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기숙사 로비.
“필리! 오늘은 좀 늦게 나오네?”
소현이 경환을 불렀다. 경환은 소현을 쳐다봤다.
“그래. 가자고.”
소현과 경환은 수업을 들으러 가면서 말했다.
“어제 패디 만나서 무슨 얘기 했어?”
“아, 어저께 패디랑 둘이서 카페에 앉아서 저녁 6시부터 밤 11시 30분에 문 닫을 때까지 아주 serious(심각한)하고 spiritual(영적인)하고 아무튼 그런 얘기를 5시간 반 동안 했는데 말이야. 패디가 너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대. 나중에 하면 안 될까?”
“그렇게 얘기하니까 더 궁금해지잖아. 패디가 직접 나한테 얘기하고 싶대?”
“그런 모양이야.”
“그러면 살짝 무슨 얘기했는지 그것만 알려 주면 안 될까?”
“패디 걔 원래 신부 되려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신부 되는 게 어려워서 다른 걸 알아봤대. 그래서 그렇게 하겠단 얘기를…….”
“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얘기를?”
“자세한 건 패디 직접 만나서 물어 봐.”
소현은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종현이 사제 서품 받기를 시도했다가 그게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게 아닌 다른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자기한테 그걸 얘기하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일지 정말로 궁금했다. 그것을 소현에게 직접 얘기한다는 것은 소현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얘기이다. 소현과 관련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진 안 봐도 뻔했다. 비록 소현이 아직까지 직접 프로듀스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암시를 줬다. 그러나 별로 강한 암시는 아니었다. 그런데 종현이 소현을 만나서 말하고 싶다면 이것이 무엇을 뜻할까? 소현은 기대감에 갑자기 즐거워져 경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을 했다.
“진짜로 기대된다. 도대체 뭔 얘기를 나한테 하려고 하는 걸까? 어디서 만나자고 패디가 얘기했어?”
“어제 우리 둘이서 갔던 그 스포츠센터 있잖아. 그리로 온대.”
“fitness center로, pool로?”
“fitness center로 오겠지? 너 오늘 pool 갈 거야?”
“오늘은 진짜 pool 가고 싶긴 한데……. 그러면 8시 반에 free swimming(자유 수영) 끝나고 내가 fitness center로 갈 테니까 그 때 만나자. 한 8시쯤 와서 같이 운동하고 있으면 내가 그리로 갈게.”
“그래.”
경환과 소현은 헤어져 서로의 수업을 들으러 향했다. 한편 종현은 하루 종일 소현에게 뭐라고 말할지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종현은 경환 없이 혼자서 캠퍼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심각하게 생각을 하다가 수업 시간이 되면 들으러 들어가고 끝나면 다시 나와서 할 말을 생각했다. 소현에게 정말 진지하게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하고 싶었다. 또 해야 했다. 그것은 소현이 프로듀싱에 관심이 있다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소현을 직접 만나서 좀 도와 달라고 하고 싶었다. 프로로 전환하려면 아직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산더미 같았다. 소현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정말 당장 프로듀싱을 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게다가 만돌린, 기타, 틴 휘슬, 콘서티나에 피들까지 연주할 수 있단다. 종현은 소현에게 우리가 프로로 전환하는 것을 좀 도와 달라고 말하려는 것이었다.
