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카 호 수영 대회가 있던 날 이른 밤, 나는 그간 쌓인 피로를 풀 생각으로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방으로 돌아갔다. 방 앞 복도에 도착하니, 그 곳에 탈론페더가 서 있었다. 내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은 페더는 고개를 돌려 날 보곤 웃으며 인사했다.
“사령관님, 좋은 밤이에요.”
“좋은 밤이야, 페더. 무슨 일로 찾아왔어?”
페더는 내 물음에 대답하고자 등 뒤로 양손을 숨긴 채 다가왔다. 페더가 뭘 감추는지 궁금한 난 그녀의 등 너머를 기웃거려봤다. 그 행동에 보답해주듯 페더는 배시시 웃으며 오른손만 앞으로 내밀었다.
“사령관님께 멋진 선물을 드리려고 찾아왔어요.”
그녀의 오른손에는 평소에 보지 못한 특이하게 생긴 카메라가 있었다.
“선물? 그 이상한 카메라가 내 선물이야?”
“그건 아니에요. 이 카메라 먼저 설명하자면 ‘폴라로이드 카메라'란 거에요. 디지털카메라와 경쟁에 밀린 구시대의 카메라지만 필름 사진을 즉석으로 뽑을 수 있다는 나름의 낭만이 있는 물건이에요. 얼마 전에 이 섬을 순찰 돌다 발견한 건데 닥터에게 가져갔더니 블루투스 기능에 연속촬영 그리고 타이머 등 온갖 기능을 달아주며 훌륭하게 고쳐준 거 있죠! 근데 이거 지금 생각하니 즉석 필름 사진이란 거만 빼면 디지털카메라라고 불러도 되겠네요.”
“흠, 새로운 훌룡한 카메라와 훌룡한 사진가라…… 그럼 내 추리에 의하면 깜짝 선물은 훌륭한 사진들이겠네?”
“딩동댕! 정답이에요!”
그녀는 계속 숨기고 있던 왼손도 앞으로 내밀어 꽤 두꺼운 사진 뭉치를 보여줬다. 그리곤 내가 사진을 보길 재촉하듯 왼손의 사진들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난 그녀의 바람대로 사진 뭉치를 받아 한 장, 한 장 천천히 관람하였다. 페더가 찍은 사진답게 오늘 있던 수영대회의 활기를 그대로 내게 전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흐음 역시 페더의 사진이네. 그래서 새 필름 사진을 자랑할 겸 오늘 찍은 사진들 내게 보여주려고 여기서 기다린 거야?”
“땡! 그건 30점짜리 정답이에요. 필름 현상 자체는 컴퓨터에 저장된 이미지도 뽑을 수 있어서 딱히 특별한 건 아니에요. 중요한 점은 즉석 사진이란 건데...... 정답을 말해줄까요, 아니면 사령관님이 맞춰보실래요?”
“사진도 자세히 볼 겸 내가 맞춰볼게.”
페더의 가벼운 도발에 승부욕이 생긴 나는 사진들을 세세히 관찰하며 특별한 점을 찾아본다. 맨 위의 세 장의 사진에는 하치코, 펜리르, 그리고 페로가 같이 찍혀있다. 하치코와 펜리르는 사진 찍히는 것이 좋다는 듯 입가에 미트파이를 묻힌 채 방방 뛰고 있다. 페로는 약간 뒤에서 둘을 못 말린다는 듯이 쳐다보지만, 입에는 가볍게 미소가 띠었다. 다음 두 사진엔 써니와 스노우 페더가 찍혀있었다. 둘은 치료를 위해 수복실에 있었다. 그래도 치료가 잘됐는지 스노우 페더의 안색이 좋고 써니는 손으로 브이 자를 만들고 있다. 다음 여러 장의 사진들은 경비를 서던 AGS들이 찍혀...... 감이 잡혔다. 즉석 사진기와 사진 뭉치의 두께, 그리고 찍힌 대원 수만큼 있는 같은 종류의 사진을 조합해 보면 설마 이거?
“모두에게 사진을 일일이 찍어 나눠준 거야?”
“100점짜리 정답이에요! 어때요? 대단하죠? 참고로 사령관님이 보고 계신 사진들도 복사본이에요.”
“이거 다 오늘 찍은 거니깐. 모두 수영대회에 온 건 아니니, 하기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한 거야? 무리한 건 아니지?”
