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주인공, 아서는 갱단원이다.
그는 주로 다른 단원들이 주는 일감을 받아 일한다.
은행을 털거나, 열차와 마차를 강도질하고,
서로 적대관계인 갱 사람을 죽이는 등 온갖 위법한 일들을 저지른다.
이런 무법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정부의 요청과 재벌의 지원으로
핑거튼 용병 단이 그들을 집요히 추적하기 시작한다.
갱단 사람들은 꾸준히 본거지를 옮겨보지만
끈질기게 쫓아오는 핑거튼을 봐, 깨닫고 만다.
그들의 해는 바닷물에 잠기고 새로운 시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동요하는 이들에게 '더치' 단장은 인내! 믿음! 을 요구한다.
그는 버릇처럼 읊조린다. "내게 계획이 있어!"
과연 주인공 갱단은 더치 말대로 몰디브 가서 모히또 한잔할 수 있을지,
더치를 믿고 따르는 그들의 의리에 그들이 보답받을 수 있을지가
이 게임 속 이야기의 주요 쟁점이다.
이 게임에서 주인공이 속한 반 더 린드 갱단은
설립 초반에 선한 일들을 했었던 과거가 있지만
적어도 플레이어 시점에서는 자신들을 위해
강도질을 하는 여타 갱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행동한다.
누구 털고, 또 다른 누굴 털고, 전국에 있는 마을과 도시는 모두 한 번쯤은 털게 된다.
그런데도 잘 간수하지를 못해 돈이 항상 부족하다.
두목과 비롯해 다른 단원들은 끊임없이 돈을 벌어오라 주인공을 재촉한다.
그들 말대로 돈을 벌 방법이 있다.
가죽을 팔거나 상점과 열차를 강도질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일해 주인공 주머니에
몇천 달러가 있어도스토리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갱단 금고에 모두 넣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자신이 했던 살인과 기타 폭력적인 행동에 대해서 반성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범죄가 있고 이런 과거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가장 잘하는 건 총질과 강도질밖에 없다는 걸 주인공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주인공을 사랑했던 옛 연인이나, 길가다만나 우연히 도와준 사람들은
그가 지금이라도 변할 수 있음을 반복적으로 말한다.
플레이어는 마지막에 가서 아서가 자신이 해를 끼쳤던
여러 사람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는 전적으로 플레이어 선택이다.
우리는 소위 '도덕'이라 말하는 길로 그를 이끌 수 있다.
아서는,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게임이 내게 질문을 던진 느낌이 들어서 대답해본다.
사람이 변하기 위해선 방아쇠가 당겨져야 한다.
또한, 어떤 계기가 있다면, 그걸 계기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잘못했다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계속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제까지 반성 없이 살았던 아서는
자신에게 닥친 개인적인 불행과 함께
여러 주변 인물들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런다 해도 죄를 지었던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은 다르다 해도 과거는 늘 곁에 있다.
과거에서 벗어났다 극복했다 말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과거를 떠올리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익숙해지면 눈앞에 어떤 이가 내 더블배럴 샷건에 맞아 머리가 터져도 담담할 뿐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다르게,
분리해서 보려는 사람이 있는데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다.
아무리 변했다 할 지어도 그건 단지 지금의 내 모습이
층층이 쌓여가 맨 처음 모습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사람은 변할 수 있고 변하지 못한다.
그런 과거를 받아들이고 짊어져야 한다.
변하지 못하지만, 오늘은 변할 수 있다.
또한 어제 변했어도 오늘은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삶은 복잡하다.
맨 마지막에 가서 플레이어는
아서가 그토록 쫓아왔던 돈에 더는 집착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나는 별 고민 없이 그를 그렇게 이끌었다.
지금 아서에게는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 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게 뭘까. 돈보다 중요한 건 지금 내 느낌이다.
의리든, 명예든, 남의 행복이든, 그게 뭐든 간에 중요하다 느끼면 중요한 거다.
'중요'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어서 그때그때 다르다.
아까 전 챕터까지만 해도 은행을 털다가
지금 와서는 친구를 위해 희생할 수도 있다.
그게 사회가 얘기하는 "도덕"적인 행동이라서가 아니라
단순히 지금 그에게는, 나에게는 그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중요하다 느꼈는지 묻는다면, 쉽게 말하기 어렵다.
본능일 수도 있고, 그냥 그런 감이 들어서,
예전에 친구가 날 도와줬으니 나도 그에게 보답하려고,
친구를 돕는 일에 만족감을 얻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등등이 있을 거다.
아니면, 마침내 그도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한 걸까.
아니면,
"남이 기쁘면 나도 기쁘다", 라는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사실 둘 다 이득이란 걸 안 걸까.
인간은 수지타산과 인정 가운데 끊임없이 매 순간 선택하며 산다.
우리는 아서가 살면서 내딛는 결정을 대신하는 과정에서
게임은 우리에게 어떤 쪽인지 묻는다.
이쯤 되면 플레이어는 한 웅큼 기대을 하게 된다.
혹시 많은 사람을 도와주면 지금 몰락해가는 주인공 갱단의 결말이 달라지지 않을까?
이야기의 전개가 조금이라도 밝은 쪽으로 달라지지 않을까?
그러나 플레이어의 행동은 이야기의 결말이나 전개를 바꾸지 못한다.
1편 전에 있었던 일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결말은 어찌할 수 없다.
대신 플레이어 선택에 따라 이야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범위가 좀 더 넓었더라면 좋았다.
한 편의 서부 드라마를 본다는 느낌으로 한다면, 별로 불만이 없겠지만,
그럼 드라마를 보지 게임을 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