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 다우드 군!”
꺽다리에 창백한 피부와 뼈만 남아있는 앙상한 몸, 그리고 산발스러운 곱슬머리의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이 남성을, 콜름 오드리스콜 펙소 콘소시엄 총재 겸 오메가 그룹의 회장은 슬리퍼에 잠옷 차림으로 나와 진심을 다해 정성스럽게 맞이하여주었다. 그를 향한 오드리스콜 회장의 얼굴 만면에는 평소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오드리스콜 회장의 진심이 담긴 미소가 피어있었다. 자신이 진심으로 아끼고 후원을 했다는 말이 사실이긴 했던 모양이었다.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그렇게 단정짓는 이유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오드리스콜 회장이 자신에게 저런 표정을 지어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레모네이드 오메가도 오드리스콜 회장에게 진심으로 충성한 적일랑 단 한 순간도 없었지만, 그래도 바이오로이드도 결국 사람인지라 순간의 시셈이 치솟아 올랐다. 냉동 캡슐에서 갓 깨어나 두 다리로 서는 것 조차 힘들어보이는 이 나약한 인간이, 도대체 자기보다 나은 점이 뭐가 있단 말인가?
이 창백한 남성은 자신을 맞이하여 주는 오드리스콜 회장을 보며 도무지 믿기 힘들다는 듯, 습관적으로 안경을 올리며 물었다.
“호, 회장... 님...?”
“오드리스콜... 회장님... 이십니까...?”
“그래, 이제야 깨어나줬구만.”
“이 친구야, 내가 자네가 일어나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기나 하나? 자네 무려 180년이나 넘게 잠들어 있었었다네.”
“모, 몰랐습니다... 저는 한 열 세기 정도는 지나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네요 제가...”
“하하하하~!!! 자네 그 이해할 수 없는 입담은 멸망하고 나서도 여전하구만~!”
깨어나고보니 인류가 멸망했고, 그 뒤로 180년이 지났다는 소리는 이 남자를 놀래키기엔 충분했다.
아니, 정확히는 2세기나 가깝게 자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냉동 캡슐안에 넣고 180년 동안이나 냉동 수면에 재운 사람은 다름 아닌 남자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인류가 멸망하기 직전까지 홀로 알래스카 지하 연구 시설에서 철충에 대해서 연구를 하던 그도 휩노스 병 만큼은 어찌 해결할 수 없었기에(정확히 말하자면 신경에 막을 씌우는 방법 자체는 완성하였으나, 이를 실행하려는 순간 휩노스 병의 증세가 순식간에 악화되어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설령 자신이 깨어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미래에 깨어날 것이라 예상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인류가 멸망하고 깨어나보니 시간이 흐른 것 치고는, 180년이란 세월은 그다지 영겁의 세월로 조차 느껴지지 않을 지경이다.
하지만 자신이 깨어나면 적어도 최소한 한 일 천년 즈음은 지나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이해못할 남자의 말에, 오드리스콜 회장은 입꼬리가 귀까지 걸린 채로 웃어보이며 그가 하는 말을 농담치레 받아들였다. 일 천년이라는 세월도 어디까지나 남자의 기준이지,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는 2세기 동안 잠들었다가 일어난 것도 충분히 오랜 세월이었다. 당장 오드리스콜 회장 본인도 인류가 멸망하고서 180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냉동 수면에서 깨어날 수 있었으니, 보편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다고 말하는 남자의 말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들릴 법도 하였다.
그럼에도 오드리스콜 회장은, 애초에 이 남자가 멸망 전부터 원채 4차원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런가보다 하고 넘길 뿐이었다.
“따라오게. 앞으로 자네가 지낼 곳을 내 소개할 테ㄴ...”
- 꼬르르륵~...
“... 아...”
“... 배가 좀 고프네요.”
남자는 오드리스콜 회장의 앞에서 배꼽시계 소리를 내며 태연하게 배고프다고 말하였다.
레모네이드 오메가는 회장님의 앞에서 태연하게 배가 고프다 말하는 남자를 보며 어이없어 하였지만, 오히려 오드리스콜 회장은 그 당돌한 모습에 큰 소리로 웃어보였다.
“... 아하하하하!!! 이거이거, 내가 그만 방금 전에 깨어난 사람한테 밥도 안 먹이고 부려먹을 뻔 했구만 그래.”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 하게. 내 다 준비해줄 테니.”
* * *
다우드 알 누마이라.
팔레스타인 출신의 생명공학자로서 삼안 그룹의 객원 연구원이었고, 오드리스콜 회장으로부터 멸망 전부터 꾸준한 후원을 받았던 생명공학자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생명공학자로 불리기를 꺼려했다.
... 아니, 본인은 오히려 생명공학 “기술자” 라고 불리기를 원했다.
왜 생명공학기술자라고 불리길 원하느냐 묻는다면 이는 다우드가 생명공학을 학문으로 보지 않고 그저 하나의 테크놀로지 = 기술로 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생명공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명(Bio)에 기술(Technology) 혹은 공학(Engineering)의 합성어로서 생명을 다루는 기술이니 원론적으로 본다면 그런 개념이 맞긴 하다. 하지만 다우드 알 누마이라가 스스로를 생명공학기술자라고 말하는 것은, 생명공학을 학문적 의미에서 연구를 한다기 보다는 그저 자신의 필요에 의해 기술적으로 접근하여 활용할 뿐이기 때문이었다.
