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공간이 특이하게 생긴 집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주방이 좁고 긴 공간이었죠. 약 110 x 150 cm정도 되는 아담한 주방이 있었는데, 냉장고 자리로 쓸까 하다가 그냥 식탁을 두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식탁만 두고 사용했는데, 점점 식탁 옆에 티슈나, 컵, 티백 등을 둘 선반의 필요성이 절실해졌습니다. 주방 상부장은 항상 열고 닫아야 하는데, 거기에 모든 조미료가 있어서 후추나 소금처럼 자주 쓰는 조미료를 매번 꺼내기가 참 귀찮았습니다. 그래서 맨날 세일중인 이케아 선반 부르훌트(burhult)를 이용해서 식탁과 벽 사이에 설치할 아주 깊이가 얕고 키는 큰 선반장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목재는 갓성비인 건축용 각목을 이용하기로 했죠.
먼저 1800mm길이의 건축용 각재를 주문해서 토치로 태웠습니다. 건축용 각재는 완전히 건조된 것도 아니고 수분 함유량 때문에 비틀림/휘어짐이 있어 가구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들었지만, 가격이 각재 하나당 천원이니 미친 가성비 때문에 그냥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배송비(6,000원)가 본품(1000 x 5 = 5,000원)보다 비싼건 안비밀입니다.
토치로 태우고 표면을 솔로 슥슥 털어주면 사포질을 할 필요도 없어지고, 색도 아주 예쁘게 납니다. 표면에 식용유를 조금 바르고 문대서 햇빛에 잘 말려주면 색이 한층 더 살아나고 나무향이 솔솔 나는게 그냥 예쁜 목자재입니다. 물론 건축용 자재를 써서 딸려올 비틀림이나 휨현상은 제가 감당할 몫입니다.
이제 선반장의 다리들을 튼튼하게 이어줄 작은 목재들에 목다보 구멍을 내줍니다. 이 작은 각목들은 근처 목공소에서 1800mm 각목 하나를 10등분해 온 것입니다. 2천원인가 3천원 드리니 잘라주시더군요. 각목 자체 가격보다 더 비싸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반 목재를 사는 가격을 생각하면 여전히 엄청나게 저렴합니다. 너무 깊게 구멍이 뚫리지 않도록 드릴날에 테이프로 깊이를 표시한 다음 작업했습니다.
1800mm의 다리 4개에 앞서 구멍낸 작은 각목들이 위치할 높이를 잡고, 목다보 구멍을 내줍니다. 철물을 사용하지 않고 작업할 예정이어서 귀찮긴 하지만 일일이 줄자로 위치를 잡고 마킹한 다음 구멍을 냈습니다. 철물이 보이지 않아야 예쁠 것 같아서요.
이케아의 이바르 사이드 유닛처럼 만들어서 선반장 양 사이드 유닛으로 사용할 계획이었고, 아무래도 목재가 가늘다보니 보강대를 5개로 하나 더 늘려서 작업했습니다. 이바르를 사다 만들어도 충분히 예쁘고 저렴하긴 하지만 저는 더 깊이가 얕은 선반장을 원했기 때문에 깊이 30cm의 이바르 사이드 유닛보다는 그냥 제가 더 저렴하게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특히 차가 없는 입장에서 픽업도 불가능했고, 배송비를 몇 만원 내는 것 보다는 그냥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목재들을 모두 조립해줍니다. 목공풀을 충분히 구멍마다 채우고 목다보를 끼운 후, 접합될 목재 단면에도 목공풀을 충분히 발라줍니다. 그리고 모든 접합부의 목공풀이 서로 붙을 수 있게 힘으로 눌러서 조립해야 합니다. 클램프가 있다면 더 좋겠지만 집에 그런 도구는 없기에 그냥 힘으로 조립한 후, 눌러줘야 할 부분에 수건을 대고 망치질을 해서 조립했습니다.
이제 부르훌트 선반의 양 측면에 목다보가 꽂힐 수 있도록 또 드릴로 구멍을 내줍니다. 처음엔 양 옆에 각 2개씩만 구멍을 냈는데, 너무 약할 것 같아서 면마다 4개씩 구멍을 냈습니다. 선반 높이가 그리 높지 않아서(약 20mm) 6파이 구멍을 냈습니다.
이제 다시 만들어둔 사이드 유닛에 선반을 고정할 수 있도록 구멍을 4개씩 뚫어줍니다. 자로 일일이 재기가 귀찮아서 다보를 가이드처럼 이용해 구멍을 냈었는데, 그냥 한번에 연필료 예쁘게 마킹해두고 구멍을 뚫을 걸 그랬어요. 이쯤되니 그냥 ㄱ자 철물로 고정할걸 그랬다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목공풀과 목다보를 이용해 사이드 유닛에 선반들을 모두 박아넣어 조립한 뒤, 큰 키 때문에 흔들리는 것을 막아줄 옵세르바퇴르(x자 철물)를 선반장 뒷면에 설치합니다. 그냥 옵세르바퇴르의 앞/뒤 구분을 해서 선반장 높이의 정 중앙에 두고, 피스를 박아주면 끝입니다.
총 재료비는 34,350원이 들었습니다. 물론 드릴이나 망치, 드릴비트 등까지 계산한다면 더 나가겠지만 이것들은 재료가 아니라 공구로 취급해서 생략했습니다. 집 근처에 건축용 목재를 구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면 3만원 안쪽으로도 제작이 가능하실 것 같아요 ㅎㅎ
완성된 34,350원짜리 선반장
생각보다 예쁘게 나와서 현재는 주방에서 아주 잘 사용하고 있구요. 만드는 동영상도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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