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는 푸르고 푸른 하늘.
붉디붉은 태양이 용서 없이 내리쬔다.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바다 위에 오르카호가 반짝이며 떠올라있다.
그리도 그 뒤를 따르는 무적의 용의 함대.
이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항공모함인 모비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수많은 바이오로이들이 앉아있는 모비딕호.
사실상 임무가 있는 전투원을 제외한 모두가 모여 있다.
오르카호는 AGS들과 공순이 3자매에게 맡긴 사령관이 한숨을 쉰다.
아무리 급했어도 참여 못 한 인원 모두에게 데이트권을 준다고 약속하는 게 아니었는데.
이번 행사가 끝나고 일어날 난장판을 걱정하며 지난날 자신의 행동을 후회 중이다.
"서방님."
사령관은 옆에서 들려오는 침착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무적의 용이 사령관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저 지금은 이 상황을 즐기는 것이 어떻겠소?"
팔짱을 끼고 있는 무적의 용의 왼손 약지에는 금반지가 반짝인다.
"그래. 후회는 언제 해도 늦는 법이랬지."
"아니면 그냥 사령관이 바보거나."
반대쪽에서 들려오는 미호의 목소리에 사령관이 눈을 흘긴다.
미호는 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어 보인다.
사령관은 반지를 끼고 있는 미호와 마주 보고 살며시 웃은 후 정면을 바라본다.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기다리고 있다.
데이트는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을 가볍게 정리한 사령관은 관객석 사이로 길게 뻗은 무대 위에 서 있는 스프리건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낸다.
평소의 군복을 입은 스프리건이 사령관의 시선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마이크를 가볍게 두드려 관객들의, 대부분 브라우니의, 시선을 끌어모은다.
"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스프리건이 마이크를 입 가까이 가져가고 소리친다.
시끄럽게 떠들던 브라우니들이 일제히 스프리건을 바라본다.
"그럼 지금부터~~~! 제1회! 오르카! 미스~~~ 수영복~~~ 선발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팔을 크게 휘두르며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스프리건.
"와아아아아아아아!!!"
곧 엄청난 함성이 대회장, 모비딕호의 선상을 뒤덮는다.
그에 맞추어 함대의 포가 불을 뿜는다.
여름의 푸른 하늘이 형형색색의 불꽃으로 뒤덮인다.
"우와. 저런 것도 준비했어?"
미호의 질문에 사령관은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무적의 용이 준비해줬어."
"서방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나의 의무요."
관객석과 약간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의 대화하는 사이, 스프리건의 대회 소개는 멈추지 않는다.
"사령관님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대회! 모두가 갈망하는 상품이 걸린 바로 이 대회!"
브라우니들의 함성이 맞물리자 열광의 도가니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상황이 연출된다.
"미스 수영복으로 선정된 분은 사령관님이 꽁꽁 감추어 두었던! 반지를 드립니다!"
주변 공기가 폭발할 거 같은 함성이 울려 퍼진다.
"셋째 부인도 만드신다니 참으로 좋으시겠어?"
첫째 부인 미호의 말에 사령관이 헛기침을 토한다.
"우리 합의된 거 아니었나?"
땀을 흘리며 대답하는 사령관의 말에 무적의 용이 끼어든다.
"침대에서 잔뜩 뒹굴고 대답할 힘도 없게 만든 상태에서 하는 걸 합의라고 한다면."
사령관은 두 부인의 싸늘한 눈초리에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한다.
"뭐. 지금은 그저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소. 어차피 서방님은 인류 부흥의 의무가 있으니까."
"용서해 주는 거야?"
"용서해주시고 자시고. 처음부터 화 안 났거든?"
미호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사령관을 바라본다.
"그냥 사령관 놀린 거야."
무적의 용도 미호와 같은 생각인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자! 그럼 첫 번째 참가자를 만나기 전에 모든 참가자의 수영복을 만들어준 오드리 드림위버 씨를 소개하겠습니다!"
스프리건이 무대 뒤쪽을 가리키며 소리친다.
붉게 내려진 천막 뒤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브라우니들과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바이오로이들이 천막을 바라본다.
하얀 머리의 재봉사 바이오로이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예상했던 상황이 아닌지 스프리건이 크게 당황한다.
"오드리 씨?"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불러 보지만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저기. 스프리건 씨."
천막 사이에서 작은 얼굴 하나가 쏙 튀어나온다.
더치 걸이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스프리건을 바라본다.
"오드리 씨는 과로로 쓰러지셔서 수복실에……."
"어이쿠."
더치 걸의 이야기를 들은 사령관이 말한다.
