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이제 좀 쉴 수 있겠는걸."
나는 해먹에 몸을 기댔다. 그물이 기분 좋게 내 몸을 감싸고. 시원한 바다바람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요새 너무 일이 많았다구.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조금 쉬려고 할 순간에 항상 일이 터졌으니까. 하지만 이젠 모든 일이 기분 좋게 정리되었다.
괌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고, 정말 위험하던 때도 있었지만. 사령관의 훌륭한 지휘와 지혜로 이겨 낼 수 있었다.
"헤헷, 그때 사령관... 정말 멋졌지."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고 웃음이 나왔다. 나 스스로를 주체 할 수 없었지만, 싫은 기분은 아니야. 오히려 기분이 더 좋아졌어. 이게 수많은 로맨스 소설에서 말한 사랑이라는 감정인 걸까? 사령관과 손을 잡고 해변을 거닐고,
해변의 황혼빛 노을을 함께 바라보며 가까워지는 우리 둘 사이의 입술... 그리고 아름다운 달빛을 받으면서 하나가 되는 우리들...
꺄야아아! 나미쳤나봐어떻게정말상상이멈추질않아!
아무도 없는 해변이었지만 너무 부끄러워서 아무 책을 펼쳐서 얼굴을 가렸다. 한 동안 책으로 얼굴을 가리다가. 문뜩 어제 생각이 나서 기분이 슬퍼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했던 상상이 다 실제로 실현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내가 수영복 대회에서 떨어지기 전까진...
"하지만 내 잘못이 아닌 걸! 왜 갑자기 장기자랑을 하라고 한 거야! 나... 난 수영복만 예쁘게 입고 워킹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히잉..."
살짝 눈물이 새어나왔다. 그래... 지금와서 한탄을 하면 어쩌겠어? 데이트 권은 결국 내 손에 들어오지 못했는 걸... 결국 수영복 대회의 승리는 블랙 리리스 양이 거머쥔 걸... 오체분시 마술쇼는 도대체 어떻게 한 걸까? 옛날에 마술에 관련 된 책을 읽은 적이 있었음에도 그 오체분시 마술은 들어보지도 못한 마술이었는데...
비행장치도 챙기지 않은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고작 해야 몸을 흐느적 거리는 춤밖에 할 수 없었다. 그걸 본 스프리건 양이 5초만에 웃음을 터트리며 중지 시켰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전대장이 권유 할 때 아이돌 활동을 해볼 걸! 이게 뭐야! 그땐 정말 바보같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바보였었어! 이 토모! 드라코! 브라우니! 슬레이프니르 전대장은 장기자랑에서 2등이라도 했지. 난 도대체 뭘 한 거야! 장기자랑에서 내가 2등을 했으면 종합 순위에서 1등이었을 텐데...
난 애꿏은 내 머리만 때렸다. 책을 정말 많이 읽어는데. 정작 필요할 때는 쓸모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만 책을 읽는 게 아니고 책을 좋아해서 읽는 거지만. 씁쓸한 기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책이나 읽자."
그래도 어제 수영복 대회에서 수확이 없었던 건 아니다. 사령관이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던 모습은 형용할 수 없었다. 로맨틱한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마치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남주인공이 소설을 찢고 튀어나온 것 처럼 멋졌으니까. 솔직히 그 노래를 듣고 사령관에게 더 반했다.
아마 얼굴만 봐도 어버버거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 같아... 하지만 기타랑 같이 노래를 부르는 건... 더 반할 수 밖에 없다구...
그를 생각하자. 언제나 처럼 내가 읽고 있는 소설의 주인공이 사령관으로 변하고. 여주인공의 자리엔 항상 내가 들어가 있다. 그 둘은 항상 멋진 사랑을 하며 마지막엔 뜨거운 사랑의 키스를 나누는 걸로 끝난다.
하지만 알고 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주인공이 부르는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가 내 가슴 옆에 자리잡아. 고장난 라디오 마냥 내내 틀어져 노랫소리가 심장을 감아도. 주인공이 보내는 뜨거운 눈빛이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다워도. 그건 나한테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나의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나눠지는 은총 같은 것에 불과하다는걸 안다.
그리고 나 같은 책순이가 그의 눈길을 자신에게만 사로잡기엔 부족하다는 것도 안다. 그의 옆엔 정말로 매력적인 사람들이 넘쳐났으니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하늘에 높게 떠있는 여름의 태양처럼 나에게 멀고 환하게 빛나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좋아, 태양만을 바라보며 사랑하다가 해바라기가 되어도. 그저 그의 옆에 있으면 그걸로 만족할 뿐이야.
더 이상의 욕심은 바라지 말아야지. 그건 탐욕이야. 알고 있잖아? 하르페이아. 탐욕에 빠졌던 사람들이 책 속에서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이제 생각을 멈추고 책에만 빠져들기로 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사령관이 어제 불렀던 노래가 입 속에서 튀어나왔다.
