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불어오는 밤바람은 기대를 싣고.
‘오르카와 맞닿는 해변으로 와주세요.’
나이트 앤젤이 사령관에게 남긴 전언이었다. 비록, 그것이 협박이라는 이름 아래에 요구되는 행위였지만, 그 남자는 반쯤 기대를 안고 약속장소로 나서고 있었다.
해는 이미 모습을 감춘 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오르카를 품고 있는 선박장은 밝은 조명으로 주위를 밝혔다. 그럼에도, 그 주위에는 수많은 바이오로이드 중 어느 한 명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폭죽놀이라… 나이트 앤젤도 생각보다 과감하네.”
이미 오르카의 모든 바이오로이드에게는 한 가지 소식이 퍼졌다. 그건, 시크릿 네트워크라는 비밀 게시판을 통해 퍼진 한 가지의 정보. 하늘에 환한 달이 뜨고, 별들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지정된 시간이 오면 또 한 번의 폭죽이 하늘을 뒤덮을 것이라는 전설과도 같은 소문이 말이다.
처음에는 그저, 뜬소문이었던 정보는, 어느샌가 바이오로이들의 입소문을 타고 여기저기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마치 그것이 사실인 양, 그들은 그 광경을 보기 위해 이미 해변가로 사라진 뒤였다.
물론, 그 모습을 사령관과 즐기기위해 합석을 요청해오는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부탁을, 그는 선약이라는 이유로 정중히 거절했다.
크게 아쉬워하는 이도 있었고, 쓰러져서 피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사령관은 그런 바이오로이드들을 하나하나 달랜다고 꽤 애를 썼다. 그리고 그들이 단념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사라지자. 사령관은 그제야 행동을 개시했다.
“... 오르카와 맞닿는 해변이라면… 정박장의 입구와 연결된 해안을 말하는 거겠지?”
그는 사람과 차량, AGS등이 드나들 수 있는 조금 큰 철제문을 지나, 어두컴컴한 모래사장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나이트 앤젤이 지정한 장소는 그곳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 어떤 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다시 생각을 되새기려는 그때. 누군가가 다급히 소리치는 듯한 목소리가 그를 향해 날아왔다.
“... 사령관님!! 여김다!!”
“... 브라우니?”
그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는 나이트 앤젤의 것이 아니었다. 사령관을 급하게 부르는 그 목소리는 진한 갈색의 단발머리를 가진, 오르카 먹이사슬의 제일 밑. 브라우니의 것이었다. 하지만 평소에 풍기는 천진난만하고, 활찬 것과 달리 그녀는 떨리는 듯한 소리를 냈다.
“하아, 하아. 많이 기다리셨슴까?”
“아냐, 나도 막 왔어. 근데, 네가 여기 있다는 건…”
빠르게 사령관을 향해 해변을 독주한 브라우니는 하계 전투복으로 인해 드러난 맨 무릎에 손을 얹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며, 사령관은 현재 상황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그, 너무 많이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만, 잠시 저를 따라와 주시겠슴까?”
“... 알았어.”
그는 어렴풋이, 그 상황을 이해했다. 브라우니 또한, 나이트 앤젤의 ‘협박’이라는 행동에 피해자라는 것을. 익명게시판인 그곳에서, 자신을 알아차린 그녀라면 가능했을 것이다. 브라우니의 부주의한 행동은 그녀에게 있어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앙심도 포함해서 말이다.
뻣뻣하게 굳어있는 브라우니의 뒷모습을 사령관은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조금을 걸었다. 해변가를 벗어나, 야자수와 수풀 사이 한가운데로 헤쳐나갔다.
“... 저건…”
사령관은 수풀 너머, 오르카와 멀지 않은 해변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바이오로이드가 한가득 모여있었다. 돗자리를 깔고, 친한 이들과 떠들며. 술과 음료를 구비해 홀짝였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무언가를 즐겁게 기다렸다.
“시크릿 네트워크에 좋은 자리라고 정보가 올라왔었는데, 그거 보고 다들 저렇게 모였지 말임다. 저도, 빨리 저기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날뜀다.”
