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일본행 항공편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앞뒤 안보고 일단 예약한 나리타 3박 4일.
원래 이번 여행은 이바라키가 목적이었습니다. 아직 가본 적 없기도 하고 걸판의 성지인 오아라이도 가볼 생각이었죠.
하지만 워낙 초창기에 열린 항공편이라 도착/출발 시간대도 애매하고
무엇보다 그 사이에 도쿄에서 꼭 가야만 하는 행사가 열려버렸기 때문에 이바라키는 조금 뒤로 미루고 오랜만에 도쿄로 가보기로 합니다.
보통 나리타를 가면 그냥 평범하게 태평양쪽으로 해서 갈텐데 이번에는 신기하게 북쪽으로 돌아서 갑니다.
그 덕분에 일본에서 2번째로 큰 호수인 가스미노우라 호수도 보고, 원래 목표였던 오아라이도 먼 발치에서 보기도 합니다.
어째뜬 이바라키 위를 지나가기는 하네요. 여기도 올해 안에 다시 가보고 싶네요.
정말 오랜만에 오는 도쿄.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코로나 이전에도 도쿄는 안간지 오래 돼서 진짜 오랜만입니다.
그마저도 보통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 방문하는 편이라 하네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리타는 더 오랜만이죠.
최근 여행자 한정으로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벚꽃 스이카.
무료로 발급 가능하지만 잔액은 환불이 불가능하고 28일동안 사용이 가능합니다.
이미 스이카가 있지만 워낙 이쁘기 때문에 하나 받아보기로 합니다.
도쿄로 가는 길. 첫날은 급할게 없으니 적당히 스카이 엑세스를 타고 환승을 하며 도쿄로 갑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우에노 방향이 아니라 스카이트리쪽으로 가는 모양이라 황급히 내려서 닛포리쪽으로 갈아탑니다.
닛포리역에서 환승은 처음인데 규모가 어마어마하면서 낡은 부분이 보이는 매력적인 역이네요.
사실 여기까지는 엄청 도쿄에 왔다는 느낌이 실감나지 않는데 때마침 지나가는 우마무스메 래핑 열차를 보니 이제 좀 실감이 납니다.
이때가 뱅드림, 우마무스메, 러브라이브 등 각종 묵직한 장르들이 뭐 하나씩 있던 시기라 도쿄 전체가 미소녀 판이던 시절이었죠.
그리고 진짜 진짜 오랜만에 오는 아키하바라에 도착하자마자 반겨주는 샤니마스와 뱅드림
코로나 직전 일본 여행도 덕질을 할 여유가 없었고, 코로나 직후 간 오키나와도 덕질을 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이렇게 오타쿠 문화가 가득한 공간은 너무나도 오랜만이고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그야말로 몸에 흐르는 오타쿠의 피가 반겨주는 기분이죠.
아키바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아키바의 명물 츠케멘 야스베에.
특별히 도쿄에서 제일 맛있는 츠케멘 집이라고는 말 못하지만 가격대비 훌륭한 양과 맛을 보여주고
무엇보다 제가 도쿄에 처음 갔던 먼 옛날 처음으로 먹은 식당이라는 추억 덕분에 도쿄에 오면 반드시 들르는 곳입니다.
오랜만에 온 야스베에는 조금은 늦은 점심시간이었는데도 사람이 꽉찰 정도로 바빴습니다.
코로나 기간동안 정말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는 경우가 많은데 아직도 장사를 잘 하고 계시는걸 보니 애틋하네요.
정말 오랜만에 먹어보는 츠케멘.
두껍고 쫄깃한 면발과, 돼지고기 육수와 가츠오부시 육수를 섞어서 진한 국물이 너무나도 사랑스럽습니다.
이곳의 특징은 일반 대 특대 모두 가격이 동일하다는 것.
양과 가격을 고민할 필요 없이 지금 내 배 상태만 고민하면 됩니다.
다 먹으면 가츠오부시 육수에 줍니다.
이걸 남은 츠케멘 육수에 부어서 마시면 끝!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먹은 조금 늦은 점심이 너무나도 만족스럽습니다.
3월 중순이라 도쿄도 막 꽃들이 피기 시작하는 시기. 벚꽃들은 아직 피지 않은 나무가 더 많지만
중심가 곳곳에 이렇게 만개한 꽃나무들이 보입니다.
딱 1주일만 더 늦게 왔으면 좋았겠지만 11월에 3월의 날씨를 예측하는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어쩔 수 없네요
일본 여행에서 정말 좋아하는 시점
도심에서도 골목길마다 이렇게 집 앞에 귀여운 화단을 꾸미는 것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보통은 다양한 화분 위에 장식물을 올려놓는데 여기는 과감하게도 어항까지 차려놓으셨네요.
숙소에서 짐을 푼 뒤, 첫날의 여행을 위해 소부선로를 따라 걸어갑니다.
일본의 재밌는 특징은 선로 밑으로 가게들이 제법 많이 들어선다는 점이죠.
한국은 지상으로 돌아다니는 철도 노선 자체가 드물고, 고가구간이 있는 일부 노선도 밑에 가게들이 있거나 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죠.
정말 오랜만에 온 아키바 거리. 코로나 기간동안 오타쿠 가게가 많이 망했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메인 거리는 좀 가게명이 바뀐 경우는 있지만 그래도 예전과는 큰 차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키바의 랜드마크인 세가 오락실들이 다 사라진건 충격적이네요
사진 촬영에 쓸 삼각대를 사러 빅카메라에 왔는데, 프로젝터의 시연 영상으로 아쿠아 라이브 영상이 나오네요.
역시 아키하바라지만 이번 여행이 러브라이브 타겟 여행인걸 생각하면 첫날부터 러브라이브를 보게 되다니 뭔가 감회가 새롭네요.
아키바에서 사진 찍는데 필요한 몇가지 용품을 산 뒤에 걸어서 도착한 오챠노미즈.