"하긴…. 이 대회를 준비하려고 수영복을 왕창 만들었으니."
오드리의 처지를 이해한 미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중에 한 번 노고를 치하해 주는 것이 어떻겠소?"
"그래야겠네."
무적의 용의 말에 동의한 사령관은 다시 무대에 집중한다.
"어…. 그러니까……."
커튼 뒤로 사라진 더치 걸의 흔적을 바라보며 스프리건이 중얼거린다.
지켜보는 관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정신을 차린 스프리건이 무대를 진행한다.
"다음 순서는! 이번 대회의 주최자이자 심사위원장인 사령관의 인사말입니다."
"그런 시간도 준비했소?"
마이크를 들고 심사위원석으로 포로로로 날아오는 아쿠아를 보며 무적의 용이 질문한다.
"일단 정식 대회니까."
아쿠아에게서 마이크를 건네받은 사령관은 아쿠아에게 고맙다 말한다.
사령관이 단단히 마이크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관객석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심사위원석을 바라본다.
"자. 이번 대회에 참여해주신 모든 여러분. 선수가 아니더라도 관람을 함으로써 자리를 빛내주신 모든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완전 멋지지 말입니다!"
"으아! 제발 조용히 좀 하세요!"
소리 지르는 브라우니와 레프리콘을 보며 웃은 사령관은 얼른 말을 이어간다.
"이번 대회에 반지가 걸려 있다는 사실은 다들 잘 아실 겁니다. 그러니 모두 최선을 다해서 대회에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대로 자리에 앉으려는 사령관을 미호가 제지한다.
"마이크 잠깐만 줘봐."
사령관은 별다른 생각 없이 미호에게 마이크를 넘겨 준다.
자리에서 일어난 미호는 관객석과 커튼 너머 무대 뒤를 바라본다.
"이번 대회 우승자가 사령관의 셋째 부인이 되는 건 알고 있겠지?"
미미하게 분노가 담겨 있는 목소리.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사령관은 어색하게 웃는다.
"그래도 말이야. 내가 첫째 부인이야. 내가 정실이야. 알고 있으라고!"
사령관과 같은 침대를 쓰게 될 다음 사람을 향해 힘껏 소리 지르고 자리에 앉는다.
좌중이 일제히 침묵한다.
모두가 심사워원석의 미호를 바라본다.
사령관도 무적의 용도 놀란 표정으로 미호를 본다.
"뭘 그렇게 봐!"
빨갛게 물든 얼굴로 소리를 빽 지른 미호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린다.
"하하하. 저는 미호 양이 저렇게 귀여울 줄 몰랐네요. 아무튼, 식전행사가 다 끝이 났으니. 본격적으로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식어버리기 전에 스프리건이 대회 시작을 선포한다.
미호의 충격적인 반응에 굳어 있던 관객들도 소리를 지르며 환호한다.
"그럼 첫 번째 참가자를 소개하겠습니다! 아머드 메이든 부대의 A-14B 스프리건!"
자신의 이름을 외친 스프리건이 입고 있던 군복을 하늘 높이 벗어던진다.
몸에 착 달라붙는 면적이 적은 검은 비키니.
풀어 해져져 있던 머리카락이 토끼 귀 모양으로 묶은 끈으로 정리된다.
마지막으로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얹는다.
"야호! 완전히 시원하네요!"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스프리건이 소리친다.
"참신한데?"
"소인도 많이 놀랐소."
"그냥 가슴 큰 여자가 좋은 건 아니고?"
심사위원들의 반응을 확인한 스프리건은 사령관을 향해 윙크를 보낸다.
사령관은 무언가에 홀린듯 손을 흔들어 주고, 미호에게 옆구리를 찔린다.
자신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려 있는 걸 확인한 스프리건이 관객석으로 이어진 무대 위를 걸어간다.
멸망 전의 패션쇼라는 곳에서 따온 이 무대는 자신의 몸매를 한껏 뽐내기에 적합하다.
기다랗게 놓인 무대 끝에서 다시 한 번 사령관에게 윙크를 선사한 스프리건은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자리로 돌아간다.
"원래는 여기서 인터뷰까지 해야 하지만! 이번에는 생략하고, 바로 두 번째 참가자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닥에 벗어 던진 군복을 발로 밀어 무대 아래로 떨어트리며 진행을 이어간다.
"나와주세요!"
스프리건의 외침에 길게 늘어진 붉은 천막이 서서히 열린다.
- #2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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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판 일러긴 한데 가렸으니까 괜찮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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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드림워버- 애독서: 공산당 선언 | 20.08.21 17: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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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ㅇㅋㅋ | 20.08.22 02:1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