한편 종현은 또 다른 것도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학적은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이었다. 아예 UCC 학적을 포기하고 음악에만 집중할까, 아니면 UCC를 마칠까. 음악에만 집중하려면 전자가 나았다. 그렇지만 UCC를 마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편, 경환은 정말로 소현을 좋아하고 있었다. 사랑하고 있었다. 소현에 대해 진짜 육적인 사랑을 품고 있었다. 경환은 소현이 정말로 예뻤다. 소현의 길고 화려한 금발머리(물론 염색한 것이지만), 커다란 눈과 하얀 이마, 약간 살이 붙어 있는 장밋빛 뺨과 루비 빛깔 입술, 토실토실하고 환상적인 볼륨감을 자랑하는 몸매. 경환은 이 모든 것이 좋았고, 예쁘다고 느꼈다. 큰 가슴에 금발이면 무식하다는 고정관념이 있긴 했지만 그건 근거 없는 오해일 뿐이었고 게다가 소현의 원래 머리는 금발이 아닌 흑발일 가능성이 99.99999999%였다. 설사 흑발이 아니라도 짙은 갈색이겠지. 소현을 생각만 해도 엄청난 양의 아드레날린이 교감신경 절후뉴런 말단에서 쏟아져 나왔다. 경환은 소현이 정말로 좋았다. 소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거나 나란히 걷거나 아무튼 가까이 있을 때면 정말 기분이 환상적으로 좋았다. 무엇이든 소현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소현과 함께 공연이나 음반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경환은 소현에게 사랑한단 말은 진짜로 못 할 것 같았다. 경환이 사실 소현과 처음 만났을 때는 정말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소현과 좀 친하게 지내고는 있지만 하나하나를 위해 경환은 정말 엄청난 용기를 내야 했다. 경환 특유의 수줍음을 많이 타고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 때문에 차마 소현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냥 속으로 사랑하고 있을 뿐이었다. 경환은 혼자 있을 때면 옆에 소현이 있다고 생각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이곤 했다. 그러나 차마 그 말을 소현에게 날릴 용기는 나지를 않았다. 지금 소현과 얘기하고 함께 다니는 것만 해도 경환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용기를 다 낸 것이었다. 소현과 잠시라도 함께 있으면 교감신경이 정말 엄청나게 흥분하여 감당을 할 수가 없었다.
경환은 소현이 관람했던 첫 번째 공연 때 소현의 눈에서 본 그 ‘love light', 사랑의 빛을 생각했다. 소현의 눈에서 본 그 love light는 언제 떠올려도 환상적이었다.
“I love you as I never loved before, since first I saw you on the village green…….”
의 이 코러스를 들으며 따라 부를 때면 경환은 언제나 소현을 떠올렸다. 실제로 경환은 이제까지 한 번도 여자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고 특정 여자에 대해 이런 육체적인 사랑을 경험해 본 적조차 없었다. 정말로 ‘never loved before' (예전에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이었다. 소현이 처음이었다.
경환은 아무에게도, 심지어 종현에게도, 자신이 소현을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생물학과 남학생들이 집요하게 소현을 사랑하느냐고 물어 봤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다. 생물학과 남학생들은 경환이 침묵하는 것을 보고 그러면 당연히 사랑할 것이라고 추론을 했다. 그래도 경환은 소현을 사랑한다곤 얘기하질 못했다.
종현은 일과를 마치고 경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필리, 다 끝났어? 스포츠센터 언제 갈 거야?”
“한 8시쯤?”
“왜 그렇게 늦게 가?”
“플로리가 7시부터 8시 30분까지 pool(수영장) 간대.”
“그러면 플로리는 pool 갔다가 올라오는 거야?”
“그럴 모양이야. 플로리는 free use ticket(자유 이용권) 있거든. 그거 있으면 위에서 운동할 수도 있고, 수영만 할 수도 있고, 수영장 갔다가 올라올 수도 있고, 갔다가 수영장 내려갈 수도 있고 아무튼 free use 시간에는 마음대로 쓸 수 있어.”
“괜찮은데? 나도 하나 사야겠다. 비싸지 않다면 말이야. 그러면 저녁 먹고 같이 스포츠센터로 가자.”
“그러자고.”
경환과 종현은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들어놓았다.
“이 마당에 피들러(fiddler, 바이올린 연주자) 한 명 나타나면 진짜 끝내주겠다. 그렇지 않아?”
“지크 나타난 것만 해도 대단한 거야. 그리고 3명 다 코리언 아이리신데 그 1명도 코리언 아이리시여야 하지 않을까? 지크 나타나기 전에는 리얼 아이리시라도 괜찮았지만 지크 때문에 올 코리언 아이리시로 하기로 한 거잖아. 완전 스페셜(특별한)한 콘셉트로 나가자고 하면서.”
“하기야 그렇구나. 플로리한테 말 잘 할 수 있겠어? 진짜 완전 중대한 거야. 나도 지금 플로리가 뭐라고 할지 긴장이 되고 막 걱정까지 된다.”
종현은 경환을 쳐다보았다. 소현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종현은 경환이 정말로 소현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경환에게 한 번도 물어 보지는 않았다. 경환에게 그러한 민감하고 예민한 것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예의가 아니었고, 설사 물어 본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답을 해 줄 경환이 아니었다.
