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웨이 단편 소설: 어스름한 빛에 담긴 그림
by 아이사 마리 데 레온
https://universe.leagueoflegends.com/ko_KR/story/paintings-framed-in-half-light/
환상이 쏟아진다.
오늘 밤 내 마음에 자비는 없다.
숲에 선 나는 비현실적인 광경에 잠기는 그곳의 모습을 상상한다. 풀이 녹는다. 바위가 소용돌이치며 일그러진 얼굴로 변한다. 액체가 된 잎은 가지를 타고 피처럼 뚝뚝 떨어지며 웅덩이를 만든다.
달은 감긴 눈이다.
붓을 손에 쥐자 나의 영묘한 팔레트가 나타난다.
다시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다시 그리며 다시 경험한다...
내 앞의 한 남자가 자신의 무기고에서 불탔다.
우리 주위로 동이 틀 무렵의 색상을 품은 그림 화염이 맹렬히 이글거렸다. 그 황금빛 중심이 고통과 함께, 남자의 무기가 만든 모든 상처와 함께 고동쳤다. 불길은 벽을 타고 올랐지만 불붙지 않았다. 재도 연기도 내지 않고 그저 나의 의지만큼만 번질 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타오르는 그 어떤 불보다 강렬하고 격렬했다.
남자가 몸부림쳤다. 남자의 감각은 뼛속까지 타올랐다. 남자는 톱날 달린 칼이 늘어선 무기 걸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녹서스 강철로 만든 카슈리의 작품이었다.
카슈리, 생각이 떠오른다. 코이엔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여기 있는 칼은 도륙에 쓰인 것이었다. 남자는 고통을 가했으니 고통을 받아야 마땅했다.
나는 대장간의 불꽃을 일으키며 그에게서 대답을 끌어냈다. 누구와 함께 일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숨을 헐떡일 때마다 남자의 분노가 팽팽해졌다. 그림이 남자의 눈 속에서 요동치며 분노를 고스란히 비추었다.
그는 고통을 멈추기 위해 무엇이든 주겠다고 했다. 돈. 무기. 자신의 손으로 하는 복수. 하지만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 사이의 이 순간이었다. 내가 짊어졌던 모든 환상이 그의 짐이 되었다. 나의 상상에서 치솟은 불이 그의 상상으로 옮아가며 내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나는 내 예술이 남자를 파괴하지 않게 막았다. 이제 우리 둘 다 이 흔적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지옥불 속에서 질식해 가는 남자와 달리 난 그 안에서 살아남는다.
파도가 나를 끌어당긴다. 나는 다시 그리며 다시 경험한다...
한 여자가 나를 태우고 거친 물을 건넜다.
우리 주위로 황금빛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등불에 이끌린 벌레 떼의 움직임에 빛이 얼룩덜룩했다.
우린 서로 마주 앉았다. 파도에서 올라온 해초가 노를 붙들었다. 내 마음의 샘에서 수련이 자라났다. 공물이다. 나는 그것을 형상화했다. 해초가 그림 꽃을 대신 가져가 떼어 내어 버렸다.
여자의 손이 리듬을 찾았다. 여자는 이 물길이 항상 이런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여자는 약탈자와 무기 밀수업자, 암살자를 태우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지닌 어두운 의도가 스며든 수로는 점차 탁하게 병들어 갔다.
여자의 목소리에는 죄책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팔레트에서 색을 모으고 여자가 젓는 노의 움직임에 맞춰 수련과 새로운 생명을 만들었다. 노을빛 자두색과 주황색을 지닌 잉어였다. 나는 여자가 고통의 이면에서 다정한 기억을 떠올리도록 영감을 불어넣었다. 여자가 짊어졌던 모든 것이 나의 짐이 되었다.
자신의 안에 있는 작품들을 채찍질하던 운하가 그것들을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여자의 눈가에 잡힌 주름이 온화한 기쁨으로 접혔다.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서 새가 지저귀었다.
안정을 되찾은 생각과 손이 우리를 더 안전한 기슭으로 데려다주었다.
내 마음속에는 빛이 있다. 나는 그것을 선택해 그릴 수 있다. 하지만... 빛은 언제나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는 다시 그리며 다시 경험한다...
코이엔의 작업실에서 한 예술가가 내 옆에 서 있다.
우리 주위로 촛불이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열린 창문 아래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이빨 같은 바다 거품과 함께 아가리를 벌리는 보라색 협곡이 스스로를 계속해서 먹어 치웠다. 코이엔 사원의 마지막이 될 밤이었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야." 진이 말했다.
그는 타오르는 양초를 바라봤다. 나는 파도를 응시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즐거웠길 바라지." 내가 말했다.
그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파도가 자신이 부딪치는 바위에 어떤 감정을 느낄까?"
난 온갖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자연은 감정적이다. 변덕스러우면서 조화롭다.
"아무것도 못 느끼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설마 코이엔에 대한 감정이 고작 그 정도는 아니겠지?"
"이곳은 내가 보고자 했던 모든 걸 보여 줬어. 마지막 한 작품만 빼고 말이야."
그는 나를 돌아봤다. 나도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게 뭔데?"
"흐웨이, 네... 그림이야. 진정한 그림 말이지. 난 강요된 예술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어. 넌 항상 무언가를 숨기더군. 그게 뭔지 알고 싶어."
눈이 번쩍 뜨였다. 그때 내 눈이 무슨 색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안에서 휘몰아치던, 진이 발견한 것이 두려웠다.
"무슨 말이지? 난 늘 진심이야."
눈을 뜬 캔버스가 진에게서 뭔가를 찾아 헤맨다. 시기, 분개, 열정, 슬픔... 그를 설명할 그 어떤 감정이라도 찾으려고 한다.
우리가 다시 만나면 전과 같이 그를 맞이하리라. 함께 밥을 먹으리라. 새로운 시야에서 그가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리라. 왜 코이엔이냐고, 왜 나냐고 물어보리라. 그리고 내가 아는 그를 그리며 그의 살인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고 고통에 찬 얼굴에 색을 돌려주리라. 그것은 우리를 아주 밝은 어둠으로 감싸 눈이 부시게 할 것이다. 눈이 부시다 못해 마침내 자유로워지리라.
예술은 나를 살리지만 나를 부술 수도 있다. 어떨 때는 내가 이미 길을 잃은 것 같다.
진이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그는 내 예술을 드러내라며 날 설득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과거의 나를 저지하기 위해 팔을 그린다. 노려보기 위해 눈을 그린다. 비명을 지르기 위해 입을 그린다. 그와 동시에 팔은 밀어 내고 눈은 주시하며 입은 부추긴다.
과거와 현재에서, 나는 붓을 들어 올린다...
오늘 밤의 그림을 마무리했다.
검은색과 금색이 내 주위를 감쌌다. 땅의 균열, 그 틈에서 나오는 빛, 금을 입힌 우리 안의 꾀꼬리, 핏발이 잔뜩 선 눈의 무한함.
달이 목격한다. 코이엔, 진, 그 밑에 있는 모든 것을 덮는다. 나는 여전히 홀로 남아 있다.
환상이 폭발한다. 그 자리에 숲이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팔레트가 사라진다.
깨어난 나는 다음 작품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