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Gun Beach of Tamuning'
다리 한쪽이 부러진 녹슨 표지판 너머에는 태양 아래 상아빛으로 빛나는 모래가 건 비치 해안을 따라 깔려있었다. 오른편에는 짙은 회색으로 어둡게 마모된 절벽,
그리고 그 위를 포개고 있는 초목이 보였다. 해변 가까이에서는 옅은 초록빛으로, 몇 걸음 더 떨어진 곳은 하늘빛으로, 저 지평선 가까이에서는 사파이어같이,
다색으로 푸르게 바다는 시원한 소리를 내면서 해변으로 은빛의 물결을 끝없이 밀어내어 모래를 적셨다. 그리고 그 위에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발자국이 어지럽게 나 있었다.
정원에 들딸기, 산딸기가 자라고 있네
나의 산딸기야
아아 저 소나무 아래, 푸른 소나무 아래에
잠들도록 나를 눕혀 주세요
아아 좋구나 좋아 아아 좋구나 좋아-
기타를 치는 브라우니들의 노랫소리, 호드 대원들이 던져대는 피구공의 타격음, 메이드들의 바베큐 굽는 소리...
요정 마을의 사건이 마치 먼 과거의 일이었다는 듯이, 생기 넘치는 소리가 해변의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파라솔을 쳐 놓고 작은 간이 의자에 앉아 이 모든 풍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 때, 사령관의 무전으로 통신이 날아왔다.
"스카이나이츠 소속 린트블룸이 정찰 보고합니다. 근처 상공 및 지대 아무 이상 없습니다."
린티였다. 나는 쾌활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마워 린티. 다음 순번하고 교대하고, 너도 좀 쉬어."
"히잉, 사령관님~ '귀여운' 린티를 빼먹으셨어요."
"하하, 그래, 우리 귀여운 린티."
무전기에는 대답 대신 꺄르륵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팔자 좋으시네요."
목소리와 함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무 탁자 위에서 울려퍼졌다.
시원한 얼음을 띄운 레몬에이드와 함께 딸기가 올라간 생크림 초코케잌 한 조각.
이 은빛 쟁반을 내려놓은 귀여운 손의 주인은 틀림없이 바닐라일테지.
"항상 고마워."
"그렇게 말씀하셔도 더 나오는 건 없습니다만..."
나는 레몬에이드를 한 모금 마시고, 포크를 집어 초코케잌의 한 부분을 큼직하게 떴다.
저번에 초코여왕의 성에서 가져온 재료가 아직도 풍부하게 남아 있고, 소완의 지도와 아우로라의 노하우(?) 덕분에
바닐라의 제과기술은 놀라울만큼 늘었고, 전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만큼 맛이 있었다.
"맛있는데, 처음보다는 내가 이제 입맛이 더 고급이 된 모양이야. 하하."
바닐라는 대답이 없었다. 약간 뒤통수가 따가운 기분이 든다. 나는 약간 뜨금한 기분으로 조용히 초코케익을 한 스푼 더 떴다.
"...음?"
안에서 씹히는 건 뭔가 새로운 식감과 맛... 뭐지?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바닐라가 먼저 대답했다.
"말린 무화과입니다."
"의외인걸. 네 솜씨는 늘었지만 항상 똑같은 걸 만드는 줄 알았는데."
바닐라는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면서 뭔가 수줍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척이나 귀여운 표정이었다.
바닐라는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한 채 조금 당황한 듯이 더듬 더듬 말을 꺼냈다.
"그... 주인님이... 새로운 옷을 주셨으니까... 저도... 서, 성의를 보이는... "
나는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 도도한 바닐라가 초코케잌에 이런 깜찍한 선물을 숨겨 놓을 줄이야!
나는 부끄러워하는 바닐라에게 약간 장난을 치고싶어졌다.
"정말 고마워. 그런데 놀랐어. 초콜렛 케잌에 무화과라니 말이야. 음, 보자보자, 하치코의 민트 미트파이 이후로 정말 참신한 조합인걸?"
그런데 바닐라는 대답이 없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나는 바닐라를 바라보았다.
바닐라는 무척이나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차. 나는 포크를 떨어뜨렸다.
"...그 정도로 마음에 안드실 줄은...... 별 수 없군요. 삼안은 저를 메이드로 만들었지만... 그다지 좋은 요리 솜씨를 주진 않았거든요."
바닐라는 말이 끝나자 마자 쟁반을 다시 집어 올렸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 그게... 내 말은..."