한편 소현은 6시 40분쯤 스포츠센터에 도착하여 수영장으로 내려갔다.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수영복과 용품들을 챙겼다. 소현은 샤워를 하고 수영복을 입은 다음 수영장으로 내려갔다. 소현도 머릿속 복잡하긴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종현이 무슨 중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스포츠센터로 다 왔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보나마나 아주 심각하고 중대한 이야기일 것이었다. 종현이 사제 서품 받는 대신 무엇인가 하려고 한다는데 도대체 그게 자신과 무슨 관련이 있을지 참 궁금한 한편 걱정도 되었다. 종현이 자신에게 정말 어려운 부탁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소현은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수영을 하는 것이 좋았다. 수영을 하면서 그런 복잡한 생각들을 잊으려는 것이었다. 물 밖에서 하는 운동은 집중해서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물에 들어가면 수영에만 집중하면서 그런 것들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경환과 종현은 걸어서 스포츠센터로 향했다. 가는 길에 경환이 갑자기 종현의 팔을 잡고 액세서리 숍에 들르자고 했다. 종현이 말했다.
“액세서리 숍에서 뭐 사려고 그래?”
사실 경환은 얼굴도, 목소리도, 성격도 모두 여성스럽기 때문에 액세서리 숍에 들르는 것이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종현도 크리스천 브라더스 목걸이를 하고 다니지만 경환은 아주 화려한 (그리고 여성스러운)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것으로 생물학과에서 유명했다. 경환은 목걸이뿐만 아니라 귀걸이, 팔찌, 반지도 많이 하고 다녔다. 물론 모두 반짝거리는 것들이었다. 별로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리고 뭐라고 할 것도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경환은 호모가 아니었다. 단지 여성스러울 뿐이었으니 그걸 뭐라고 할 일은 아니었다. 경환이 말했다.
“귀걸이를 사려고. 패디, 너 귀 뚫었지? 지난번에 귀걸이 했잖아.”
“그래. 뚫긴 뚫었어. 내 것도 사려는 거야?”
“일단 따라와 봐.”
액세서리 숍 사장은 경환과 종현이 나란히 숍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남자 혼자서도 아니고 둘이 들어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사장은 일단 남성용 액세서리가 진열되어 있는 곳을 알려 주었지만, 경환과 종현은 정말 화려하고 원색적이고 반짝거리는 귀걸이들을 찾았다. 사장은 순간 당황했다.
“이것 어때?”
경환은 소현이 새로 산 에메랄드그린 색깔 귀걸이와 똑같은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이거 봐 놨다가 사려고 했던 거야? 좋네. 우리 둘이 한 pair(쌍)씩 사면 딱 되겠네. 공연할 때는 이것 끼고 하고.”
“그래. 바로 이거야. 프로로 switch하는 데 유니폼은 천천히 맞추더라도 이런 건 당장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렇지. 진짜 excellent idea(탁월한 아이디어)다.”
사장은 한국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사장의 얼굴에는 종현과 경환이 귀걸이 고르는 것을 보며 점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경환이 상품을 골라 계산대로 가져왔을 때에는 거의 패닉 상태였다. 경환이 말했다.
“How much are they?” (얼마죠?)
“One pair is 7 Euros, but if you buy two pairs, they are 12 Euros.” (한 세트는 7유로지만, 두 세트 사시면 12유로입니다.)
사실 이 할인 전략은 남녀 커플에게 커플링이나 다른 커플 장신구를 팔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남자 둘이 들어와서 둘이 똑같은 귀걸이를 한 세트씩 사고 있으니, 사장은 당연히 당황도 아니고 패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장은 당황하여 말을 이었다.
“Anything else?” (다른 건요?)
경환이 귀걸이를 계산하는 동안 목걸이를 둘러보고 있던 종현이 갑자기 경환을 불렀다.
“필리! 여기 목걸이도 있는데, 이건 어떨까?”
에메랄드그린 빛깔의 모조 보석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였다.
“두 개 있어?”
“그래. 이것도 하나씩 사자, 어때?”
“좋아, 이리 가져와. 같이 계산하자고.”
사장은 이제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 귀걸이로도 모자라서 목걸이까지 둘이 똑같은 것을 사 가고 있었으니. 사장은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싶었다. 경환이 다시 물었다.
“How much are they?”
“The necklace is 12 Euros, but you can get two with 20 Euros.” (목걸이는 12유로지만, 두 개는 20유로입니다.)
