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돈으로 산 첫 검은 급하게 서울로 이사하는 와중에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팔았었습니다.
취직도 하고 그럭저럭 생활이 안정된 뒤, 저 검을 만들어 준 공방에 들렸더니 공방에 돌아와 있더라고요.
다시 못 볼 줄 알았던지라 너무나 반가워서 인수할 의사를 조심스레 밝혔습니다.
나: 이 검 다시 제가 인수하면 안 됩니까?
츤: 안 됩니다.
!?
기껏 만들어 줬더니 내다 팔았다고 화 난 건가 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고,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대 길이와 휨의 척도로 쓰기 위해 보존하겠다고 합니다.
뭐 어쩔 수 없지요.
새로 한 자루 맞추겠다고 얘기해 두고 돌아왔습니다.
기존의 칼과 똑같은 걸 다시 맞추는 것도 싫고 평범한 칼을 주문하기도 싫고 해서,
좀 독특한 칼이 없을까 가지고 있던 도검 사진들을 뒤적거리다가 이런 걸 발견했습니다.
소하야노츠루기우츠스나리(ソハヤノツルキウツスナリ).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애검이었다고 합니다.
너비 4cm에 달하는 일본도 치고는 매우 넓은 칼날, 날면을 끝까지 그어 나간 좁은 히(칼날에 파는 홈), 짧고 다부진 칼 끝.
이전에 주문했던 칼과 좋은 대비를 이룰 것 같아서 이걸로 결정하고 상담을 위해 다시 찾아갔습니다.
나: 이걸로 만들어 주시죠.
츤: 하 진짜... 어디서 또 이런 희한한 칼은 찾으셨어요? 답 안 나오네요, 홈 파는 날도 새로 사야 할 것 같고...
나: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까?
츤: 해 보죠.
츤하게 한 번 튕긴 뒤 수락했습니다.
좋습니다.
마치 에바에 처음 타는 신지와 같은 듬직함입니다.
공방에 있는 쇠 중 새 칼에 사용할 것을 골라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단조도검은 대부분 5160 스프링강을 사용합니다.
트럭 판 스프링 서스펜션에 사용할 정도로 탄성과 내구성이 뛰어난 데에다,
적절하게 열처리를 하면 경도도 로크웰 50대 후반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도검에 적합한 강재죠.
우리나라 도검사는 거의 전부가 은X대장간이란 곳에서 사진의 상태로 단조한 5160 강재를 구입해서 사용합니다.
쿨하게 할부 결제하고 귀가합니다.
몇 주 뒤 다시 공방을 방문했습니다.
모양을 잡고 1차 열처리까지 거친 상태입니다.
위쪽의 이미 완성된 칼날과 칼집은 제가 처음 주문했던 바로 그 검입니다.
이번 검의 날 너비는 거의 이전 검의 칼집 너비에 맞먹네요.
다시 몇 주 뒤 방문.
2차 열처리까지 마친 뒤, 본격적으로 모양을 잡아가기 시작할 때의 사진입니다.
비교 대상은 츤데레 장인님 자신이 쓰려고 만든 검입니다.
저 검이 좁은 탓도 있어서 날 너비가 체감상 두배는 돼 보입니다.
그렇게 착착 진행되던 어느날 밤, 갑자기 카톡이 울립니다.
!!??
(이름은 편집한 스크린샷입니다.)
자세히 물어 보니 일반적인 베기에 쓰는 데에는 문제 없겠지만 내구도가 성에 안 찬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들던 것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드신댑니다.
자.. 장인정신 존중하겠습니다. 덜덜..
다시 인고의 시간이 흐르고, 할부도 거의 끝나가는 오늘 드디어 완성품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하 완성품 사진들과 간략한 설명 덧붙이겠습니다.
위에도 나왔던 장인 개인 검과의 비교 사진입니다.
확실히 엄청 넓습니다.
일본도 스타일은 각 부분의 규격이 어느정도 일정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장식 부품들이 기성품으로 나옵니다.
공의 경계에서 시키가 쓰는 카네사다도 같은 장식을 구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검은 워낙 규격외다 보니 기성품을 쓸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어서, 모든 장식을 맞춤으로 새로 만들었습니다.
칼 끝의 모습입니다.
날의 너비에 비해 칼 끝이 짧습니다.
굵고 짧은 모습이 멧돼지의 목 같다 하여 이쿠비 킷사키(猪首切っ先)라 부른다는군요.
우리말로 하면 자라목 칼끝 정도 되겠네요.
원본의 특징인, 칼 끝까지 걸치는 얇은 홈이 잘 표현 됐습니다.
저 홈을 파기 위해 평소에 쓰는 것보다 더 좁은 날을 가진 도구가 필요했는데, 국내에 더 이상 수입이 안 돼서 기간이 길어진 탓도 있다고 하네요.
츠바(가드)와 하바키(호인?) 부분입니다.
츠바는 간결한 모양으로 했습니다.
지름이 8cm 쯤이니 작은 편이 아닌데, 손잡이와 칼날이 워낙 넓으니 작아 보이네요.
하바키와 셉파는 구리로 만들어졌습니다.
후치와 손잡이 일부의 모습입니다.
손잡이를 죄어 주는 저 검은 금속 테두리를 후치라고 합니다.
도검에만 쓰는 용어는 아니고, 번역하면 그냥 테두리라는 의미입니다.