제가 도쿄에서 제일 좋아하는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우연찮게 이곳을 갔을 때가 한국에서 스즈메의 문단속을 개봉하던 시기여서
한국에 돌아가서 스즈메의 문단속을 봤을 때 계단을 달려 올라가는 장면부터 "여기 오챠노미즈잖아!" 싶어서 느낌이 남달랐네요.
주오선과 소부선, 그리고 마루노우치선이 칸다가와 위에서 교차하는 풍경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철도 풍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오챠노미즈역 풍경을 감상한 뒤 진보쵸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아키하바라와 오챠노미즈, 그리고 진보쵸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악기 상가가 즐비합니다.
얼마전에 히트한 봇치더락의 마지막화의 무대이기도 하죠.
물론 전 봇치보다도 더 아싸이기 때문에 같이 구경하러 들어갈 친구조차 없습니다.
진보초에 도착했는데 원래 가려던 카페가 문을 닫아서 돌아가려던 차에
상당히 취향에 맞을 것 같은 카페가 발목을 잡습니다.
딱봐도 평범하지 않은 분위기의 카페.
내부는 수많은 종류의 커피잔, 그리고 커피를 내리는 사장님이 계십니다.
오래된 원목으로 된 가구들까지 너무나도 제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카페입니다.
쇼핑도 하고 진보쵸까지 걸어오기도 해서 다리도 아프고 해서 주문한 비엔나 커피와 치즈 케이크.
원래 일본 최초의 비엔나 커피를 파는 카페를 가려고 했는데 못갔으니 여기서 대리 만족이라도 합니다.
사실 비엔나 커피를 시킨걸 제법 후회할 정도로 커피 맛이 좋았습니다.
찻잔도 너무 이쁘고 치즈케이크도 냉장같아보이긴 하지만 같이 나온 마멀레이드랑 먹으니까 엄청
진보초를 지나가는데 벽에 붙어있는 사신짱 포스터.
지금은 성우 영향으로 거의 홋카이도 치토세 배경의 작품처럼 되어가고 있지만
일단 원작은 여기 진보초 배경이고, 그래서 진보초 연가라는 OST도 있습니다.
여러가지로 파격적인 마케팅과 운영을 보여주는데 이 포스터 내용도 제법 신기하네요.
그렇게 진보초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숙소인 아키바로 돌아가는데 지나가다가 너무나도 신기한 카페를 발견해 결국 다시 들어옵니다.
아키바에서는 이제 제법 유명한 관광 스폿인 만세이바시 폐역을 상점가로 만든 아키하바라마치
그 위에 주오 본선의 상하행선을 사이에 둔 만세이바시역 시절 승강장 플랫폼에 카페를 만들어 놨습니다.
그 덕분에 카페 한복판에서 좌우로 열차가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는 아주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죠.
카페 음식 자체가 뭐 엄청 좋은건 아니지만 열차를 구경하는 경험은 꽤 좋습니다.
좌우가 유리로 탁트여서 뷰도 제법 괜찮고요. 낮에 아키바 근처에서 적당히 쉬고 싶을 때 오기 좋을 것 같네요.
다시 숙소로 가는 길에 요도바시 카메라 밖에서 갤럭시 광고가 붙어있는걸 다 보네요
최근들어 일본에서도 갤럭시가 잘 팔린다는데 아키바 한복판에서 광고까지 달린걸 보니 신기하네요
다음날 아침 아사쿠사로 가기 위해 아사쿠사바시역으로 걸어갑니다. 평일이라 아침에도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밤새 시끄러웠을 술집들이 있는 거리를 조용히 지나가는 아침의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지나가는 길에 아사쿠사바시역 아래에 위치한 작은 카페를 발견합니다.
일본에는 이렇게 아침 식사를 판매하는 카페를 곳잘 발견하고는 합니다.
최근에는 한국에도 간단한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카페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지만 일본만큼 대중화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간단한 구성의 프렌치 토스트 세트. 적당한 구성에 가격도 적당하고 양도 적당합니다.
바쁜 아침에 정말 간단하게 끼니를 떼우기에는 딱 적당한 퀄리티죠.
엄청 맛있지도 엄청 유명하지도 않지만 말그대로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맛을 느끼기 가장 좋은 곳입니다.
일본에서의 한국 붐은 사실 지난번 오키나와 여행에서는 크게 체감되지 않았지만 이번 도쿄 여행에서는 정말 눈에 띕니다.
일본인 입장에서는 한국 식당이라는 것 말고는 정보값이 단 하나도 없는 놀라운 간판의 식당
예전같았으면 일본에 사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식당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요즘은 들어가보면 한국인은 거의 없고 일본인 뿐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간판에 한글을 쓰는 것 자체가 하나의 트랜드가 된 것이죠.
일본 여행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었지만 드디어 처음으로 스카이트리와 똥빌딩(...)을 보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본은 정말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기에 오히려 유명한 관광지는 잘 안가게 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어짜피 언제든 갈 수 있으니까, 나중에 여유 있을 때 가면 되니까, 라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코로나라는 큰 사건을 경험한 뒤, 여행이라는게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왠만하면 갈 수 있을 때 갈 수 있는 곳을 가보자. 코로나 이후 바뀐 마음가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사쿠사. 어쩌면 도쿄에서 가장 일본스러운 관광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일본스러움은 일본 전통 양식 뿐 아니라 그걸 현대에 재건한 것, 그리고 현대 산업으로 이용하는 것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사실 일본 뿐 아니라 어디든 정말 수백 수천년 된 곳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수백, 수십, 아니면 얼마 전에 새로 만든 레플리카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 그 이름과 형식을 복제하고 현대에 소비하고 재생산해 미래에도 이어주는 것. 이 모든 것을 통틀어 전통이라고 하는거죠.
아사쿠사는 정말 모든 것이 다 거대합니다.
문도 거대하고, 문에 달린 등과 향도 거대하고, 그걸 보러 온 관광객의 수도 어마어마합니다.
꽤 이른 아침에 왔는데도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문 앞에 흐드러지게 핀 버들벚꽃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빕니다.