“찍은 방법은 저의 작업상 비밀이지만 무리한 건 아니에요. 오늘도 사진 찍는 동안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걸요.”
페더는 살며시 미소를 지은 채 카메라를 두 손으로 꼬옥 잡았다.
“닥터가 새 카메라를 만들어줬는데 새로운 분들도 많이 오셨고 그분들이 맞이한 첫 행사가 개최됐잖아요? 딱 ‘모두가 즐거운 추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게 해 줄 기회구나!’라고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전 고민도 안 하고 오늘 대회가 열리자마자 지치지도 않고 모두에게 찾아가 사진을 찍어 나눠드렸어요. 모두 사진을 받고 좋아하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지금도 피곤하긴커녕 뿌듯한 게 기분 최고에요!”
“고마워, 덕분에 나도 그렇고, 모두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았네.”
나는 즐겁게 말하는 페더를 보며 웃었다. 그 웃음을 보자 페더는 내게 살짝 더 다가와 살며시 속닥였다.
“그런데 사령관님, 한 가지 보답을 바라는데.”
“보답?”
“제가 사실 모두의 사진을 찍은 건 아니거든요. 저랑 사령관님 사진은 오늘 안 찍었어요.”
확실히 오늘 사진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페더가 날 몰래 찍었을 리가 없다.
“보답을 바라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하다 보니 오늘의 마지막 추억은 저랑 사령관님, 단둘이 남겼으면 하는 욕심이 생겨서요. 그래서 해변에서 같이 찍어줬으면 하는데...... 안되나요?”
“야한 건 아니지?”
“오늘은 플라토닉하게요.”
“평소랑 다르네?”
“에로도 대조할 갭이 있어야 흥분되는 거에요.”
“하하, 뭐 그렇다면야. 어디서 찍을 거야?”
“따라와 주세요. 이미 정한 자리가 있거든요.”
페더는 곧장 내 손을 잡고 종종 걸어갔다. 페더의 속도에 맞춰 걷다 보니 금세 밖으로 나와 해변에 도착했다. 페더는 지체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삼각대에 사진기를 설치했다.
“사령관님, 일로 와서 찍어주세요! 세팅은 제가 다 해둬서 버튼을 누르시면 20초 후에 5초 간격으로 연속 촬영될 거에요.”
“나보다는 페더가 찍는 게 더 잘 나오지 않을까?”
“그래도 전 사령관님이 찍어주셨으면 해요.”
“뭐, 그렇다면 자리에 가 서 있어 줘, 예쁘게 찍어줄게.”
“네!”
페더는 사뿐히 뛰어가 모래사장 위에 섰다. 나도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화면을 봤다. 사진기의 화면에는 만월의 조명을 받은 여름밤의 풍경이 넘쳐났다. 해변의 모래는 달빛을 머금어 밤인 걸 잊은 듯 반짝이고 있다. 별들도 이에 질세라 경쟁하듯 하늘에 수를 놓는다. 둘의 뽐내기를 구경하기 위해 밤바람을 타고 온 바닷내음이 주변을 채웠다. 화려한 경연 한 가운데 페더가 서 있다. 페더는 금성이 빛나는 밤을 담은 듯 은은히 빛나는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살며시 옆머리를 넘기며 싱긋 웃는다. 그 순간 한여름 밤의 경연의 우승자가 결정됐다. 나는 승자를 위해 카메라의 버튼을 눌렀다. 이제 페더에게 트로피를 건네러 가줄 시간이다. 나는 한 발짝, 한 발짝 페더에게 다가갔다. 쏴아, 쏴아...... 숲과 파도가 이 시상식을 축하해주는 듯 박수갈채를 보낸다. 드디어 페더의 옆에 도착했다. 한 손으로 페더의 어깨를 감싸 안고 카메라를 바라봤다.
찰칵!
셔터 소리를 신호로 한 듯 페더가 갑작스레 날 향해 빙글 돌아 내 목에 팔을 둘러 안는다. 그러고 내 머리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입맞춤한다. 길고 고요한 시간이다.
찰칵!
본문
[소설] 대회) 탈론페더가 추억을 남기는 법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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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자체가 약간 초연한 분위기 풍기는것도 한몫 하지 않을까요 ㅋㅋㅋ | 20.08.29 10: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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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도 갭이 있어야 더 빛나죠 오랜만에 보는 페더가 정상적인 이야기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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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감사합니다 | 20.09.20 09:1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