"냉동실에 처박혀 있던 말라 비틀어진 무화과였어요. 제가 그런거나 써서 입맛을 망친듯 합니다. 이건... 다시 치우도록 하겠습니다."
바닐라는 그대로 뒤로 돌아서려고 하다가 다시 몸을 돌려 레몬 에이드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건 제가 만든게 아니니까 괜찮겠죠."
그리고 거의 뛰는 듯이 사장을 건너 해변가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맛없다는 뜻이 아니었는데...'
바닐라는 오드리에게서 옷을 받은 이후로 부쩍 부끄럼이 많아졌다. 그 바닐라가 고집과 자존심도 접고, 소완과 아우로라를 따라서 얼마나 열심히 요리를 배웠을까.
오늘 이 케잌도 나를 생각해서 특별히 그 바닐라가 신경써서 만들어준 것일테지. 이런 생각이 스치자 내가 너무 생각없이 말을 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오래도록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레몬에이드를 한 모금씩 홀짝였다. 신맛에 유독 코가 시렸다.
해가 지평선에 가까워질 때가 되서야 나는 오르카호로 복귀했다. 그리고 곧바로 소완을 불렀다.
소완의 얼굴은 평상시와 같았다. 하지만 내 앞에 서자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소완은 초코여왕의 성 사건 이후로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건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주인님, 소첩을 찾으셨사옵니까."
"응. 소완, 아이스크림 만들 줄 알아?"
소완은 옅은 미소를 띄었다.
"소첩이 만드는 요리는 식사를 위한 것이 주된 것이옵니다만, 후식 역시 능통하옵니다. 헌데 어찌 갑자기 빙과를 찾으시는 것이옵니까?"
"그야, 여름이니까, 더운 날씨에는 달고 시원한게 좋지."
소완은 영 알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그저 소첩에게 명령하시면 될것이온데, 어찌하여 갑자기 빙과의 제조법을 하문하시는 것이옵니까."
"아, 그, 그게... 음, 그렇지. 취, 취미로 요리를 좀 배워 보려고..."
소완은 오르카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소완은 잠시 말문이 막히는 듯 하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분부는 처음 있는 일이옵니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요리를 두고 하필 빙과를 만드시려 하옵니까.
게다가 사령관님께서 취미로 요리를 하실 정도로 한가하시지는 않은줄로 아뢰옵니다. 혹 누군가가 부추긴 것이옵니까, 아니면..."
"그야... 후식 같은게 만들기가 쉬우니까 바쁜 나도 취미 정도로 해볼수 있지 않겠어? 흠흠,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
이 말에 소완도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알겠사옵니다. 하오면, 소첩이 아우로라와 논의하여 주인께서 만들기 쉬우면서 맛있는 레시피로 몇 가지 준비하겠사옵니다. 내일까지 기다려주시옵소서."
"정말 고마워 소완. 그리고 내가 취미로 아이스크림을 만든다는 걸 다른 대원이 알면 별로 좋지 않을듯 하니까, 이 일은 아우로라랑 둘이서만 알았으면 해."
"후훗, 그것은 걱정하지 마옵소서. 소첩이 이 분부를 쥐도, 새도, 벌레도 아무도 모르게 할것이옵니다."
"하하... 그, 그래."
웃음을 짓는 소완에게서 약간은 섬뜩함이 느껴졌다. 많이 부드러워지긴 했지만 소완이 웃음을 짓는걸 보면 아직도 가끔씩은 무서운 느낌이 든다.
나는 소완을 보낸 후, 각 부대 지휘관들의 보고서를 결재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을 가져온 것은 포티아였다. 나는 바닐라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물었으나 포티아는 바닐라가 어제부터 주방에 안 보였다고 대답했다.
점심 무렵에는 소완이 직접 식사를 카트에 실어서 가져왔다. 내가 식사를 마친 후 소완은 레시피가 적힌 종이를 내게 넘겼다.
"우유와 생크림은 엘븐 자매들로부터 조달할수 있사옵니다. 달걀도 충분하옵니다. 시럽과 설탕, 곁들일 견과류도 몇 가지 종류가 있사옵니다."
소완은 하나 하나 손으로 레시피를 짚어가며 내게 찬찬히 일러주었다.
"주방에 언제든지 행차하셔서 만드실수 있도록 해놓았사옵니다. 기구를 쓰시면 충분히 손쉽게 만드실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면서 소완은 은근슬쩍 내 곁으로 밀착해왔다.