"Your voice was the soundtrack of my summer~(너의 목소리는 여름의 음악과도 같았어.)"
"어제 노래 괜찮았나 보네?"
"깜짝아!"
뭐.. 뭐야? 왜 사령관이 여기에 있어? 왜..? 왜? 서, 설마 날 보려고 왔나? 에... 에이 설마~ 블랙 리리스 양이랑 데이트 하다가 잠깐 쉬러 온 거 겠지..? 그, 근데 그렇다고 치면 왜 블랙 리리스 양이 보이질 않지?
"사.. 사령관? 브, 블랙 리리스 양이랑 데이트 하러 간 거 아니었어?"
"뭐, 원래 예정대로라면 그렇긴 하지. 근데 좀 미뤘어. 리리스도 동의했고. 그리고 원래 1등에게 하루 정도는 양보 가능 하다던데?"
"무, 무슨 뜻이야?"
"똑똑한 너라면 이게 무슨 뜻인지 말 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뭐, 데이트 신청이야. 아가씨. 나에게 하루 정도 시간을 내주겠어?"
세상에나... 내가 꿈꿔왔던 일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어. 이거 꿈인가? 내가 어제 떨어져서 슬픈 나머지 상상을 꿈으로 꾸고 있는 거야? 볼을 아주 쌔게 꼬집어 보았다. 아파, 아프다! 이거 꿈이 아냐! 진짜 현실이야!
내가 한참을 멍하니 가만히 있자. 사령관은 살짝 손을 튕기며 내 정신을 환기시켰다.
"뭐야 하르페이아? 나랑 데이트 하는 게 싫어? 뭐, 싫으면 난 쓸쓸하게 혼자서 돌아가고..."
"아냐진짜좋아너무좋아서정신이멍해진거야!"
살짝 몸을 돌은 사령관의 옷자락을 붙잡고 크게 소리쳤다. 사령관의 입꼬리에 자그마한 미소가 걸려 있는 걸 보고. 뒤늦게 부끄러움이 몰려와 고개를 푹 숙였다.
그, 그래도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신 기회가 안 올 것 같아서 어쩔 수 없는 걸! 내 잘못이 아니야!
"후후, 의외네. 하르페이아, 넌 이렇게 행동 안 할 줄 알았는데. 내 안에서 너는 항상 차분하고 이지적이었으니까."
"으으... 어쩔 수 없는 걸. (소근)사령관이 너무 멋있는 탓이야."
"뭐라고?"
"아, 아무것도 아냐! 가자! 사령관. 전에 못한 산책 계속하자."
"응, 저번엔 숲을 산책했으니까. 이번엔 해변으로 갈까?"
"좋아!"
바다바람을 맞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서 모래사장을 걷는다. 마치 내가 상상하던 소설 속의 여주인공이 된 것만 같아서 기뻤다. 아무래도 저번에는 럼버제인 양과 함께 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사령관가 나 뿐,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사령관은 남자답고 두터운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내 자그마한 손에 비해 큰, 사령관의 손은 부드럽게 내 손을 감쌌고. 전기에 감전 된 것 처럼 짜릿한 기분이 내 손을 타고 올라와 내 심장에 도달했다.
으, 어떡해... 손 잡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
그렇게 한참을 사령관의 손을 잡고 해변을 걷다가. 그런데 갑자기 사령관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하르페이아, 이번에 고생 많았지?"
"으.. 응? 아, 아냐! 오히려 사령관이 고생이 더 많았지. 사령관이 지휘를 잘 해준 덕에 우리가 이렇게 무사히 나와서 해변을 걸어다닐 수 있는 거 잖아."
"과찬인걸. 난 아무것도 안했어. 너희들이 없었더라면 크게 힘들었을 거야."
나는 사령관의 손을 잡아 당겼다. 갑자기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나도 모르겠지만.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내가 당기자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령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아냐, 사령관. 아무것도 안 하지 않았어. 사령관의 명령이 없었다면 난 미사일을 쏘면서 적이랑 교전했을 거고. 아머드 메이든들이 우리들을 지원 왔을 때. 미사일을 쏘지 못해서 길을 뚫지 못했을 거야. 또, 우리들만 있었다면 스노우페더랑 써니가 우리에게 합류하지 못했을 거고. 사령관이 없었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우리들이 타이런트 앞에 있었을 때. 아마 우린 살아돌아오지 못했겠지. 그러니까 사령관은 아무것도 하지 않지 않았어. 오히려 우리들의 목숨을 두 번 이상 구해준 거야.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 사령관."
"...하하! 그렇게 되려나? 그러면 말이야. 하르페이아,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게 해줄 보답은 없어? 두 번이나 구해줬잖아~"
"어.. 어?"