보통 손잡이의 너비는 후치를 기준으로 날 너비보다 1cm 정도 더 넓어야 검이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모양이 나온다고 합니다.
기성품으로 나오는 후치가 보통 3.8~4cm 정도의 너비인데, 이 검은 날 너비만 4cm인지라 맞는 게 없었죠.
어쩌겠나요? 만들었죠.
물론 저 말고 장인님이요.
손잡이의 카시라 부분입니다.
번역하면 머리입니다.
금속으로 만들어서 손잡이 끈이 통과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지만, 텐쇼고시라에(스타일 이름입니다.)에서는
우각(물소뿔)로 카시라를 만들고 저렇게 카시라 위로 끈을 덮습니다.
다만 이 검의 카시라는 우각이 아니라 마이카르타를 사용했습니다.
마이카르타는 섬유를 쌓은 뒤에 수지에 적셔 굳힌 재질로, 주로 나이프의 손잡이 등에 많이 씁니다.
우각보다 훨씬 튼튼한 것도 장점이고요.
칼집 입구를 보강할 때도 우각을 쓰는데, 칼날 너비 때문에 맞는 사이즈가 없었던지라 마이카르타를 썼고,
통일감을 위해 나머지 우각 쓰는 부분도 전부 대체했네요.
덕분에 나이프 만들 때 쓰려고 사 뒀던 마이카르타 여기에 다 썼다고 푸념하시는 우리의 장인님.
칼집 입구 부분입니다.
칼집 입구를 말 그대로 일어로 사야구치라고 하거나, 잉어(코이)의 입 같다 하여 코이구치라고 부릅니다.
역시 마이카르타를 썼다 보니 단면에서 섬유의 모양이 잘 보이네요.
쿠리카타입니다.
한자로 적으면 栗形인데, 제 검의 것은 각이 좀 졌지만 둥글게 만든 걸 보면 정말 밤톨 같기도 합니다.
사게오라는 이름의 끈(사진의 붉은 끈)을 묶는 고리입니다.
사게오는 일본도의 주종이 타치일 때 칼집을 허리에 묶는 끈이었던 것이 카타나로 간소화되면서 그 형식만 남아 있는 물건입니다.
다시 말하면, 장식이죠.
교토에서 비단으로 수제작한 물건들은 전통 공예품 취급을 받기 때문에, 저 끈 하나에 싸면 만엔에서 수십만엔까지도 나갑니다.
제 사게오는 그냥 공장에서 생산된 면끈입니다.
카에리즈노(返角)라는 부품입니다.
칼집 입구쪽으로 튀어나온 갈고리 모양의 부품인데, 칼을 급하게 뽑을 때 허리띠에 걸려 칼집이 같이 뽑히지 않게 막아 주는 기능을 합니다.
...만, 칼 뽑는 힘을 버티기엔 너무 약하게 생겼죠. 얘도 그냥 장식일 겁니다.
검 전체 사진 한 장.
칼집에 넣은 채로 한 장.
아래에서 본 각도로 한 장 더 올립니다.
역시 믿고 맡긴 작품이 잘 나오니 제가 만든 건 아니지만 뿌듯하네요.
다음에는 조선의 츠바이핸더, 쌍수도를 주문해 볼까 합니다.
장인이 이번엔 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러고는 또 얼마나 훌륭하게 만들어 낼지 벌써 기대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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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보니 오른쪽에 왔네요.
감사합니다.
셀프 축전으로 예전에 그린 쌍수도 든 소녀 그림 한장 추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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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주인에게 맞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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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오른쪽가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튼 츤데레 장인 너무 귀엽네요 ㅋㅋㅋ 저 쌍수도 결과물 보다도 반응이 더 기대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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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사항 없는 기본형은 130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날 길이가 길어지거나, 제 것처럼 날이 특이하게 넓거나, 날면에 홈을 파거나, 기성 장식을 못 써서 직접 제작해야 한다거나 할 때마다 추가금이 붙습니다. 길이 빼고는 위에 적은 사항에 모두 해당하는 물건인지라 제 검은 180만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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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때는 도검허가증이 아니라 도검제작허가를 받아야하고 도검을 제작하는 곳을 나라에 등록해야합니다. (만약 중간에 제작하는 곳을 바꾸면 다시 또 바꾼곳을 등록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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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dogdog 님 말씀대로 만들 때는 도검제조허가가 필요합니다. 공장으로 등록된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물에 제조 설비를 갖춰야 허가가 나는데 요즘 짓는 공장 건물들은 조립식이라 옛날 공장이 많은 부천에 도검제조사가 집중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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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오른쪽가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튼 츤데레 장인 너무 귀엽네요 ㅋㅋㅋ 저 쌍수도 결과물 보다도 반응이 더 기대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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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때는 도검허가증이 아니라 도검제작허가를 받아야하고 도검을 제작하는 곳을 나라에 등록해야합니다. (만약 중간에 제작하는 곳을 바꾸면 다시 또 바꾼곳을 등록해야합니다.) | 15.12.16 19: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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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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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명스럽긴 하지만 되는 건 된다, 안 되는 건 돈 더 줘도 안 된다 확실히 말해주는 타입이라 주문하는 입장에서도 맘이 편합니다. | 15.12.16 21: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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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주인에게 맞을듯 | 15.12.16 17: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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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스프링강이 강력합니다. 훨씬요. | 15.12.17 16: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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