빨간 전통 건물을 배경으로 하는 벚꽃. 그야말로 가장 일본스러운 풍경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사쿠사 대웅전에서 왼쪽으로 나오면 니시산도가 나옵니다.
아케이드 밑으로 거대한 깃발을 잔뜩 달아둔 것이 인상적입니다.
아사쿠사에서 나와서 뭐라도 좀 먹어볼까 했지만 나갈 즈음에는 관광객들이 워낙 많이 몰려서
사람이 많은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후다닥 우에노 쪽으로 탈출합니다.
물론 목표는 우에노가 아니라 우에노에서 아키하바라로 이어지는 야마노테선 밑 철도길입니다.
왠종일 철도 밑으로만 다니는 것 같은 것은 착각이 아닙니다. 실제로 제가 일본에서 가장 좋아하는 포인트니까요.
아까는 간단한 아침식사가 목적이었다면 이번에는 떨어진 당을 보충하기 위한 디저트 시간입니다.
딱봐도 계란으로 뭔가 이것저것 많은 것을 만들 것 같은 카페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디저트 뿐 아니라 브런치도 파는 카페테리아인데 제 목표는 하나입니다.
한국에서도 정말 디저트를 취급하는 분야가 다양해져서 이제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대중화 측면에서 아직 턱없이 부족한 디저트를 고르라면 역시 푸딩입니다.
물론 한국에서 그렇게 푸딩 관련 상품과 가게가 많이 나와도 대중화가 안되는걸 보면 푸딩이 한국인 입맛에 안맞나?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한국인들이 일본 가면 꼭 먹는게 푸딩인걸 보면 한국 푸딩의 가능성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번에도 일본에 온 김에 최대한 푸딩을 챙겨 먹고 갑니다.
적당히 당도 채우고 카페인도 채우고 기력도 보충한 다음에 아키바역을 가는 길에 아트센터 치요다 3331에 들렀습니다.
아키하바라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구교사를 개조해서 만든 미술 관련 문화센터인데
정말 슬프게도 제가 도착한 전날에 영업을 종료했습니다...
도심지 한복판에 망한 학교를 미술관으로 개조했다는 점이 인상깊어서 방문할까 했는데 슬프게도 방문을 하지 못했네요.
그래도 2010년부터 13년동안 다양한 문화 활동을 했다는 점이 인상깊네요.
향후에 이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기대됩니다.
그렇게 아키하바라에 도착해 도카이도선을 타고 도착한 다음 목적지는 두루미를 볼 수 있다는 뜻의 츠루미입니다.
츠루미는 도쿄가 아니라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 위치한 구 중 하나인데, 항구가 인접해 많은 공장이 위치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해안가에 위치한 공장들을 따라 여러 갈래로 운행하는 독특한 철도 노선인 츠루미선의 시착역이기도 합니다.
츠루미구는 공업이 발달돼 있고 도쿄와 요코하마의 중간에 있어서 그렇게 유명한 지역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 앞에는 꽤 큰 쇼핑몰과 상점가가 조성돼 있습니다.
츠루미 대학도 있고 유동인구는 부족하지 않은 편이라 다음 기차가 올 때까지 적당히 돌아다니면서 볼거리는 있습니다.
츠루미역의 츠루미선의 플랫폼입니다.
츠루미선과 도카이도선의 병행 운행으로 위아래로 복잡하게 얽힌 전선과 철도 구조물이 인상적입니다.
츠루미선은 정말로 항만에 인접한 공장의 출퇴근을 위해 존재하는 노선이라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운행 간격이 급격하게 길어집니다.
그리고 출퇴근 시간이 아니면 이용하는 손님도 많지 않죠.
츠루미역에서 항만에 가기 전에 위치한 한두개의 주거지역에 위치한 역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면 거의 대부분 공장 관계자 아니면 철덕입니다.
그렇게 열차를 타고 츠루미선 여행이 시작됩니다.
그래봤자 종점까지 6개 역만 지나는 정말 짧은 노선이고, 그마저도 10분 뒤에 회차해서 다시 츠루미 역으로 오게 됩니다.
전체 여행이 기껏해야 30분 이내에 끝나는 정말 조촐한 철도 노선이죠. 열차도 2량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자리는 널널합니다.
츠루미오노역까지는 그래도 좁은 민가 사이를 지나가는 재미가 있지만, 그 이후에는 그냥 공장만 펼쳐져 있습니다.
그렇게 열차를 타고 10여분이 지나면 바다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바로 건너편에 공장들이 잔뜩 있기 때문에 바다라는 느낌이 크게 들지 않습니다.
다시 5분정도 더 기다리면 열차의 종점인 우미시바우라역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곳은 기차역에서 바다까지의 거리가 불과 50cm밖에 되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바다와 가까운 기차역입니다.
기차에서 바다가 보인다 수준이 아니라 사실상 바다 바로 위에 기차역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우미시바우라, 말그대로 바다에 있는 시바우라 역이라는 뜻인데, 이 시바우라역에 위치한 공장이 도쿄 시바우라 공업입니다.
도쿄 시바우라의 앞글자를 따서 지금은 도시바라고 부르고 있죠.
이 역 건너의 공장 부지는 보안 지역이기 때문에 역 너머는 촬영도 불가능하고, 사원을 제외하면 나갈 수도 없습니다.
일반인은 여기서 개찰구를 나갈 수 없고 열차가 회차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다시 돌아가는 열차를 타고 가야 하죠.
바다에서 제일 가까운 역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워낙 많아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역 한켠에 공원이 있습니다.
공원에는 당연히 도시바의 기술을 홍보하는 전단이 이곳저곳 있죠.
이곳은 아마 발전이나 동력을 생산하는 터빈을 생산하는 곳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10분에서 20분 정도의 대기 시간이 지나고 왔던 열차를 타고 다시 돌아갑니다.
철덕의 여행이라기에는 사실 진짜 철덕은 아니고 그냥 신기한 타이틀을 가진 노선이나 역을 가는걸 좋아하는데
단순히 그 장소에 도착하는 것도 재밌지만 그곳에 가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경치도 일반적인 관광지와는 다르기 때문에
여행에서 독특한 포인트를 찍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묘한 철도 여행을 끝마치고, 다음 숙소가 있는 신주쿠로 향합니다.