모두 합쳐 32유로였다. 경환은 10유로 3장과 1유로 동전 2개를 사장에게 건네주었다. 사장은 거의 패닉 상태가 되어 돈을 받았다. 경환과 종현은 구입한 상품들을 가지고 숍을 빠져나왔다. 사장은 경환과 종현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질 못했다.
벤치에 앉아 경환과 종현은 목걸이를 걸었다. 종현은 귀 뚫은 구멍에 귀걸이를 끼워 넣었고, 경환은 하고 있던 귀걸이를 빼고 새 귀걸이를 끼웠다. 귀걸이를 끼우며 종현이 말했다.
“아까 저 집 사장 말이야. 완전 패닉이던데?”
“그랬어? 도대체 왜 그랬지?”
“아마도 우리가 호모 커플인 줄 안 모양이야.”
“제대로 착각했군. 감히 누구를 호모로 착각을 해?”
“누가 아니래? lad 둘이 들어와서 같은 걸 사 가니까 그랬던 모양이지.”
“그러게 말이야.”
벤치에서 일어나서 스포츠센터로 향하며 경환은 새로 산 귀걸이와 목걸이를 소현이 보면 어떻게 말할까를 계속해서 상상했다. 새 귀걸이를 소현에게 정말 보여 주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경환의 귀걸이는 소현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소현의 배꼽 피어스는 자세히 보질 못했지만 귀걸이는 스포츠센터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만나서도 정확히 보고 기억을 했다. 그리고는 소현이 갔던 액세서리 숍에 들어가 정확히 같은 것을 사 왔다.
“유니폼은 그러면 언제 가서 맞추지?”
“일단 멤버들 다 확정된 다음에 유니폼을 맞춰야지.”
경환과 종현은 유니폼을 맞추기로 했다. 물론 유니폼 맞추지 않고 활동하는 아이리시 포크 음악 그룹이 훨씬 많다. 그러나 경환과 종현은 클랜시 브라더스가 유니폼인 흰 스웨터로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대중 가수들은 앨범을 낼 때마다 유니폼을 바꾸지만 클랜시 브라더스는 계속해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앨범 재킷 사진을 찍었다. 경환과 종현은 유니폼을 맞춰서 그러한 효과를 보기로 하였다. 물론 유니폼 색깔은 소현이 제안한 그대로, 방금 산 목걸이와 귀걸이 색깔 그대로, 에메랄드그린 빛깔이 될 것이었다.
한참 동안 수영을 하던 소현은 잠시 풀 가장자리에 앉아서 쉬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종현이 왜 자신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는지 그렇게도 궁금하던 것이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소현은 시계를 보았다. 7시 40분이었다. 자유 수영 시간은 8시 30분까지지만 빨리 올라가 보고 싶었다. 소현은 여자 샤워장 올라가는 반대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다시 물로 들어가 반대쪽까지 수영을 했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물에서 나와서 샤워장으로 올라갔다. 수영복을 벗어 탈수기에 집어넣고, 샤워를 하고, 수건으로 물을 닦고, 면봉으로 귀에 들어간 물을 빼내고, 화장을 다시 하는 일련의 과정을 일사천리로 진행하였다. 그리고는 허둥지둥 사물함에 달려가서 열쇠로 문을 열었다.
한편 종현과 경환은 각자 새로 산 목걸이, 귀걸이를 끼고 스포츠센터에 도착했다. 시간은 7시 50분이었다. 바로 들어가면 소현을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경환과 종현 모두 고해성사 보러 가는 듯 숙연한 분위기로 스포츠센터로 들어섰다. 특히 종현의 경우 그 기분이 더했다. 소현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을 했다. 이것은 정말로 중대한 일이었고 종현의 삶에서 분수령이 되는 일이었다. 소현의 반응은 종현에게 정말로 모든 것이었다. 대통령 취임식 연설 준비하는 것보다도 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종현은 소현에게 할 말을 준비했다. 이것은 결코 얼렁뚱땅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경환은 또 경환 나름대로 심각했다. 단 1분도 잊을 수 없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예쁜 여자, 소현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소현을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며 만나든 경환은 굉장히 심각하고 진지한 기분이 들었다. 소현과 만난 지 꽤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경환은 소현과 함께 있는 것이 정말로 두근거리고 황홀했다. 아무튼 그렇게 심각한 기분과 표정을 지으며 종현과 경환은 복도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