생명공학을 실험함에 있어 연구 윤리라던가 연구 과정에서 벌어지는 도덕적인 인과율과 관련하여 크게 개의치 아니하였다. 실험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원인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결과일 뿐이었다. 아, 물론 실험자는 자원해서 받았다. 의외로 멍청한 사람들이 많아서 적절한 보상만 해준다면 실험의 부작용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도 쉬웠다. 그나마 대상이 사람이면 이 정도지,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것이 실험에 필요하다면 절도를 비롯한 상습적인 범죄 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그 만큼 그에게는 생명공학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책임이나 윤리의식 따위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윤리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쨋거나 앞서 말한 내용처럼 본인 스스로부터가 딱히 생명공학이라는 학문을 다룸에 있어 태도가 개판이라는 것은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은근히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
문젠 그걸 고칠 생각이 없어서 그렇지.
그의 진득한 후원자인 오드리스콜 회장의 말마따나 만약에 그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더라면 아마 김지석이나 애덤 존스같은 위대한 생명공학자들보다 더 뛰어난 생명공학자로서 업계에 이름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다만 오드리스콜 회장의 생각과는 달리 아마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그래서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를 꺼려했던 것이었다. 태생적으로도 딱히 남들 앞에서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애초에 4차원 적이다 못해 음흉한 그의 성격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딱히 그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 그 본질, 그 근본, 그 자체를 향한 그의 호기심은 무한에 가까웠고, 호기심은 생명공학의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극한으로 키워올려주는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특히나 다른 학문보다 더욱 높은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요구하는 생명공학에서 그의 부정적인 부분만 거두어내고 본다면, 다우드 알 누마이라는 충분히 김지석이나 애덤 존스 박사 만큼 혹은 그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오드리스콜 회장이 그를 아끼고 개인적으로 후원을 해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오드리스콜 회장이 그를 세상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숨겨놓은 이유이기도 하였다.
“전 이렇게까지 많이 안 먹습니다.”
“남겨도 상관없네. 그저 내 마음이라고만 생각을 해주게나.”
“그럼 좀 남기겠습니다.”
호화스러운 만찬을 눈 앞에 두고도 다우드 알 누마이라는 오히려 그것이 부담스러운 냥 말하였다. 스프에 스테이크는 기본이고, 어디서 공수해왔을지 모를 푸아그라와 캐비어까지. 기껏 준비해준 만찬을 두고 남기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대범함에 레모네이드 오메가 뿐만 아니라 자리에 있던 다른 펙스 소속의 바이오로이드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오드리스콜 회장의 앞에서 저렇게 당돌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했구나 하고 말이다.
그의 말마따나 다우드 알 누마이라는 몇 숟갈 뜨지도 않고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끝낸 뒤 자리에서 일어나 오드리스콜 회장을 따라 나섰다. 레모네이드 오메가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뒤를 따라 나서며 그들을 수행하였다. 오드리스콜 회장은 다우드 알 누마리아가 머무를 수 있는 방까지 안내를 해주고 간단한 사담을 주고받은 뒤, 이후 이 다음에 있을 자신의 스케쥴로 인하여 짧았던 첫 만남을 뒤로한 채 먼저 자리를 떴다.
“미안하군, 더 오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다니. 이 시간 이후부터는 나도 개인적인 스케쥴이 있어서 말일세.”
“뭐, 멸망 전부터 워낙에 바쁘셨던 몸이셨으니까요.”
“이제부턴 여기가 내 집이다 하고 생각하고 편히 지내게.”
“오메가?”
“예, 회장님.”
“오늘의 물건들도 준비를 해놨겠지?”
“예, 물론입니다. 이번에도 회장님께서 좋아하실 만한 것들로 잘 빠진 녀석들로다가 선별하여 미리 준비를 해놨습니다.”
“원하시는 만큼 즐겨주시면 되겠습니다. 혹여나 망가지거든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시오. 새로 가져다드릴테니.”
“아주 좋아...”
“요즘 슬슬 몸이 회복되어가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밤마다 통 주체를 할 수가 없단 말일세. 혼자서 해결할 수 없으니, 나도 참 주책이란 말이지...”
“...”
“... 그럼 이만 난 먼저 가도록 하지. 나머지 이야기는 여기 있는 내 비서에게 들으면 되네.”
저녁 식사 직후 지극히 개인적인 스케쥴로 시간을 비울 수 없는 오드리스콜 회장을 대신하여 레모네이드 오메가는 다우드 알 누마이라에게 그가 머물 수 있는 방을 소개하여 주었다.
그리고 오드리스콜 회장은 기분 나쁜 웃음소리와 함께 입맛을 다셔보이며 먼저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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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좀 더 많은 분들이 제 라오 소설을 읽어주실지 궁금합니다.
뭔가 뾰족한 수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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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회장들이 보르비예프에게서 봤을 '후계자들'과 비서 레모네이드들의 관계는 서로 어땠을까싶네요. 후계자를 얻었다고 확정된 문구는 아니었으니 애초에 가지지 못했을 수도 있고 펙스 스토리에서 굳이 가지를 더 늘릴 이유도 없으니 적당히 살다갔다 할 수도 있긴한데 라오 스토리가 이어진다면, 펙스 회장이 아닌 의외의 인물이 남겨둔 안배같은 역할로 뭔가 행적 나올 수도 있지않을까싶습니다. 후계자 중 한명이 다른 레모네이드와 비밀 연인이었기에, 그 레모네이드가 평소 이미지와 다른 의외의 일을 했다는 식이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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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이제 봅니다. 레모네이드 한 명과 비밀 연인을 하면서 후계자를 양성했다라, 그런 설정도 괜찮겠군여 | 24.05.08 00:42 | |
(IP보기클릭)222.118.***.***
(IP보기클릭)125.179.***.***
| 24.05.08 00:4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