하지만 그냥 바로 신주쿠로 가는건 재미가 없으니 중간에 다이칸야마를 들르기 위해 도큐 도요코선을 타고 올라갑니다.
한국에서는 은근히 보기 힘든 도심 한복판을 지나는 철도 노선이 인상적입니다.
게다가 보통은 운전석이 가려져 있기 때문에 철도 노선의 정면을 보기란 쉽지 않죠.
반대로 일본은 운전석이 유리창으로 뻥 뚤려 있기 때문에 철도 전경 뿐 아니라 기관사가 운전하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열차를 타고 도착한 다이칸야마. 기차역이 반쯤 터널 밑에 있는 신기한 구조를 가진 역입니다.
터널 위에는 언덕을 따라 상점가가 줄줄 이 있기 때문에 2층에 있는 대합실을 나오면 바로 건물들이 나옵니다.
저는 그냥 이 반쯤 터널이 있는 기차역을 보러 왔는데 알고보니 다이칸야마는 도쿄에서 유명한 관광 및 쇼핑 스팟이더라구요.
뿐만 아니라 미술관, 서점 등 문화 시설도 매우 많기 때문에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는 꽤 괜찮은 곳입니다.
다이칸야마를 돌아다니다 발견한 신기한 가게. 마치 이미지 번역 기능을 쓴 듯한 한글 간판이 인상적입니다.
그러면서 가게 이름은 너무나도 일본스러운데, 메뉴는 일본풍 한국요리들이더라구요.
정작 메뉴판은 일본어고, 한국어는 마치 데코를 위해 올려놓은 듯 합니다. 얼짱 불고기라니...
일본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한국 음식의 인기가 절정이고 그만큼 식당에 한글이 있으면 맛집이란 인상을 받는 듯 합니다
한국인들은 본다면 저게 뭐냐 싶을 것 같은 간판을 여기저기 붙여놓은걸 보면 너무나도 신기합니다.
한국어를 강하게 어필하는 가게를 뒤로 하고, 그 뒤에 자신의 이름을 소심하게 주장하는 가게로 눈을 돌립니다.
가게 이름은 소소. 일본풍 디저트를 파는 카페입니다.
내부는 블랙톤으로 매우 깔끔하고, 좌석간 프라이버시를 위해 발이 내려와 있어서 음식을 먹기에도 편리합니다.
특이하게 주문을 QR코드를 이용한 웹사이트를 통해서 하는데요
여기 뿐 아니라 나중에 가는 몇몇 식당과 카페에서도 지원하는걸 보면 최신 일본 트랜드인 것 같습니다.
저처럼 데이터 없이 여행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종업원을 불러서 주문할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대면을 줄이면서 인건비까지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보입니다.
제가 주문한 메뉴는 말차 파르페. 컵 위로 산처럼 쌓여 있는 압도적인 비주얼의 파르페는 아니지만
긴 컵 안에 대단히 깔끔하면서도 알찬 구성이 들어간 매력적인 파르페입니다.
크림도 너무 달지도 않으면서 우유향이 진하게 올라오고, 단맛은 팥으로 잡아주고 나머지 식감은 말차푸딩과 과자로 잡아줍니다.
저는 디저트는 달아야 한다 파지만, 이 파르페의 깔끔한 구성은 감탄이 나올 정도였네요.
그렇게 다이칸야마 구경을 마치고 신주쿠로 도착했는데, 충격적이게도 겨우 구한 숙소의 위치가 어마무시한 곳입니다.
그 유명한 가부키쵸가 바로 여기였군요. 건물 벽을 가득 채운 호스트바의 간판이 어마어마합니다.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 구했는데 아무래도 오래 있을 곳은 아닐거같아서 짐만 풀어놓고 후다닥 나옵니다.
새롭게 신주쿠의 상징이 된 커브드 디스플레이의 고양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위치를 찾아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저도 열심히 찍었지만 사진이 색이 영 쉽지 않네요.
그렇게 짐을 풀고 신주쿠에서 출발해 도착한 곳은 바로 하라주쿠.
하라주쿠지만 놀랍게도 덕질을 하기 위해 왔습니다. 바로 하라주쿠가 러브라이브 슈퍼스타의 무대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하라주쿠 타케시마 거리 입구를 마스코트 캐릭터인 만마루가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라주쿠는 역시 인싸들의 거리입니다.
밤인데도 사람들이 한가득이고, 거리의 상점과 식당에는 모두 사람들이 줄을 잔뜩 서고 있죠.
하라주쿠도 마찬가지로 이번이 처음이라 새로운 경험입니다.
인싸들의 성지라서 오타쿠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하라주쿠도 러브라이브 성지가 되다보니 곳곳이 러브라이브입니다.
게다가 슈퍼스타 성지임에도 뮤즈는 물론 후배인 하스클까지 잊지 않고 챙겨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이 가게는 오타쿠샵이 아니라 미용실이기 때문에 이용할 목적이 아니면 사진 촬영을 무리하게 해서는 안되겠죠.
그 외에도 길 곳곳에 러브라이브 슈퍼스타와 콜라보?를 하는 가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는 길거리의 전광판과 현수막까지 전부 러브라이브 이벤트로 가득 찼는데 1주일 늦어서 보지 못한게 너무 아쉽네요.
그렇게 하라주쿠에서 정처없이 걷다보니 도착한 시부야.
코로나 전에 돌아다녔을 때에는 본 적이 없는 건물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본 적 없는 초고층 건물들이 시부야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 중 한 건물은 하늘에 빔을 쏘고 있어서 시부야가 뭔가 도쿄의 새로운 중심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제가 봤던 건물은 시부야 미야시타 파크.
야마노테선을 따라 길게 쇼핑몰이 들어서 있고 그 옥상에는 넓은 공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공원을 따라 건물 끝까지 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시부야역으로 향하는 야마노테선을 볼 수 있죠.