"빙과를 만들려면 먼저 우유를 끓인 후 계란과 섞고, 얼린다음 생크림을 거품기로 저으소서. 그 다음..."
소완의 본심을 알아챈 나는 웃으면서 소완의 말을 끊었다.
"저... 그래, 준비하느라 수고했어. 그런데 여기 아이스크림 종류 중에 왜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없는거야?"
"바닐라 향료가 떨어졌사옵니다. 섬의 옛 물류창고나 쇼핑센터 등을 뒤지면 공수해올수는 있을것 같으나, 번거로운 일이고, 이는 사령관님의 결재가 필요한 것이라
목록에 넣지 않았사옵니다. 주인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닐라 맛이옵니까?"
"응, 보통 아이스크림 하면 바닐라 아이스크림이잖아?"
"그렇다면 외부에서 조달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음... 이 일로 대원들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필요한 물자의 조달은 늘상 있는 일이었사옵니다. 소첩이 듣기론 이 섬에서 이제 큰 위험은 사라졌다고 들었사옵니다만."
"그래, 알았어, 다른 대원들과 논의해보지. 이제 소완은 가도 좋아"
소완은 공손하게 인사를 한 후 쟁반을 카트에 싣고 함장실을 나갔다. 소완의 표정에선 약간의 아쉬움을 엿볼 수 있었다.
'휴우...'
점심식사 후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무전을 통해 메이와 슬레이프니르를 불렀다.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은 메이였고, 슬레이프니르는 한참 뒤에야 왔다. 메이는 처음에 무척 긴장한 표정으로 들어왔다가
내가 기다리라는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슬레이프니르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무척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슬레이프니르 역시 뭔가 시선을 자꾸 회피하는것이, 영 불편한듯 보였다. 메이가 약간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대체 뭐야! 오라고 해놓고선 기다리게 해놓고, 나는 바쁘단 말이야!"
"하하, 미안해, 메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슬레이프니르는 좀 어때? 수영대회 때 이후로 크게 아프진 않고?"
슬레이프니르는 순간 얼굴이 화악 붉어지면서 발끈했다.
"무, 무, 무슨 소리냨! 내가 그 정도로 약골로 보이는 거야?.... 바보 사령관이... 모두들 보는데서... 이, 이, 이상한 짓 한거 빼면..."
슬레이프니르와의 대화를 지켜보는 메이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숨이 막힐듯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거의 애원하다 시피 말을 이어나갔다.
"아, 그건 뭐 나중에 이야기 하고... 저... 둘이... 그러지말고... 그... 중요한 물자가 바닥이 나서... 좀.... 조달을 해야 하는데,
그... 둠 브링어와 스카이나이츠 대원 중 남는 인력으로 조달팀을 꾸려줬으면 해서."
메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뭐야? 그런건 전자 공문으로 띄워도 되잖아. 그래, 그 '중요한 물자'가 뭔데?"
"아, 몇 가지 식자재가 모자란 모양이야. 이래서야 부대원들의 식사의 질이 떨어질게 분명해. 그래서 내가 그 목록을 작성해 놨어."
메이가 김 샌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뭐야, 중요하다는게 식자재였어? 흥, 그래, 한 번 볼까..."
물론 대부분의 식자재 목록은 바닐라를 공수해 오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다. 남은 재고량 중에서 가장 수량이 적은것들 위주로 적어서 실재로 조달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나는 메이가 읽는 동안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한 마디 보탰다.
"게다가 요즘 디저트 만드는데도 곤란한 모양이야. 바닐라 같은 향신료가 떨어져서... 그래서 이것들을 괌의 옛 도심지의 물류창고나 식자재마트 등에서 공수해왔으면 해."
메이는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바닐라? 그거 과자 만들때 쓰는거 아냐? 초코여왕의 성에서 많이 가져온 줄 알았는데?, 다른건 몰라도 그게 꼭 필요해?"
슬레이프니르도 맞장구 쳤다.
"맞는 말이야. 기동대원들이 그걸 찾는데 시간과 연료를 낭비하는건 별로야."
나는 진땀을 뺐다.
"향료라는게 원래 구하기 힘든거고 해서, 초코여왕의 성에서 가져온것도 바닥이 났나봐. 그래서 이번에 좀 충분한 양을 마련해두면 걱정이 없지 않겠어?"