사령관이 보는 그 모습을 브라우니 또한 바라보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들은 서둘러야 했다. 나이트 앤젤이 올렸을 그 글에 지정된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는 감각이 예민한 이들이 많았고, 그런 그들은 사령관이 주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 이러다 들키겠다. 어서 서둘러야… 응?”
사령관과 브라우니를 옆에 두고, 조금 떨어진 수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그곳으로 시선이 집중됬다.
“들킨 것 아님까!? 저, 잘못하면 납작 대령님한테 작살나지 말임다!?”
낮게 목소리를 깔았지만, 브라우니는 혼란스러워했다. 그런 그를 옆에 두고 사령관은 잠시 그 소리의 발생지를 지켜봤다.
그리고 수풀 사이를 헤치고 한 존재가 걸어 나왔다.
“... 사, 사, 사령관님!?”
“... 안녕, 팬텀 이었네.”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바이오로이드가 그들의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무언가를 들킨 듯,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팬텀도 불꽃놀이 보려고?”
“... 에, 예! 그, 그리고 이번 기회에 다른 자매들하고 교, 교류도 해보고 싶어서요…”
팬텀은 붉어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고 있던 후드를 더욱 꾸욱 잡아당겼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브라우니는 한숨을 쉬었다.
“저희, 빨리 가야 하지 말임다. 이러다 들키지 말임다.”
재촉하는 브라우니를 두고, 사령관은 잠시 팬텀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후드로 가려진 얼굴을 내려다봤다. 살며시 보이는 붉어진 볼이, 귀엽게만 보이는 그였다.
사령관은 살며시 손을 올렸다. 그리고 팬텀의 후드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러자, 사령관을 앞에 두고 꼼짝도 못 하고 눈동자를 돌리며 시선을 피하고 있는 한 명의 바이오로이드가 있었다.
그 새빨갛게 붉어진 얼굴은, 그녀가 혼란스러움을 충분히 나타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사령관은 용기를 북돋아 줬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 한다. 알겠지?”
“... 알, 겠습니다…”
말을 끝내고, 사령관은 다시 뒤돌아 브라우니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다시 수풀 속으로 사라져갔다.
홀로 남은 팬텀은 잠시 멍하니 사색에 빠졌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에 정신을 차리고. 주먹을 꽉 쥐며, 그녀는 자신을 스스로 응원했다.
“... 화이팅, 나.”
나지막한 혼잣말이 끝나고, 팬텀은 각오한듯한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이 뱀, 사령관님 오셨지 말임다.”
“... 좋았어, 브라우니. 어서 빨리 이 일을 끝마치자고.”
사령관이 브라우니를 따라 도착한 곳은, 그가 수많은 바이오로이드가 모여있던 해변가에 조금 떨어진 또다른 모래사장이었다.
그곳에는 뒤집어 쓴 후드 위로 토끼 귀를 들어낸 분홍머리의 키작은 바이오로이드가 팔짱을 낀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프리트도 있었네.”
“... 미안해. 사령관님, 많이 당황했을 텐데. 누군가와의 ‘거래’ 때문에 자세한 건 못 알려줘.”
“그러게, 시크릿 네트워크에 임펫 중사님 뒷담까다 걸리면 어떻함까?”
“... 브라우니, 너는 연대장님 뒷담까다 걸렸잖아.”
두 사람은 잠시 가벼운 말싸움을 벌였다. 그러던 도중, 그걸 지켜보는 사령관의 시선에 눈치를 본 이프리트가 헛기침을 한 번 했다.
“크흠. 일단 사령관님, 이쪽으로 들어가면 돼.”
“... 거긴, 벽인데…?”
이프리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그녀의 뒤쪽이었다. 그들의 키보다 몇 배는 큰 암석과 절벽이 들어서,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곳이 바늘구멍만큼도 없는 그런 벽을 그녀는 가리켰다.
그리고 허공에 손을 들고 있던 이프리트가 사령관의 그 말을 듣고는 이해를 돕기 위해 하나의 행동을 덧붙였다.
“이건, 이런거야.”
이프리트는 그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벽과 손이 맞닿아야 할 그 순간에, 그녀의 손은 벽 속으로 사라졌다. 이프리트는 그 상태로 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그 벽의 실태를 보였다.