철도를 비추는 파란 형광등과, 길거리의 상점가를 비추는 노란 가로등의 대비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새로운 고층 빌딩이 잔뜩 생긴 것 같지만, 시부야는 역시 이렇게 작은 노포와 술집들이 줄지어 있는 골목이 매력적이죠.
아까 하늘에서 빔을 쏘던 건물은 인터넷에서도 꽤 핫했던 시부야 스크램블입니다.
시부야의 상징인 스크램블 교차로의 이름을 홀라당 빌딩이 가져가 버렸네요.
이곳 위에 시부야 스카이라는 새로운 도쿄의 전망대가 생겨서 가고 싶었는데 이 시간에는 이미 예약이 끝나 있었네요.
비단 이 건물 말고도 주변에도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합니다.
신주쿠, 아키하바라, 이케부쿠로같은 과거에 자주 가던 번화가는 큰 차이가 없는 것과 대비가 되네요.
지나가다가 발견되 까르보 불닭 래핑 버스
일본에 불어닥친 한국 음식 열풍은 당연히 매운 음식 열풍도 포함돼 있는데 아무래도 불닭볶음면은 일본에서 난이도가 있겠지만
까르보불닭은 그래도 일본인들도 조금 매워 하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닐까요?
신주쿠에는 고양이가 있다면, 시부야에는 강아지가 있습니다.
신주쿠와 시부야, 일본을 대표하는 두 번화가에서 광고판을 이용한 재밌는 연출을 하는 것이 신기하네요.
그렇게 하라주쿠, 시부야 산책을 마치고 신주쿠로 돌아와 숙소로 가는 길에 고고카레를 발견합니다.
고릴라가 캐릭터인 일본의 저가 카레 브랜드인데, 여기도 위의 야스베에와 마찬가지로 10년 전 도쿄 첫 여행 때 들렀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번 도쿄 여행은 뭔가 첫 일본 여행 시절을 떠올리며 여행하는 경향이 있어서 추억 여행의 기분을 낼 수 있었습니다.
고고카레의 특징인 시커먼 색과 가득 올려진 양배추.
양이 많다거나, 건더기가 잔뜩인 것은 아니지만 다른 카레 프랜차이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한 맛이 고고카레의 장점입니다.
다양한 토핑을 올려먹을 수 있는 것이 고고카레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왔으니 베이스 메뉴를 먹어봅니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서 기절잠을 자려고 하는데, 숙소 앞에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가게를 발견합니다.
밖에 있는 메뉴판은 아무리 봐도 술집인데, 당장 문 안에 보이는 포스터들의 포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한두해 프리큐어 덕질을 한 것이 아닌, 프리큐어의 역사를 관통하는 내공이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들어온 주점의 이름은 기믹.
입장료 500엔에 다양한 술과 안주를 먹을 수 있는 주점인데, 오타쿠 컨셉과 달리 메뉴는 지극히 평범한 술집입니다.
게다가 안주의 종류와 구성도 알차서 술이 아니라 식사를 하러 와도 꽤 괜찮은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곳의 강점은 뭐니뭐니 해도 가게를 가득 채운 프리큐어들.
피규어의 물량도 장난 아니고 큰 TV에 계속 나오는 역대 프리큐어 오프닝도 대단합니다.
가게의 손님들도 대부분 프리큐어 팬이라서, 프리큐어 팬까지는 아닌 게다가 외국인인 저를 보고 매우 신기해 합니다.
프리큐어 팬이시지만 러브라이브까지도 좋아하셔서 가게 곳곳에 러브라이브 굿즈도 가득입니다.
러브라이브가 메인인 여행이긴 했지만 러브라이브와 전혀 상관 없을 줄 알았던 곳까지 러브라이브를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가게의 손님들과 사장님과 함께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대화할 수 있는 점이 재밌었습니다.
저는 일본어를 제대로 못하지만 대충 느낌으로 말해도 이해해주는 점이 특히 좋았고요.
손님 중 몇 분과 사장님 모두 한국 여행을 온 경험도 있어서 각자의 여행 추억을 떠들다보니 시간이 잘가더라구요.
가게의 대부분은 프리큐어지만 그 외에도 로봇, 만화책 등 사장님의 오타쿠 내공이 장난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화도 잘보면 제가 아는 만화들이 많아서 예전에 만화 대여점을 온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가게의 메뉴들은 대부분 평범한 술집 메뉴들이지만, 특별히 신작 히로가루스카이 프리큐어 방영을 기념해 만드셨다는 스카이랜드 칵테일
하늘색 리큐르를 베이스로 한 간단한 하이볼입니다.
기본 안주도 김치와 야채 볶음이 나왔는데 기본 안주임에도 내공이 느껴질 정도로 수준이 뛰어납니다.
이렇게 정말 이곳저곳 돌아다닌 하루의 마지막에 전혀 예상치 못한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었네요.
다음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빗속을 헤치며 도착한 곳은 신주쿠에 있는 프랜치토스트 전문점 알리야.
이곳 역시 코로나 전에 들렀다가 감동했던 추억을 가지고 다시 들른 곳입니다.
아침 일찍이기는 해도 워낙 유명한 카페라 대기가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비가 와서인지 줄은 많지 않았네요.
두꺼운 식빵이 압권인 프랜치 토스트. 소스를 같이 시켰는데 솔직히 말해서 소스는 필요가 없습니다.
빵 자체로 계란물이 잘 배어들어서 촉촉하고 달콤하기 때문이죠.
이전까지 프랜치 토스트는 계란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식빵의 베리에이션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을 경험한 뒤로 프랜치 토스트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사실 이곳의 주력 메뉴는 홍차입니다. 그래서 티 용품이 아주 많죠.
물론 커피의 맛도 훌륭합니다. 어짜피 디저트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뭘 선택해도 어울리지 않는 맛은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인걸 알고 종업원께서 한국어로 힘내서 안내해주셨는데 너무 친절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일본을 그렇게 오래 다녔지만 한국인이 많이 다니는 곳이 아닌 곳에서 한국어를 하는 종업원을 본건 거의 처음 있는 경험이었네요.