메이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더 반대하지는 않았다.
"뭐, 납작가슴이랑 한 번 의논해볼게. 슬레이프니르도 대원들 중 정찰임무를 제외하고 물자를 수송할수 있는 대원들을 몇 보내줘."
"알았어. 린티면 몰라도 그리폰은 엄청 귀찮아 하겠는데..."
둘이 툴툴 거리면서 나간 모습을 본 뒤에야 나는 의자에 기대서 한 숨 돌릴수 있었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려고 했지만 바닐라가 신경쓰여서 그럴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콘스탄챠를 호출했다.
"무슨일이신가요, 주인님?"
"어서와, 콘스탄챠. 바닐라 최근에 본 적 있어?"
"바닐라라면... 오늘 아침에 메이드실을 청소를 하는걸 본 적 있어요."
그 말을 들으니 약간 안심이 되었다. 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듯 하면서 은근슬쩍 물어보았다.
"어제 저녁이랑 오늘은 바닐라가 후식을 만들러 주방에 가지 않았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콘스탄챠가 보기엔 어때보였어?"
콘스탄챠는 안경을 고쳐쓰고 곰곰히 생각하는듯 하더니 약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쎄요, 평소같지 않게 뭔가 좀 기운이 없어보이긴 했어요. 어제 아침에만 해도 새 옷을 갈아 입으면서 대단히 즐거워 보였는데...
밤새 어디가 아팠는지도 모르겠네요. 의무실에 데려가 볼까요?"
바닐라가 기운이 없는 것은 분명 내 탓일거다. 내가 바닐라의 마음을 다치게 했다. 그 생각이 내 마음을 무척 무겁게 했다.
바닐라의 마음을 왜 깊이 헤아리지 못했던 것일까? 내가 하려는 일로 바닐라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을까?
"사령관님...?"
콘스탄챠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아, 어."
콘스탄챠는 내 얼굴을 살피더니 조용히 말을 이었다.
"사령관님께서 바닐라와 무슨 일이 있으셨군요."
콘스탄챠는 오래도록 내 곁에서 나를 지켜봐왔다. 콘스탄챠는 내 눈빛만 보고도 마음을 읽을수 있을 정도가 됐다.
콘스탄챠라면... 믿어도 좋을것이다.
"역시 콘스탄챠는 속일수가 없네... 나는 바닐라에게 생각없는 말로 상처를 주고 말았어. 그래서 무척 후회가 돼.
나는 사령관으로서 그런 짓을 하면 안됐는데......"
"아, 사령관님."
콘스탄챠가 나를 꼭 껴 안았다. 콘스탄챠의 부드러운 머리칼과 따뜻한 체온이 얼굴에 느껴졌다.
콘스탄챠는 오랫동안 말 없이 조용히 내 등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나서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인간님들은 우리를 만들 정도로 뛰어난 존재이면서도, 결점이 많은 존재라고 하더군요. 사령관님도 인간으로서, 완벽할수는 없겠죠.
하지만 사령관님은 처음에 비하면 지금은 놀라울 정도로 성숙하게 바뀌셨어요. 지휘능력이나, 리더십, 상황 판단력 등 모든 면에서요.
저나 다른 바이오로이드들 모두 사령관님의 진정한 모습과 마음을 잘 알고 있어요. 사령관님과 바닐라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사령관님의 마음을 솔직하게 잘 전달한다면 바닐라도 분명 이해해줄거예요."
콘스탄챠의 따뜻한 말이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그렇다. 나는 이 오르카 호의 모든 존재를 책임질 의무가 있는 사령관이다.
내가 저지른 실수는 내가 책임을 지고 당당하게 수습해야 한다. 자책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바닐라에게 내 진심을 전해야 한다.
나는 콘스탄챠에게 내 계획을 이야기했다.
"들어줘, 난 지금까지 해 본적이 없는걸 하려고 해. 바닐라를 위해 내가 직접 특별한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줄거야."
콘스탄챠가 미소를 지었다.
"사령관님이 직접요? 정말 재미있는 일이 될거 같네요."
"그런데 걱정이 하나 있어."
"말씀하세요."
"바닐라에게만 특별한 아이스크림을 주는걸 다른 대원들이 알게되면 불만이 있을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대원들 모두에게 주면 바닐라에게 주는 선물의
특별함이 희석돼. 무엇보다 모든 대원을 위해 만들수 있는 만큼 재료가 있지도 않고. 이걸 어떻게 잘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어."
