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콘스탄티노플의 황제가 되고 싶어!"
카스페를이 말했어.
"그건 왜?"
제펠이 물었어.
"매일같이 거품 크림 자두 과자를 먹을 수 있을 테니까!"
- 오트프리트 크로이슬러, "왕도둑 호첸플로츠" 중에서
어릴적 읽었던 동화책들을 되새겨보면,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엔 다른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음식만 떠오르는 경우도 있지요.
이번에 도서관 문화 프로그램으로 "동화 속 음식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다시 읽게 된 "왕도둑 호첸플로츠" 역시 그 중 하나입니다.
후춧가루 총을 쏘는 이상한 도둑과 꼬맹이 둘이 잡고 잡히며 엎치락뒤치락 하는 내용이라는 것 정도만 희미하게 기억에 남아있었으니까요.
반면에 사악한 마법사가 먹어치우던 감자 요리나, 호첸플로츠가 훔쳐먹은 커다란 소시지, 도둑에게서 탈출하기 위해 만들었던 버섯 수프 등은 오히려 뚜렷하게 생각나면서 내가 동화책을 읽은 건지 요리책을 읽은 건지 헷갈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거품 크림 자두 과자는 꽤 오랫동안 궁금증을 자아내는 음식이었습니다.
나도 먹어본 적이 있는 감자나 소시지, 버섯 수프와는 달리 아무리 봐도 그 정체나 맛이 짐작가지 않는 환상의 요리였으니까요.
자두가 제철이니 한 번 만들어 봅니다.
자두 과자는 독일어로 츠베치겐 쿠헨(zwetschgenkuchen)이라고 하는데, 엄밀히 보자면 과자라기보다는 케이크나 파이에 가까운 물건입니다.
독일에서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여름철 가정 간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자두를 잘 씻어서 얇게 썰어놓고, 반죽은 밀가루와 버터와 설탕을 3:2:1 비율로 무게를 재서 계량하고 여기에 달걀 한 개와 베이킹파우더 한 티스푼과 소금 약간을 넣으면 끝입니다.
이보다 더 간단한 반죽은 1:1:1 비율로 섞는 파운드 케이크 반죽밖에 없을 듯.
가정식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세세한 레시피는 집집마다 다릅니다. 책에서도 주인공인 카스페를과 제펠이 할머니 심부름으로 "밀가루 한 봉지, 이스트 조금, 설탕 일 킬로그램"을 샀다는 말이 나오니까요.
아마 동화책 속의 레시피는 이스트를 사용하는 발효빵인듯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인해 이스트 대신 베이킹파우더를 사용하는 퀵브레드 레시피로 바꿨습니다.
반죽을 섞는데는 별다른 기술이 필요없습니다.
스페츌러로 슥슥 섞어도 되고, 비닐장갑 낀 손으로 그냥 대충 섞어도 됩니다.
오히려 너무 정성들여 반죽하면 버터가 다 녹으면서 맛이 없어질 수도 있으니 '그까이꺼 대충대충' 마인드가 중요합니다.
바닐라빈을 조금 긁어 넣거나, 바닐라 에센스를 한 방울 떨어트려도 좋습니다.
베이킹용 종이틀에 반죽의 8~90% 정도를 채우고, 자두를 취향에 맞게 올리고, 남은 반죽을 흩뿌리듯 덮어 줍니다.
이걸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조금 익숙해지면 오븐 예열이 끝나기도 전에 끝마칠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시나몬 설탕이나 굵은 설탕을 추가로 뿌려줄 수도 있습니다.
180도 오븐에 30분간 구워서 나온 츠베치겐 쿠헨.
뜨거운 케이크를 그대로 잠시 식혀줍니다. 고소하면서도 달달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지요.
원래는 이 위에 슈가파우더도 좀 뿌려줘야 멋진데, 제작 공정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은 생략합니다.
한 조각 잘라서 접시 위에 올리고, 거품을 낸 크림을 곁들입니다.
고전적인 방법이라면 크림을 거품기로 팔이 빠져라 저어대며 거품을 만들어야 하겠지만
질소 충전한 크림 스프레이야말로 간편한 가정 간식에 어울리는 아이템입니다.
한가지 불만이라면 레스토랑용 질소거품 휘핑기가 있는데, 법이 바뀌면서 질소 카트리지 판매가 불법이 되는 바람에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사실.
질소를 많이 마시면 마취, 환각작용이 나타난다고 해서 몇몇 정신없는 사람들이 질소가스를 넣은 풍선으로 환각파티를 벌이는 바람에 소형 카트리지는 거래가 금지되었거든요. 소규모 카페에서 휘핑크림 올린 메뉴가 사라진 원인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대형 봄베에 들어있는 질소만 거래가 가능하다고 하니 저처럼 질소 휘핑기로 거품 크림 뿐 아니라 각종 무스와 소스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분노할수밖에 없는 처사입니다.
그럴 거면 본드도 판매금지하던가!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자두 케이크에 거품 크림을 듬뿍 올려 맛을 봅니다.
빵 자체는 파운드 케이크와 소보로 빵의 중간쯤 되는 느낌인데, 구운 자두의 새콤한 풍미가 잘 어우러집니다.
