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리건의 외침에 붉은 천막 너머에서 여섯 번째 참가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파란 비키니를 입은 오드아이의 바이오로이드.
가슴의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고 당당한 위용을 자랑한다.
갈색의 긴 머리와 머리에 메여 있는 리본.
약간 차가워 보이는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T-8W 발키리!"
발키리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무대를 가로질러 관객석 쪽으로 향한다.
브라우니들과 레프리콘들의 환호를 받으며 시선은 사령관에게 고정되어 있다.
무대의 끝에서 빛나는 두 색의 눈동자의 발키리는 손을 살며시 입가에 가져다 댄다.
쪽 소리가 사령관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강한 손 키스를 날린다.
"으윽."
손 키스에 적중당한 사령관은 가슴을 움켜잡고 책상에 쓰러진다.
무적의 용도 미호도 걱정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가끔 애교를 부릴 때 사령관이 보여주는 평범한 반응이다.
"어쩜 저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지?"
사령관의 헛소리를 무난하게 넘긴 두 부인은 무대 위의 발키리를 바라본다.
발키리는 사령관의 반응을 확인하고 몸을 돌려 스프리건의 옆에 멈춰 선다.
"발키리 씨. 방금 손 키스는 무슨 의미인 거죠?"
스프리건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질문한다.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발키리는 아주 차분하게 대답한다.
"각하의 옆자리에 제가 있겠다는 선포입니다."
도발적인 미소를 미호와 무적의 용에게 보내준다.
"지금까지 T-8W 발키리였습니다!"
사령관의 두 부인의 얼굴이 구겨지는 것을 본 스프리건이 재빠르게 인터뷰를 마친다.
발키리는 고혹적인 미소로 사령관을 바라보고 천막 뒤로 돌아간다.
"발키리 씨의 무대였습니다! 박수!"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이 힘차게 박수를 보낸다.
"그럼 곧바로 다음 참가자를 소개하겠습니다! 스틸라인의 GS-130 피닉스!"
높고 푸른 여름 하늘에서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양 갈래로 연두색 머리를 묶은 피닉스가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스틸라인 하계 전투복인 푸른 빛깔의 수영복을 입고서.
"피닉스 대령님! 완전 멋지십니다!"
브라우니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른다.
자신을 향한 응원에 피닉스는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무대에 내려앉은 피닉스는 발키리를 본 충격에 엎드려 있는 사령관을 바라본다.
"사령관! 완전 바보! 내가 왔는데 보지도 않고!"
피닉스의 분노가 실린 외침은 홀려 있는 사령관을 강타한다.
"아니야! 보고 있었어!"
사령관은 되지도 않는 거짓을 내뱉으며 엎드렸던 책상에서 일어난다.
양옆에서 미호와 무적의 용이 한심하게 바라본다.
"몰라! 나 갈 거야!"
완전히 삐쳐버린 피닉스는 그대로 다시 하늘을 날아오른다.
스프리건도 사령관도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가버렸네."
무대에 홀로 남은 스프리건은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관객들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흐르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스프리건이 사령관을 향해 고개를 내린다.
"이게 다 사령관님 탓이에요!"
잘못을 부정할 수 없는 사령관은 솔직하게 사과한다.
"미안."
"대회에 집중 좀 해주세요."
"알았어."
사령관의 다짐을 받아낸 스프리건은 작게 한숨을 쉰다.
이내 기운을 차리고 크게 소리친다.
"그럼 여덟 번째 참가자를 소개하겠습니다! 둠 브링어의 B-11 나이트 앤젤!"
"나이트 앤젤? 이런 대회 안 나오려고 할 텐데?"
사령관의 의문에 대답해줄 바이오로이드는 없다.
붉은 천막이 걷히고 나이트 앤젤이 걸어 나온다.
속이 비쳐 보이는 경영 수영복을 입은 붉은 머리의 바이오로이드.
긴 다리를 쭉쭉 뻗으며 무대 위를 걸어 나온다.
비록 가슴은 없지만, 그 또한 매력이리라.
구두가 또각이는 소리가 무대를 장악한다.
브라우니들도 사령관도 나앤이 보여주는 카리스마에 제압된다.
아무도 나앤을 놀리지 않는다.