콘스탄챠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네요. 사령관님께서 모든 대원을 배려하려고 하시는 그 따듯한 마음을 잘 알겠어요. 그러면 닥터와 논의해보시지 않겠어요?"
"닥터와?"
"사령관님께선 이미 닥터와 큰 이벤트를 준비하신적이 있으시잖아요. 닥터라면 묘수가 있을거예요."
"정말 그렇네. 고마워 콘스탄챠. 그러면 닥터를 좀 불러주겠어?"
콘스탄챠는 인사를 한 뒤 함장실을 나가려고 문을 열었다.
"참-"
내가 콘스탄챠를 부르자 콘스탄챠가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약간 쑥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위로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용기를 얻었어."
콘스탄챠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십수분이 지난 후, 함장실 문이 열리고 낭랑항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오빠!"
내겐 이렇게 현명한 여동생이 있다. 무엇이 걱정이랴.
"응, 닥터."
"콘스탄챠한테 대강 이야기 들었어. 그래 빅- 아이디어가 필요하시단 말씀이지?"
내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좋은 생각 있어?"
닥터는 유창하게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아이 참, 오빠도,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려면 명-분이 필요한거야 명-분. 자고로 상을 주고싶은 대상에게 주면서도 불만이 없게 하려면
그 대상이 그 상을 얻어도 괜찮은 명분이 있어야 한다구. 그리고 그 명분은 만들면 되는거야."
명분을 만든다는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닥터는 내 생각을 읽기나 한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명분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상이 모두에게 인정을 받도록 하는거야. 그러니까 오빠는 대회를 열어야 해."
"대회? 대회라니? 수영대회라도 또 열라는 소리야? 그리고 대회를 열면 바닐라가 우승하지 못할 확률이 크잖아! 무엇보다도, 바닐라가 참여 안하면 어떡할래?"
닥터는 손을 요리조리 놀리면서 장황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참가 인원을 줄이면서도 바닐라의 참여를 확실히 하는 방법은 각 부대원들의 수장에게 공문을 보내 공식 대회에 보낼 선수를 한 명씩 차출하게 하면 돼. 그리고
라비아타를 통해 바닐라의 참여를 부탁해놓으면 바닐라도 거절하지 못할거야. 그리고 바닐라의 승리에 대한 건데, 방법이 두 가지가 있어.
첫 번째는, 바닐라의 승리 확률이 매우 높은 종목으로 대회를 치르는 거고, 두 번째는 바닐라가 승리하지 못해도 승리한 대원에게는 다른 상을 주고,
바닐라에게는 '열심상' 이나 '특별노력상'같은 걸 핑계로, 오빠가 주고싶은걸 주면 돼."
듣고보니 일리가 있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한 끝에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쓰기로 했다. 그런데 종목이 문제였다.
바닐라에게 유리한 종목의 대회라니, 그게 도대체 뭔가?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다. 닥터가 말했다.
"종목은 오빠가 정하도록 해. 다른 메이드들에게 바닐라의 장기에 대해서 물어보면 힌트가 될거야. 나는 알프레드와 할 일이 좀 있어서... 이만!"
닥터는 낄낄 웃으면서 함장실을 나갔다. 알프레드와 할일이라니, 설마 알프레드를 괴롭히려는건 아니겠지...
순간 무언가가 내 머리속을 스쳤다. 나는 알프레드를 중얼거리면서 대회에 대한 구상을 컴퓨터로 작성해나가기 시작했다.
다음 날, 오르카호를 비롯해 곳곳에 홍보물이 부착되었다. 그리고 스프리건을 시켜 식사시간 때 홍보방송을 하게 했다.
여름의 막바지를 장식할 해변에서의 더위 헌팅!
대 AGS 훈련을 겸한 이번 서바이벌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에게는 사령관의 특별한 포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참가인원은 각 부대 별로 1명으로 제한, 참가는 홍보팀 소속 스프리건에게 문의 주세요! -
대회 준비는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대회 당일, 수영대회를 진행했던 그 자리에 다시금 바이오로이드와 선수들이 모였다.
대회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닥터와 정비팀이 제작한 작은 대회용 로봇들과 참가 선수들이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의 일종으로,
참호와 엄폐물 같은 구조물을 설치하고 일정한 수의 대회용 로봇들을 배치한 뒤, 선수들이 각각 다른 방향에서 진입하여 로봇에게
페인트볼을 맞지 않고 가장 많은 로봇을 잡은 선수가 승리하는 것이었다.