입장할 때만 해도 대기 없이 바로 들어갔는데, 나오려고 보니까 순식간에 계단까지 대기가 들이찼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한국 관광객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한동안은 도쿄 어딜 가도 한국인을 만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비가 오는 신주쿠역 플랫폼. 날씨가 좋지 않다보니 주말임에도 평소보다는 한산한 분위기입니다.
신주쿠역은 오래 되기도 했고 워낙 거대한 역이다보니 복잡하게 얽혀있는 철골과 전선, 그리고 기계들의 뒤엉킴이 볼수록 매력적입니다.
비까지 오다 보니 마치 살아있는 생물의 껍질같다는 느낌도 들 정도죠.
그렇게 신주쿠를 떠나 이번에 도착한 곳은 코엔지.
신주쿠에서 나카노쪽으로 좀 더 외곽으로 나가면 나오는 작은 동네입니다.
그리고 pal이라는 아케이드 상점가를 통하면 비를 맞지 않고도 걸어다닐 수 있죠.
신주쿠, 시부야, 하라주쿠같은 인구밀집지역만 다니다가 이렇게 간만에 한산한 곳을 돌아다니니 너무나도 마음이 편합니다.
도쿄에서는 변두리라고 불러도 될 지역인데 그래도 아케이드를 포함해서 상점 골목에는 제법 상권이 조성돼 있습니다.
다양한 스타일의 옷가게와 소품가게, 그리고 카페와 식당들이 즐비해 있죠.
그렇게 한참을 걸어 시장의 끄트머리에 도착한 곳은 나나츠노모리라는 작은 카페 겸 식당입니다.
외관부터가 벌써부터 엔틱함을 잔뜩 풍기고 있는 곳이죠.
내부 역시 너무나도 훌륭한 엔틱 분위기입니다.
단순히 오래된 물품을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닌 정말 오래전부터 여기서 운영하던 곳이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죠.
아무래도 한국에서 이런 오래 된 카페는 대부분 다방 형식이고 그마저도 많이 사라지다보니 쉽게 찾아보기 힘듭니다.
물론 일본에서도 이런 오래된 엔틱풍 카페는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 안타까울 뿐입니다.
직접 그린 것 같은 부엉이가 인상적인 메뉴판.
제가 시킨 메뉴는 오늘의 메뉴. 보아하니 미트볼 덮밥입니다.
미트볼의 간도 적당하고 양념도 적당해서 아침 식사로 즐기기에 너무나도 적당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전 여기를 오므라이스를 먹으려고 찍어뒀더라구요.
역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데 와이파이가 없다보니 제대로 된 정보를 확인하지 못해 생긴 불상사였습니다.
어쩔 수 없죠 다음에 또 와야지
식사도 되지만 기본이 카페이기 때문에 세트 메뉴로 홍차가 나옵니다.
꽤나 상큼한 맛이 인상적이었네요.
이번 여행은 대부분 정말 한 곳을 보기 위해 무작정 특정 지역으로 가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성비가 떨어지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 지역에 가면 다른 곳도 들러야 교통비 대비 볼거리가 많을테니까요.
그래서 코엔지도 나나츠노모리만 들르고 바로 도쿄로 돌아옵니다. 제가 내린 곳은 바로 신오쿠보.
10년 전만 해도 신오쿠보 역은 2층짜리 정말 작고 오래된 단촐한 역이었는데, 와보니까 큼지막한 5층 빌딩이 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신오쿠보는 한인타운이라 한국인들이 외국어 걱정 없이 방을 구하거나 지인을 만나기 좋은 곳이었는데
오랜만에 온 신오쿠보는 비가 오는데도 인도가 가득차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혼잡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돌아다닌 그 어느 도쿄의 번화가보다도 한국인이 적고 일본인만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원래는 신오쿠보를 따라 대로변으로 가서 와세다까지 가려고 했는데 도저히 이대로는 못갈 것 같아서
결국 중간에 골목이 나오자마자 바로 빠져 나옵니다.
아까의 혼잡함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산한 분위기가 펼쳐져서 너무 편안해집니다.
역시 저는 사람이 없는 곳이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렇게 폭우와 인파, 바람을 헤치고 도착한 카페.
여행 내내 카페만 다니는 것 같다고 느끼신다면 맞습니다. 원래부터 목적은 식사보다도 카페였습니다.
간만에 온 도쿄는 또 언제 올지 모르니 왔을 때 한국에서 먹기 힘든걸 원없이 먹어야 하는데
일본 음식은 워낙 한국에 잘 들어오다보니 음식보다는 카페에 좀 더 힘을 쏟게 됩니다.
이 카페의 마스코트인 복실복실한 멍멍이.
사람도 너무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식사하는 손님을 방해하지도 않는 정말 착한 강아지입니다.
가게 전단지에도 디저트 소개하는 사진마다 찍혀있을 만큼 이 가게의 유명인사더라구요.
그리고 주문한 딸기 밀푀유. 영롱하고 실하고 알찬 딸기와 바삭바삭 구워진 파이지.
그리고 파이지 사이사이에 이쁘게 들어간 말차 크림과 우유 크림의 조화가 아름답습니다.
물론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과는 별개로 프랑스 디저트 특성상 이쁘게 먹기는 쉽지 않습니다.
정석대로 먹는다면 박살이 났겠지만 전 이쁜 멍멍이를 뒤에 두고 추하게 먹을 수는 없어서 그냥 한겹한겹 떼서 크림 올리고 먹었습니다.
카페 앞에는 오쿠보 공원이 있는데, 와세다 대학까지 이어진 작은 공원입니다.
이제 막 벚꽃이 피고 있는데 비와 함께 바람도 세게 불어서 혹여나 벚꽃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그렇지만 막 순이 자라나 연두색으로 가득한 공원에 촉촉히 비가 오는 풍경은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그렇게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놀랍게도 또 카페. 정말 카페만 계속 이어지는 여행입니다.