나앤은 각선미를 뿜어내며 무대를 가로지른다.
무대의 끝에 도착해서 관객석을 바라보며 다리를 쓸어올린다.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몸을 돌리고, 스프리건의 옆으로 하이힐 소리와 함께 걸어간다.
스프리건은 침을 삼키고 자신의 앞에 선 나앤을 바라본다.
"빨린 인터뷰 진행해주시죠?"
"아. 네."
나앤의 말을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댄다.
"나이트 앤잴 씨. 아무도 참여를 예상하지 않았었는데 참여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스프리건의 질문에 나앤이 한숨을 내쉰다.
"가슴만 댑따 큰 바이오로이드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죠. 죽어도 출전 안 하려고 해서 동반으로 출전했습니다."
모두가 그 가슴만 댑따 큰 바이오로이드의 정체를 알아챈다.
"메이도 참여한 건가."
사령관은 메이의 커다란 가슴을 떠올리며 중얼거린다.
"대장! 제가 여기까지 왔으니까 부끄러워서 숨지 마세요!"
천막 건너편에 있을 메이에게 크게 소리친 나앤은 스프리건을 지나쳐 붉은 천막 너머로 걸어간다.
"지금까지 B-11 나이트 앤잴이었습니다!"
브라우니들이 어색하게 박수를 친다.
"그럼 바로 다음 참가자를 소개하겠습니다! 방금 나이트 앤잴씨가 말했던 바로 그 바이오로이드!"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생각인지 스프리건이 말을 잠시 끊는다.
이미 그 정체를 모두가 알기에 원하는 대로 긴장감이 치솟지는 않는다.
"대회 유일한 지휘관급 참가자입니다! 멸망의 메이!!!"
스프리건의 힘찬 외침과 함께 무대 뒤에서 폭죽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메이는 준비도 참 많이 했네."
사령관이 푸른 하늘에서 하트 모양으로 터지는 분홍빛 불꽃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저 정도 정성을 진작에 보여줬으면 좀 더 일찍 기회를 얻지 않았을까?"
미호의 말에 동의하듯 무적의 용이 고개를 끄덕인다.
퍼져나가는 불꽃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배경으로 메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중요 부위를 겨우 가리는 검은 슬링샷 수영복.
양쪽으로 길게 땋은 머리카락은 바닥에 쓸릴 정도다.
"으으! 부끄러워!"
메이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양손으로 가린 채 무대 위로 나타난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멈추고, 하늘에 피어오른 분홍색 하트도 사라진다.
"나앤은 이걸 어떻게 입으라고 하는 거야."
이미 입고 있으면서도 투정을 부린다.
"저기 메이 대장님?"
스프리건은 천막 앞에서 머뭇거리는 메이를 부른다.
메이가 손가락을 살짝 열고 울상인 눈동자로 스프리건을 바라본다.
"왜!"
그러면서도 화내는 것은 잊지 않는다.
"무대로 나가셔야 하지 않을까요?"
스프리건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메이를 바라보는 사령관을 가리킨다.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를 가리킨다.
"사…. 사령관이 날 보고 있는 거야?"
스프리건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 얼른 나가셔야죠."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말하는 스프리건.
메이는 그런 스프리건의 재촉에 못 이겨 얼어붙은 발을 옮긴다.
얼굴을 가리는 손은 치우지 않는다.
그럼에도 귀까지 얼굴이 빨개진 것이 보인다.
손 틈으로 드러난 눈동자는 관객들을 향하지 않는다.
오직 자기 발밑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간다.
무대의 끝에 선 메이는 조심스럽게 얼굴을 가린 손을 내린다.
웃고 있는 사령관과 눈이 마주친다.
"으힉!"
비명을 내지르고 얼굴을 가린 채 왔던 길을 뛰어 돌아간다.
"도망쳤네."
"나이트 앤젤 공이 정말 힘들겠군."
참가자가 도망가버려 휑하니 바람이 불어오는 무대.
스프리건은 그저 깊은 한숨을 내쉰다.
"사령관님을 두고 도망가버린 대장은 내버려두고!"
예상했던 일이기에 자연스럽게 진행을 이어간다.
"다음 참가를 불러 봅시다! 컴페니언의 CS 페로!"
- #4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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