사령관은 웃으면서 말했다. 보, 보답? 새.. 생각해보니 우리 목숨을 구해줬는데. 아무런 보답을 해주지 않았잖아..? 고맙다는 말도 없었고. 그, 그래 책! 내가 전에봤던 소설에선 고, 공주를 구해줬었던 기사가 보답을 요구했을 때. 공주가 어떻게 했었더라?
맞아... 키.. 키스! 그래이건내사심이들어간게아니라사령관이보답을요구했는걸그럼어쩔수없는거아니야?
"농담이야. 난 너희들한테 보답 같은... 읍!"
까치발을 들고. 나보다 훨씬 키가 큰 사령관의 가슴에 몸을 기댄 후. 그대로 사령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부딪혔다. 따뜻하지만 살짝 거친 느낌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었고. 정말 아주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영원히 이어지길 바란 유일한 시간이었다. 키스라고 할 순 없는 단순한 뽀뽀에 불과했지만.
내 심장은 터질 것 처럼 쿵! 쿵! 하고 울렸다. 그리고 내 입술과 그의 입술이 떨어지고.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소리쳤다.
"사.. 사령관! 내, 내가 주는 보답이야! 그럼 안녕! 잘 있어!"
너무 부끄러워서 난 뽀뽀가 끝나자마자 도망쳤다. 왠지 지금 그의 얼굴을 보면 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그리고 아주 약간의 불안감도 있어. 만약 내가 뽀뽀 해준 게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얼굴이 불쾌하게 굳으면 어떻게 하지? 가끔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걸... 책 속에서조차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않잖아. 내 사랑은 엄연한 현실이고. 만약에... 아주 만약에... 해피엔딩이 아니면...
하지만 도망치려던 나의 팔을 사령관은 붙잡았다. 그리고 소설 속의 박력있는 남주인공처럼 그대로 나를 끌어당겨 안았다. 넓은 그의 가슴에 몸을 기대고, 단단한 사령관의 팔이 나를 부드럽게 껴안았다. 심장이 알람을 울리는 시계처럼 크게 울렸다. 어떡해... 진정이 되질 않아..! 내 얼굴은 땅바닥에 넘어져 긁혔을 때 처럼 화끈해졌다.
아니, 얼굴 뿐만이 아니라. 온 몸이 열상을 입은 것 처럼 화끈하고 따끔했다.
"그게 보상이라기엔 너무 짧지 않아?"
"사.. 사령.. 읍!"
방금과는 반대로 사령관의 입술이 그대로 내 입술을 덮쳤다. 꺼끌한 입술이 다시 한 번 내 입술을 덮었고. 그대로 혀가 들어와 내 이를 그대로 한 번 훝어주자.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대로 그에게 온몸을 맡겼다.
그렇게 그의 혀와 내 혀가 소설 속에 묘사되었던 키스처럼 엉겨붙어 떨어지지 않고. 한참이나 서로가 서로를 원했다.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끝나고 우리 둘 사이에 아주 자그마한 실선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사령관의 눈은 어제 그가 불렀던 노래의 가사처럼 그 어떠한 색보다 아름답게 빛이 났고. 그의 목소리는 한 여름의 음악처럼 감미롭게 울려 퍼져. 내 귀를 황홀하게 한다. 나는... 나는 역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아무리 멋지고 훌륭한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해도, 난 이 사람만을... 사령관만을... 사랑하고 싶어... 그래, 설령 내가 해바라기가 된다고 해도. 밝게 빛나는 태양을 뒤쫓다 떨어진 이카로스가 된다고 해도... 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걸...!
"내가 구해준 건 두 번이니까. 두 번째 보답을 받고 싶은데... 싫어?"
"아니... 정말로... 정말로... 좋아...!"
그는 그대로 내 목덜미에 키스했다. 아주 짜릿한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따끔했고. 열상을 입은 것 마냥 화끈했지만. 정말로 기분이 좋아서 참을 수 없었다... 내 보잘 것 없는 사랑은 한 여름의 열상처럼 화끈하고 따끔한 최고의 보상을 받고.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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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하르페이아 소설을 한 번 써봤습니다. 허허허. 아, 이번 이벤트 때 하르페이아가 정말 귀엽더군요. 그래서 이번 소설에서 귀여움에 초점을 두고 글을 쓴 것 같습니다.
에이미와의 단편이 영화를 떠올리면서 글을 썼다라면 이번 하르페이아 소설은 로맨스 소설을 떠올리며 글을 썼습니다. 아무래도 하르페이아는 영화보단 로맨스 소설처럼 묘사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리고 이번에도 노래를 넣을까 싶었는데. 한 번 썼는데 두 번 쓰면 식상할 까봐 안 넣었습니다. 대신 에이미 단편에 출현했던 노래를 아주 살짝 맛보기로 썼죠.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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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염둥이 짭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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