, 입안은 쓰고, 몸은 뜨겁고, 바닷바람은 시원하고, 짠내가 가득하고, 파도 소리는 고즈넉하옵니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금란의 모습. 그러나 그 모습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처음으로 마신 술이 주인님과 함께라서 기쁘옵니다.”
금란은 황금빛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주인님. 소첩이 감히 주인님께 간청 하나 해도 되겠사옵니까?”
“응. 얼마든지.”
내 말에 금란은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내 어깨에 몸을 기대었다.
“주인님을 느껴보아도 괜찮겠사옵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금란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주인님의 손은 무척이나 크옵니다. 그리고 따뜻하옵니다.”
그녀는 깍지를 풀고 내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대로 자신의 볼에 갖다대고 볼을 비볐다.
“좋은 냄새가 나옵니다. 따뜻하옵니다.”
나는 금란의 볼을 조심스럽게 주물렀다.
“후후후. 기분이 좋사옵니다.”
그녀가 고양이였다면 그릉그릉 소리를 낼 태도였다.
금란이 내 손을 떼어냈다.
그녀는 내 허벅지 위에 올라탄 후 양손으로 내 얼굴을 감쌌다.
“주인님을 더 느끼고 싶사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녀의 축축하고 뜨거운 입술이 내 입술 사이로 파고들었다. 나는 입을 벌려 그녀의 혀를 받아 주고, 내 혀로 그 혀를 맞이했다.
길고 농후한 입맞춤을 끝낸 후 금란이 말했다.
“제 모든 감각이 주인님을 느끼고 있사옵니다. 주인님의 모습, 냄새, 감촉, 맛, 소리가 제 안에 가득하옵니다.”
그녀는 나를 끌어안았다.
“지고의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하옵니다.”
나 역시도 그녀가 느껴졌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내 모든 감각이 그녀를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취해있었다.
나는 그녀를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님?”
금란은 열 띈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금란을……좀 더 느끼고 싶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그녀는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이해했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녀도 마찬가지이옵니다. 소녀를 주인님으로 가득 채워주시옵소서.”
* * *
아침에 일어나니 내 방에는 나 혼자 있었다.
어젯밤에 겪은 일들이 꿈처럼 느껴졌으나 숙취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알 수 없었다.
한참 숙취로 인한 고통을 잠재운 후에 나는 간신히 누군가를 부를 수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금란이 들어왔다.
금란은 꿀물이 올라가 있는 쟁반을 들고 있었다.
“괜찮으시온지요?”
나는 꿀물을 받아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옵니다.”
평온한 그녀의 모습은 정말로 내가 어제 겪었던 일들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확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직접 물어볼까 싶었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멋이 없는 것 같았다. 어젯밤의 일을 깨버리는 것 같았다.
잠시 고민 후에 나는 말했다.
“금란.”
“예, 주인님.”
“달과 그림자는 잘 지내고 있겠지?”
뜬금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금란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은하수에서 벗을 기다리고 있지 않겠사옵니까.”
금란의 대답은 나를 기쁘게 했다. 나는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오늘도 만나러 갈까?”
금란은 얼굴을 살짝 붉힌 후에 대답했다.
“주인님께서 원하시온데 어찌 거절할 수 있겠사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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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좀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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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표현들이 아무리 예뻐봐야 금란의 색기 앞에서는 무다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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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한 색기가 ㅗㅜㅑ | 21.06.15 20: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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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멘탈이 약해서 어지간하면 해피엔딩으로 쓰게 되더군요. 언제나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21.06.15 20: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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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은근 마음에 드는 게 아니라 완전 마음에 드는 글로 돌아오겠읍니다! | 21.06.16 21: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