참가 선수는 팀별로 한 명씩이었고, 그 중 유력한 승리 후보로 거론되는 것이 앵거 오브 호드의 워울프, 몽구스 팀의 미호, 스틸라인의 레프리콘 등이었는데
가장 불안했던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에선 의외로 님프가 나왔다. 님프를 얕보는건 아니지만 발키리가 나왔다면 대회는 개최하나 마나였을 것이다.
듣기로는 발할라 팀에서 가위바위보로 선수를 정했는데 발키리는 처음부터 떨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고 (작전상) 승리 후보자인 베틀메이드 소속의 바닐라도 나와 있었다. 그러나 영 떨떠름한 것이, 대체 왜 나와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해설석에 앉은 스프리건이 대회진행을 맡았다. 스피커로 스프리건의 목소리가 울려퍼져나갔다.
"자 곧 해변 서바이벌 게임이 진행됩니다. 선수들은 각자 스타팅 위치로 가주세요."
각자 선수들은 서바이벌용 총을 들고 흩어졌다. 지켜보던 바이오로이드들은 각자 팀을 응원하기도 하고 누가 이길 것인가를 두고 서로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알비스가 크게 외쳤다.
"언니 힘내! 이기면 알비스가 초콜릿 줄게!"
님프는 못말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스프리건이 마이크로 다시 외쳤다.
"자, 총 50기의 서바이벌 로봇이 배치됩니다. 대회만을 위해 닥터가 특별히 제작했다죠? AGS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깡통은 아닙니다!
크기는 작아 매우 민첩해서 방심하면 순식간에 빵! 페인트 볼을 맞게 되죠. 그리고 대회를 위해 특별히 개발한 AI가 탑재되어 있어 엄폐와 속임수에 능합니다!
선수 분들은 모두 분발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토미워커 몇 기가 오가면서 대회장에 로봇들이 배치되었다. 대회용 로봇의 모습을 본 순간 모두들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LRL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저게 뭐야! 생긴게 꼭 꼬마 알프레드 같잖아!"
나는 중계 드론을 통해 바닐라의 얼굴을 살폈다. 바닐라는 로봇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순식간에 표정이 변했다. 총을 쥔 손에 핏줄이 서고
눈매가 날카롭게 바뀌었다. 조금 전의 심드렁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나까지 조금 무서워질 정도였다.
'하하..... 괜찮은걸까...'
스프리건의 카운트 다운이 0을 외침과 동시에 열렬한 환호 소리와 함께 해변의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되었다.
서바이벌 로봇들은 민첩하게 이동하면서 팔 끝에서 페인트 건을 난사했고, 선수들은 참호나 엄폐물에 기대어 하나 둘 씩 로봇을 저격하기 시작했다.
로봇들은 소리까지 내기 시작했다.
"용용 죽겠지! 숨어봤자 소용없어용! 이 Mr. 알프레드 쥬-니어들이 여러분들을 모두 페인트 범벅으로 만들테니까요! 크핫핫"
스프리건은 입에서 침이 튀도록 열띤 중계를 하고 있었다.
"대단합니다! 참호로 뛰어든 로봇을 번개와 같이 피해서 로봇의 등을 저격한 워울프 선수! 아, 이에 질세라 미호 선수는 순식간에 원샷으로 로봇 둘을 처지합니다!"
님프 선수는... 아이고, 방금 페인트건에 맞을 뻔 했습니다! 알비스 양에게 얻어먹는 초콜릿 바를 조금 줄일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대회는 20분씩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전반부의 스코어판을 확인해보니 아직 페인트건에 맞은 탈락자는 없었다.
하지만 워울프와 미호가 각각 8점과 10점으로 앞서나가고 있었고 바닐라는 6점으로 3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조금 불안했다.
나는 후반전을 앞두고 조용히 대회장을 빠져나가 무전으로 알프레드를 호출했다.
"무슨일이시죠? 닥터에게 시달리던 차에 빼내주신건 감사합니다만, 대회용으로 쓰신답시고 이미 제 목소리까지 녹음해가시지 않으셨습니까!"
"응, 그건 고마워. 하지만 그걸로도 부족해. 조금의 '공작'이 필요해"
"훗훗훗, 무언가를 꾸미고 계시는군요. 좋습니다! 말씀해보시지요."