“설마, 홀로그램이야…?”
“응, 우리와 같은 누군가가 제공한 기계 덕분에 말이야, 이렇게 감쪽같이 숨길 수 있었어.”
사령관은 그 기계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만난 지 얼마 안 된 바이오로이드 라는 것도 말이다. 나이트 앤젤의 마수가 그런 이에게까지 뻗었다는 것에,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한순간 스스로 의심했다.
“... 심각해 보이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 이 기계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자의로 빌려준 거야. 물론, 양해를 구하는 건 우리 몫이었지만 말이야.”
“저희, 그것 때문에 고생 꽤나 했지 말임다. 그래도 그 써니라는 분은 선량하신 분 같아서 다행임다.”
“... 알겠어. 그렇다면 나도 더이상 걱정할 필요 없겠지.”
“응,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즐거운 시간 보내. 우리는 여기까지지만, 안에 들어가면 다음 안내자가 기다릴 거야. 그리고 여길 찾은 건 난데. 뺏긴 게 조금 아쉬워도 사령관님도 맘에 쏙 들어 할 거야.”
“고마워 이프리트. 둘 다, 수고했어. 이제 가서 쉬도록 해.”
“알겠슴다!!”
브라우니가 크게 소리내어 경례를 했다. 그리고 그 뒤로 이프리트가 가볍게 경례를 이었고, 두 사람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모여있는 해안가를 향해 사라졌다.
사령관은 자신의 앞에 들어서 있는 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볍게 손을 뻗었다. 이프리트가 보인 모습과 같았다. 그의 손은 벽 안으로 사라졌다. 단단한 감촉은 온데간데없고, 그 손은 허공을 헤집는 것만을 느꼈다.
“써니의 홀로그램 투영기… 뭐, 나중에 제대로 사과하게 해야지.”
사령관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그 벽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가 사라지자, 잠시 벽이 일렁이더니 이전과 같은 모습을 되찾았다.
그는 걸었다. 슬리퍼 너머로 느껴지는 감촉은 확실하게 모래였다. 하지만 주위는 어둠뿐이었다. 아마, 홀로그램이 투영하는 범위 밖도 암벽이 감싸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벽의 끝에, 그는 전과 같은 방식으로 손을 뻗어 확인하고, 또 한 번 당당히 나아갔다.
“... 여긴...”
그가 본 것은 그 섬이 보이는 아름다운 또 하나의 해변가였다. 그가 여태까지 보았던 다른 바닷가 또한 인류의 손때가 덜 묻었기에 충분히 그 아름다움을 뽐냈다. 하지만, 그가 지금 보고 있는 그곳은 그것들과는 확실하게 차이 났다.
그곳은 AGS나 인류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의 광경. 유일하게 빛나는 것은 달과 별, 그리고 그것들이 반사되어 빛나는 지평선을 품은 바다뿐. 주위에 드리워진 불빛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그것들은 전보다 더욱 밝게 빛나는 듯 보였다.
마치, 오르카라는 사회와 단절된 듯한 그 장소는, 업무와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휴양지 같았다. 마치, 두 사람만을 위해 준비된 세계말이다.
가끔은 시끄럽고, 활기찬 오르카를 벗어나, 이런 곳에서 쉬는 것을 내심 바라고 있던 그였기에 그 장소는 사령관의 마음에 들었다.
“눈 덮인 설경 위에 텐트나, 설산이 보이는 온천도 좋지만. 이건, 또 색다르네...”
“... 저도,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사령관은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가 바라본 그곳에는 ‘마녀’가 있었다.
“키르케…? 네가 다음 안내자였어…?”
“그 호칭은 별로 맘에 안 드네요. 하지만, 제가 다음인 건 맞을 거에요.”
연푸른빛을 띠는 남보라색의 머리칼을 가진 마녀는 검은색 마녀 모자의 끄트머리를 살짝 잡고는, 벽 옆의 바위에서 일어나 사령관을 향해 다가왔다.
“놀랐나요~? 꽤나 그런 얼굴이신데요-.”