이곳은 사실 첫날 들르려다가 영업시간을 잘못 알아서 가지 못했던 진보초에 있는 카페 라드리오입니다.
간판과 건물의 벽에서부터 벌써부터 엔틱함을 잔뜩 느낄 수 있죠.
내부는 아까 갔던 나나츠노모리보다도 훨씬 엔틱 그 자체입니다.
스테인칠 잔뜩 된 나무벽과 세월을 느낄 수 있는 가구들, 그리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이곳의 정체성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이곳에 온 목적은 바로 비엔나 커피입니다. 일본에서 최초로 비엔나 커피를 판매한 카페가 바로 이곳 라드리오입니다.
최초이니만큼 요즘 다른 곳에서 파는 비엔나커피같은 엄청난 기교나 볼륨감은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잘 만든 라떼 위에 정성스레 올려진 크림은 그 자체로 이미 비엔나 커피의 정체성을 잘 보여줍니다.
비엔나 지역에서 상인들이 빠르게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 당과 카페인을 보충하려고 커피 위에 단 크림을 올린게 비엔나 커피의 시초라고 하고
비엔나 커피는 지역에 따라 아인슈페너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모든 크림 올라간 커피가 비엔나 커피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게 적당하게 카페인과 당을 보충하고,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지에 가기 위해 이케부쿠로에 갑니다.
겨우 이케부쿠로를 나왔을 뿐인데 벌써부터 또다른 러브라이브 콘텐츠를 마주치게 됩니다.
러브라이브 슈퍼스타의 탕쿠쿠 역의 성우 리유가 대문짝만하게 달린 유학원 광고인데요.
리유 설명이 가수 겸 코스플레이어라고 되어 있네요. 러브라이브 성우는 가수 취급인걸까요?
이케부쿠로 길거리에는 바로 이틀 전 오픈한 애니메이트 이케부쿠로 본점의 홍보 현수막이 잔뜩 걸려 있습니다.
역시 여성향의 성지인 만큼 앙스타를 비롯한 여성향 장르들이 애니메이트 오픈을 축하하고 있네요.
목표인 선샤인 아쿠아리움 야간 개장 시간까지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때마침 얼마전에 개장한 애니메이트 이케부쿠로 신관을 가봅니다.
지하 2층, 지상 9층 규모의 세계 최대 규모의 애니메이트 지점이죠.
주변의 고층 빌딩과 비교해도 그 규모가 꿀리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스케일입니다.
사람도 정말 너무 많아서 층마다 물건을 구경하고 싶어도 줄을 서야 할 정도네요.
지하는 라이브 회장, 1층은 로비 및 이벤트 장소, 2~7층은 굿즈 판매장, 8층은 전시장, 9층은 이벤트를 위한 공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제 오타쿠 산업이 단순히 서적이나 굿즈만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성우를 중심으로 행사가 많아지다보니
애니메이트의 중심 건물인 만큼 그런 행사도 소화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재미있습니다.
어느정도 애니메이트 구경을 마친 뒤 이케부쿠로 선샤인시티에 도착했습니다.
이케부쿠로는 이런 저런 일로 꽤 자주 왔는데 놀랍게도 선샤인시티는 이번이 처음이더라구요.
신데렐라걸즈 애니메이션에도 나오고 수많은 애니메이션 행사가 이뤄진 무대도 이번에 처음 봤습니다.
그리고 선샤인시티 4층에는 때마침 제가 도착한 날에 반다이남코 크로스 스토어라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팝업스토어인지 앞으로 계속 여기서 운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놀랄 지경입니다.
반다이남코답게 반남의 다양한 IP 관련 전시가 있는데 얼마전 게임 서비스 종료를 예고한(...) 아이마스 사이드엠도 있고
가면라이더, 레인저시리즈, 울트라맨 등 특촬 시리즈물 관련 코너도 큼지막하게 있고
괴수물 장르 코너도 역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세계에서 제일 거대한 캡슐토이샵"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가챠 기계들이 빼곡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반남 크로스 스토어를 뒤로 한 채 드디어 이번 여행의 목적지, 선샤인 아쿠아리움에 도착합니다.
선샤인 아쿠아리움은 이케부쿠로 선샤인 시티 7층에 위치한 수족관입니다.
일본의 다른 대도시에는 유명한 수족관이 있는데 반해 도쿄는 뭔가 대표적인 수족관이 없는데
도쿄에서는 비교적 번화가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좋은 수족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선샤인" "아쿠아"리움이라는 이름값처럼 러브라이브 "선샤인"의 "아쿠아"와 이번에 콜라보 이벤트를 열게 되었습니다.
러브라이브 선샤인 애니메이션이 끝난지는 벌써 6년이 지났지만 아쿠아는 여전히 활동중이기도 하고
이번 7월에 신작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만큼 다양한 콜라보 행사를 하고 있고 이번 아쿠아리움 콜라보도 그 일환입니다.
아쿠아랑 선샤인이라는 글자가 이미 애니메이션의 키워드이면서 동시에 수족관의 이름이기도 해서 그 자체로 너무나도 훌륭한 콜라보입니다.
입장할 때부터 대문짝만하게 콜라보 행사중임을 알리고 있네요.
콜라보 행사답게 장내 안내방송도 아쿠아 캐릭터 목소리로 나오고, 행사장 BGM도 전부 러브라이브 선샤인 노래들입니다.
입장 티켓과는 별도로 구매한 굿즈 겸 키워드 랠리.
콜라보 기념으로 전시장 곳곳에 숨겨진 아쿠아 콜라보 키워드를 모아서 가면 한정 굿즈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쇼핑몰 내에 한 층 수준으로 위치한 규모라서 수족관이 그렇게 큰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전시 내용은 꽤 좋습니다.
압도적인 규모의 대형 수조는 없지만 소형 수조에는 일반적인 수족관에서는 보기 힘든 어종도 많고 수조 수도 많아 밀도가 높게 느껴집니다.