나는 조용하게, 그러나 빠르게 설명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간단하게 설명할게, 지금 저 앞에선 서바이벌 게임이 열리고 있어. 거기 관중석 앞에 잘 보이는데 가서, 바닐라가 앞을 지나가면
그것밖에 못하느냐고 좀 도발해줘."
순간 알프레드가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알프레드는 길길이 날뛰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겁니까?! 그러면 그 녹색 바가지 머... 바닐라 양이 저를 가만두지 않을겁니다! 물론 지금 저는 로버트의 신체를 가지고 있습니다만은..."
"내가 보호해줄게, 게다가 원한다면 내 머리카락도 몇 가닥 줄 수 있어."
"정말입니까?! 흠흠, 음... 정 그렇다면 모험을 좀 감수해보지요. 머리카락은 나중에 길고 깨끗한 것으로 몇 가닥 부탁합니다."
대화가 끝나는 순간 후반전을 알리는 스프리건의 카운트 다운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황급히 대회장으로 돌아갔다.
후반전이 진행되자마자 탈락자가 둘 생겼다. 첫 번째는 제 발에 걸려 넘어진 님프가 엉덩이에 페인트를 맞은 것이었고,
두 번째는 그걸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한 워울프가 뒤통수에 페인트를 맞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바닐라는 스코어 2위로 미호의 뒤를 추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호는 좀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저격의 명수 답게 로봇들의 패턴을 잘 파악하여 로봇들의 공격을 이리 저리 회피하면서 하나 둘 착실하게
저격하면서 점수를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안달이 났다. 바닐라는 아까의 기색이 조금 죽었는지 지친 모습이었다.
전투를 할수 있다고는 하지만 가정용 메이드로서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것일테지.
'알프레드의 도발이 효과가 있어야 할텐데...'
스프리건이 외쳤다.
"앗, 저기 알프레드 쥬니어의 아버지가 나타났군요. 선수들 대신 로봇을 응원하러 온 것일까요?!"
알프레드가 관중석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바닐라 쪽을 향해 쾌활하게 웃으면서 외쳤다.
"하하하, 바닐라 양, 어떻습니까, 비록 저 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이 알프레드 쥬니어들은 제 민첩함과 우아한 목소리를 겸비하고 있지요!
상대하기 쉽지 않지요? 처음 뵀을 때의 그 패기는 금방 식어버린 모양이군요. 훗훗훗!"
순간 어디서 까득득 소리가 들린것 같았다. 바닐라의 눈에서 불똥이 튀는것 같았다.
"이... 깡통이...!!"
스프리건이 외쳤다.
"앗, 바닐라 선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은 것일까요? 신출귀몰하면서 순식간에 3점을 올렸습니다.
이 속도대로라면 미호 선수도 조심해야 할텐데요!"
바닐라는 이를 악 물고 말 그대로 잡아먹을 기세로 뛰기 시작했다. 미호조차도 그런 바닐라를 넋놓고 바라볼 정도였다.
이를 지켜보던 칸이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좋은데, 라비아타한테 말해서 바닐라를 호드에 넣어 볼 생각 없냐고 물어봐야겠어!"
순식간에 돌변한 바닐라는 그야말로 살기충천해 있었다. 알프레드는 그 기세에 질려서 관중석을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효과는 아주 좋았다. 알프레드에게 주려면 정수리 쪽에 있는 머리카락을 뽑아주는게 좋을까, 앞머리가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타이머가 후반부가 거의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스코어판을 보았다. 1점, 1점차이였다. 바닐라가 미호를 이기려면
2점을 더 얻어야 한다. 남은 시간은 2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또 미호의 스코어가 1점 올랐다. 격차는 다시 3점이다.
손에서 땀이나기 시작했다. 턱에 오른손을 대고 한 손은 오른팔을 받친 채 스코어 중계판과 대회장, 바닐라의 모습을 번갈아 보았다.
1분이 다시 지났을 때, 바닐라가 1점을 얻었다. 하지만 또 다시 미호가 1점을 얻으면서 격차는 아까와 동일하게 되었다.
이러면 특별상으로 바닐라에게 아이스크림을 줘야 한다. 하지만 바닐라가 이겨서 상을 받는 그림이 제일 모양새가 좋은데...
20초, 19초, 18초... 역시 무리였는가... 5초...
"앗!"
스프리건의 다급한 외침 소리에 나는 전광판을 돌아보았다. 미호의 이름에 X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대회장을 돌아보았다.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음을 보고 안도했던 미호의 뒤를 로봇이 급습한 것이었다. 미호가 재빨리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어깨쪽에 페인트를 맞고 말았다.