“잠시만, 술 마셨어…?”
“치이-. 만나자마자 그런 말은, 조금 상처받는데요! 그리고 이건 제가 마셔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고요!!.”
사령관은 그녀의 주위에서 풍겨져 나오는 술냄새에 입과 코를 가볍게 막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키르케는 볼을 뾰루퉁 하게 내밀고는 그것에 불만을 표했다.
“이래 보여도, 업무시간에는 적당히 마신다고요. 그리고 오늘은 베로니카 씨랑 선약이 있어서 아직 한 모금도 입에 못 댔고요.”
“... 하지만 술냄새가...”
“... 이건, 마음 여린 그녀가 흩뿌린 향수랄까요~. 자, 어서 가시죠.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적어도 그녀랑 인사정돈 해야죠.”
키르케는 사령관의 등을 떠밀었다. 그런 그녀를 못마땅해하듯, 사령관은 그 상황에 의아해했지만, 일단은 그녀의 손에 떠밀려 앞으로 나아갔다.
“아, 그리고 이것도 해야죠. 참.”
“뭐? 자, 잠시만!?”
사령관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키르케가 그의 눈가에 안대를 씌웠기 떄문이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그녀에게 따졌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밀과 서프라이즈를 위한 준비라는 말뿐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사령관은 그저 묵묵히 키르케에게 밀려 걸어갔다. 무엇이 그를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chapter 8. 붉은머리 그녀와의 데이트.
“... 키르케 아직 멀었어...?”
“쉬잇. 조금만 조용히 해주시겠어요. 거의 다 도착했어요.”
가려진 시야 때문에 사령관의 시간 감각은 무너져갔다. 실질적으로는 4, 5여 분의 시간을 걸었지만, 그의 체감은 10분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런 그의 걱정 담긴 질문에도, 키르케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다 도착했다는 말뿐이었다.
“... 자, 사령관님. 이제 바로 코앞이에요. 아마, 안대를 벗으면 바로 보이실 거예요.”
“그럼, 이제 벗어도 되는 거야?”
“땡. 그전에, 몇 가지 유의사항을 숙지하셔야죠. 이게 마지막. 궁금한 게 생겨도 지금은 묻지 마세요. 알겠죠?”
“... 유의사항…?”
“예, 그럼... 첫째, 좋은 시간을 보내되, 심한 애정행각은 삼갈 것. 그녀의 말대로라면, 두 사람을 지켜볼 감시자가 한 명 붙을 거래요.”
사령관은 키르케의 말을 따라가지 못했다. 감시자라는 단어에 대해선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되뇌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질문하지 말라는 말을 했기에, 일단은 조용히 이야기를 들었다.
“둘째, 무슨 일이 생기면 저희을 호출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이 안대는 속으로 30초 정도를 세고 벗을 것. 아, 참고로 추가적인 내용은 그녀한테 맡겨놨어요. 그럼, 즐거운 시간 되세요~.”
“... 뭐? 키르케? 키르케!?”
순식간에 끝난 설명 시간에 사령관은 당황해하며 키르케를 불렀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용히 스르륵거리는 파도소리 뿐이었다.
이어지는 침묵에, 사령관은 간략하게 30을 셌다. 그리고 스스로 안대를 벗었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조금 전에 아름다움을 느꼈던 바다와 하늘의 모습이었다.
그는 여전히 그 해변가 위에 있었고, 그가 이 해변에 들어오기 위해 지나온 벽은 조금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키르케는 이미 그곳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 듯 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옆을 봤을 때, 그는 작은 돗자리 위에 앉아있는 붉은 머리의 바이오로이드의 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그는 그곳이 목적지로 생각하고 걸었다. 그리고 그곳에 답이 있을 거라 믿었다.
모래가 밟히는 몇 번의 소리와 함께, 그는 그 돗자리의 뒤에 도달했다. 그제야, 달과 별빛만으로 그 모습을 보이던 바이오로이드가 누군지 깨달았다.
“... 메이…?”
사령관은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녀의 강렬한 붉은 머리칼에 가려진 짤막하고 볼륨있는 몸매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들은 그 바이오로이드는 서서히 고개를 돌려 뒤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령관을 발견했다.