수조마다 있는 물고기나 동물들의 수도 꽤 많아서 보다보면 결코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상당히 맘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콜라보의 하이라이트인 해파리관.
흘러나오는 노래의 파트에 맞춰서 아쿠아 캐릭터의 퍼스널 컬러가 해파리들을 비추는 모습은 장관입니다.
특히 아쿠아 2집 코이아쿠에서는 해파리관에서 고민하는 요우의 장면도 있다보니 다른 곳보다 해파리관에 힘을 쏟은 것 같네요.
그렇게 코로나가 끝나고 첫 덕질 여행이었던 선샤인 아쿠아리움 X 러브라이브 선샤인 콜라보 행사의 관람이 끝났습니다.
사실 코로나 이전에도 성지순례를 위해 일본을 간 것이 정말 오래전이어서 오타쿠 여행은 진짜 진짜 오랜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가 일본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일본의 지방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이지만, 역시 본질은 오타쿠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덕질만을 위한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까 이케부쿠로 골목 현수막이 어느새 콜라보 현수막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사실 이케부쿠로는 아무래도 여성향 오타쿠 성지라 보통은 남자 캐릭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이렇게 러브라이브 캐릭터들이 길거리에 잔뜩 있는걸 보면 참 신기한 느낌이네요.
그렇게 복잡한 하루를 보내고 저녁은 간단하게 규동집 마츠야에 들어갑니다.
그냥 평범하게 규동을 먹으려 했는데 김치 가루비 덮밥이라는 메뉴가 있어서 너무 신기해서 주문해봤습니다.
갈비 양념도 한국식으로 적당히 달착지근한 간장 양념이고, 김치도 생각보다 적당히 익어서 맵고 달기만 하지 않고 신맛도 적당합니다.
갈비 간도 적당한데 김치도 꽤 수준이 높아서 정말 한입에 다 먹어버릴 정도로 만족했는데요
재밌는게 마츠야에서 김치를 엄청 강조하는데 김치 이름이 후지산 기무치입니다.
실제로 업소에 제공하는 김치를 만들기 위해 후지산에 공장까지 차려서 후지산에서 자란 야채들을 재료로 해서
[김치 몰트]공법으로 발효까지 한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일본인 입맛에 맞게 맵지 않고 단 김치가 많았는데, 점점 일본에 한국 음식이 들어오면서 원조 김치맛에 가깝게 만드는 것 같네요.
비도 오고 우중충했던 전날의 날씨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다음날의 아침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푸릅니다.
단순히 미세먼지의 차이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미세먼지 없이 맑은 하늘과 일본의 맑은 하늘은 묘하게 채도가 다릅니다.
위도 차이인지, 아니면 태평양과 인접해 대기 중 수증기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돌아가는 비행편이 1시라서 아침 일찍 움직여야 합니다.
공항으로 가는건 스카이라이너를 타면 되기 때문에 우에노로 가야 하는데, 그전에 마지막으로 필요한 덕질을 위해 아키바로 향합니다.
아키바에서 길을 걷는데 이번에도 지나가는 길에 또 러브라이브를 만나게 됩니다.
러브라이브가 목적인 여행인건 맞았지만 이정도로 여행 내내 러브라이브와 함께일 줄은 몰랐네요.
시즈오카 특산 요리를 파는 주점인데, 사장님이 꽤나 러브라이브 팬이신가봅니다.
아무래도 시즈오카 출신이라면 러브라이브 선샤인을 모르기가 더 힘드니까요.
아키하바라역 환승센터 한복판에 핀 꽃들이 파란 하늘과 대비돼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벚꽃시즌은 미묘하게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행 내내 비교적 꽃을 많이 봐서 기분은 좋습니다.
아직도 일본에서 제대로 벚꽃 여행을 즐겨본 적이 없는데 올해도 실패했고 내년에 다시 도전해봐야겠네요.
일본에서의 마지막 끼니는 우동입니다.
사실 첫날부터 기차역 대합실에 있던 작은 우동가게를 보고 너무 가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항상 일본으로 여행을 오면 가장 저렴한 대표 메뉴들인 편의점 샌드위치, 규동, 우동은 먹어보는 편입니다.
가격도 싸고, 간편하고, 맛도 있고, 뭔가 이런걸 먹어줘야 일본에 왔다 갔다는 추억이 강하게 남는 것 같아서요.
그렇게 스카이라이너를 타기 위해 우에노역에서 내려서 걸어가는데, 우에노의 인파가 어마어마합니다.
아무래도 전날인 토요일까지 비가 와서 제대로 놀지도 못했는데, 이날의 날씨는 말도 안되게 좋았으니까요.
기온도 너무 적당해서, 이런 날에는 엄청난 인파 속에 갇혀지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나리타공항까지 가기 위해 게이세이 우에노역에 도착합니다.
나리타를 그렇게 자주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적게 이용한건 아닌데 스카이라이너는 이번에 처음 타봅니다.
항상 공항 갈 때에는 시간 여유를 두는 편이기도 하고 보통 다른 지역을 거쳐 가서 탈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출국 시간도 빠듯하고 해서 과감하게 타봅니다.
여행자 전용 스이카의 잔액은 딱 49엔 남겼습니다. 이정도면 세이프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창밖으로 일본 알프스의 다테야마 연봉이 눈에 들어옵니다.
3월이지만 다테야마 연봉은 아직도 눈으로 뒤덮혀 있습니다.
다테야마 알펜루트도 4월은 돼야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3월인 이때는 관광객은 커녕 등산객도 입산이 금지되어 있죠.
저멀리 도야마 시내도 보이고 바다너머에는 어렴풋이 노토반도도 보이네요.
사실 이전 다른 여행기와 비교한다면, 이번 여행은 테마도 중구난방이고, 동선도 엉망진창에 덕질도 있다보니 관광이라고 하기엔 살짝 부족합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 가보기도 하고,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새로운 체험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갔던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다니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을 실컷 보고 왔다는 것도 너무 만족스럽구요.
정말 오랜만에 여행이 아니라 그냥 도쿄에 "있다가" 왔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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