"3, 2, 1.... 놀라운 반전입니다! 미호 선수가 대회 종료 5초를 앞두고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이 서바이벌의 승자는 바닐라 선수입니다!!"
바이오로이드들의 환호 소리와 박수소리와 함께 대회는 막을 내렸다. 토미 워커들이 대회장을 신속하게 정리하고, 대회장 중앙에 시상 무대가 세워졌다.
스프리건이 외쳤다.
"우승자 바닐라 선수는 시상대 앞으로 나와주세요!"
바닐라는 다소 떨떠름하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조금 지친듯한 발걸음을 옮겨 시상식 무대에 섰다.
나는 콘스탄챠를 시켜 준비해둔 아이스박스를 가져오게 한 후 나를 따라오게 했다. 내가 시상대에 오르자 바이오로이들이 환호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말했다.
"요정마을 사건 이후 여러분 모두 수고해줘서 고마워. 여러분들이 조금 더 즐기게 해주고자 저번에 진행 중 흐지부지 된 수영대회를 대신해서
작은 이벤트를 마련해 보고 싶었어. 결과적으로 성공한것 같아서 기뻐. 바닐라는 이 쪽으로 가까이 와줄래?"
바닐라는 쭈뼛 쭈뼛 하면서 내 앞에 섰다. 나는 콘스탄챠에게 손짓으로 아이스박스를 열도록 했다. 모두들 침묵한 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쟁반 위의 유리그릇에 담겨 황금빛으로 빛나는 아이스크림이었다.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워울프가 고함을 질렀다.
"나 원참, 사령관, 상이 아이스크림이라니 너무하잖아."
콘스탄챠가 조용히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여러분, 이 아이스크림은 그냥 아이스크림이 아닙니다. 사령관님이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드신거예요.
이른바, '사령관 특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에요!"
워울프는 벙찐 표정이었다.
"사령관이 직접?? 사령관, 대체 언제 그런걸 배운거야?"
리리스가 말했다.
"아아, 착한 리리스도 사령관님이 직접 만든 아이스크림을 먹어보고 싶은데..."
나는 유리그릇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꺼내 바닐라 앞에 들이밀었다.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닐라, 미안해, 이 상은 그렇게 대단한건 아니야. 하지만 난 내 마음을 직접 전달하고 싶었어. 바닐라, 넌 내게 특별한 케잌을 만들어줬지.
하지만 내가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놀려서 상처를 줬어. 그런 말을 해서 정말 미안해. 이 아이스크림은 특별히 공수해온 바닐라를 잔뜩 넣고
피스타치오를 뿌린 다음 헤이즐럿 시럽을 두른거야. 엘븐밀크도 잔뜩 들어있어.
바닐라, 나와 같이 이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을래?"
바닐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후... 하하하... 주인님... 사과가 참 요란하시네요!"
내가 쑥스러운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자 바닐라는 활짝 웃었다. 바닐라가 이렇게 밝게 웃을수 있는줄은 몰랐다.
대회장을 뛰어다니면서 지치고 모래가 뭍은 얼굴이었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귀여웠다. 바닐라가 속삭였다.
"한 입 먹여주실래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쟁반에 담긴 은빛 숟가락을 가져다 헤이즐럿 시럽이 그물처럼 포개어져 있는 중앙을 크게 한 스푼 떴다.
그리고 천천히 바닐라의 입에 가져갔다. 바닐라의 조그맣고 빨간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나는 바닐라의 입에 아이스크림을 덜어주었다.
바닐라는 눈을 감고 천천히 아이스크림을 음미했다. 풍부하고 짙은 우유의 맛과 산뜻하고 향기로운 바닐라향, 그리고 고소한 피스타치오와
헤이즐넛 향이 혀를 타고 녹아내렸다. 내가 물었다.
"어때?"
바닐라가 황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바닐라 맛이네요."
----------------------------------------------------------------------------------------
글을 써본지도 오래됐고, 대회에 참여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평소에 좋아하는 바닐라의 스킨이 나왔길래
대회 막바지에 삘 받아서 쓴 소설입니다.
모두들 즐거운 라스트 오리진 하세요!
(IP보기클릭)59.3.***.***
(IP보기클릭)14.45.***.***
감사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한 번 써볼게요~ | 20.09.16 02:1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