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파의 성지 마치다에 대한 소개도 했으니 슬슬 전국 대회와 당시 일본 각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이야기 해보자 한다. 덤으로 일본 버파 최대 이벤트인 비트라이브의 시작인 아테나컵 이야기도 조금.
이야기의 소스는대부분 2021년 철인 인터뷰에서 가져왔다.
아테나컵과 신사의 게임 버추어 파이터
마치다가 버파 성지로 자리잡기전 그냥 동네 역앞에 있는 오락실이었다. 1회 아테나컵은 지역내 단골위주로 참가한 대회로 시작되었다. 규모는 이후 아테나컵과 비트라이브를 생각하면 정말 귀여운 수준이었겠지만 각종 도발과 욕설이 난무하는 대회전통의 신사(?)적인 분위기는 이미 이때 정착되었다고 한다. 사견이 아니라 비트라이브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이야기 그대로다. 이후 음주가무가 추가되어 후도는 비트라이브 컵에서 음주는 기본이고 나베요리를 먹고 토할때까지 마신뒤 비로서 인정받게 되었다고.
2회부터는 캬사오가 인근 지역까지 명성이 알려지면 이를 잡으려고 마치다뿐아니라 신주쿠플레이어들도 참여하면서 마치다vs신주쿠의 구도로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대방vs00등 수도권으로 그 범위를 넓혀가게된다. 전국대회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 철인칭호를 받은 플레이어 전원이 참가한 대회가 되었다.
2회아테나를 전후로 꽤 재밌는 사건들이 일본 버파에서 일어난다.
앉아대쉬 사상장.
붕붕 마루 vs 다이몬 의 스토리는 국내에도 몇번 소개된 글들이 있는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서 이야기에 디테일이 더해지고 기존에 소개된내용과는 결이 많이 달라지게되었다.
인터넷이 없던 당시(95년) 지역별로 특유의 게임스타일이 존재해 해당 지역에 강자+이걸흉내낸 양민들로 그 지역의 플레이 스타일이 결정된다. 소위 말하는 마을용사(村勇者)스토리로 한지역의 강자가 타지역 원정을 다니면서 강자들을 쓰러트리고 동료를 얻거나 본인이 패해 동료가 되는..하나의 rpg용자스토리에 대한 비유이다.
이때의 다이몬 라우의 플레이 스타일은 앉은상태 중단 히트 경직확인후 사하장(사상장이 아니다) 콤보로 강자의 위치에 있었고 아직 앉아대쉬 사상장을 익히지는 못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앉은상태에서 엘보를 맞은뒤 회복을 할수 있다는걸 알고있는것은 홋카이도의 플레이어들뿐으로 아직 관동과 관서등지에선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이때쯤해서 캬사오를 비롯해 도쿄유명플레이어들은 앉아대쉬와 사상장을 발견하고 입력방법을 찾아내게된다. (붕붕마루나 도쿄플레이어들이 앉아대쉬나 서서 사상장을 모르는게 아니었고 다이몬이 먼저가 아니었...) 교토는 중단경직+사하장, 도쿄는 앉아대쉬 , 홋카이도는 경직회복 .각자의 비밀무기를 가지고 맞이하게된 세가 공식 버추어파이터1,2 전국대회 이터널배틀.
일본의 격투게임대회는 대부분 전야제로 불리는 대회 전날과 대회다음날이 뜨겁다. 각지에서 올라온 유명인들이 모여 탐색전과 뒷풀이(우승자를 노린 도전)로 오락실은 평소보다 더욱 북적이게된다. 이때 캬사오는 전략 노출을 꺼려 앉아대쉬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고 다이몬의 경우는 앉은상태 중단 경직 + 사하장으로 수십연승을 했다고 한다. 결국 이게 전략 노출이 되었는지 다음날 대회에서 다이몬은 홋카이도 플레이어에게 비장의 경직+사하장이 경직회복이라는 비기에 막혀 패배 . 사상장 하나로 날로 먹었다는 인식이 국내에는 잘못알려져 있지만 실은 이때부터 나름 유명했다고 한다.
결승은
카시와 제프리대
캬사오 였다.