따뜻한 케이크 위에 차갑고 고소한 크림을 함께 먹으니 왠지 블루베리 파이 만들어서 아이스크림 곁들여 먹던 게 떠오르기도 하고 그러네요 (https://blog.naver.com/40075km/221229508819)
달달한 과일빵에 크림의 조합은 그냥 맛있기 때문에 행복한 게 아니라, 동화책을 읽던 어린 시절과 그 당시 아무런 걱정 없이 먹던 간식을 떠올리게 만들며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더 맛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발효 시간이 필요한 이스트 반죽 대신 베이킹파우더 반죽을 사용하고, 바닐라나 시나몬 설탕이나 슈거파우더 등등 부수적인 재료도 다 생략한 이유.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제한된 시간 내에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도록 최대한 간단한 레시피를 활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파일럿 테스트가 끝났으니 이제 도서관에서 본격적으로 만들어 봅니다.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강연을 들으며 읽었던 동화책 속 요리를 직접 만들어보고, 책 속의 음식을 실제로 먹었을 때의 경험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다주는지 알아보는 체험학습이지요.
원래대로라면 계량도 다들 직접 해야겠으나, 참가자들이 요리에 익숙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으니 제가 미리 다 나눠놓습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끝난 거지요. ㅎㅎ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자두 케이크.
코로나가 다시 유행할 조짐을 보이는 바람에 시식은 하지 못하고, 봉투에 포장해서 집에 가져가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먹으며 책 이야기를 나누도록 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셰프라도 새로운 주방 셋팅하고 적응하는데 몇 주는 걸린다더니, 다 똑같은 오븐인데도 그 중 한 개만 화력이 미묘하게 강한 바람에 그 오븐에 들어갔던 케이크 두 개는 끄트머리가 탔네요. 기억해뒀다가 다음 수업때는 조심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재료의 차이로 인한 한계도 여기서 드러나더군요. 바닐라나 시나몬 설탕 같은 부수적인 재료들이야 있으면 넣고 없으면 빼면 되는데 자두가 말썽입니다.
사실 츠베치게(츠베치겐의 단수형)라는 자두는 우리가 흔히 먹는 플럼(Plum) 자두와는 살짝 다른 종류거든요. 좀더 과즙이 적은 자두랄까요.
독일에서는 구하기 쉽겠지만 우리나라에선 따로 구하기 어려우니 그냥 과일가게에서 파는 자두를 사용했는데 '잘 익은 자두'를 사용하면 너무 과즙이 많이 나와서 마치 숟가락으로 떠먹는 브레드푸딩처럼 되어버립니다.
자두케이크를 굽기 위해서는 살짝 덜익은 느낌이 날 정도로 단단한 자두가 좋겠네요.
할머니는 재빨리 커피잔을 꺼내 오고, 식료품실로 뛰어가 자두 과자가 든 커다란 통을 끌고 왔지. 거품 크림도 그릇 한 가득 식탁 위에 올려놓았고.
"하지만 할머니! 오늘이 일요일인가요?"
카스페를이 놀라서 물었어.
"물론이지! 우리 집은 오늘이 일요일이야. 다른 데선 수요일이겠지만!"
이야기를 하는 사이사이에 할머니는 홀짝홀짝 커피를 마셨고, 카스페를과 제펠은 배가 아플 때까지 거품 크림을 얹은 자두 과자를 먹었어.
그들은 다른 누구와도, 설령 콘스탄티노플의 황제일지라도, 처지를 바꾸고 싶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어.
- 오트프리트 크로이슬러, "왕도둑 호첸플로츠" 중에서
황제의 자리와도 바꾸고 싶지 않은 거품 크림 자두 과자.
강연에 참석했던 분들도 저처럼 어릴 적 추억을 되새기며 이 간단한 자두 케이크를 통해 기쁨을 얻고
더 나아가서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고 읽어 주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해서 저같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거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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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분은 항상 도서관에서 카페, 베이커리를... 저번 상들리에 잘봣습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오른쪽 가시겟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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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윌리 웡카 좋아했는데... 라스베가스에서 슬롯머신 보곤 이게 동심을 불러일으키는건지 동심파괴인지 애매했더랬지요 ㅎㅎ 다음엔 카카오에서부터 초콜릿 만드는 체험도 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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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22.08.09 12: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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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분은 항상 도서관에서 카페, 베이커리를... 저번 상들리에 잘봣습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오른쪽 가시겟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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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Sia - Chandelier | 22.08.09 12: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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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 | 22.08.26 12:5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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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윌리 웡카 좋아했는데... 라스베가스에서 슬롯머신 보곤 이게 동심을 불러일으키는건지 동심파괴인지 애매했더랬지요 ㅎㅎ 다음엔 카카오에서부터 초콜릿 만드는 체험도 재밌겠네요 | 22.08.09 12: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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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는 워낙 인기가 많아서인지 요리책도 나왔습니다 ㅎㅎ | 22.08.09 13: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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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감자 요리도 궁금하네요 집에서 요리하느라 감자 껍질 벗길때면 항상 호첸플로츠 생각이 나더라고요 | 22.08.09 13: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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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바켈만의 감자 요리는 '으깬 감자 요리'라고 묘사되어 있어서 아마 매쉬드 포테이토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 22.08.25 23:5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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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엄청나게 우와!하는 맛은 아닌데, 가정식으로 먹는 일요일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면 새콤달콤고소해서 맛있습니다. | 22.08.09 13: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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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요리책을 주제로 한 번 하고는 싶은데... 코로나가 다시 유행하는 바람에 어찌될지 모르겠네요 ㅠ_ㅠ | 22.08.09 13: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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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블도어가 먹었던 귀지 맛 젤리의 임팩트가 너무나도 강력했지요.. ㅎㅎ | 22.08.09 13: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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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딸내미한테 자두를 잘라줬는데 이녀석이 몇조각 집어먹고 다 남겼네요.. 그래서 저녁때 먹다 남은 아오리 사과조각이랑 같이 올려주산 레시피대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와이프가 너무 맛있데요. 물론 딸은 안먹더라구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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