“... 사령과~안. 메이랑 놀려고 왔어~!?”
“... 어?”
평소의 메이와는 다른 분위기와 말투, 사령관은 그 차이를 한 번의 대화를 통해 명확히 깨달았다. 혼자 기분 좋은 듯 실실 웃는 메이를 내려다보던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코를 킁킁거렸다.
“... 이거 설마, 메이… 너 술 마셨어…?”
“나아~? 응, 마셔써!! 그 마녀 친구가 한가득 줬어!!”
“하아, 키르케도 참...”
한숨을 가볍게 쉰 사령관은 포기한 듯 돗자리에 앉으려 했다. 한구석에는 음료와 안줏거리가 있었고, 그곳을 제외하면 남는 곳은 메이의 바로 왼쪽 옆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그곳에 앉아, 메이와 현 상황에 관해 대화를 나누려했다.
“히히, 사령관~. 메이, 오래 기다렸다고오~.”
“이거, 내일 정신 차리면 큰일 나겠는데… 메이, 혹시 나이트 앤젤이 뭐라 한 건 없어?”
“... 납작이…? 걔, 완전 나뿐 애야. 오드리 시켜서 나한테 강제로 화장을 시키질 않나, 내 태블릿을 훔쳐보고는 게임하면서 고쳐야 할 걸 정리해 놓질 않나. 거기다가, 이렇게 먹을 거랑 술도 한가득 준비해서는 말이~야. 완전 못된 애라니까안~.”
사령관은 잠시 메이의 모습을 흝어봤다. 그녀의 말대로 입고 있던 것은 이전에 보았던 검은색 수영복이었지만, 술 때문에 붉어진 얼굴 말고도, 입술이나 볼 같은 부분에도 어느 정도 색조가 들어간 것이 보였다.
“... 하하, 결국 그렇게까지 해서 한 게 널 위한거였나…”
“응? 사령관도 납작이가 나쁜 애라는 거 아는 거지~? 그치이?.”
“그렇네. 나이트 앤젤은 정말 나쁜 애구나 싶어서.”
“아닌데, 나이트 앤젤은 착한데. 나한테 사령관은 공격수가 주 포지션이라고, 어느 정도 잘하는 지원가로 가면 같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조언도 해줬는거얼~.”
“... 그렇긴 한데, 메이. 너 과음한 거 아냐?”
“아닌데. 메이, 아직 덜 마셨는데에~. 아, 납작이가 이거 전해주-래!”
메이는 붉은 얼굴로 홍알홍알거리며, 사령관을 향해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쪽지 하나를 건넸다. 그리고 사령관이 그걸 받아들자, 옆에 남아있던 술잔을 들어 한 모금의 술을 홀짝였다.
“... 이거, 생각보다 심각하게 돌아가네. 일단, 무슨 내용을 적었나 볼까.”
사령관은 반으로 접힌 그 쪽지를 펼쳤다. 그리고 그 속에 적힌 내용을 찬찬히 읽어나갔다.
“... 사령관님…”
사령관님, 우선 무례에 대한 건 사과드릴게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메이 대장이나, 사령관님이나 둘이 같이 있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요. 그래도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큰 피해를 끼치지는 않았어요. 브라우니와 이프리트를 제외하면 다 사전에 동의를 구했고요. 물론, 시작부터 구한 건 아니었지만요.
일단, 그 자리와 시간을 즐겨주세요. 만약 싫으시다면, 그 자리를 떠나도 할 말은 없네요. 한동안은 사령관님 앞에 안 나타날 거예요. 용서해달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바로 출격할 수 있게 준비는 해두겠습니다.
저희 대장, 바보 같아도 착한 거 아실 거예요. 부하가 약점 좀 잡았다고, 울면서 뭐라 해도 그러려니 해주세요.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P.S. 사령관이 안 드실 거 같아서, 키르케 씨에게 대장 술 동무가 되어달라고 해뒀어요.
얼마나 먹였을지는 모르지만, 귀엽게 봐주세요.
“하하, 정말...”