우승은 카시와를 이기고 캬사오가. 이때까지도 경직을 풀줄 몰랐기때문에 훗카이도의 소마잭키가 다이몬을 잡아주고 그 소마잭키를 자기가 잡아 어부지리로 우승한건지도 모르겠다면 이때를 회상했다. (2021년 7월인터뷰)
대회가 끝난후 교토로 돌아간 다이몬은 친구에게서 앉아대쉬 사상장이라는 태크닉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다이몬의 앉아대쉬 사상장이 대단했던건 그가 처음이라서가 아니라 완성도나 전술적인 면에서 매우 뛰어났기 때문인듯하니 사상장하나로 날로 먹은 플레이어 취급은 그로서는 억울할만도 하다. 이런 다이몬의 소문을 듣게된 도쿄쪽 플레이어들은 그동안 소개된 대로 원정을 가게된다. 이게 바로 그 교토 원정의 참사의 내막이다.
이후 내용은 이전에 전해진 내용그대로 사상장과 기상시 무적타이밍을 익힌 다이몬에게 붕붕마루와 카시와가 50연패를 당하고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 그대로..
이후 열린 아테나3의 명승부는 너무 자주 나온이야기라 여기선 패스하기로 궁금한 사람은 daimon bunbunmaru로 검색해도 영상이 뜬다. 짧게 첨언하자면 본격적인 "비공식"버추어파이터 전국대회로는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첫대회라는거.
아테나3회 대회에 대해 소개할 내용은 붕붕마루와 다이몬 라우의 명대결이 아니라 슬슬 이 좁은 매장에서의 대회가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다는거다. 그동안 좁은 공간(대략25평)에서 대회를 열때마다 조금이라도 사람을 더 들이려고 버파를 제외한 오락기는 근처 주차장을 빌려 옮긴다던가 트럭을 빌려서 그대로 오락기를 채워 반납을 했다가 다시 찾아온다던가 꼼수란꼼수는 모두 노하우가 되어갔어도 늘어나는 인원을 소화할수가 없게된다.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락실 밖에 모니터를 설치하니 지나가던 사람들도 서서 구경을 하는 쇼와시절 tv가 보급될 당시 스모경기 구경하는 풍경이 되었다고 하니 상상이 되지 않는가?
대충 이런느낌.
하나의 에피소드로 사람이 너무 많아 산소가 부족한건지 호흡곤란과 함께 담배에 불이 붙지 않았다고..(그상황에 담배를 피려한것도 정상은 아니지 않나..)
하여간 이정도가 되다보니 이웃에서도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결국 제4회부터는 장소를 옮겨 개최를 하게되는데 바로 이게 VFR의 탄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타이완스텝
제4회 아테나컵 대회가 열기기전 대만을 방문한 일본의 버파 플레이어는 신기한 스텝을 보게된다. 앞뒤로 앉은상태로 끊임없이 밟는 스텝. 이후 스토리는 버파3의 코리안스텝과 매우 유사하다 시간상 이쪽이 먼저겠지만 차이점이라면 우승을 했냐 못했냐정도? 앞서 설명한대로 다이몬이 유명한건 앉아대쉬 사상장을 처음해서가 아니라 그걸 전술적으로 완성도를 높혔기 때문이다. 코리안 스텝역시 당시 일본 플레이어들도 회피캔자체는 알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당시 한국의 shinz정도의 실전적용과 완성도에 미치지도 못했고 맥시멈배틀이후 실효성에 인식의 변화가 찾아오면서 자리를 잡았다고 하는데 다시 타이완 스텝 이야기로 돌아와 그해 가을 버파2 맥시멈 배틀에 타이완 대표는 초청을 받아 참가하게된다.
https://youtu.be/1TQlhj6yPB0?t=208
타이완 플레이어는 본선에서 캬사오에 패배. 영상 5분쯤에 나오는 아키라가 타이완 아키라다. 결승은 캬사오vs마에다아키라 vs 오사카의 후루카와 아키라. 우승은 오사카 후루카와.
그리고 이런 철인과 아재들의 활약이 맘에 들지 않는 고삐리들이 전국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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