사령관은 그 쪽지를 읽고 짧은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종이를 다시 고이 접어, 가슴팍 한쪽에 집어넣었다.
“사령관, 왜- 그래? 왜 웃어? 납작이가 뭐래? 용서해달라고 막 빌어?”
“... 아니. 메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대.”
“나이트 앤젤, 착해. 이히히.”
이빨을 보이며 가볍게 배시시 웃는 메이의 얼굴을 지켜보던 사령관은 그녀의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 쪽으로 가볍게 당겼다. 메이의 머리가 사령관의 가슴에 기대는 모습이 되었다.
화장품의 향기가 술 냄새와 섞여 그를 괴롭혔다. 그와 그녀는 잠시, 그 순간을 즐겼다. 가만히, 침묵을 유지하며 서로의 체온과 품을 느꼈다.
“... 사령관, 나 있잖아. 좋아해. 사령관을 말이야.”
“이 밤의 일을. 메이, 네가 내일 기억할지 안할지 모르겠지만. 꼭 행복한 추억이 되게 만들게.”
“응, 그리고 나이트 앤젤한테도 자랑할래.”
그때였다. 때가 온 것이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그들의 저 멀리, 바다의 드문드문 보이는 바위섬 위에서 환한 무언가 꼬리를 달며 쏘아져 올라갔다.
하나, 둘 그것들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붉은색의 수많은 점이, 별똥별같이 꼬리를 그리며 주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 광경은 계속해서 몇 번을 반복했다. 그리고 사령관과 메이,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앞으로 다가올 걱정은 나중으로 밀어두고, 지금은 주어진 행복에 만족을 드러내며.
친구와 함께, 동료와 함께,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그들은 정열적인 열기의 한가운데에서,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름의 이벤트를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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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잘 보이네요. 그리고 이쁘기도 하고요. 절벽 위라 그런지 더 잘 보여서 좋네요.”
“그럼 다행인데 말이죠. 저번에 대장이 열심히 터트린 게 이번에 좋은 데이터가 됐어요.”
태블릿을 통해, 전자음이 섞인 목소리가 오고 갔다. 그 소리 사이사이에, 멀리서 터져 나오는 폭죽 소리가 끼어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 대장님은 사령관님이랑 알콩달콩하고 있고요. 꺄악, 방금 그걸 나이트 앤젤 씨도 봤어야 했는데!!”
“... 탈론 페더, 부탁한 건 잘하고 있는 거 맞죠?”
“당연하죠! 저한테 맡기라고 하지 않았나요!! 꼭 만족스러운 결과로 보답할게요!!”
“당신도, 참 신기하네요. 다른 사람이랑 사령관님이 데이트하고 있는 걸 눈앞에 두고도 그냥 보고만 있겠다니 말이에요.”
“뭐, 개인적으로 응원하고 있다고요!!”
“당신이요? 저희 대장을…?”
“메이 대장님 말고도, 나이트 앤젤 씨도 그런걸요. 전, 오르카의 모든 자매가 사령관님과 하는 그날을 위해 응원한답니다! 거기다가 야외 데이트는 희귀하기까지 한대, 오늘 같은 날은 그냥 찍어도 예쁜 풍경화가... 꺄악, 지금 것도!!”
셔터가 찰칵거리는 소리가 태블릿을 통해 연속해서 들려왔다. 그러자, 통신을 주고받던 이는 불안과 안심이 한대 뒤섞인 듯한 목소리를 냈다.
“... 뭐, 확실하게 일은 잘하는 거 같네요. 그럼, 나머지는 부탁드릴게요.”
“예! 저한테 맡겨주시라고요!!”
그녀는 답변을 듣고는 통신을 끊었다. 태블릿을 테이블 위에 내려다 놓고 홀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녀의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곤, 불어오는 바람과 멀리서 퍼져오는 폭죽 소리, 그리고 물결이 가볍게 일렁이는 소리뿐 이었다.
그녀는 또 한 번, 기지개를 가볍게 켰다. 그리고 오르카의 무리와 멀리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원래는 3편으로 마무리 하려했는데, 내용이 늘어나다보니
마지막 내용을 단편으로 짧게 써서 마무리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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